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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와 디지털 &#8211; Samsung Newsroom Kore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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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④ 원조 ‘공부의 신’ 조승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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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4 Dec 2014 10:00:3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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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기획·연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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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업무 처리는 디지털로, 취미 생활은 아날로그로 8개의 디지털 기기 ‘똑 부러지게’ 활용하는 비결 ▲조승연씨는 50만 독자를 거느린 베스트셀러 ‘공부기술’(랜덤하우스코리아)의 저자이자 일명 ‘그물망 공부법’ 창시자다. 그에게 디지털이란 일을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비서 겸 액셀러레이터다   스마트폰이 2개, PC는 3개?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이면서 원조 ‘공부의 신’이란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조승연(33)씨에게 디지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rong><span style="font-size: 14pt">업무 처리는 디지털로, 취미 생활은 아날로그로</span></strong><br />
	<strong><span style="font-size: 14pt">8개의 디지털 기기 ‘똑 부러지게’ 활용하는 비결</span></strong>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195.jpg"><img alt="창틀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845" height="548"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195.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12px">▲조승연씨는 50만 독자를 거느린 베스트셀러 ‘공부기술’(랜덤하우스코리아)의 저자이자 일명 ‘그물망 공부법’ 창시자다. 그에게 디지털이란 일을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비서 겸 액셀러레이터다</span>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스마트폰이 2개, PC는 3개?</span></strong>
</p>
<p>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이면서 원조 ‘공부의 신’이란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조승연(33)씨에게 디지털 기기는 최고의 학습 도우미다. 미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전 세계 유명 도서관과 서점 등에서 다운로드한 책 수천 권이 보관된 자신만의 서고(書庫)이기도 하다.
</p>
<p>
	그에겐 무려 8개의 디지털 기기가 있다. 스마트폰 2개, PC 3개, 태블릿 PC, 킨들(미국 대형 서점 ‘아마존’ 전용 단말기), 스마트 TV(이상 각 1개) 등이다. 각 기기의 용도는 뚜렷이 구분된다. 스마트폰의 경우, 하나는 업무용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와 가족 등 업무 외적 인물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세 대의 PC는 각각 △미디어 소비용 △영화나 음악 등을 감상하는 아카이브용 △파일 저장과 공유를 위한 클라우드용으로 구분된다. 킨들은 아마존에서 내려 받은 자료를 읽을 때, 태블릿 PC는 아마존에 없는 책을 다운로드해 읽을 때 주로 쓴다.
</p>
<p>
	조씨는 ‘공부기술’ ‘그물망 공부법’(21세기북스) 등의 책을 통해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공부법을 설파해 온 주인공이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줄리어드음대와 프랑스 에꼴 드 루브르 등에서 수학한 그는 융·복합 인재의 전형이다. ‘비즈니스의 탄생’(더난출판사)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전 2권, 세미콜론) 등 이제껏 펴낸 책 열여섯 권의 면면에선 자연스레 그의 통섭적 면모가 드러난다. 최근 그가 개발한, 어원의 유래로 영어를 학습하는 소프트웨어 ‘오리진 보카’는 영국·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외국어 책 독서 시간 5배 단축</span></strong>
</p>
<p>
	조승연씨에겐 ‘세계문화전문가’란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삼성투모로우와의 인터뷰 약속이 있던 날도 그는 1주 후로 다가온 EBS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모로코 편’ 촬영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p>
<p>
	매서운 한파를 뚫고 카페에 도착한 조씨의 손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그가 태블릿 PC로 읽고 있던 책 제목은 ‘사하라’. 모로코 왕국을 비롯, 아프리카 대륙 전반의 역사를 주제로 한 책 45권을 원문으로 내려 받았다. “북아프리카 해적 전성시대 부분을 읽고 있어요. 디지털 기기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모로코 도시 페즈(Fez)의 중세 역사를 공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현지 도서관에 열람을 신청, 한참을 기다려 받은 후 아랍어로 된 책을 사전 뒤적여가며 읽어야 했으니까요. 요즘요? 아마존에 접속, 역대 고고학자들이 페즈에 관해 쓴 책을 얼마든지 내려 받아 읽을 수 있어요. 불어·독어·영어·이탈리아어 등 사용 언어의 제약도 전혀 없고요.”
</p>
<p>
	디지털 기기는 ‘기능’과 ‘속도’ 두 가지 측면에서 조씨에게 기적 같은 효용을 선물했다. 중세 역사를 연구하는 그에겐 더더욱 그렇다. 중세사와 디지털, 얼핏 동떨어진 분야처럼 보이지만 사실 디지털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중세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 자신도 “13세기 라틴어로 쓰여 독일 수도원에 보관 중인 글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 디지털”이라고 말한다.
</p>
<p>
	디지털은 희귀 분야 전문가와의 소통 도우미이기도 하다. “12세기 말리(Mali)제국을 공부하는 학자는 드뭅니다. 예전엔 그런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직접 가거나 전화를 걸어야 했죠. 지금은 관련 책을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후 각자 편한 시간에 의견을 나누면 돼요.”
</p>
<p>
	그에게 디지털의 발전은 익숙지 않은 외국어로 쓰인 책의 독서 시간을 5배 이상 단축시켜줬다.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사전이 생긴 이후 독서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고, 전자책에 내장된 사전 덕에 (독서 시간이) 다시 그 절반으로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 “예전엔 불어로 된 르 클레지오 책 한 권 읽는 데 6개월쯤 걸렸어요. 단어사전과 숙어사전, 백과사전을 쌓아두고 하나하나 뒤져가며 읽었거든요. 요즘 전자책엔 사전이 내장돼 있어 읽다가 모르는 부분을 클릭하면 곧바로 뜻이 나오죠. 1년 정도 배운 외국어 실력으로 외국어로된 책 한 권 읽는 데 4주 이상 안 걸립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266.jpg"><img alt="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846" height="562"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266.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12px">▲조승연씨는 자신의 디지털 기기를 ‘움직이는 집’에 비유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책이 가득하고 사진첩과 일기장까지 보관된 공간”이란 이유에서다</span>
</p>
<p>
	 
</p>
<p>
	<span style="font-size: 14pt"><strong><span style="color: #5d0c7b">디지털과 아날로그, 균형이 중요해</span></strong></span>
</p>
<p>
	미국(11년)과 프랑스(5년)에서 거주한 기간을 제외하고도 외국 체류 기회가 잦은 조씨는 디지털 기기를 ‘움직이는 집’에 비유한다. 그에게 집을 집답게 하는 요건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문화적 환경’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이 작고 까만 스크린에 제 음악 컬렉션과 개인 책장이 다 담겨 있어요. 클래식 음악 3700곡, 음악 CD 400매, 책 300권 정도가 들어 있죠. 사진첩과 일기도 있고요. 어디든 이것만 있으면 그곳이 집처럼 느껴져요. 10년 전만 해도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몇 달간 다녀갈 때 클래식 CD 150매를 들고 다녔어요. 그래야 집처럼 느껴졌거든요.”(웃음)
</p>
<p>
	디지털 기기를 ‘집’에 비유할 정도로 기기 활용도가 높지만 그에게 디지털 의존도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 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용도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고, 실제로 그에 맞는 삶을 똑똑하게 꾸려나간다. 디지털은 업무 효율의 극대화를 꾀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일상에선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식이다. 단적인 예로 책을 읽을 때도 평소엔 킨들을, 휴가지에선 종이책을 애용한다. 말하자면 감성적 측면에선 아날로그가 끌리지만 효율성 측면에선 디지털을 택한다는 것이다.
</p>
<p>
	아날로그의 매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종이책이 좋긴 하죠. 특유의 촉감, 오래된 냄새, 가죽 표지가 내는 소리 등은 읽는 기쁨을 안겨줍니다. 전자책이 나오기 전, 프랑스 소설을 추천 받기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여직원과 두 시간 넘게 통화한 적이 있어요. 추천한 책을 우편으로 보내면서 그 직원이 감사의 손편지를 써준 기억이 납니다. 오프라인 서점엔 그런 감성이 있어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고서(古書)의 먼지를 털고 책장을 넘기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베스트셀러와 신간 위주로 검색되는 인터넷 서점에서 ‘나만의 새로운 발견’을 기대하긴 아무래도 어렵죠.”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디지털이 영상? 디지털은 글!</span></strong>
</p>
<p>
	“디지털 콘텐츠는 없다. 딜리버리(이동수단)만 있을 뿐!” “디지털이 영상을 강화한다고? 디지털은 글일 수도 있다” 조승연씨는 인터뷰 내내 디지털의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p>
<p>
	우선 앞의 명제부터. “디지털은 콘텐츠를 담고 또 실어 나르는 도구일 뿐”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활자를 담는 ‘그릇’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얘기다. 조씨는 ‘디지털이 글보다 영상과 훨씬 더 가깝다’는 선입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저만 해도 디지털 기기의 기능 중 카메라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문학적 성향이 강해 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뭐든 글로 봐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디지털의 영상 요소에 주목하지만 전 아니에요. 제가 디지털 기기로 보는 건 영상이 아니라 글이고 책이죠. 결국 디지털 기기로 뭘 보든 그건 사용자 개인의 선택입니다.”
</p>
<p>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은 IT 강국’이란 명제에도 조씨는 의문을 제기한다. “P2P(개인 대 개인) 소통은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고 빠르지만 개인과 기업 간 소통은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 “미국 기업 중엔 트위터로 고객과 실시간 상담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가 꽤 있어요. 환불이나 배송 관련 문의를 페이스북으로 진행하는 곳도 많죠. 그런 공간에서 고객들은 마치 동네 가게에 들른 양 자기 사정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곤 합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선 디지털이 사회 인프라 구축에 종종 활용됩니다. 병원과 약국이 연계돼 있어 병원을 찾은 환자가 약국에 갈 땐 병원에서 사용한 카드를 내밀기만 해도 연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죠. 병원 처방전이 이미 카드에 반영돼 있으니까요. 반면, 우리나라 기업은 여전히 SNS를 통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디지털 대중화의 ‘그림자’</span></strong>
</p>
<p>
	하루가 다르게 사용 환경이 바뀌는 디지털 혁명의 속도를 좇다 보면 진지한 자기 성찰에 필요한 여유를 갖기 힘든 게 사실이다. 철학·역사·예술 등 인문학의 주요 분야를 두루 섭렵해 온 조승연씨는 삶의 본질과 가치에 유독 관심이 많다. 그런 그의 눈에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빨리 확산돼” 우려할 부분이 적지 않다.
</p>
<p>
	“디지털 시대일수록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이건 그냥 기계일 뿐이에요. 자기 정체성의 절반씩이나 여기에 투영해선 안 됩니다. 디지털 기기는 휴대하지 않아도 될 때 진정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지배 당하고 말아요. 누구에게나 ‘나만의 나’와 ‘세상이 보는 나’가 있는데, 디지털 기기 속 자신은 철저하게 후자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 받는 ‘사회적 나’죠. 헤르만 헤세는 ‘반드시 타인과 함께해야 하는 사람은 자기 안의 공백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회적 나를 덮어놓고 나만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늘려야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p>
<p>
	그는 “자기 철학과 주관이 확고하지 않은 사람일 경우, 디지털 환경에 많이 노출될수록 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SNS에서 ‘우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어디 가서 뭘 먹었다’ 따위의 자랑이 대부분이죠. 그걸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타인의 ‘최고 순간’과 자기 인생을 단순 비교 하게 됩니다. 300명이 1년에 한 번 제주도 간 얘길 SNS에 올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자기만 제주도에 안 가는 것 같죠. 상대적 박탈감이에요. 그런 느낌에 자주 휩싸이다 보면 소비적 삶을 좇을 수밖에 없습니다.”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디지털 ‘이후’ 세상, 큰 변화 없다</span></strong>
</p>
<p>
	여기저기서 ‘디지털 혁명이 삶의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란 예측을 내놓는다. 하지만 조승연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 근거로 그는 ‘역사의 패턴’을 들었다. “필기 재료가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바뀔 당시 사람들은 천지가 개벽할 줄 알았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양피지에서 인쇄기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인쇄기에서 디지털 기기로 활자가 이동하는 오늘날의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역사엔 일정한 패턴이 있어요. 인쇄기가 발명됐을 때 포르노 팸플릿 판매가 급증했듯 인터넷이 처음 열렸을 때 음란물이 급속히 퍼졌죠. 요즘엔 댓글이 여론을 형성하지만 과거엔 낙서 한 줄이 혁명의 불을 댕기기도 했어요.”
</p>
<p>
	물론 그가 디지털로 인한 변화 일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국가 간 경계 소멸’이다. 그에 따르면 정보의 공유와 교환이 중요해지는 디지털 시대엔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분류하는 기준이 ‘국적’이기보다는 ‘언어’ 혹은 ‘관심사’로 바뀔 전망이다. “특히 영어·불어 등 특정 언어 사용자 간 커뮤니티가 강화될 것 같습니다. 언어를 모르면 해당 언어로 구성된 웹사이트에 참여할 수 없으니까요. 또한 관심사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특정 국가에서 최고’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요. 그 자리를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대신하게 되죠. 예를 들어 ‘물 전문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전문 지식을 전파하는 식으로요.”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56.jpg"><img alt="소나무 옆에 서서 옆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847" height="55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56.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12px">▲조승연씨의 디지털 기기는 대부분 애플 제품이다. 그는 “기기 성능 등 하드웨어 면에선 삼성전자 제품이 더 훌륭하지만 내게 필요한 양질의 콘텐츠는 아이폰에 더 많다”고 말했다</span>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삼성, ‘기기’보다 ‘콘텐츠’에 집중하라</span></strong>
</p>
<p>
	조승연씨가 쓰고 있는 디지털 기기는 대부분 애플 제품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S2를 써본 적이 있지만 다시 아이폰으로 갈아탔다. “나 역시 한국인이고 호환 문제도 있어 삼성 제품을 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 가장 큰 이유는 ‘(기기에 탑재되는) 콘텐츠 품질’이다.
</p>
<p>
	“삼성전자의 기기는 맘에 들어요. 배터리 수명과 성능을 포함, 애플보다 잘 만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기기 그 이상이거든요. 기기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죠. 삼성 기기는 오픈 플랫폼이어서 정보량이 많지만 정작 양질의 콘텐츠는 부족해요. 내로라하는 해외 박물관이나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각국 대학 강의 자료 같은 걸 찾아보려면 한계가 있죠.”
</p>
<p>
	조씨의 외국인 친구들도 그와 스마트 기기 선택 기준이 비슷하다. 콘텐츠의 ‘양’에 집착하는 친구는 삼성 제품을, ‘질’을 추구하는 친구는 애플 제품을 각각 선호하는 게 일반적이다. “윗세대 분들 중엔 기업 이미지를 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 세대는 다른 것 같아요. 결정적 구매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내게 필요한 기능이 몇 개 있나’죠. 삼성이 소프트웨어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p>
<p>
	 
</p>
<div class="txc-textbox" style="background-color: #eeeeee;border: #cccccc 1px solid;padding: 10px">
<p>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 시리즈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m43vz"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①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NVoWp"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②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IedcY"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③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만화가)</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kV00I"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⑤ 류철균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연재 끝></a><br />
	</h2>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③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만화가)</title>
				<link>https://news.samsung.com/kr/%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ed%8a%b9%ec%a7%91-5%eb%b6%80%ec%9e%91-%ec%9d%b8%ed%84%b0%eb%b7%b0-%eb%82%98%ec%99%80-%eb%94%94%ec%a7%80%ed%84%b8_%e2%91%a2</link>
				<pubDate>Wed, 17 Dec 2014 11:25:52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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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가로세로 세계사]]></category>
		<category><![CDATA[나와 디지털]]></category>
		<category><![CDATA[디지털 문명]]></category>
		<category><![CDATA[먼나라 이웃나라]]></category>
		<category><![CDATA[삼성전자]]></category>
		<category><![CDATA[삼성투모로우]]></category>
		<category><![CDATA[앎의 평준화]]></category>
		<category><![CDATA[오스만투르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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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난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운 좋은 세대’ 내가 20년 넘게 삼성 제품만 쓰는 이유는…” ▲이원복 교수의 작업실 책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된 공간이다. 한쪽에선 연필과 종이를 활용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다른 쪽에선 PC 검색으로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얻는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68)는 자신을 “인류 역사상 딱 한 번 존재한 ‘운 좋은 세대’”라고 표현한다. “짚신부터 발리(BALLY) 구두까지 신어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rong><span style="font-size: 14pt">"난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운 좋은 세대’</span></strong> <strong><span style="font-size: 14pt"> 내가 20년 넘게 삼성 제품만 쓰는 이유는…”</span></strong>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170.jpg"><img loading="lazy" alt="이원복 교수가 ‘먼나라 이웃나라’ 들고 웃고 있는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wp-image-211156 size-full" height="548"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170.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 10pt">▲이원복 교수의 작업실 책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된 공간이다. 한쪽에선 연필과 종이를 활용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다른 쪽에선 PC 검색으로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얻는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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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68)는 자신을 “인류 역사상 딱 한 번 존재한 ‘운 좋은 세대’”라고 표현한다. “짚신부터 발리(BALLY) 구두까지 신어본 사람”이자 “농경·산업·정보화사회를 모두 겪은 세대”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의 가파른 경제 발전 속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인 동시에 급변하는 문명사적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비유다. 1946년생으로 일흔을 목전에 둔 나이이지만 그는 소위 ‘디맹(디지털 맹인)’과 거리가 멀다. 스스로 “디지털 혁명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먼나라 이웃나라’로 대표되는 이 교수의 학습만화 재료는 그가 전 세계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광속으로 얻은 것들이다. 그는 수시로 캐나다에 있는 가족과 실시간 화상 채팅을 즐기고 제자들과 ‘카톡(카카오톡) 대화’를 나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며 껄껄 웃는 이원복 교수를 삼성투모로우가 만났다. 특유의 유쾌한 입담을 살리기 위해 그의 말투를 가급적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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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앵그리버드’ 하다 아내한테 혼나기도</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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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이원복 교수의 작업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된 공간이다. 널찍한 기역(ㄱ)자 책상을 반으로 나눈 후 한쪽에선 8절 종이를 놓고 연필과 펜으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한 글자 한 글자, 선 하나 선 둘….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만의 ‘아날로그 영역’이다. 나머지 책상 반쪽에선 PC를 이용해 전 세계 뉴스를 실시간으로 찾아보고 집필에 필요한 자료도 검색한다. 현지 답사로 얻은 자료를 기반으로 하되, 이를 확장하려면 인터넷 검색은 필수다. 말 그대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너지’가 제대로 창출되는 공간인 셈이다. "요즘은 ‘가로세로 세계사’의 ‘오스만투르크’ 편을 쓰고 있어요. 작업 과정? 종이에 연필로 먼저 스케치를 한 후 펜으로 정교하게 그림을 완성하지. 그 다음은 컴퓨터 작업이에요. 스캔해 넘기면 출판사에서 색을 입혀. 예전엔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지.”(웃음)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249.jpg"><img loading="lazy" alt="이원복 교수가 지구본을 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157" height="74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249.jpg" width="500" /></a>
</p>
<p style="text-align: center">
	<span style="font-size: 10pt">▲이원복 교수는 자신을 가리켜 “유사 이래 딱 하나밖에 없을 세대”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전형적 농촌사회에서부터 최첨단 디지털 시대까지 단숨에 온 것”이라며 “그 덕에 모든 시절을 두루 누렸으니 난 운이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span>
</p>
<p>
	인터뷰 전, 그에게 ‘나와 디지털’을 주제로 인터뷰 섭외 전화를 걸었을 때 “주제가 재미있다”며 “(주제에 대해) 할 말 많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원복 교수와 디지털, 직접적 공통분모가 없어 보였던 터라 그의 적극적 호응은 다소 의외였다. “특히 내가 이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많아. 우리 세대가 인류 역사에 딱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세대거든. 인류 문명 변천 과정인 농경시대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를 다 겪었지. 한 인생에서 이걸 다 겪은 세대가 우리밖에 없어요. 유년기엔 농경시대, 중·장년기엔 산업화시대, 지금은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으니…. 우리 세대의 존재 자체가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밖에 없어요. 동년배 일본인은 산업화시대부터 겪었을 테고 후진국 사람들은 아직 산업화시대를 못 벗어났어. 우리나라 발전 속도가 유례 없이 빨랐고, 그 덕에 전형적 농촌사회에서 최첨단 디지털 시대까지 순식간에 온 거예요.” 대전이 고향인 그는 “또래 중엔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며 웃었다. “난 그래도 나은 편이지.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내 나이 분들 중엔 촌구석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수렵시대를 경험한 사람도 있다니까.” 그는 얼리어답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디맹도 아니다. 젊은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은 웬만큼 다 쓸 줄 안다. 사진 찍어 카톡에 올리고 유행하는 영상을 내려받아 챙겨 보는 건 기본이다. 얼마 전엔 갤럭시 탭에서 게임 ‘앵그리버드’ 시리즈를 완전히 정복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멈출 수 없더라고. 집사람한테 핀잔 좀 들었지.”(웃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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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나야말로 디지털 문명의 최대 수혜자”</span></strong>
</p>
<p>
	이 교수는 “나야말로 디지털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초, 주간조선에 ‘현대문명진단’이란 주제의 만화를 연재했어요. 그때만 해도 신선한 자료를 얻으려 독일·일본 일간지를 구독했지. 그런데 꼭 하루씩 배달이 늦더라고. 비행기로 배달됐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 뉴스들을 방안에서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된 거야. 와! 하느님이 내게 선물 꾸러미를 한아름 안긴 기분이었어요.” 정보 획득 수단을 ‘종이 신문’에서 ‘온라인 미디어’로 바꾼 이후 이 교수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해외 미디어를 훨씬 더 많이 접하게 됐다. 예전엔 구하기 힘들어 두 종(種)밖에 못 봤지만 지금은 하루 평균 네댓 개의 외국 신문을 본다. 자연스레 국제 정세를 읽는 시각이 넓어졌다. 동일 이슈에 대한 국가별·매체별 취급 방향과 뉴스 선별 기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신문의 최대 약점은 국제 정보가 부실하다는 거예요. 강아지가 사람 문 것(처럼 뻔한 뉴스)까지 다루면서 정작 외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진 잘 파악을 못해.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한 의식 구조를 가진 나라는 독일이에요. 저녁 8시 메인 뉴스를 보면 내용의 90%가 외신이거든. 내 책과 다른 책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주요 정보의 출처가 유럽이란 거예요. 반면, 우리나라 책은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에서 자료를 취해요. 미국은 국제 정세를 많이 다루긴 하지만 자국 위주로 편집해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뉴스가 편중되게 마련이지.”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41.jpg"><img loading="lazy" alt="이원복 교수가 크게 웃고 있는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158" height="548"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41.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 10pt">▲이원복 교수는 자신을 “디지털 혁명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한다. 외국 일간지를 정기 구독하다 인터넷 덕에 세계 각국 신문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된 변화를 두고 그는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span>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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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디지털 혁명이 몰고 온 변화 하나, 앎의 평준화</span></strong>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 “만인이 아는 김태희 애인, 아무도 모르는 몽테스키외”</span></strong>
</p>
<p>
	이원복 교수에게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은 ‘판단’과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과 ‘적응’의 대상이다.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게 순리이고 섣부른 가치 판단은 유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모바일이 이끄는 오늘날의 디지털 혁명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한다. 수십 년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덕에 디지털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간 차이점도 확연히 자각하고 있다. 그가 꼽는 디지털 혁명의 최대 변화는 ‘앎의 평준화’다. “디지털과 모바일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어요. 무엇보다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됐지. 언제 어디서나 검색하면 다 나오니 외울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예전엔 다들 조선 왕 이름을 줄줄 다 외웠잖아,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그런데 요즘엔 “태정태…” 하다 모르면 바로 검색해서 찾아요. 두뇌 구조가 단순해지는 거지. 뇌 모양도 바뀐다잖아.” 이 교수에 따르면 요즘 대학생은 ‘앎’의 차이가 거의 없다. “아는 건 다 알고 모르는 건 다 몰라요. 김태희 애인이 비(정지훈)란 건 다 알면서 몽테스키외가 한 말은 아무도 모르잖아. 왜 그런지 알아요?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 TV와 스마트폰뿐이거든. 책들을 안 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지하철에서 책 보는 사람 있어요? 보는 사람이 희귀 동물이지. 우리 시대만 해도 내가 아는 걸 친구는 모르고 친구가 아는 건 내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젠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다 같아져버렸어요.”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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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디지털 혁명이 몰고 온 변화 둘, 감성의 시대</span></strong>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 "만사가 오락… 감각·감성에 솔직해진 사람들"</span></strong>
</p>
<p>
	디지털 혁명은 ‘오락거리의 다양화’를 몰고 왔다. 책과 TV, 영화 등으로 국한돼 있던 오락거리가 모바일 영역에 편입되면서 ‘무한 팽창’ 되고 있는 것. 세계 각국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게임은 점점 역동적으로 진화했다. 인터넷 공간에선 일상 대화조차 새로운 문법을 등에 업고 어엿한 하나의 오락거리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대개 ‘즐거움’이다. 디지털 혁명의 두 번째 변화로 이 교수는 “감각과 감성이 추앙 받는 시대가 된 것”을 꼽았다. “모바일 시대의 가장 좋은 점은 즐거움을 추구할 소재가 많아졌다는 거예요. 재밌는 동영상이며 게임, 앱 따위가 얼마나 많아. 예전엔 이성적, 사유적 삶을 좇아 감성을 억제하고 살던 사람들이 이젠 자신의 감각과 감성이 움직이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요. 부작용? 당연히 많지. 하지만 해석하기 나름이에요. 기성 세대 눈에 요즘 세대는 ‘책이라곤 안 읽고 단순하며 무지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죠. 반대로 요즘 친구들이 볼 땐 기성 세대가 따분할 거예요. ‘저 보수적인 구닥다리들 왜 저러고 사나’ 하면서.(웃음) 함부로 어느 게 좋다, 나쁘다 단정 지을 순 없어요. 그저 달라진 것일 뿐. 차이를 인정해야 할 것 같아.”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일본의 쇠락과 한국의 도약, 둘 다 원인은 인터넷</span></strong>
</p>
<p>
	이원복 교수는 40년 넘게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사(史)를 연구해 왔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어서 과거를 보면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역사에 관한 한 거시적 안목을 지닌 그는 미래 사회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그는 “그걸 알면 내가 일찌감치 미래학자가 됐을 것”이라며 겸연쩍게 웃으면서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은 얼마 안 가 전부 깨질 거예요. 이를테면 ‘프랑스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 같은 명제 말이에요. 실제로 오늘날 프랑스는 극우파가 득세하며 ‘반(反)개방 반(反)글로벌’ 추세로 가고 있죠. 요즘 세계 정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가라앉는 나라’와 ‘떠오르는 나라’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어. 전자를 대표하는 국가는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국가는 독일·오스트리아·중국·한국이에요. 공통점이 뭔지 알겠어요? 앞의 국가들은 식민지 착취의 주체였던 반면, 뒤쪽 국가들은 하나같이 식민지 착취를 당했거나 전쟁에서 패배했어요. 식민 착취로 흥한 나라는 경제 구조 자체가 착취 구조예요, 적게 주고 많이 받는. 하지만 식민 착취 피해국은 출발부터가 교환 구조야. 그런데 현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착취가 불가능한 구조로 움직이고 있거든. 인터넷이 발달하며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착취를 하려야 할 수 없는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는 거지.”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440.jpg"><img loading="lazy" alt="이원본 교수가 갤럭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161" height="548"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440.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 10pt">▲이원복 교수는 자타 공인 ‘삼성전자 마니아’다. ‘갤럭시’ 브랜드로 스마트폰이 출시되자마자 구매하기 시작해 갤럭시 S·S3·S5로 잇따라 갈아탔고 노트·탭 등 다른 갤럭시 제품도 두루 사용해 왔다. 지난 2002년 삼성전자가 63형 PDP TV를 출시했을 땐 1800만 원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span>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내가 20년째 삼성전자 제품만 고집하는 이유</span></strong>
</p>
<p>
	이원복 교수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은 갤럭시 S5다. 그 전엔 S3를, 또 그 전엔 S를 썼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엔 ‘애니콜’ 브랜드 제품을 사용했다. 갤럭시 노트와 갤럭시 탭도 종종 쓴다. 지난 2002년 삼성전자가 1800만 원짜리 63형 PDP TV를 출시했을 땐 그 길로 달려가 구입하기도 했다. 그가 삼성 제품만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애국심이지. 삼성전자는 우리가 낳은 ‘글로벌 월드 베스트 기업’이잖아요. 실제로 삼성 덕분에 우리나라 국가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지기도 했고.” 사실 삼성을 향한 이 교수의 애정과 신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90년 ‘자본주의 공산주의’ 만화를 쓸 때 있었던 일이에요. 사회주의 국가도 안 가보고 어떻게 책을 쓸 수 있겠어. 떨리는 마음으로 모스크바를 찾았지. 당시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는 아무나 못 가는 곳이었어요. 출국 전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에서 교육을 받고 일명 ‘연좌제 검사’도 받았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모스크바공항에 떨어졌는데 세상에, 모든 카트마다 삼성 로고가 떡하니 찍혀 있는 거야. 그때 깨달았죠. ‘기업은 이렇게 발빠른 조직이구나, 삼성은 이 전쟁에서 엄청 앞서가고 있구나!’ 그때부터 친(親)기업, 친(親)삼성이 됐어요.” 삼성과의 특별한 인연도 그의 ‘삼성 사랑’에 한몫했다.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명 ‘신(新)경영’을 선언하며 개혁의 필요성과 변화 방향이 담긴 교본을 만화 형태로 만들어 임직원과 공유하게 했다. 당시 이 교본의 집필 책임을 맡은 게 이원복 교수였다. “그 작업을 진행하며 정말 여러 번 감탄했어요. 지금껏 기억나는 내용도 많지.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임원들에게 패션쇼 관람을 지시한 부분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전자제품이 당장은 기능 경쟁인 듯 보이지만 기능으로 차별화하긴 어렵기 때문에 종국엔 ‘디자인 싸움’으로 간다는 거야. 그걸 이미 20여 년 전에 꿰뚫어본 거예요.”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542.jpg"><img loading="lazy" alt="이원복 교수가 갤럭시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162" height="57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542.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 10pt">▲1993년 삼성의 ‘신경영’을 소재로 ‘나부터 변하자’란 제목의 만화를 제작했던 이원복 교수는 21년 전과 지금의 위기감이 닮은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위기는 장수 기업의 숙명”이라며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훗날 더 큰 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span>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삼성, 다시 한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라</span></strong>
</p>
<p>
	이원복 교수의 눈에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삼성전자와 2014년의 삼성전자는 퍽 ‘닮은꼴’이다. “다소 침체돼 있는 점, 검은 먹구름이 낀 듯 안팎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점 등이 특히 비슷해요. 하지만 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삼성전자가 겪고 있는 위기는 말하자면 ‘장수 기업이 거쳐야 할 통과제의’ 같은 거니까. 개인이든 조직이든 위기는 항상 있게 마련이고, 100년 이상 롱런한 기업의 역사를 봐도 늘 좋은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는 “큰 주기로 살폈을 때 삼성전자가 지금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건 맞지만 지금 잘 해내면 얼마든지 더 큰 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위기가 곧 기회’이고,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크게 한 번 변화를 모색할 때란 얘기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삼성전자가 맞닥뜨린 위기는 비단 ‘삼성전자’란 하나의 기업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며 모든 글로벌 기업에 닥친 상황이다. 후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점점 좁혀지는데 세상을 바꿀 만큼 새로운 발명은 나오지 않는 형편이다 보니 엇비슷한 제품만 쏟아내는 형국부터가 딱 그렇다. 그는 “생산 과잉으로 인한 불경기는 당분간 지속될 게 분명하다”며 “결국 승부수는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덜어낸 ‘고품질 저가 제품’으로 띄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눈에 요즘 삼성전자는 ‘춤추는 고래’처럼 보인다. “칭찬을 한껏 들은 고래가 공중에 위태롭게 떠 있는 상황 같아요. ‘승자의 저주’ 첫 문턱에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할 것 같아. 업무상 종종 삼성(전자 사옥)에 갈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모든 게 너무 완벽하다’고 느껴요. 그게 장점이고 또 단점이지. 사람 냄새가 좀 덜 난다고 할까?” 그와의 인터뷰는 요즘 세대의 신조어 하나로 마무리됐다. “창조적 파괴에 집중하면 더 이상 갤럭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난 삼성이 ‘깜놀’(‘깜짝 놀랐다’를 줄여 쓴 은어)을 찾아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없던,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제품 말이야. 그게 숙제인 것 같아요.”  
</p>
<div class="txc-textbox" style="background-color: #eeeeee;border: #cccccc 1px solid;padding: 10px">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 시리즈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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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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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m43vz"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①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NVoWp"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②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j76Ps"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④ 원조 ‘공부의 신’ 조승연</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kV00I"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⑤ 류철균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연재 끝></a><br />
	</h2>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②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title>
				<link>https://news.samsung.com/kr/%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ed%8a%b9%ec%a7%91-5%eb%b6%80%ec%9e%91-%ec%9d%b8%ed%84%b0%eb%b7%b0-%eb%82%98%ec%99%80-%eb%94%94%ec%a7%80%ed%84%b8_%e2%91%a1</link>
				<pubDate>Wed, 10 Dec 2014 11:00:1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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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기획·연재]]></category>
		<category><![CDATA[스페셜 리포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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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나와 디지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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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지식 공유]]></category>
		<category><![CDATA[해외지역전문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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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평생 모은 영상 6500개 디지털로 변환, 전국 대학 인류학과에 ‘조건 없는 기증’ “내게 디지털은 지식 공유의 신세계”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반사적 관심을 보이며 남보다 먼저 구매해 쓰는 사람이 얼리어답터라면 이문웅(73)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얼리어답터가 아니다. “전 새로운 기술을 익히려 애 쓰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해가다보면 어느 단계에서 우연히 좋은 방법을 알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rong><span style="font-size: 14pt">평생 모은 영상 6500개 디지털로 변환, 전국 대학 인류학과에 ‘조건 없는 기증’</span></strong><br />
	<strong><span style="font-size: 14pt">“내게 디지털은 지식 공유의 신세계”</span></strong>
</p>
<p>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반사적 관심을 보이며 남보다 먼저 구매해 쓰는 사람이 얼리어답터라면 이문웅(73)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얼리어답터가 아니다. “전 새로운 기술을 익히려 애 쓰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해가다보면 어느 단계에서 우연히 좋은 방법을 알게 되거나 적절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기회가 생겼을 뿐이죠.”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두 대의 모니터를 뒤로 하고 앉아 있는 이문웅 명예교수의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9859" height="548"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143.jpg" width="849" /><span style="font-size: 12px">▲안국동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문웅 명예교수. 그는 영상 편집 작업을 편리하게 진행하기 위해 두 대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span>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1977년, 애플 복제품으로 PC에 눈 뜨다</span></strong>
</p>
<p>
	그의 말과 달리 이 명예교수의 학문적 궤적에서 디지털기기는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후 귀국한 1977년, 그는 난생처음 개인 컴퓨터를 장만했다. 서울 청계천시장에서 산 애플Ⅱ 복제품이었다. 당시만 해도 신제품이 나오면 청계천시장에 복제품이 쫙 깔리던 시절이었다. 단순히 원고 타이핑 용도로 구입한 제품이 그의 디지털 라이프 첫머리를 장식한 셈이다.
</p>
<p>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진 초창기 한글 소프트웨어인 ‘세종한글’ ‘아래한글’ 등을 사용했다. “그땐 청계천시장에 설명서도 없이 딱 한글 소프트웨어만 나왔었습니다. 거기에 ‘오류가 발생하면 개발진에게 연락해 달라’며 전화번호가 같이 적혀 있었어요. 한국인들이 또 문제가 있으면 가만히 참고 있지 않잖아요. 쓰다가 뭐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당장 개발자 이찬진씨한테 전화해서 알려주곤 했죠. 그런 즉각적 사용자 피드백 덕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어요.”
</p>
<p>
	이 명예교수는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 급속도로 디지털화(化)된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고스란히 지켜봐 온 학자다. 그런 그가 꼽는 정보통신기술 발전의 원동력은 ‘댓글 달기’ 등 즉각적 사용자 반응. “수많은 사용자가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문화·기술 발전이 촉진돼 왔다”는 지적이다. “개개인의 의견이 거침없이 개진되는 사회에선 문화의 흐름, 또는 다양한 요소 간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조합과 종합이 더 잘 이뤄집니다. 그게 발전적 항목인 경우, 우린 ‘혁신(innovation)’이라고 부르죠.”
</p>
<p>
	그에게 디지털 세상은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시작됐다. 2006년 정년퇴임하기 전까지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서 연구실 내 개인용 컴퓨터를 들인 건 그가 처음이었다. “전 어느 순간 딱 디지털 세상을 만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거나 한 기억은 없습니다. 원고지에 글을 쓰다 타이핑을 하니 좀 더 편하더군요. 편지로 보내던 메시지를 이메일로 대체하니 훨씬 편리했고요. 비디오테이프에 모으던 영상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니 물리적 부피가 줄어드는 건 물론, 전송도 훨씬 편리해졌어요. 디지털카메라는 필름카메라보다 사용이 편리할 뿐 아니라 화질도 뒤지지 않죠. 매번 제게 더 편리한 걸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연구 인생의 ‘동반자’ 된 디지털 기기</span></strong>
</p>
<p>
	지난 12월 2일 삼성투모로우가 이문웅 명예교수의 연구실(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을 찾았을 때, 그는 현지 조사에서 촬영해 온 영상을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고 있었다. 영상 작업에 최적화된 그의 컴퓨터 책상 위엔 태블릿PC 한 대, 스마트폰 두 개, 보이스레코더, 외장형 하드디스크(이하 ‘외장하드’),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모든 장비는 오로지 ‘연구용’이다. 실제로 이 명예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기기를 철저하게 ‘학문적 도구’로 사용해 오고 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이문웅 명예교수가 평소 사용하는 핸디캠으로 촬영하는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9860" height="555"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226.jpg" width="849" /><span style="font-size:12px">▲이문웅 명예교수가 ‘현지 조사 시 영상 촬영용’으로 즐겨 사용하는 핸디캠을 들어 보이고 있다</span>
</p>
<p>
	“인류학의 본질은 타인(others)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우리(we)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려면 다른 이가 사는 모습을 다양하게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겨 좀 더 많은 이에게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죠.”
</p>
<p>
	1988년, 이 명예교수는 생애 최초로 VHS 비디오카메라를 마련했다. 이후 거의 모든 현지 조사 시 영상 촬영을 병행했고, 그렇게 축적한 자료를 차곡차곡 보관해 왔다. 처음엔 비디오테이프를 썼지만 디스켓·CD·외장하드 등을 거쳐 지금은 유튜브 계정에 올려둔다. 그는 “내가 학생일 때만 해도 전공 관련 영상 자료 하나 만들려면 천문학적 예산이 들었다”며 “요즘은 연구자가 맘대로 찍고 편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된 거냐”고 말했다.
</p>
<p>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서울대 최초 ‘영상인류학 강좌’ 개설</span></strong>
</p>
<p>
	이문웅 명예교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줄곧 자신이 공유하고 싶은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 편집하는 방식으로 인류학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일명 ‘영상인류학’적 접근법이다. 당시는 (인류학 분야 선진국인) 미국에서조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영상인류학이 상용화되지 않던 시기였다. “교수는 전공 관련 유망 분야가 떠오를 때 비록 자신이 잘 알지 못한다 해도 최선을 다해 연구, 학생들이 그 분야를 스스로 개척하도록 유도하고 안내하는 사람”이란 그의 학자적 소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p>
<p>
	이 명예교수가 서울대 최초로 개설한 영상인류학은 2006년 그가 퇴임할 때까지 매년 직접 강의해 왔으며, 이후 김홍준 영화감독이 물려받아 이끌고 있다. 강의는 두세 명의 수강생이 팀을 이뤄 각각 15분 내외의 영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소재는 대부분 학교를 포함, 사회 저변에서 취한다. 각각의 작품이 곧 대한민국 현대사의 단면인 셈이다.
</p>
<p>
	제자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는 이 명예교수가 2001년 구축, 운영 중인 <strong><a href="//vaa.anthropology.or.kr" target="_blank">영상 아카이브</a></strong>에 차곡차곡 업로드됐다. 지난해 7월부턴 아카이브 내 클립을 본인의 유튜브 계정 가운데 한 곳인 <strong><a href="http://youtube.com/vaarchive/" target="_blank">‘VA아카이브’</a></strong>에도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인터넷이 연결되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서나 생생한 영상을 바로 열어볼 수 있게 됐어요. 1993년 이후 모인 작품 수가 180편을 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채널엔 학생들의 작품이 계속 쌓이겠죠. 그 자체로도 하나의 거대한 현대사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학계에 ‘영상인류학’ 개념을 심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제 모험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p>
<p>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25.jpg"><img loading="lazy" alt="이문웅 명예교수가 웃고 있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9862" height="555"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25.jpg" width="849" /></a>
</p>
<p>
	그는 퇴임한 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현지 조사를 진행하며 관련 영상물을 수집, 보관해 오고 있다. 요즘은 거기에 다소 엉뚱해 보이는 관심사가 하나 늘었다. 다름 아닌 ‘자연 재배’다.
</p>
<p>
	“이제껏 전 인류 문명의 긍정적 측면만 바라보고 살아 온 편이에요. ‘문명=참 좋은 것’이란 생각을 늘 했죠. 그런데 나이 들면서 가만히 보니 뭐든 인간의 손이 닿기만 하면 망가지는 거예요. 식물, 바닷물, 공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가고요. 문명에도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
<p>
	4년 전, 그는 유기농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일명 ‘자연농법’에 주목했다. 자연농법이란 화학 비료는 물론, 퇴비도 일절 투입하지 않는 농사법.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는 건 기본이고 쟁기질조차 하지 않는 방식으로 농작물을 수확한다. “자연농법이야말로 인류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는 으뜸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줄곧 국내외 자연농업 현장을 탐사하며 제가 관찰, 수집한 정보를 영상과 글로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p>
<p>
	실제로 그는 인터넷과 SNS 채널 등을 활용, 직접 방문해 촬영한 국내외 자연재배 농장의 풍경을 보다 많은 이와 공유하고 있다. 해당 페이지의 방문자 수는 15만 명이 넘는다.
</p>
<p>
	 
</p>
<p>
	<span style="color: #5d0c7b"><strong><span style="font-size: 14pt">“평생 쌓은 지식 나누는 게 내 마지막 소명”</span></strong></span>
</p>
<p>
	디지털 세상은 메모리 걱정 없이 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손쉽게 만들고 맘껏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지식 공유’라는 이 명예교수의 소명이 예전보다 한결 효과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 역시 그 덕분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이문웅 명예교수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9863" height="564"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424.jpg" width="849" /><span style="font-size:12px">▲이문웅 명예교수가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VA아카이브를 포함, 총 5개의 유튜브 계정을 운영 중이다</span>
</p>
<p>
	그는 최근까지 VHS, 6mm 테이프 등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던 영상물의 디지털화 작업을 손수 해 왔다. 그 결과, 서울대 재직 당시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수집한 약 6500편의 영상 자료가 모두 디지털 파일로 전환됐다. 비디오테이프로 치면 집채만큼 쌓였을 분량이지만 정보 저장 기술의 발달로 이제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하드디스크 하나에 담길 수 있게 됐다. 그는 이 자료들을 “인류학 교육 활성화에 써 달라”며 전국 대학 인류학과에 한 세트씩 기증했다.
</p>
<p>
	퇴임 후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갖고 있던 서적을 전부 기증했다. 당시 한국학연구원을 개설했지만 한국 관련 자료가 전혀 없던 대학 측 기증 요청에 흔쾌히 응한 것이었다. 얼마 전부턴 해외 소재 한국학 연구센터와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이 명예교수의 수집 자료를 요청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지난해엔 한 재단에서 외장하드를 지원 받아 그간 수집한 한국 관련 영상 자료 1500여 편을 복사, 기증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그가 보유한 영상 자료는 거의 다 디지털화 작업이 끝나 누구나 유튜브에서 열람할 수 있다. 모두 ‘지금껏 쌓아 온 지식을 공유하는 게 학자로서 내 마지막 소명’이란 학문적 신념에 따른 행보다. “변화는 결코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다 같이 일으켜 결국 모두 함께 움직이게 만드는 거죠. 사용자의 적극적 피드백이 빠른 기술 발전을 낳았듯 말입니다.”
</p>
<p>
	<img loading="lazy" alt="이문웅 명예교수의 상반신 프로필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9864" height="70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523.jpg" width="500" />
</p>
<p>
	 
</p>
<p>
	<span style="color: #5d0c7b"><strong><span style="font-size: 14pt">“삼성은 비교문화론적 경영 실천하는 기업”</span></strong></span>
</p>
<p>
	“오래 전 삼성인력개발원 해외지역연수소 초청으로 해외 파견 예정 임직원 대상 특강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담당 직원이 그러더군요. 해외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온 직원들은 약 6개월간 자신들이 경험한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그 결과물은 그룹 해외 지역 문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고요. 삼성 직원들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고요. 이 데이터베이스야말로 오늘날 삼성의 성공 신화를 뒷받침한 ‘세계 지역문화 정보 수장고’ 아닐까요?”
</p>
<p>
	이 명예교수는 삼성그룹이 지난 20여 년간 운영해 온 ‘해외지역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 대해 “칭찬하고 싶은 제도”라고 말했다. 1990년 도입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삼성은 매년 자사 직원을 해외로 일이 년간 파견, 업무와 무관하게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돌아오게 하고 있다. 지금껏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인원은 5000여 명. 삼성은 전 세계 80개국 170여 개 도시에 지역전문가를 파견하는 데 1조 원 이상 투자해 왔다. 2011년 7월 미국 하버드대학이 펴내는 경영학 전문 월간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는 지역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 대해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strong><a href="https://hbr.org/2011/07/the-globe-the-paradox-of-samsungs-rise" target="_blank">(☞관련 링크 바로 가기)</a></strong>.
</p>
<p>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면 해외 지역 문화, 즉 ‘다른 문화(other cultures)’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문화인류학을 공부해 왔기 때문일까요. 다른 나라 문화를 ‘우리 식’이 아니라 ‘그들 식’으로 이해하려는 비교문화론적 시각을 기업 운영에 실천적으로 도입한 삼성의 해외지역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p>
<p>
	 
</p>
<div class="txc-textbox" style="background-color: #eeeeee;border: #cccccc 1px solid;padding: 10px">
<p>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 시리즈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m43vz"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①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IedcY"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③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만화가)</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j76Ps"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④ 원조 ‘공부의 신’ 조승연</a><br />
	</h2>
<h2>
		<a href="https://news.samsung.com/kr/kV00I"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⑤ 류철균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연재 끝></a><br />
	</h2>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①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title>
				<link>https://news.samsung.com/kr/%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ed%8a%b9%ec%a7%91-5%eb%b6%80%ec%9e%91-%ec%9d%b8%ed%84%b0%eb%b7%b0-%eb%82%98%ec%99%80-%eb%94%94%ec%a7%80%ed%84%b8_%e2%91%a0</link>
				<pubDate>Wed, 03 Dec 2014 11:00:32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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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jinsoo2.park]]></dc:creator>
						<category><![CDATA[기획·연재]]></category>
		<category><![CDATA[스페셜 리포트]]></category>
		<category><![CDATA[나와 디지털]]></category>
		<category><![CDATA[디지털]]></category>
		<category><![CDATA[디지털 혁명]]></category>
		<category><![CDATA[모바일 혁명]]></category>
		<category><![CDATA[문화 혁명]]></category>
		<category><![CDATA[삼성전자]]></category>
		<category><![CDATA[삼성투모로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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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시리즈를 시작하며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촉발된 디지털 혁명은 단순히 인류에 편리함을 안겨다 주는 것을 넘어 존재론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 노는 방식, 소통 방식 등 삶의 구석구석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디지털 혁명. 그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다. 누군가에게 디지털은 편리하고 즐거운 신세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분명 난해하고 낯선 ‘타인의 영역’이다. 한국의 명사(名士)들은 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txc-textbox" style="background-color: #eeeeee;border: #cccccc 1px solid;padding: 10px">
	<span style="font-size: 14pt"><strong><span style="color: #000000">시리즈를 시작하며</span></strong></span></p>
<p>
		 
	</p>
<p style="padding-left: 30px">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촉발된 디지털 혁명은 단순히 인류에 편리함을 안겨다 주는 것을 넘어 존재론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 노는 방식, 소통 방식 등 삶의 구석구석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디지털 혁명. 그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다. 누군가에게 디지털은 편리하고 즐거운 신세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분명 난해하고 낯선 ‘타인의 영역’이다.
	</p>
<p style="padding-left: 30px">
		한국의 명사(名士)들은 이 '디지털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까. 삼성투모로우는 201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로 다른 연령대의 명사 5인이 풀어내는 '나와 디지털' 이야기를 12월 한 달간 연재한다.
	</p>
</div>
<p>
	 
</p>
<p>
	<strong><span style="font-size: 14pt;color: #000000">1996년 홈페이지 만든 ‘디지털 고수’ </span><span style="font-size: 14pt">"'나가수'는 살아있는 모바일 혁명 그 자체"</span></strong>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114.jpg"><img loading="lazy" alt="책장 앞에서 스마트 기기를 들고 카메라를 보고 있는 공병호 박사입니다." class="aligncenter wp-image-208948 size-full" height="556"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114.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 10pt">▲ 공병호 박사는 모바일 기기 사용에 능하다. "늘 배우는 과정에 있다"는 그는 젊은이들에게서 정보를 많이 얻는다. '드롭박스' '에버노트' '구글 캘린더' 등의 애플리케이션을 즐겨 쓴다</span>
</p>
<p>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4년 전 예언한 ‘모바일 혁명’ 적중</span></strong>
</p>
<p>
	공병호 박사(55·공병호경영연구소장)는 ‘디지털 고수’다. 미국 유학 시절이던 1984년, 미국 애플사(社)가 시범적으로 보급한 매킨토시를 접하면서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7년엔 IBM을 썼고 1990년부터 PC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한국 대중이 하나 둘 이메일 계정을 만들 즈음인 1996년, 그는 한발 앞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는 도메인(www.gong.co.kr)을 차지할 수 있었다. "역사는 BT(Before Twitter)와 AT(After Twitter)로 나뉜다"는 믿음을 가진 그는 ‘스마트폰, 트위터, 그리고 중요한 IT활용법'이란 주제로 4050 세대 대상 강연도 종종 열었다.
</p>
<p>
	2010년 8월엔 '모바일 혁명’(21세기북스)이란 책을 냈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모바일 혁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짚는 동시에 모바일 혁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체적 실천법까지 알려주는 책이다. 공 박사는 책에서 스마트폰을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비유했다. 램프를 문지르면 거인 요정 ‘지니’가 나타나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는 요술램프.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전 세계 수백만 명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니 요술램프란 표현이 묘하게 들어맞는다. 그는 특히 모바일 혁명이 몰고 올 세상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는데, 4년여가 지난 지금 그가 책에서 예언한 미래는 거의 적중했다.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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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변화, 통제할 수 없으면 적응해야”</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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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와 유통, 인간관계와 소통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네트워크(플랫폼) 기업의 손을 들어준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바꾼다 △쉽게 뜨고 지는 현상에 힘을 더한다 △디지털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공병호 박사가 책에서 언급한 모바일 혁명의 다섯 가지 ‘메가 트렌드’다. 삼성투모로우가 공병호 박사를 만난 날, 그는 이제 막 노스페이스문화센터(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에서 강연을 마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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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은 암벽 등반 선수들, 주제는 ‘탁월함을 향한 도전’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좀전에 만난 청중들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전 요즘도 배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틈날 때마다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죠. 특히 오늘 강의 장소처럼 새로운 곳에 오면 관찰을 많이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쓰는지, 그 앱의 장점은 뭔지 등등에 대해서요. 모바일 혁명은 통제할 수 없는 시류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적응하는 수밖에요. 삶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피합니다. 전 늘 새로운 걸 갈급하고 호기심을 느껴요. 감탄을 잘 하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뭔가 배우면 즐겁죠. 그걸 만든 이에 대한 경외심도 갖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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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공 박사의 스마트폰엔 실용적 앱이 가득하다. 그가 촬영한 사진은 곧바로 ‘드롭박스’ 앱에 담기고 그가 남긴 메모는 ‘에버노트’ 앱을 통해 데스크톱이나 태블릿PC와 동기화된다. ‘구글 캘린더’를 통해 일정을 조율하는 건 기본. 얼마 전 가족과 떠난 이탈리아 여행길에선 ‘구글 맵’의 도움으로 르네상스 유적지를 구석구석 누볐다. 현지 맛집을 탐색할 땐 ‘트립 어드바이저’ 앱 덕을 톡톡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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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변화, 한탄만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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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24.jpg"><img loading="lazy" alt="공병호 박사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class="alignnone wp-image-208949 size-full" height="55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24.jpg" width="849"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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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호 박사는 한때 ‘중독’이라 해도 될 정도로 트위터에 빠져 있었다. 눈 뜨면 트위터 앱을 켰고 트위터를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다. 심할 땐 트위터를 ‘기상 도우미’로 활용하기도 했다. 트위터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하루 네댓 편의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 그의 팔로워는 2014년 12월 현재 약 4만5000명이다. 공 박사의 계획 중 하나는 ‘하우스 스튜디오’를 차려 1인 방송국을 운영하는 것이다. 혼자서 카메라감독과 앵커를 도맡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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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레일 위에 카메라를 다섯 대 정도 설치해 이 버튼 저 버튼 눌러가며 진행하면 가능할 것 같다”며 웃었다. 50대 중반 나이에도 20대 얼리어답터 못잖은 감각을 자랑하는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조언을 남겼다. “중·장년일수록 시대 변화를 한탄하지 말고 악착같이 따라가세요. (중략) 그저 ‘젊은이들은 대단해’라고 중얼거리면서 열심히 익히고 실천하면 됩니다.” 그의 둘째 아들 현수씨는 얼마 전 아버지를 향해 이런 찬사를 보냈다. “저도 (디지털 혁명을) 따라잡기 벅찬데 지식의 최전방에서 거뜬히 생존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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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54.jpg"><img loading="lazy" alt="인터뷰 중인 공병호 박사입니다." class="alignnone wp-image-208952 size-full" height="5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54.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 10pt">▲ 공병호 박사는 모바일 기기를 '가치 창조의 도구’로 활용해보라고 권한다. "자신의 힘으로 도구를 관리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기술이 자신을 관리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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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혁명은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다. '데이터나 물리적 수량을 (0과 1의) 이진법으로 나타내는 방식'을 뜻하는 디지털은 당초 정의가 무색해질 정도로 일상 용어가 돼버렸다. 더욱이 모바일 기기에 적용된 이후엔 산업·경제·정치·문화·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속도는 실로 엄청나서 이 같은 변화가 인간의 삶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바꿔놓을지 고찰할 틈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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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도구, 관리할 것이냐 관리 당할 것이냐</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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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호 박사는 “모바일 시대엔 ‘빛’과 ‘그림자’가 있다”고 경고한다. 모바일 기기가 편리함과 속도, 이동성 면에선 월등하지만 진지한 자기 성찰 없이 그저 소비하다보면 자칫 사용자가 지배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 무의미한 앱이나 인터넷 검색, 웹툰 따위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것 같아요. 모바일 시대, 빛 쪽에 설지 그림자 쪽에 설지 결정하는 요인은 모바일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과 자세입니다.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이고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책임이거든요. 모바일 기기의 용도를 결정할 때도 마치 사업 구상을 하듯 포트폴리오를 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업무 효율도,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모바일 기기를 계획성 있게 사용하지 못하면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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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그의 소신은 책 ‘모바일 혁명’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모바일 혁명은 보통 사람들을 '즐거움의 바다' 혹은 '즐거움의 늪'으로 인도할 것이다. 한마디로 '펀'이 넘친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즐거움에 자신을 노출시키게 되면 결국 소비하는 주체로 살다가 인생을 마치게 된다. 나는 여러분들이 모바일 혁명에서 거두어야 할 성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치 창조'라는 면에 두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과 같은 대표적인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가치 창조 역량을 강화하고 가치라는 성과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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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전통적 ‘프리미엄’, 머지않아 붕괴될 것</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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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4.jpg"><img loading="lazy" alt="공병호 박사가 주먹을 쥐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class="alignnone wp-image-208950 size-full" height="55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34.jpg" width="849"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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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호 박사에겐 세상만사가 관찰 대상이자 연구 주제다. 지하철 승객들을 눈여겨보거나 인기 TV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지금은 종영된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MBC, 이하 ‘나가수’)야말로 ‘생생한 모바일 혁명 현장’이다. 나가수에선 기존 명성도, 데뷔 연도도, 현재 인기도 아무 소용 없다. 평가 대상은 오로지 ‘진짜 실력’이다. ‘유리 감옥’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개개인의 일상과 실체가 까발려지는 시대, 고만고만한 마케팅으로 무장한 개인이나 조직은 오래가지 못하는 세상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나가수를 보며 소름이 끼치더군요. 예전엔 적당한 가창력을 지닌 이도 운 좋으면 얼마든지 가수로 데뷔해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나이·지위·재력·역사 같은 전통적 프리미엄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겁니다. 적당한 포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진짜 최고의 인재가 아니라면, 진짜 어른이 아니라면, 진짜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하면 언젠가 반드시 실체가 드러나게 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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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과 '존중'. 공 박사가 꼽는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보다 더 뛰어난 부분을 존중해야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모바일 시대엔 무엇보다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솔직해지지 않으면 세상이 솔직해지게 만들 테니까요. 세상 변화와 그로 인한 파급 효과를 직시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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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44.jpg"><img loading="lazy" alt="공병호 박사가 삼성전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class="alignnone wp-image-208951 size-full" height="512"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4/12/044.jpg" width="849" /></a><span style="font-size: 10pt">▲ “훌륭한 역사도 때론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낮은 자세로 임하소서” 삼성전자를 향한, 공병호 박사의 애정 어린 조언이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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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span style="color: #5d0c7b;font-size: 14pt">삼성, 제품에 ‘꿈’ 담는 노력 기울이길</span></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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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말미, 공병호 박사에게 ‘삼성전자를 위한 발전적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즉답 대신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근간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김영사) 얘기부터 꺼냈다. “책을 읽는 내내 삼성이 떠올랐습니다. ‘삼성이 과연 구글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명령과 지시로 채워지는 조직문화에서 파격적 제품, 꿈을 담은 제품이 나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건 말하자면 ‘문화 혁명’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이 문제는 비단 삼성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강 하류에 엄청난 퇴적물이 쌓여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퇴적물을 없애려면 제도를 바꿔야겠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젊은이들이 그들 특유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환경 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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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실적 부진으로 고전 중인 삼성전자에 대해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뛰어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기술은 누구나 모방할 수 있죠.” 그는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는 매력적 제품,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적 제품으로 시장을 사로잡는 것만이 삼성전자가 살 길”이라며 “그러려면 무엇보다 ‘탐험가의 태도’와 ‘겸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이미 세계적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성공 신화엔 찬사를 보내지만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역사도 때론 족쇄가 될 수 있죠. 과거의 성공은 잊고 출발선에 섰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탐험가 정신이 필요합니다. 도전과 패기, 열정과 용기 같은 것들 말이죠. 무엇보다 겸손해지세요. 삼성전자 전 임직원께 ‘낮은 자세로 임하소서’란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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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txc-textbox" style="background-color: #eeeeee;border: #cccccc 1px solid;padding: 10px">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 시리즈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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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news.samsung.com/kr/NVoWp"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②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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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news.samsung.com/kr/IedcY"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③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만화가)</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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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news.samsung.com/kr/j76Ps"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④ 원조 ‘공부의 신’ 조승연</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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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s://news.samsung.com/kr/kV00I" target="_blank">☞[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⑤ 류철균 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연재 끝></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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