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소비도 ‘힐링’이 되나요?

2015/03/13 by 여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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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마음속 저울 균형 무너졌다면 ‘위험 신호’

우리 마음속엔 저울이 있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면 불안한 것처럼 마음속 저울도 의지와 달리 한쪽으로 기울면 불안하고 불편하다. 이 같은 불균형은 언제 발생할까? 현실이 기대와 달랐을 때, 예를 들어 ‘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주변 반응이나 결과가 그와 전혀 다르게 나왔을 때’다.

심적 불균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뿐 아니라 사람과 제품, 사람과 브랜드(기업)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심적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균형을 이루려 한다. 마치 한쪽 발을 들고 서 있다가 기우뚱할 때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짓을 취하듯 마음 역시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부터 균형을 되찾으려 분주해진다.

한 남성이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적 불균형이 야기하는 불편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행동을 취한다. 불균형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고 책임을 묻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아쉽게도 이런 행동은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에서 이뤄진다. 이렇게 볼 때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는 건 어찌 보면 인간의 숙명과도 같다.

인간은 타인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관계적 결손(interpersonal deficit)’을 경험한다. 현대인의 행동 깊숙이 자리 잡은, 일종의 ‘동인(motive)’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터넷과 모바일을 떠도는 정보량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실패(social failure)’는 늘어난다. 인간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심적 불균형에 빠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리고 불균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 탓’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 큰 불균형을 경험하게 된다. ‘관계 과잉의 시대’가 빚어낸 필연적이고도 역설적인 결과다.

 

모든 소비엔 ‘마음에서 비롯된 이유’ 존재

관계를 맺는 대상이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 기업일 때도 관계적 실패는 허다하게 발생한다. 인간은 매번 자신의 관점에서 ‘날 위한 가설’을 만들고 접촉 대상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인 후 상대와 접촉한다. 그러다 보니 부조화나 불균형에 따른 실망과 해결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구성원의 심적 불균형과 관계적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가 제때 해소돼야 한다. 개개인이 심적 불균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련 사회 제도를 정비하고 그에 맞춰 대처할 필요가 있다. 소비 행동 또한 ‘(심적 불균형으로 인한)스트레스 해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모든 소비 행동엔 ‘마음에서 비롯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물리적 결핍을 채워 넣기 위해서도 소비하지만 ‘정신적 결핍(mental deficiency)’을 보충할 목적으로도 소비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배가 고파 뭘 먹기도 하지만 결핍된 마음속 허기를 채우려 무의식적으로 요깃거리를 찾기도 한다.

타인을 축하하거나 위로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소비가 있는가 하면, 가엾은 자신을 달래기 위한 소비도 존재한다. 그리고 갈수록 후자의 비중이 늘고 있다. 심적 불균형에서 비롯된 불편을 잘 견뎌온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보상적 소비’, 관계적 실패가 낳은 당장의 불편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뤄지는 ‘해소적 소비’가 대표적이다.

힘든 현실에서 정신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 마음은 보상적, 해소적으로 움직인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비 행동에 나선다.

 

보상·해소적 소비는 생존 위한 ‘본능’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외부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해내는 면역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이 같은 면역 시스템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존재한다.

신체적 면역 시스템이 외부에서 침투한 나쁜 균의 인체 공격을 막아내듯 ‘정신적 면역 시스템(mental immune system)’은 각종 사회적 공격에서 우리 마음을 지켜낸다.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defensive system)가 작동되는 셈이다. 그 형태는 사회적 관계에서 무너진 마음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뭔가를 채워 넣거나, 불균형 지점에서 아예 도망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만약 면역 시스템이 망가져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면, 다시 말해 심적 상처를 제대로 보상받거나 풀어내지 못하면 행동은 금세 ‘비정상’으로 흐르게 된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이동하는 쇼퍼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보상적·해소적 소비 행동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기제’로 발현되는 것이므로 사회적 시스템 차원에서 이해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나친 중독적 소비에 따르는 비행과 범죄, 신용 불량이나 가정경제 파탄 등 2차적 피해가 규제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상적·해소적 소비 행동이 보다 건강한 형태로 발현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충동구매는 정말 ‘충동적 구매’일까?

갈수록 ‘날 위한 소비’가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유행에 민감하고 외모 가꾸기에 관심 많은 2030세대뿐 아니라 5060세대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고도 사회로 갈수록 자신을 위한 보상적·해소적 소비가 늘어난다. 보상적·해소적 소비를 일종의 ‘본능’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속 여유가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2030세대의 자기 소비 이면엔 취업난 등에 따른 마음의 상처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현대인은 지식과 기술, 실력의 평준화 현상에 따른 무한 경쟁에 내몰린다. 타인과 비교할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종종 실망하고 자주 상처 받는다. 틈만 나면 힘겨운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 하고, 도저히 그러지 못해 이미 상처 받았다면 자신을 어루만져주고자 한다.

한 매장에서 파란색 자켓을 구경하고 있는 여성이 보입니다.

어느 날, A가 갑작스레 눈길이 간 모 명품 브랜드 핸드백을 구입했다. 대개 이런 상황을 가리켜 ‘충동구매’라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A의 내면에 잠재된 심적 불균형에 따른 보상적 소비로 보는 게 더 맞는다. 소비는 심적 불편에 빠진 바로 그 순간 일어나기도 하지만 켜켜이 쌓여 있다가 한순간 갑자기 표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비욕 자극하는 ‘마음의 상처’ 셋

이쯤 해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소비 행동을 이끌어내는 마음속 상처엔 어떤 게 있을까? 대표적 예가 ‘소통(communication) 실패로 인한 외로움’이다. 현대인은 실로 다양한 매체와 기기를 통해 (비)자발적 사회관계에 노출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소통 실패 사례를 경험한다. 기대 불일치에 따른 불편, 타인과의 공감 형성 실패에 따른 상처 등이 단적인 예다. 이런 경험이 지속되면 누구나 외로움에 빠질 수 있다. 이를 방치해 만성화될 경우, ‘중독적 소비’란 사회 병폐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여성이 울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공격받거나 무시당할 때’도 적잖이 상처를 받는다. 사사건건 주변 반대에 부딪칠 때, 소위 ‘왕따’를 당해 사회에서 배제될 때 인간의 마음속에선 강력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에서 자주 배제되는 사람일수록 눈에 띄는 명품 소비를 자주 한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을수록 그걸 만회하기 위해 ‘주목받는 소비’에 나서게 된다는 얘기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상대적 궁핍감’ 역시 마음의 상처가 된다. 문제는 이 궁핍감이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란 사실이다(subjective financial deprivation).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빈부 격차가 심해질수록 주관적 궁핍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특히 요즘처럼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선 ‘나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 같은’ 상대적 결여감이 더욱 커진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상대적 궁핍감 역시 자기 과시적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이쯤 되면 ‘불황일수록 립스틱과 미니스커트가 잘 팔린다’는 말이 만약 속설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요즘 주식 시장에서 일명 ‘불황소비주’로 각광 받는 품목은 생필품 같은 필수 소비재에서 화장품·패션·게임·엔터테인먼트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토토가’와 ‘국제시장’ 열풍의 이면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것, 공감해주는 대상에 지갑을 연다. 소통 실패로 인해 외로움을 겪는 사람은 자신이 사회에서 단절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경우 이뤄지는 보상적 소비의 대표적 예가 ‘애완 관련 소비’다. 이때 소비 대상은 생물(반려동물)일 수도, 무생물(소품·브랜드)일 수도, 문화(음악·뮤지컬·영화·드라마)일 수도 있다.

귀여운 강아지를 품에 안고 교감하는 여성의 모습입니다.

애완 관련 소비를 즐기는 이들은 외부에서의 소통 실패에 따른 상처와 외로움을 이 같은 대상과의 소통과 교감을 통해 어루만진다. “슬플 땐 슬픈 음악을 들어요”란 노랫말이 역설적이면서도 공감을 주는 건 ‘현재 내 슬픔을 공감해주는 슬픈 음악이 신나는 음악보다 기분 해소에 오히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음악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못지않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음악이나 영화에 쓰이며 큰 공감을 얻는 소재가 많은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한류 또한 마니아가 많은 국가 소비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지닌 마음속 상처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불황과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면서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소비가 점차 늘고 있다. 예전엔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휴가가 충분히 주어졌을 때 여행을 떠났지만 요즘은 주머니가 넉넉지 않아도, 일상이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여행을 계획하는 인구가 꽤 많다. 여행은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기에도, 스트레스받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에도 마침맞은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기엔 시간 여행만 한 게 없다. 실제로 ‘과거를 감상적으로 떠올리며 그리워한다’는 뜻의 향수(鄕愁·nostalgia)는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대 대중가수들을 등장시켜 22.2%의 시청률을 기록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편이나 한국 근대사를 촘촘하게 녹여내 누적 관객 수 1400만 명을 넘어선 영화 ‘국제시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과거를 추억하다 보면 그 시간 동안만큼은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눈앞 나무만 쳐다보는 ‘현실 집착’에 갇히게 되지만 비행기와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상, 다른 시대로 날아가면 탁 트인 숲을 보는 듯 시야가 넓어지며 스트레스도 해소된다.

 

‘명품 쓰는 일반인’ 늘어나는 이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지위적·경제적으로 남과 비교되며 자꾸만 낮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시나 결핍 같은 사회적 상처 역시 툭하면 마음을 괴롭힌다. 이럴 때 ‘날 가치 있게 보이도록 해주는’ 소비는 상당한 보상 효과를 발휘한다. ‘불황에 아랑곳없이 고가 제품이 잘 팔린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비싼 제품=부자만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평범한 일반인도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라면 가격에 관계없이 지갑을 연다. 그 기저엔 (상처받은) 자신에 대한 보상 심리가 깔려 있다. 흔히 ‘가치소비’라고도 불리는 이 같은 소비 행태의 기저엔 한없이 낮아진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한 안간힘이 숨어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소비, 눈에 띄는 소비 또한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억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온 자신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에선 “불황으로 인한 저성장·고경쟁 사회 분위기가 일상화되며 소비가 무조건적으로 줄고 있다”고 염려한다. 하지만 “소비 구조가 ‘날 격려하고 드러내는’ 보상적 소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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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준상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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