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중동의 ‘진짜 상관습(商慣習)’, 얼마나 아세요?

2015/06/09 by 이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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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동 시장에 처음 진출했던 한국인들은 매사 느리고 체계적이지 않아 예측 불가능한 중동 시장의 특성을 일명 ‘IBM’으로 요약하곤 했다. IBM은 ‘인샬라(Inshallah, 신<神>의 뜻이라면)’ ‘부크라(Bukhra, 내일)’ ‘말리시(Malish, 걱정 마)’ 등 아랍 단어 3개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때 ‘아랍인의 정서나 생활 태도를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 속엔 ‘문화’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었다. 느린 일 처리에 대한 불평만 가득할 뿐, 그런 삶의 태도를 이해하고 적극적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뜻이다.

 

‘인샬라(신의 뜻이라면)’의 진짜 의미

중동 무슬림 사원 이미지

인샬라는 ‘신의 뜻에 모든 걸 걸었으므로 노력 여하에 따라 반드시 성사될 수 있다’는, 강한 긍정의 메시지다. 신의 뜻인 만큼 내일(Bukhra)을 기다릴 수도, “다 잘 될 거야(Malish)”란 격려를 건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일상의 모든 과정은 물론, 비즈니스 영역도 (우주를 주관하는) 알라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다. 강력한 예지사상이다. 그 중에서도 인샬라는 척박한 오아시스의 제한된 생태계에서 생존의 위협과 불확실성을 이기는 지혜이자 철학이다.

중동 지역에선 공동체적 약속과 신뢰가 가장 소중한 가치다.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외부인이나 이방인에 대한 불신은 자연히 그만큼 강하다. 인샬라는 외부인과 거래할 때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동에서 사업하려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그들의 ‘기다림 전략’에 익숙해져야 한다. 함께 어울리고 여유를 가지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예배 시간이 되면 종교와 무관하게 기도를 올리고 식사나 모임 등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소통 공간에도 머뭇거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좋다.

중동사람과 비즈니스 대화하는 이미지

중요한 건 ‘외부인(혹은 이방인)의 위치에서 얼마나 빨리 내부인의 위치를 확보하는가’다. 일단 내부인으로 인정 받으면 신뢰를 얻게 된다. 그런 다음엔 서로 비밀을 보장하는 건 물론, 이익도 함께 나누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다. 아랍인들이 한 번 관계 맺은 사람과 오래 거래하고, 추후 다른 공사도 계속 수주하도록 돕는 건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샬라는 ‘기다림의 미학’인 동시에 ‘반드시 성사되는 비즈니스 노하우’다. 신의 뜻을 건 이상 함부로 일을 내팽개칠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샬라에 익숙해지고 인샬라를 아름다운 인사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비로소 아랍인들의 심성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동 비즈니스의 ‘묘수(妙手)’는 ‘부정적 IBM’을 ‘긍정적 IBM’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섣부른 협상에 앞서 ‘인사’에 집중하길

“앗살라무 알라이쿰(알라의 평화가 당신에게)!” 무슬림들이 낯선 이를 만났을 때 처음 건네는 인사말엔 ‘평화’가 들어 있다.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마앗 살라마(평화가)!”에도 마찬가지다. 평화로 만나 평화로 헤어지는 셈이다. 그런데도 ‘아랍(이슬람)’이란 말을 들으면 으레 평화보다는 폭력적 이미지가 떠오른다. 오랜 기간 잦은 분쟁과 갈등을 겪으며 평화를 갈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평화가 인사말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중동사람과 포옹하는 이미지

무슬림, 특히 아랍인은 만나면 서로 껴안고 상대 볼에 세 번씩 입술을 맞춘다. 이들에게 악수는 ‘거리를 두는’ 인사법이다. 이때 거리란 적의(敵意)가 스며들 수 있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다. 당연히 ‘악수만 나누는 인사’와 ‘껴안고 서로의 체취를 나누는 인사’는 친밀감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반갑게 껴안으며 인사할 수 있다면 그만큼 불필요한 탐색 과정을 줄이고 금세 친근해질 수 있다. 나아가 아랍인은 만나서 인사하는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민족이다. 날씨와 안부에서부터 세상 현안과 맛집에 이르기까지 체면치레 인사말을 길게 나눈다. 상대에 대한 신뢰를 더하고 친근감을 높여가는,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정작 비즈니스 등 본론은 아주 천천히 뜸 들이며 시작한다.

아랍인들은 또한 부족이나 고향 등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한다. 직원을 채용할 때나 제품을 구매할 때도 개인의 장점이나 성취보다 성격 또는 인간관계를 훨씬 많이 고려한다. 가족 관련 문제가 가장 우선시되는 것, 개인 사생활이 유독 중시되는 것도 특징이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손님 접대도 후한 편이다. 환대를 통해 타인에게 존경 받고 상호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여자 가족’에 대해 묻는 일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중동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에선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기보다 신뢰 구축에 힘쓰는 게 중요하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리는 건 필요하지만 건방진 태도는 금물이다.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상대를 여러 차례 방문하는 것, 함께 여행을 떠나 친분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접대 받을 땐 반드시 한 차례 공손하게 거절한 후 받아들여야 한다. 단, 대접 받은 만큼 감사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이때 태도가 후할수록 상대와의 관계는 급속하게 가까워질 수 있다.

 

기억해두면 유용한 ‘비즈니스 매너’ 9

중동사람과 비즈니스를 하는 이미지

이슬람은 정당한 거래를 권장하고 공정한 이익을 강조하는 종교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부적 상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무함마드를 따르고 닮으려는 무슬림 지도자들은 상인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도 아랍 무슬림의 DNA 속엔 상인 기질이 넘쳐난다. 아랍의 비즈니스 역사는 페니키아 시대 이후 수천 년을 이어져 오고 있다. 아래는 아랍 지역에서 사업하려는 이를 위해 정리한 ‘비즈니스 매너’ 몇 가지다. 중동 시장을 개척하고자 할 때 마음속에 새기고 틈틈이 들여다보면 적잖이 유용할 것이다.

①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임해라
시간 관념과 관련해 아랍인이 즐겨 쓰는 두 가지 잠언(箴言)이 있다. “아랍에서 서두르는 건 상대에 대한 모독이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은 철저하게 내일로 미루자”

②동시다발적 협상 방식을 존중해라
아랍인들은 대개 몇 개의 회합을 동시에 진행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거나 하나의 일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체계성이 부족하다. 이 일 했다 저 일 했다, 이 손님 맞았다 다른 손님 맞았다, 예배보다 차 마셨다…. 매사 산만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기질이고 특성이다

③사과 받으려 하지 마라
아랍인들은 생사의 선택을 종종 요구 받는 오아시스의 험난한 유목 생활 습관 때문에 ‘모른다’나 ‘잘못했다’ 같은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따라서 끝까지 사과 받으려 하는 태도는 자칫 예기치 않은 화(禍)를 부를 수 있다

④문화적 혐오나 종교적 금기를 조심해라
코란은 술과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하지만 술의 경우, 종교적 금기이긴 해도 일부 무슬림에겐 문화적 혐오가 아니다. 이슬람 문화권 밖에서 술 마시는 무슬림을 종종 접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반면, 돼지고기는 종교적 금기인 동시에 강한 문화적 금기다. 따라서 돼지고기는 신앙의 정도와 무관하게 아주 강한 혐오 음식이다. 돼지고기 금기에 관한 한 철저히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다

⑤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유목 문화권에선 자존심과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따라서 모욕감을 주거나 종교적·문화적·종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행은 절대 금물이다

⑥정치(인)를 대화의 화두로 올리지 마라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국내) 정치나 최고 통치자 얘긴 삼가는 게 좋다. 아랍 국가 사업가들은 대개 현 체제 옹호론자들이며 대부분의 산유국은 왕정·공화정 할 것 없이 폐쇄적 권위주의 정권이 장기 집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⑦여성의 서비스업 종사는 권장되지 않는다
아랍권에서 서비스업은 남성의 몫이다. 집안에서 손님을 맞는 것도, 장을 보는 것도 남성이 도맡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항공사는 물론이고 미용실이나 화장품 판매점, 속옷 가게에서조차 남성 종업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선 ‘여성의 서비스업 종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보편적이다

⑧오른손과 왼손의 역할 분담이 다르다
아랍인에게 오른손은 ‘코란을 읽거나 식사할 때 사용하는 손’, 왼손은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손’이다. 따라서 악수를 포함해 공적 업무를 처리할 땐 그들의 손 사용 관습에 맞춰 오른손만 쓰는 게 좋다

⑨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반드시 근거 자료를 남겨라
아랍인은 부자(父子)지간에도 돈에 관한 한 전혀 양보가 없는 천부적 장사꾼이다. 인간적 신뢰는 장사의 전제조건이지만 거래할 땐 관련 서류나 계약 조건, 금전 관계를 완벽한 법적 문서로 준비해둬야 한다. 친하다는 이유로 문서 부분을 소홀히 했다간 종종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어느 문화권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아랍에선 인간적 신뢰가 깨지면 언제든 거래가 뒤집힐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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