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운명에 맞서 ‘싸울 기회’ 쟁취한 여인, 엘리자베스 워렌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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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운명에 맞서 '싸울 기회' 쟁취한 여인, 엘리자베스 워렌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국내 최고 전문가의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보세요. 매주 화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판사


 

파산법 전문 여교수, 환갑 넘어 정계 ‘노크’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대통령 후보군으로 분류될 만큼 주목 받는 정치인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 미국 상원의원의 자서전 ‘싸울 기회’(박산호 옮김, 에쎄, 원제 ‘The Fighting Chance’)다.

싸울 기회 (엘리자베스 워렌 지음, 박산호 옮김, 에쎄)의 책표지입니다. (출처: 에쎄/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60세가 넘어서야 정계에 입문한 워렌 의원은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한 세계적 파산법 전문가다. 그는 딸 아멜리아 워렌 티아기(Amelia Warren Tyagi)와 함께 명저 ‘맞벌이의 함정(주익종 옮김, 필맥, 원제 ‘The Two-Income Trap’)을 쓰기도 했다. 하버드대가 주관한 개인파산 관련 통계적 분석과 연구 성과를 기초로 미국에서의 개인파산 증가 원인을 알기 쉽게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파산이 경제적 취약 계층뿐 아니라 중산층에도 한순간 닥칠 수 있는 문제란 사실을 보여주며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맞벌이로 상당한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 가족도 소득 증가분보다 (고정적) 지출 증가분이 훨씬 많아 여유 없는 삶을 살다가 실업∙질병 등 변동 사항이 발생하면 곧바로 파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지출의 대부분은 자녀의 ‘안전’과 ‘교육’에 할애된다. 도시 범죄율 증가와 공교육 부실화로 중산층 부모들은 ‘좋은 학교가 위치하고 안전한’ 교외 주택가에 살기 위해 높은 대출금 이자와 교육비를 부담한다(게다가 미국의 높은 의료비는 시한폭탄과 같다).

 

‘제임스 본드’ 남장 어울리던 커리어 우먼

내가 처음 개인파산 사건을 다루게 된 건 ‘신용불량자 400만’ 문제가 극심하던 지난 2004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여러 안타까운 사건을 접하며 고민하던 중 ‘맞벌이의 함정’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사람들에게 개인파산의 원인과 파산 면책 제도의 필요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2005년 ‘파산이 뭐길래’란 글을 써 발표했다.

개인파산을 뜻하는 종이와 판사의 망치가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개인파산=(빚을 모면하려는)도덕적 해이’란 부정적 선입견이 지배적이어서 개인파산 제도 도입이 활발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파산 사건을 담당하는 현직 판사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 글은 꽤 관심을 끌었다. 그 덕에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제도를 알리는 데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었다.

이후 난 대법원 해외 연수 대상자로 선발됐고, 워렌 교수에게 파산법을 배우고 싶어 하버드대 로스쿨에 지원했다. 다행히 합격해 2006년부터 1년간 법학 석사 학위(LL.M, Master of Laws)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에게서 직접 강의를 듣는 기쁨은 대단했다.

벚꽃이 핀 하버드 대학교의 모습입니다.

당시만 해도 워렌 교수는 40대로 보일 만큼 동안(童顔)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 훤칠한 키…. ‘세련된 뉴욕 커리어우먼’으로 영화에 나와도 될 정도의 외모였다. 핼러윈 데이 즈음,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하버드대 교수들이 영화 캐릭터로 분장한 포스터가 제작된 적이 있다. 당시 워렌 교수는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로 남장(男裝), 슈트 차림으로 총을 든 채 멋진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사실 미국에 살며 현지인에게 가장 부러웠던 점이 바로 이런 멋과 여유였다.

 

어느 날 문득 가난에 직면한 12세 시골 소녀

내가 유학하던 당시에도 워렌 교수는 중산층 파산을 막기 위한 금융업 규제를 주장하며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60세가 넘은 나이에 정계에 투신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싸울 기회’는 내가 그 배경을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책은 ‘나는 내가 철든 날을 알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때 ‘내가 철든 날’이란 저자가 12세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실직하고 어머니가 일자리를 얻으러 나간 날을 가리킨다. 이날 오클라호마 출신 시골 소녀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직면했다. 가난한 가정, 여자는 대학 갈 엄두도 못 내던 분위기에서 그는 장학금을 받고도 가까스로 부모를 설득,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나 19세 때 대학을 중퇴한 후 결혼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손을 들고 있습니다.

결혼 후 그는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집 인근 휴스턴대학에 진학했다(이곳의 학비는 학기당 50달러 정도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21세 때 특수학교 언어치료사로 첫 번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를 갖게 되자, 학교장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사퇴를 강요했다. 1970년대 미국이 ‘일하는 여성’을 대하는 일반적 풍경이었다.

이후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던 그는 당시 미국 전역을 휩쓴 여성운동 열풍을 접하며 다시 한 번 ‘일하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결국 힘들게 러트거스대학 로스쿨(Rutgers School of Law, Newark)에 진학한 그는 육아와 학업을 병행했다. ‘한 학기 50달러로 집 가까운 곳에서 다닐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면 그의 이후 여정이 가능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美 중산층 파산 문제, 바닥부터 다시 파다

워렌은 법대 2학년 때 월가의 한 로펌에서 면접을 봤다. 면접관은 그의 이력서를 보더니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오타가 있군요. 당신이 하는 일의 수준이 이 정도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답했다. “절 타이핑이나 하는 사람으론 고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면접관은 당당한 그 대답에 화들짝 놀란 후 웃으며 그를 채용했다. 워렌은 면접 후 귀갓길에 자신의 이력서를 다시 읽어봤지만 오타는 없었다. 이후 그는 변호사 대신 학자의 길을 걸어 저명한 파산법 교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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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금융업 규제 완화 정책에 따라 은행들은 소비자 대출과 신용카드 발급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반면, 각종 수수료와 연체이자는 엄청나게 높였다. 결과는 ‘개인파산 급증’이었다. 워렌 교수가 ‘미국 중산층이 파산에 이르는 구조적 문제’를 실증적으로 연구, 발표해 전국적 파장을 일으킨 것도 이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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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티은행에선 파산 증가로 은행이 입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워렌을 초청, 세미나를 개최했다. 시티은행 중역들 앞에 선 워렌은 “은행 손실을 줄이고 싶으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더 이상 고금리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가구엔 대출을 해주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러자, 청중 가운데 가장 직위가 높아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린 그 사람들을 향한 대출 비중을 줄일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은행 이윤은 대부분 거기서 나오거든요.”

구글사(Google社)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기업을 구성하는 개개인은 선량한 사람일지 몰라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언제나 사악해질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사회도, 기업 구성원도 끊임없이 이를 경계해야 한다.

 

금융업계 로비 뚫고 소비자금융보호국 창설

20년 후, 워렌은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을 설득해 거대 금융기업의 횡포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기관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 이하 ‘CFPB’)을 창설한다(미국 금융업계는 이 기관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한 로비 명목으로 수억 달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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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은 복잡하고 어려운 대출 계약서 때문에 서민들이 예상치 못한 추가 수수료와 변동 금리, 높은 연체 이자 등으로 집을 날리지 않도록 ‘짧으면서도 읽기 쉬운 한 장짜리 표준 대출 계약서’ 양식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CFPB 실무진은 이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양식을 50대 중반의 흑인 노동자 해리스씨에게 실험했다. 그는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이자가 더 낮은 대출 상품으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은행에선 그에게 산더미 같은 서류를 보여주며 말했을 것이다.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곳에 서명하세요.” 하지만 바뀐 양식은 딱 종이 한 장으로 돼 있었다. 게다가 “최초 월 상환금은 850달러이지만 변동 금리 상품인 만큼 추후 상황에 따라 상환금이 최고 1800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이 쉽고도 명백하게 쓰여 있었다. 해리스씨는 그 양식을 잠시 들여다보고 고민하다 질문을 몇 개 던지곤 이렇게 말했다. “안 되겠네요. 이 대출은 받을 수 없습니다. 내게 그 정도 여력은 없어요.” 그의 얘길 들은 실무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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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PB 창설엔 ‘웨스트윙(The West Wing)’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등 인기 미국 드라마 시리즈를 연상시킬 정도의 정치적 로비와 공격, 타협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최대 우군은 (‘테드 케네디’란 닉네임으로도 잘 알려진)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의원이었다. 파산법을 채권 금융기관 쪽 입장에 맞춰 유리하게 개정하려는 레이건∙부시 정부에 학자로서 맞섰던 워렌을 끝까지 도운 이도 그였다.

케네디가(家)의 막내로 47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 세상을 떠난 케네디 의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형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 워렌은 요즘도 가끔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케네디의 음성 메시지를 듣곤 한다. “아, 엘리자베스. 테드 케네디요. 그냥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했어요….” 그는 “그저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이 메시지의 첫 부분을 듣고 또 듣는다.

 

“모든 약자 위한 미래” 외치며 상원의원 출마

60세가 지나 손주까지 둔 ‘할머니 워렌’은 201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상원의원에 출마한다. 선거운동 중 남편과 몰래 빠져나와 토요일 밤 영화를 본 그는 밤 11시에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역사에 서 있는데 마른 체구의 한 청년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알은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 대학생이에요. 학비를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죠. 여름방학 땐 ‘투잡’을 뜁니다. 전 매달 당신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후원금을 보내려 더 많이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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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말을 들은 워렌은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토요일 밤 11시까지 일하는 이 아이가 내게 돈을 보내고 있다니!’ “선거운동은 그럭저럭 잘 되고 있으며, 후원금은 안 보내도 된다”고 그가 청년에게 말하자, 청년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도 이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걸요. 이건 제 싸움이기도 합니다.”

워렌은 유세 도중 어린 여자아이를 만날 때마다 아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엘리자베스란다. 상원의원 선거에 나왔어. 그게 바로 여자가 할 일이거든.” 하루는 선거 운동 중 작은 마을의 한 식당에서 주민 20여 명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게 됐다. 아이들을 위한 미래, 안전한 환경, 안정적 의료보험 등 그의 공약이 잇따라 등장했다.

자리가 파하자, 60대 남성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비쩍 마르고 피부가 거친 그는 베트남 참전 용사용 군모를 쓰고 있었으며,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미래를 만들자고 얘기하던데 트랜스젠더는 어쩔 거요. 그 아이들은 어쩔 거야?” 워렌은 그 사내가 트랜스젠더에 적대감을 갖고 있는 보수층이라고 생각,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대답했다. “우린 모든 아이를 위한 미래를 만들 겁니다. 거기엔 당연히 트랜스젠더 아이들도 포함되죠. 제가 말하는 미래는 말 그대로 모든 아이를 위한 거니까요.”

한동안 워렌을 응시하던 사내가 이윽고 대답했다. “그래야지.” 그는 성인이 된 자신의 아들이 트랜스젠더라고 말했다. “당신은 내 아들놈이 어떤 지옥을 겪고 있는지 상상도 못할 거요. 난 그 아이들을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워줄 사람을 원해요.”

 

최고의 후원군은 남편… “난 영원한 싸움꾼”

워렌은 선거에서 승리, 다시 한 번 ‘싸울 기회’를 얻었다. 그의 삶은 온통 싸움의 연속이었다.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와 가난한 가정 환경을 이겨내고 아이를 키우며 법대를 졸업, 법률가가 됐다. 학자가 된 후엔 ‘하버드대 교수’란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어린 시절 자신이 겪었던 가난에 여전히 시달리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개인파산 제도를 강화하는 한편, 소비자 금융 규제를 위해 싸웠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이 은퇴하는 나이인 60세가 넘어 오히려 “전국 무대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표해 싸우겠다”며 정계에 투신했다.

원래 싸움꾼에겐 적이 많은 법. 워렌 역시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에겐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군, 남편 브루스 맨(Bruce Mann)이 있기 때문이다. 책 말미, 긴 감사의 글 마지막엔 워렌이 직접 남편에게 쓴 감사의 말이 나온다. “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잡아 결혼했다. 브루스는 내가 싸우려 할 때 한 번도 말린 적이 없다. 게다가 키스도 끝내주게 잘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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