[전문가 칼럼] 대한민국 재산권, 안녕하십니까?

2015/03/10 by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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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우리 집사람입니다.” 제3자에게 자기 아내를 소개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영어로 직역하면 우스꽝스러워진다. “She is our wife”가 되기 때문이다. 부인을 공유하는 것도 아닌데 한국인은 자기 부인 앞에도 ‘우리’란 말을 아무렇잖게 붙인다. 영어로는 ‘my wife’이지만 ‘내 집사람’이란 말은 왠지 불편하다.

영단어 ‘my’는 ‘나의(내)’로 해석되는데 한국인은 이 말을 무척 어색해한다. 웬만하면 ‘우리’가 붙는 건 그 때문이다. 아내는 ‘우리 집사람’, 아들도 ‘우리 아들’, 집 역시 ‘우리 집’이어야 하는 것이다. 몇몇 젊은이가 ‘내 아내’ ‘내 아들’ ‘내 집’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 역시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인의 ‘우리’ 표현에 숨겨진 속뜻

‘모두를 위해 내 것도 기꺼이 내놓다’는 뜻에서 ‘우리’가 사용된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한국 인구 전체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자기 소유물을 내어 준다면 세상은 낙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대다수가 ‘네 것도 내 것’이란 뜻에서 ‘우리’를 사용한다.

찢어진 종이 안에 Our라고 써 있습니다.

사실 ‘네 것’ ‘내 것’을 가리는 일과 공동체 의식은 별개 문제다. 소유 구분을 분명히 한다고 해서 공동체 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유태인은 어릴 적부터 소유 개념을 철저하게 익힌다. 용돈도 일을 해서 벌어야 할 정도로 그들의 머릿속에 ‘공짜’란 없다. 하지만 유태인처럼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부하는 민족도 없다. 부자든 아니든 그들은 어릴 때부터 공동체를 위해 기부하는 법을 배운다.

반면, 한국인은 ‘my’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기조차 불편해할 정도로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모호하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재산을 선뜻 기부하는 이도 찾기 어렵다. 한국인의 희미한 재산권 의식은 ‘남의 재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의 다른 표현이다. 결코 ‘남을 위해 내 재산도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44년째 방치 중인 ‘그린벨트 재산권’

재산권에 대한 인식은 ‘공공’이란 명분이 붙으면 더욱 희미해진다. 타인의 재산도 마구잡이로 사용되기 일쑤다. 대표적 사례가 그린벨트다. 이 자리에서 그린벨트의 필요성 유무를 따질 생각은 없다. 지역에 따라 필요한 곳도, 그렇지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안타까운 건 ‘재산권이 무시되는 현상’이다.

자연이 드넓게 펼쳐진 곳 입구에 사유재산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자기 소유 토지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당 토지에 대한 재산권이 대부분 박탈되는 셈이다. 반면, 새 도로를 놓으려면 국가는 그 도로가 위치할 토지를 공공 재산으로 수용하고 해당 토지 소유주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도록 돼 있다. 그린벨트 정책에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면 국가는 국민의 재산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린벨트 지정 토지 소유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실제로 이 같은 내용은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제3항(“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에도 규정돼 있다. 하지만 지난 1971년 도시계획법에 따라 그린벨트가 처음 지정된 후 보상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나섰다. 1998년 헌재는 관련 헌법 조항에 근거해 “그린벨트 정책 시행의 근거가 되는 도시계획법 제21조에 보상 조항이 없는 건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보상 없이 규제만 하는 건 위헌이니 하루 빨리 보상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15년간 달라진 건 전혀 없다. 국회와 정부가 위헌 상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의 목적’ 핑계로 폭정 휘둘러서야

국가가 헌재 판결조차 나 몰라라 하는 이유 중 가장 현실적인 논리는 “그린벨트 소유주 보상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돈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로 포장이나 공무원 연봉 지급, 복지 시설 건립 등은 모두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국가 지출이다.

양복입은 사람 손 위에 정부 예산 주머니가 올려져 있습니다.

그린벨트 관련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진짜 이유는 “그린벨트 보상 따위에 돈을 쓰기 싫다”는 데 있다. 그저 그들의 땅을 공짜로 쓰고 싶은 것이다. 피해자들의 애타는 하소연에 국회가, 정부가, 심지어 대다수 국민이 귀를 막아버리는 건 그 때문이다. 이쯤 되면 ‘법치’가 아니라 ‘폭정(暴政)’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제아무리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란 명분이 있다 해도 시민의 재산을 쓰려면 반드시 보상이 따라야 한다. 도로 건설을 예로 들어보자. 도로가 놓일 토지 소유주에게 보상하고 싶지 않다면 도로를 새로 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린벨트 정책도 마찬가지다.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하고 싶지 않다면 그린벨트도 풀어주는 게 법 논리에 맞다.

 

‘사유재산 공적 이용료’, 당신의 생각은?

공공(公共)을 앞세워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사례는 그린벨트 외에도 많다. 최근 정부에 ‘사유재산 공적 이용료’를 요구하고 있는 사립유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립유치원 측이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건 이들 역시 공공의 목적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과정(만 3세부터 5세까지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국가가 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제도)을 비롯한 무상보육 정책이 전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사립유치원은 사실상 국공립유치원과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먹이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정부 요구를 따르도록 규정돼 있다. 국가에서 주는 보육료를 제외하면 가벼운 경비 정도만 학부모에게서 걷을 수 있다.

문제는 사립유치원 시설에 대해 국가가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나같이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씩 개인 돈을 쏟아부어 지은 시설이지만 이런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교육은 숭고한 일이다. 하지만 교육의 가치와는 별개로 그 비용의 부담 주체는 제대로 따져야 한다. 공공의 목적을 위한 교육이라면 그 비용 역시 국가 세금으로 부담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사립유치원 역시 공공 목적에 사용하고 싶다면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미국이었다면, 유럽 지역 국가였다면 당연히 그렇게 처리했을 것이다.

유치원 내부 모습입니다. 책상 위엔 각종 교육 도구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남의 것도 내 것처럼 귀히 여기는 세상

오늘날 한국 현실에서 재산권은 좀처럼 존중되지 않는다. 비단 유치원뿐 아니라 초·중·고교 등 사립교육기관도 대부분 국공립학교와 다름없이 공공 목적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 관해 국가적 보상이 이뤄졌다는 얘긴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사립유치원들이 요구하는 사유재산 공적 이용료가 법적 당위성과는 별개로 대중에게 낯설고 부담스럽게 들린다는 사실은, 우리가 평소 사유재산권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산권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바뀔 수 있을까? 타인의 재산은 있는 힘껏 존중하고 자기 재산은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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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프리덤팩토리 대표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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