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2015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을 만나다

2015/10/30 by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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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성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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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PA=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1927년 1회 대회가 열린 이후 1955년부터 5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는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가 낳은 거장’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의 업적과 위상을 기리기 위해 탄생한 피아노 전문 콩쿠르다. 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들은 일약 세계적 스타로 우뚝 섰다. 피아니스트에겐 최고의 등용문인 셈이다.

쇼팽 콩쿠르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함께 가장 큰 영향력과 권위를 갖춘 경연으로 독보적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심사위원은 모두 내로라하는 거장들로 구성되며, 우승자를 비롯해 6등까지의 입상자는 전원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 받는 한편,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보장 받는다. 입상자 배출국 역시 자국의 문화적 위상을 전 세계에 명예롭게 드높일 수 있다.

 

21세기 이후 등장한 한국 음악 영재의 ‘화룡점정’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쇼팽 콩쿠르에 도전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일단 시설과 교수진 등 전문 음악 교육 시스템이 갖춰진 지 얼마 안 됐고,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천재적 연주자를 발견할 확률도 희박했다. 설사 훌륭한 연주자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학교의 힘만으로 그 연주자를 세계적 음악가로 키워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나마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운영)이나 대원홀딩스(대원문화재단 운영)처럼 음악을 순수하게 아끼는 마음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이 있어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해외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렵게 키워진 음악 인재들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한 채 ‘국내용’으로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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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극소수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수십 년 만에 비로소 안착됐고 이후 몇몇 인재가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임동혁∙동민 형제(피아노, 2005 쇼팽 콩쿠르 3위) △손열음(피아노,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 △조성진(피아노,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 △박종민(성악,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 △서선영(성악,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 △이지혜(바이올린,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 △임지영(바이올린, 2015 퀸 엘리자베스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1위) △신지아(바이올린, 2008 롱 티보 국제 콩쿠르 1위, 2012 퀸 엘리자베스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3위)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쇼팽 콩쿠르에서 1등을 한 조성진은 그 중에서도 가히 화룡점정(畫龍點睛) 격이라 할 수 있다. 쇼팽 콩쿠르야말로 유럽 음악 문화의 정수(精髓)를 간직한, 최고(最古)의 역사와 최고(最高)의 권위를 자랑하는 콩쿠르이기 때문이다. 조성진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과거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계보를 잇게 됐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스타니슬라프 부닌, 윤디 리, 라팔 블레하츠 등 세계 최고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성진과 같은 나라 출신”이란 이유로 환대 받다

조성진의 우승 사실은 21일 새벽 1시쯤에야 발표됐다. 그 자리엔 나도 있었다. 발표 직후 공연장이었던 필하모니아 홀 로비는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용하던 내 전화기도 한국 매스컴의 러브콜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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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PA=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당시 현장엔 수백 명 규모의 일본∙중국 응원단이 자국 참가자를 격려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반 관람객뿐 아니라 황실 공주와 외교관까지 응원단에 포함돼 일본인의 클래식 음악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반면,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은 고작 10명 남짓이었다. 그나마 현장을 살피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콩쿠르 현장에서 한국은 대사관이나 국가기관, 기업 등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당연히 갈라 콘서트 입장권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한국의 무관심이 야속해지는 순간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우승자 조성진’이 당당히 무대에 선 첫 번째 갈라 콘서트 겸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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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대통령 내외와 심사위원,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전원 참석한 가운데 마침내 시상식이 시작됐다. 식순 맨 마지막, 조성진이 1등상을 받을 때의 감동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한국에서 이런 피아니스트가 나오다니! 일본과 중국은 30여 년 전부터 쇼팽 콩쿠르에 자국 음악가를 참여시켰고, 그 결과 다수 입상자와 한 명의 우승자(윤디 리, 중국, 2000)를 배출했다. 반면, 한국과 쇼팽 콩쿠르의 인연은 2000년 이후에야 시작됐다.

입상자들의 연주가 이어진 후 마지막으로 조성진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우승자의 특혜’인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오랫동안 음반으로만 접하던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협연을 한국 피아니스트의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조성진은 결선 때보다 훨씬 강한 집중력을 발휘, 한층 더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홀 안에 있는 모든 이가 일제히 기립박수로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축하했다. 눈물이 절로 흐를 정도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폴란드에 머무는 동안 택시와 호텔, 레스토랑과 쇼핑 몰 할 것 없이 마주친 폴란드인들(심지어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올해 쇼팽 콩쿠르 결선 진출자 아이미 고바야시까지!)은 오로지 내가 (조성진과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인기 연연해하지 않고 음악가로서의 정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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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PA=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예선 당시부터 이미 다른 연주자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연주와 빼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존재감을 과시했던 조성진은 이후 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쇼팽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그가 생활하던 곳을 방문했어요. 친구들과 나눈 편지 등 각종 기록도 찾아봤죠. 쇼팽이 쓴 악보 속 음표가 아니라 곡을 썼을 당시 그의 마음 자체를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조성진의 연주가 기술적 완벽성을 넘어선 감동과 깊이를 담고 있었다면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 테다. 바로 그 점이 콩쿠르 아르헤리치나 당 타이손, 넬손 괴르네, 개릭 올슨, 드미트리 알렉셰프 등 현장에 있던 거장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스타덤에 올랐다”는 말에 조성진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전 대중의 인기처럼 ‘음악 외적인’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제 연주를 좋아하고 입장권을 구매해 제 연주회에 와주시는 분들께 최선을 다한 연주를 들려드려야 한다는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도 전 쇼팽의 작품 세계를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 작품도 섭렵해가야 하고요. 쇼팽 콩쿠르는 제게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하루 아침에 내로라하는 세계 각국 오케스트라와 콘서트홀의 ‘섭외 대상 0순위’에 오른 그의 얘기에 문득 숙연해졌다. “앞으로도 음악가로서의 정도(正道)를 걷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러면서도 겸손의 미덕을 잃지 않는 이 젊은이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박제성

음악평론가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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