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중동 여심 뒤흔든 터키 드라마 열풍

2015/05/08 by 이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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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여성의 사회 참여와 인권이 유독 제한되는 현실에서 중동 여성들의 좌절과 절규는 최근 터키의 멜로드라마에서 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두 연인의 깊은 사랑과 상처의 치유를 다룬 ‘누르’, 그리고 성폭력으로 버림받고 좌절한 한 터키 여성이 온몸을 던져 투쟁하는 과정을 그린 ‘파티마 귤’이 중동 전역을 폭풍처럼 뒤흔들고 있는 것. 두 드라마는 2015년 5월 현재 1억 명에 이르는 시청자를 확보하며 중동을 넘어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무서운 속도로 안방 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다.

 

여성이 책에 손대면 ‘교육모독죄’라고?

이슬람 여성들이 차별에 시달리고, 심지어 극단적 종교 정권의 희생양이 돼온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만 봐도 그렇다. 탈레반은 1996년 집권하자마자 “이슬람의 가르침”이라고 강변하며 잔혹한 여성 탄압을 시작했다. 상대방이 쳐다보지 못하도록 부르카로 얼굴을 가리게 했으며 여성의 학교 교육과 사회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책에 손을 대면 ‘교육모독죄’, 하이힐 신고 소리를 내면 ‘공공소음죄’, 화장이 진하면 ‘남성유혹죄’로 각각 다스렸다. 심지어 여성은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도 함부로 손댈 수 없었다. 간통을 저지른 여성에겐 투석형(投石刑, 죄수에게 돌을 던져 죽이는 형벌)을 선고하는 등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잔혹한 처벌도 허용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현대판 마녀사냥’이었다.

히잡 쓴 중동 여성

‘이슬람 종주국’임을 자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차별도 도를 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예외 없이 검은 히잡을 뒤집어써야 한다. 외국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자국 여성에겐 얼굴도 가리게 한다. 그들에겐 남편이나 남자 형제가 동행하지 않는 한 이동의 자유도 없다. 최근 들어 여성에게도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긴 했지만 (피)선거권은 아직 꿈도 꾸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는 여성 운전 허용 여부는 20년 이상 지루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사우디 왕실은 “여자 혼자 차 타고 여기저기 쇼핑 다니다 뭇 남성과, 교통 법규를 위반해 남자 교통 경찰과 눈 마주치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막힌 반대 논리를 편다. 그것도 이슬람 율법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무려 1400년간 이슬람 이데올로기를 팔아 여성을 옥죄어온 남성들의 기득권, 그리고 ‘남녀칠세부동석’이란 금기 영역이 무너졌을 때 닥쳐올 폭발적 사회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는 것이다.

테이프로 여성의 입이 막아져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 표준’이란 착각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의 극단적 여성 차별 실태에 우리 모두는 분개한다. 그리고 커다란 의문 하나를 품는다. 이슬람교는 어째서 21세기가 돼도 저렇게 야만적이고 반(反)여성적이며 반(反)문명적일 수 있을까?

탈레반은 ‘이슬람의 거울’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슬람의 표준’이라곤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가장 잘못된 이슬람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자마자 여성들은 얼굴을 드러냈다. 물론 보수적 집안, 혹은 탈레반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남부 지방에선 부르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 장관이 배출되고 의사·판사 등 사회 각층에서 여성들이 조금씩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가고 있다.

터키 국기가 그려진 히잡 쓴 여성

다른 이슬람 국가 쪽 사정은 어떨까? 터키는 사형제에 이어 간통제까지 폐지해버렸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지난 1999년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여성 정치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가 이끄는 민주투쟁당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의 99%가 이슬람교 신자인 파키스탄에선 1988년 35세 여성 정치인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가 민선 총리직에 올랐다. 인근 방글라데시도 1991년 베굼 칼레다 지아(Begum Khaleda Zia)를 사상 최초 여성 총리로 선출한 데 이어 1996년엔 셰이크 와제드 하시나(Sheikh Wajed Hasina)를 두 번째 여성 총리에 앉혔다.

말레이시아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은 서구사회의 그것을 앞지른 지 오래다. 이란과 주변 이슬람 국가 소재 대학에선 여학생 수가 남학생을 앞지르고 있다. 히잡을 쓴 채 운동하는 교내 여성 축구부·태권도부가 창설되는가 하면, 적잖은 이슬람 국가가 세계미인대회에 비키니 차림의 미인 대표를 내보낸다. 한마디로 이슬람 사회는 종잡을 수 없다. 이슬람 국가의 여성관도 너무 다양하다.

 

아랍국가 이혼율 제고에 기여(?)한 드라마

이슬람 사회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회적 부양을 의무화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참금(마흐르·Mahr)과 생계부양비(나파카·nafaqa)를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혼인 계약 체결 시 명문화된다. 만약 남편이 이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아내는 남편에게 법정 부양을 요구할 수 있다. 심한 경우, 이혼 청구도 가능하다. 재정적 측면에서도 여성은 독자적 부동산과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 결혼 지참금을 비롯해 유산으로 상속 받는 재산이나 선물의 소유권, 그리고 결혼 도중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 얻은 재산은 법적으로 분명히 여성 소유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으로 보장된 여권(女權)은 사실상 남성 중심 유목사회 구조를 답습하고 있는 아랍 국가에선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처럼 보수적인 사회 구조와 고정 관념을 깨고 여성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며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에 불을 붙인 게 바로 ‘누르’와 ‘파티마 귤’이다.

‘누르’에서 여주인공 누르는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우면서 도덕적 품격까지 갖춘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한다. 남편 ‘모한나드’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누르에게 닥치는 온갖 고통과 시련을 함께한다. 아내에게 헌신하는 모한나드를 통해 중동 여성들은 새로운 남성상을 발견했다. 실제로 자녀에게 ‘모한나드’와 ‘누르’란 이름을 지어주는 부부가 늘고 있다. ‘누르’가 보여주는 남녀 간 사랑과 자유로운 사고 방식은 아랍 여성에게 문화적 충격을 안겨줬다. ‘여성도 충분히 존중 받으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한편, ‘파티마 귤’의 여주인공 파티마는 마을 청년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보수적인 터키 사회는 파티마의 억울함을 외면한 채 마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으려 한다. 심지어 파티마의 약혼자까지 이 은폐에 가담한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고통과 비애를 느끼던 파티마는 처참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 모든 명예와 여자로서의 인생을 걸고 진실을 밝힌다.

드라마를 보며 눈시울을 붉힌 주부들은 드라마가 끝난 후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 분노하고 서로 위로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더 이상 가정에만 처박혀 사는 무력한 존재도, 타고난 약자도 아니란 사실에 눈뜬다. 스스로 누르가, 파티마가 돼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며 일상화된 남편의 폭력과 성적 학대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나아가 남편을 향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남편이 이를 거절하거나 무시하면 주저 없이 이혼을 청구한다. 이집트나 아랍 국가에선 두 드라마 상영 이후 이혼율이 급증하는 등 새로운 사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터키식(式) 민주주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수많은 이슬람 국가 중 왜 유독 터키 여성들이 사회 참여와 인권에서 앞서가고 있는 걸까? 터키는 이미 1908년 오스만제국 술탄 압둘 하미드에 의해 ‘다를 무알리마트’란 여학교가 설립될 정도로 진취적인 여성 교육 정책을 폈다. 당시 이슬람 사회에선 8세 이후 여아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으며, 10세 이전 조혼(早婚)시키는 풍습도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1914년 독일을 순방하고 돌아온 ‘당대 최고 엘리트 장군’ 하프즈 하크 파샤의 최근 회고록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여성들이 집 안에 머물며 무지 속에 삶을 마쳐야 하는 현실을 개탄한다. 단언컨대 나라의 존망과 문명의 완성은 우리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과 기여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터키 국기를 흔들고 있는 사람들

하프즈 하크 파샤 같은 몇몇 선각자들 덕분에 터키는 국민의 98%가 이슬람 신자인데도 유럽보다 앞서 1928년 이미 여성의 자유로운 사회 참여와 평등권을 법제화했다. 일부다처제를 금지한 건 물론, 공공기관에서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여성이 결혼 후 자신의 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최근엔 민선 여성 총리를 배출한 데 이어 간통죄와 사형제까지 폐지하는 등 개혁적 조치를 통해 여성 권익 향상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재스민 혁명’ 이후 많은 아랍 국가들이 ‘터키식(式) 민주주의 모델’에 관심을 갖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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