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팔 휘두르면 예술 되는 이건용, 왜 삼성 아트 스토어에?
“어린 딸이 넘어지며 벽에 그은 선에서 영감…
예술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야”
– 현대 미술가 이건용
예술은 이해하는 것인가, 느끼는 것인가? 아름다움은 만드는 것인가, 발견하는 것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를 여든 평생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미술’을 추구해 온 세계적인 거장이 있다. 미술가 이건용의 이야기이다.
6월 2일 오늘부터 이건용 작가의 작품 15점을 삼성 아트 스토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삼성 아트 스토어는 더 프레임(The Frame), QLED 등 삼성 TV에서 만나볼 수 있는 미술 작품 구독 서비스[1]이다. 현재 전 세계 117개국에서 이용 가능한 삼성 아트 스토어는 70여 개의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3,500여개 이상의 작품을 4K 화질로 제공하고 있다. 이건용 작가의 삼성 아트 스토어 입점을 기념해 삼성전자 뉴스룸이 이건용 작가의 예술관과 삼성 아트 스토어와의 협업 배경에 대해 들어봤다.

▲이건용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바디스케이프 76-3’ (2022)
신체로 찾는 의미의 근원
Q. 바디스케이프(Bodyscape)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걸음마를 시작했던 어린 딸이 크레용을 들고 뒤뚱거리다 쓰러지면서 벽에 선을 긋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게 신체 드로잉(Body Drawing, Bodyscape) 연작이다. 어떤 의식이나 관념을 표현하려는 의도 없이 작가가 캔버스를 보지 않고 몸을 자연스럽게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Merleau-Ponty)에 따르면, 지식은 ‘머리로 생각(관념)’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감각을 통해 수용(경험)’하는 것이다. 언어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또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며 관념의 언어만 가득찬 철학의 한계를 지적했다. 나도 언어나 이성보다 몸의 움직임과 감각 속에서 생겨난 의미 그 자체를 중시하는 데 공감했다. 예술 표현도 의식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몸이 직접 세계를 구성하고 반응하는 방식’인 것이다.

▲신체성(corporeality)를 중시하는 이건용 작가는 때로는 화면 뒤에서, 때로는 화면을 등진 채 신체 구조에서 기인되는 자연스러운 선들을 쌓아간다.
그래서 내 작품은 일반적인 회화와 다를 때가 많다. 나는 신체나 붓에 물감을 찍어서 있는 힘껏 팔을 쭉쭉 뻗어 선을 긋는다. 일부러 화면을 등지고 선을 긋기도 한다. 일반적인 회화는 작가가 머릿속으로 생각한대로 그리지만 나의 작품은 신체의 구조와 제한적인 가동범위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선이 반복되어 만들어진다.
Q.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작품이 많은데, 이러한 방식이 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젊어서부터 행위예술을 해왔는데,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퍼포먼스는 현장 관객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분야이다. 관객들이 작가의 행위를 보면서 ‘저 사람은 지금 무얼 하는 것일까’, ‘다음에 어떤 행동이 나올까’ 궁금해하다가 다음 행동을 보고 ‘이거였구나’ 생각하는 것, 작가가 중간에 하는 말들과 그에 대한 관객의 리액션 모두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체성(Corporeality)”
Q.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신체 드로잉 시리즈, 그 중에서도 ‘76-1’, ‘76-2’, 그리고 ’76-3″에 가장 애착이 간다.

▲(왼쪽부터) 바디스케이프 76-1, 바디스케이프 76-2 (모두 2022년작)
‘76-1’과 ‘76-2’은 전통적인 회화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작업한다. ‘76-1’은 내 키 만한 높이의 화면 뒤에서 손만 앞으로 내밀어 선을 그으며 시작한다. ‘76-2’는 화면을 등지고 만든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몸이 구성하고 반응한 새로운 세계가 된다.
“몸의 움직임과 감각 속에서 생겨난 의미 그 자체를 중시한다”
‘76-3’은 두 팔만의 사용을 위한 하나의 세계다. ‘76-3’도 ’76-2’처럼 화면을 보지 않고 옆으로 서서 시작한다. 먼저 오른팔을 벌릴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뻗어 선을 그린 후 왼손도 반복한다. 특정 기점을 두고 긋는 것이 아니라 팔이 닿는 대로 그린다. 이때 왼손과 오른손이 그린 곡선의 아랫부분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만나지만 윗부분은 교차되며 결과적으로 하트 모양을 이룬다. 의도적으로 하트를 그린 것이 아니라 신체가 그린 자연스러운 선을 예술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이다.

▲ 2025년 아트바젤 홍콩에서 114형 삼성 MICRO LED에 전시된 <바디스케이프 76-2+3-2022> 앞에서 미소짓는 이건용 작가. 닿는대로 뻗은 두 팔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마치 하트와도 같은 형태를 만들어낸 이 작품은 6월 2일부터 삼성 아트스토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체성(Corporeality)’이다. “신체는 살아 있는 지각 주체”라는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작품의 결과보다는 만드는 과정에서 신체성이 잘 보이기 때문에 내 작품을 처음 접한다면 제작 과정을 함께 보기를 권한다.
소통하는 예술로 대중에게 행복을 전하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누구나 쉽게 즐기고, 따라 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다.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게 퍼포먼스의 매력”
2022년에는 디지털 상호작용을 시도했다. ‘디지털 바디스케이프 76-3’프로젝트였는데 관객이 원하는 취향과 색상을 지정하면 그에 맞춰 이건용 아바타가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2023년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는 누구나 와서 자신의 두 팔로 선을 긋는 ‘76-3 체험’을 진행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크레용만 있으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자신의 팔 길이만큼 그 한계 안에서 그어진 선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작가와 관객이 더 많이 소통하고 나아가 창작의 과정에 같이 참여하는 기회가 늘어나길 바란다.
Q.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요즘같이 바쁘고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우리에게‘나는 잘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한 번 더 의문을 갖고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며 호기심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면 삶이 보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유행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우직하게 ‘나의 예술’을 이어 온 이건용 작가는 “여든이 넘어서야 인정받게 되었는데, 오랜 세월 곁을 지켜준 1호 팬인 부인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삼성 아트 스토어, 기술로 예술의 한계를 극복하다
Q. 신체드로잉처럼 경험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 디지털 플랫폼인 삼성 아트 스토어에서도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아트 TV를 통해 편리하게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훌륭한 소통의 기회다. 거실에서 편하게 커피 한 잔 하면서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작가와 마음속으로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좋은 예술활동이다. 올해 아트 바젤 홍콩 행사장에서 ‘더 프레임’을 통한 작품 전시를 보고는 또 깜짝 놀랐다. 어떤 부분에서는 미술관에 가서 실물을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작품의 감정과 역동성을 느꼈고 신기술의 혁신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작가와 내적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좋은 예술 활동”
나아가 아트 TV를 통해 시각적으로만 경험하는 작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퍼포먼스를 영상, 음향과 함께 감상하도록 하거나 개념미술에는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작가의 설명을 덧붙이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예술가에게 엄청난 기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 아트 스토어를 통해 예술을 쉽고 편안하게 즐기며 예술가의 시각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K-팝처럼 “한국의 독창적이고 높은 예술 수준이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으면 좋겠다”는 게 이건용 작가의 바람이다.
한류 그 너머, K-Art의 도전
Q.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 예술가들에게 조언 부탁드린다.
젊었을 때부터 좌고우면하지 않고 우직하게 내 길을 걷다 보니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작업을 하면서 수시로 변해가는 유행을 따르려는 흐름에는 많은 회의를 느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예술을 하겠다’는 열정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잘 살고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Q.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한국의 독창적이고 높은 예술 수준이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았으면 한다. 국내 작가들이 해외 예술가들에 비해 저평가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외국 미술 경향이나 사조를 열망하거나 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한국 작가로서 우리나라 시대정신에 반응하면, 일시적인 것에 연연하지 말고 평생 정직한 태도로 현재에 충실하면 되리라 믿는다. 최근 K-팝, 영화 등 한국 문화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도 오로지 예술을 위해 노력해 온 예술가들의 열정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1]아트 스토어 내 모든 작품들은 멤버십 가입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트 스토어의 예술 작품들은 사전 고지 없이 변경될 수 있으며, 지역에 따라 일부 지원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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