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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제성 &#8211; Samsung Newsroom Kore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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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What's New on Samsung Newsroom</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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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투모로우 에세이] 조성진 음반 판매 돌풍, 클래식 음반 시장 ‘호재(好材)’ 될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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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Dec 2015 19:01:0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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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jinsoo2.park]]></dc:creator>
						<category><![CDATA[오피니언]]></category>
		<category><![CDATA[외부 기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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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쇼팽 콩쿠르]]></category>
		<category><![CDATA[음반산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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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박제성 음악평론가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한국 음악 시장에서 음반 부문은 상당히 침체돼 있다. 수요가 줄고 있다기보다 수요를 담아내는 미디어 방식이 바뀌며 ‘음반’이란 매체에 대한 소비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 음반사를 둘러보면 한결같이 급락하는 매출 상황을 넋 놓은 채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새다. 도시별로 즐비한 음식점만 해도 그렇다. 장사가 잘 안 돼 월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img alt="Newsroom_banner_content_1"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60279" height="3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Newsroom_banner_content_111.jpg" width="849" />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alt="투모로우 에세이 조성진 음반 판매 돌풍, 클래식 음반 시장 호재 될까?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60288" height="3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D%98%B8%EC%9E%AC_%EB%8F%84%EB%B9%84%EB%9D%BC.jpg" title="" width="849" />
</p>
<p style="text-align: right">
	<strong>박제성 음악평론가</strong>
</p>
<hr />
<p>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한국 음악 시장에서 음반 부문은 상당히 침체돼 있다. 수요가 줄고 있다기보다 수요를 담아내는 미디어 방식이 바뀌며 ‘음반’이란 매체에 대한 소비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 음반사를 둘러보면 한결같이 급락하는 매출 상황을 넋 놓은 채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새다. 도시별로 즐비한 음식점만 해도 그렇다. 장사가 잘 안 돼 월세 낼 걱정에 한숨만 깊어간다. 그렇다면 이들을 단순히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걸러지는 낙오자들로만 봐야 할까? 정말로 한국 음반 시장엔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걸까?
</p>
<p>
	 
</p>
<p>
	<span><span style="font-size: 18px"><strong>한국 음반 시장, 규모는 작지만 잠재력 상당해</strong></span></span>
</p>
<p>
	이를 확인하려면 우선 21세기 들어 급변하고 있는 전 세계 음악산업의 방향부터 바라봐야 한다. 음반 시장과 음악 시장은 더 이상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메이저 음반사들은 일찌감치 음악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일명 ‘360도 경영’이란 이름으로 음악에 관한 전방위적 분야를 흡수하고 소화해내기 시작한 것. 이제 음반회사는 단순히 음반을 제작,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반 기업들과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노력과 시간, 자본을 아끼지 않고 있다. 클래식 음반 산업 또한 예외가 아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alt="뮤지션이 무대에서 기타와 함께 노래를 하는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60289" height="56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D%98%B8%EC%9E%AC5.jpg" title="" width="849" />
</p>
<p>
	이제 음반사도 미디어의 다양성과 기술적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티스트 발굴·섭외·관리 등 매니지먼트 사업 △저작권(copyright)과 노하우를 획득하기 위한 인수∙합병 사업 △일반 시장을 상대로 한 광고·홍보·영업 △자동차·비행기·요트 등 공산품 제작 기업들과의 협력 등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영화나 콘서트 제작·기획은 물론,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콘텐츠 제작과 배포 측면에서도 IT 업체와 오디오·음향 업체들과의 제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쉽게 말해 현재의 음반회사들은 음악이 사용되는 모든 분야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레코드판을 바라보는 남녀의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60291" height="56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D%98%B8%EC%9E%AC1.jpg" title="" width="849" />
</p>
<p>
	음반이 탄생한 이래 전 세계 음악 시장의 규모와 영업이익은 줄어든 적이 없다시피 하다. 음반사마다 경영과 콘셉트의 문제로 인수, 합병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음악 산업의 규모와 이윤 자체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중음악 분야는 이제 엄청나게 성장해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클래식이나 재즈 등 장르별 성장세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유럽 음반사들은 늘 한국을 주시해왔다. 시장 규모는 중국이나 일본만큼 크지 않지만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레코드판이 돌아가며 음악을 재생하는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60290" height="56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D%98%B8%EC%9E%AC2.jpg" title="" width="849" />
</p>
<p>
	더군다나 요즘 음반은 CD에 한정되지 않는다. ‘복고’ 열풍을 타고 LP 시장 매출 규모도 다시 늘고 있다. 차세대 포맷인 블루레이(Blu-Ray) 영상물 또한 DVD 시대를 마감하며 그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오페라 같은 장르의 새로운 프로덕션이나 오케스트라 실황 아카이브들은 거의 대부분 CD가 아니라 블루레이를 통해 발매되고 있다. 그리고 음원이나 영상물 판매 형식 또한 음반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혹은 B2B(Business to Business) 모델로서 케이블 방송이나 정규 방송국에 오리지널 소스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음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원, 즉 콘텐츠다.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으면 그 가공 형태도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p>
<p>
	 
</p>
<p>
	<span><span style="font-size: 18px"><strong>‘사업적 감각’과 ‘예술적 안목’ 겸비하는 게 관건</strong></span></span>
</p>
<p>
	분명한 건 음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자 기준점이 음반이란 사실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반에 담긴 음원을 상업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음반사의 영업은 단순히 음반 판매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다양해진 미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자본 규모를 확장시킬 수 있느냐에 달린 방법과 아이디어 문제다. 한국에서 성업 중인 메이저 음반사들은 점차 이런 방향을 깨닫고 그 영역을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한국을 넘어 중국과 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조직과 목표를 재편해왔다. 그렇다면 한국 클래식 음반 시장의 현주소는 어떨까?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60292" height="56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D%98%B8%EC%9E%AC3.jpg" title="" width="849" />
</p>
<p>
	국내 음악 시장에서 클래식 음악의 비중은 10% 내외 수준이다. 하지만 그 규모는 계속 확장돼왔고 최근엔 그 수요층도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중·장년층에 치우친 유럽 클래식 음악 인구와 달리 20대 이후의 젊은 청중, 즉 미래의 우수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발맞춰 세계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한국 연주가의 잇따른 등장도 한국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에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세계적으로 인정 받을 만한 스타급 아티스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음악적 능력이나 상업적 가치 측면에서 국내 시장을 주도할 시장과 기업, 시스템이 부족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p>
<p>
	단순히 음반을 수입해서 팔거나 라이선스(license) 제작 형태로 판매하는 음반사는 당연히 매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관건은 국내외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업적 능력, 그리고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를 확보할 수 있는 예술적 안목을 누가 겸비하는지에 달려 있다. 메이저와 마이너 할 것 없이 이 문제를 직시하고 체질 개선에 뛰어들지 않는 한 음악 시장에서 정당한 이윤을 창출해내긴 어려울 것이다. 음반 시장은 더 이상 음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음악 시장과 동의어인 동시에 ‘얼마나 창조적인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국제 문화 비즈니스 영역에 속한다. 일본은 클래식 음악에 뜻을 둔 기업들이 일찍이 클래식 소프트웨어 시장에 뛰어들어 격변의 과정을 거치며 지금에 도달했다. 한국 또한 보다 많은 국민이 클래식 음악을 중시하고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노력과 시도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피아노 건반을 치는 모습의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60294" height="56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D%98%B8%EC%9E%AC41.jpg" title="" width="849" />
</p>
<p>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발매된 조성진 음반 판매량이 한 달여 만에 10만 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일찍이 전례가 없던 일이다. 혹자는 이 같은 현상을 가리켜 ‘스타(혹은 애국심) 마케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가 빈 필하모니커 신년 음악회를 최초로 지휘했을 당시 관련 DVD가 일본에서 100만 장 가까이 팔린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열풍이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연속성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해답은 결국 꾸준한 인재 개발과 적극적 시장 개발,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일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논의와 별도로 조성진의 연주가 ‘21세기 대한민국 문화재’로 평가될 만큼 커다란 가치를 지닌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p>
<p>
	<span style="font-size: 12px">※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span>
</p>
<div class="txc-textbox" style="padding: 10px">
	필자의 또 다른 에세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p>
<p>
		 
	</p>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4qkzf"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지금, 한국 오케스트라는 진화 중!</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XI3QH"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장 있으세요?</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Ox2WD"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대한민국 오페라의 부흥을 응원합니다</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4DxoD" target="_blank">[투모로우 에세이] ‘2015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을 만나다</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OjISn"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통영·평창 넘어서는 ‘음악 페스티벌 도시’, 나올까?</a><br />
	</h2>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DATA[[투모로우 에세이] ‘2015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을 만나다]]></title>
				<link>https://news.samsung.com/kr/%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2015-%ec%87%bc%ed%8c%bd-%ec%bd%a9%ec%bf%a0%eb%a5%b4-%ec%9a%b0%ec%8a%b9%ec%9e%90-%ec%a1%b0%ec%84%b1%ec%a7%84</link>
				<pubDate>Fri, 30 Oct 2015 12:15:17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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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박제성 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EPA=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1927년 1회 대회가 열린 이후 1955년부터 5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는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가 낳은 거장’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의 업적과 위상을 기리기 위해 탄생한 피아노 전문 콩쿠르다. 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right">
	<img loading="lazy" alt="박제성편_도비라"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3100" height="3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0/%EB%B0%95%EC%A0%9C%EC%84%B1%ED%8E%B8_%EB%8F%84%EB%B9%84%EB%9D%BC.jpg" width="849" />
</p>
<p style="text-align: right">
	<strong>박제성 음악평론가</strong>
</p>
<hr />
<p>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크기변환_PEP20151003096601003"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3126" height="524"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0/%ED%81%AC%EA%B8%B0%EB%B3%80%ED%99%98_PEP20151003096601003.jpg" width="849" /><br />
	<span style="font-size:12px">(사진 출처: EPA=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
</p>
<p>
	지난 20일(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1927년 1회 대회가 열린 이후 1955년부터 5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는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가 낳은 거장’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의 업적과 위상을 기리기 위해 탄생한 피아노 전문 콩쿠르다. 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들은 일약 세계적 스타로 우뚝 섰다. 피아니스트에겐 최고의 등용문인 셈이다.
</p>
<p>
	쇼팽 콩쿠르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함께 가장 큰 영향력과 권위를 갖춘 경연으로 독보적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심사위원은 모두 내로라하는 거장들로 구성되며, 우승자를 비롯해 6등까지의 입상자는 전원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 받는 한편,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보장 받는다. 입상자 배출국 역시 자국의 문화적 위상을 전 세계에 명예롭게 드높일 수 있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21세기 이후 등장한 한국 음악 영재의 ‘화룡점정’</strong></span></span>
</p>
<p>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쇼팽 콩쿠르에 도전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일단 시설과 교수진 등 전문 음악 교육 시스템이 갖춰진 지 얼마 안 됐고,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천재적 연주자를 발견할 확률도 희박했다. 설사 훌륭한 연주자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학교의 힘만으로 그 연주자를 세계적 음악가로 키워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p>
<p>
	그나마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운영)이나 대원홀딩스(대원문화재단 운영)처럼 음악을 순수하게 아끼는 마음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이 있어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해외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렵게 키워진 음악 인재들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한 채 ‘국내용’으로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p>
<p>
	<img loading="lazy" alt="박제성편_02"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3098"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0/%EB%B0%95%EC%A0%9C%EC%84%B1%ED%8E%B8_02.jpg" width="849" />
</p>
<p>
	이처럼 극소수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수십 년 만에 비로소 안착됐고 이후 몇몇 인재가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임동혁∙동민 형제(피아노, 2005 쇼팽 콩쿠르 3위) △손열음(피아노,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 △조성진(피아노,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 △박종민(성악,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 △서선영(성악,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 △이지혜(바이올린,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 △임지영(바이올린, 2015 퀸 엘리자베스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1위) △신지아(바이올린, 2008 롱 티보 국제 콩쿠르 1위, 2012 퀸 엘리자베스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3위) 등이 대표적이다.
</p>
<p>
	올해 쇼팽 콩쿠르에서 1등을 한 조성진은 그 중에서도 가히 화룡점정(畫龍點睛) 격이라 할 수 있다. 쇼팽 콩쿠르야말로 유럽 음악 문화의 정수(精髓)를 간직한, 최고(最古)의 역사와 최고(最高)의 권위를 자랑하는 콩쿠르이기 때문이다. 조성진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과거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계보를 잇게 됐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스타니슬라프 부닌, 윤디 리, 라팔 블레하츠 등 세계 최고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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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조성진과 같은 나라 출신”이란 이유로 환대 받다</strong></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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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조성진의 우승 사실은 21일 새벽 1시쯤에야 발표됐다. 그 자리엔 나도 있었다. 발표 직후 공연장이었던 필하모니아 홀 로비는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용하던 내 전화기도 한국 매스컴의 러브콜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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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크기변환_PEP20151021061301003"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3127" height="589"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0/%ED%81%AC%EA%B8%B0%EB%B3%80%ED%99%98_PEP20151021061301003.jpg" width="849" /><br />
	<span style="font-size:12px">▲(사진 출처: EPA=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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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당시 현장엔 수백 명 규모의 일본∙중국 응원단이 자국 참가자를 격려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반 관람객뿐 아니라 황실 공주와 외교관까지 응원단에 포함돼 일본인의 클래식 음악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반면,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은 고작 10명 남짓이었다. 그나마 현장을 살피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p>
<p>
	콩쿠르 현장에서 한국은 대사관이나 국가기관, 기업 등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당연히 갈라 콘서트 입장권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한국의 무관심이 야속해지는 순간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우승자 조성진’이 당당히 무대에 선 첫 번째 갈라 콘서트 겸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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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loading="lazy" alt="박제성편_03"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3099"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0/%EB%B0%95%EC%A0%9C%EC%84%B1%ED%8E%B8_03.jpg" width="849" />
</p>
<p>
	폴란드 대통령 내외와 심사위원,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전원 참석한 가운데 마침내 시상식이 시작됐다. 식순 맨 마지막, 조성진이 1등상을 받을 때의 감동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한국에서 이런 피아니스트가 나오다니! 일본과 중국은 30여 년 전부터 쇼팽 콩쿠르에 자국 음악가를 참여시켰고, 그 결과 다수 입상자와 한 명의 우승자(윤디 리, 중국, 2000)를 배출했다. 반면, 한국과 쇼팽 콩쿠르의 인연은 2000년 이후에야 시작됐다.
</p>
<p>
	입상자들의 연주가 이어진 후 마지막으로 조성진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우승자의 특혜’인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오랫동안 음반으로만 접하던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협연을 한국 피아니스트의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p>
<p>
	조성진은 결선 때보다 훨씬 강한 집중력을 발휘, 한층 더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홀 안에 있는 모든 이가 일제히 기립박수로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축하했다. 눈물이 절로 흐를 정도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폴란드에 머무는 동안 택시와 호텔, 레스토랑과 쇼핑 몰 할 것 없이 마주친 폴란드인들(심지어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올해 쇼팽 콩쿠르 결선 진출자 아이미 고바야시까지!)은 오로지 내가 (조성진과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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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인기 연연해하지 않고 음악가로서의 정도 걷겠습니다”</strong></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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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크기변환_PEP20151022079101003"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3125" height="557"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0/%ED%81%AC%EA%B8%B0%EB%B3%80%ED%99%98_PEP20151022079101003.jpg" width="849" /><br />
	<span style="font-size:12px">(사진 출처: EPA=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
</p>
<p>
	예선 당시부터 이미 다른 연주자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연주와 빼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존재감을 과시했던 조성진은 이후 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쇼팽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그가 생활하던 곳을 방문했어요. 친구들과 나눈 편지 등 각종 기록도 찾아봤죠. 쇼팽이 쓴 악보 속 음표가 아니라 곡을 썼을 당시 그의 마음 자체를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조성진의 연주가 기술적 완벽성을 넘어선 감동과 깊이를 담고 있었다면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 테다. 바로 그 점이 콩쿠르 아르헤리치나 당 타이손, 넬손 괴르네, 개릭 올슨, 드미트리 알렉셰프 등 현장에 있던 거장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p>
<p>
	“이미 한국에서 스타덤에 올랐다”는 말에 조성진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전 대중의 인기처럼 ‘음악 외적인’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제 연주를 좋아하고 입장권을 구매해 제 연주회에 와주시는 분들께 최선을 다한 연주를 들려드려야 한다는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도 전 쇼팽의 작품 세계를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 작품도 섭렵해가야 하고요. 쇼팽 콩쿠르는 제게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p>
<p>
	하루 아침에 내로라하는 세계 각국 오케스트라와 콘서트홀의 ‘섭외 대상 0순위’에 오른 그의 얘기에 문득 숙연해졌다. “앞으로도 음악가로서의 정도(正道)를 걷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러면서도 겸손의 미덕을 잃지 않는 이 젊은이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p>
<p>
	<span style="font-size:12px">※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span>
</p>
<div class="txc-textbox" style="padding: 10px;border: 1px solid #cccccc;background-color: #eeeeee">
	필자의 또 다른 에세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p>
<p><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4qkzf"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지금, 한국 오케스트라는 진화 중!</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XI3QH"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장 있으세요?</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Ox2WD"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대한민국 오페라의 부흥을 응원합니다</a><br />
	</h2>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DATA[[투모로우 에세이] 지금, 한국 오케스트라는 진화 중!]]></title>
				<link>https://news.samsung.com/kr/%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a7%80%ea%b8%88-%ed%95%9c%ea%b5%ad-%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eb%8a%94-%ec%a7%84%ed%99%94-%ec%a4%91</link>
				<pubDate>Thu, 23 Jul 2015 12:18:01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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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jinsoo2.park]]></dc:creator>
						<category><![CDATA[오피니언]]></category>
		<category><![CDATA[외부 기고]]></category>
		<category><![CDATA[박제성]]></category>
		<category><![CDATA[삼성전자]]></category>
		<category><![CDATA[삼성투모로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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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박제성 음악평론가   한국 최초 오케스트라는 1945년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이다. 당시 단원들은 계정식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1948년엔 서울관현악단이 창단됐다. 6∙25 전쟁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음악가들은 1953년 해군 정훈음악대에 모여 정기 연주회를 열었고 1960년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으로 변신했다. 육군 악대도 1956년 ‘KBS교향악단’으로 개명,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 교향악단의 역사는 대한민국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right">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_%EB%8F%84%EB%B9%84%EB%9D%BC.jpg"><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에세이오케스트라_도비라"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8889" height="3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_%EB%8F%84%EB%B9%84%EB%9D%BC.jpg" width="849" /></a>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right">
	<strong>박제성 음악평론가</strong>
</p>
<hr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
	 
</p>
<p>
	한국 최초 오케스트라는 1945년 창단된 고려교향악단이다. 당시 단원들은 계정식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1948년엔 서울관현악단이 창단됐다. 6∙25 전쟁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음악가들은 1953년 해군 정훈음악대에 모여 정기 연주회를 열었고 1960년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으로 변신했다. 육군 악대도 1956년 ‘KBS교향악단’으로 개명, 지금에 이르고 있다.
</p>
<p>
	한국 교향악단의 역사는 대한민국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뿌리 깊다. 각 대학은 저마다 음악대학을 신설, 매년 수많은 연주가를 배출하고 있다. 그 결과,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도 적지 않은 오케스트라가 창단됐다. 2000년대 들어선 사립 오케스트라도 속속 생겨나 불과 50여 년 만에 국내 음악 시장의 수요를 맞춰가고 있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베를린필∙카라얀, 대한민국 강타하다</strong></span></span>
</p>
<p>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탄생한 오케스트라 문화는 자생적인 민속문화나 대중문화와는 그 특성이 확연히 다르다. 국내 오케스트라 종사자들이 유럽에서 비롯된 오케스트라 문화에 대한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온 건 그 때문이다.
</p>
<p>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1.jpg"><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에세이오케스트라1"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8891"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1.jpg" width="849" /></a>
</p>
<p>
	식도락 분야에서 온갖 ‘퓨전’과 ‘스타일’이 난무하고 있지만 전통과 기본에 대한 기준이나 이해 없인 본질적 완성도를 담보할 수 없는 것처럼, 음악 역시 제아무리 발전∙해체∙변주가 역사의 핵심이라 해도 그 출발점인 고전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없다면 근본적 품질 향상은 요원하다. 바로 그 점에서 해외 오케스트라의 잦은 내한은 국내 오케스트라의 자체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전문 음악가와 일반 애호가 모두에게 ‘좋은 음악’을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 체험의 폭을 넓혀줄 뿐 아니라 세계 오케스트라 문화의 흐름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p>
<p>
	실제로 세종문화회관 개관 당시 내한했던 해외 오케스트라들은 한국 음악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음악에 대한 국내 음악 팬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84년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필’)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내한 공연은 한국 음악계에 일종의 ‘문화 충격’을 안겼다. 당시 관객들은 음반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전설적 지휘자’ 카라얀과 베를린필의 실연(實演)을 접하며 오케스트라 예술의 극점을 경험했다.
</p>
<p>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4.jpg"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에세이오케스트라4"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8894"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4.jpg" width="849" /></a>
</p>
<p>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본격화된 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였다. 국가 경제력이 향상되며 문화 경쟁력 역시 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기는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가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시발점이었다.
</p>
<p>
	21세기에 접어들며 국내 클래식 공연계에서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무대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이제 매년 봄과 가을이면 미국과 유럽의 유명 악단이 앞다퉈 몰려와 ‘오케스트라 대첩’을 벌일 정도가 됐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점차 악화되는 유럽 경제 상황, 그리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 중인 아시아 경제 상황이 맞물린 데 따른 것이다. 아직 영세한 국내 음악 시장 규모를 떠올릴 때 무조건 반색할 환경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p>
<p>
	하지만 순기능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관제 지원에 의존하던 구조를 벗어나 민간 자본과 기업 후원이 뒷받침됐다. 오케스트라 음악의 다양성이 확보됐고, 클래식 음악 향유층의 저변이 확대되며 감상 수준 또한 눈에 띄게 높아졌다.
</p>
<p>
	 
</p>
<p>
	<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color:#5d0c7b"><strong>‘제2의 서울시향’, 탄생할 수 있을까?</strong></span></span>
</p>
<p>
	한편, 유학파 연주자가 많아지면서 해외 오케스트라에 수석이나 단원으로 입단하는 사례도 늘었다. 또한 이들이 학업을 마친 후 다시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국내 오케스트라 수준도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유의미한 변화는 지휘자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그때까지 이렇다 할 지휘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한국 오케스트라들은 경험 많은 외국인 지휘자들을 적극 영입하기 시작했다.
</p>
<p>
	특히 서울시향은 2005년 세계 최정상급 마에스트로로 발돋움한 정명훈을 상임 지휘자로 추대했다. 이 ‘사건’은 서울시향이 세계 음악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며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실제로 ‘정명훈 체제’의 서울시향은 아시아 오케스트라 가운데 최초로 명문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DG)과 레코딩 계약을 맺는 쾌거의 주인공이 됐다. 서울시향은 이후에도 실력 있는 해외 연주가를 적극적으로 스카우트, 레퍼토리와 연주회 횟수를 대폭 늘렸다. 협연자와 객원 지휘자의 풀(pool)은 물론, 해외 공연 범위 역시 적극적으로 넓히며 점차 세계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p>
<p>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3.jpg"><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에세이오케스트라3"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8893"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3.jpg" width="849" /></a>
</p>
<p>
	오늘날 한국 오케스트라의 과제는 ‘얼마나 훌륭한 연주자를 영입하는가?’ ‘얼마나 유능한 지휘자와 협연자를 섭외하는가?’ 등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함께 조직 운영 인력과 경영진, 국내외 마케팅과 자문위원 등에 요구되는 전문성도 한층 높아졌다. 현재 전문적 실력을 갖춘 국내 오케스트라는 약 15개. 하지만 서울시향 외엔 예산이 터무니없이 낮고 연주도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다. 치열한 ‘오케스트라 전쟁’에 동참할 수 있는, 노련한 경영 능력을 갖춘 인재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p>
<p>
	오케스트라는 한 나라의 문화적 경쟁력으로 세계 공통의 지표다. 향후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음악(외)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자국 오케스트라를 꾸준히 유럽 무대에 진출시키는 한편, 해외 오케스트라를 적극적으로 상주시키며 유럽과의 경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중국 오케스트라 또한 전폭적 국가 지원을 등에 업고 맹렬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그 배경엔 해당 국가 정부와 기업의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일본∙중국 오케스트라 성장에서 배울 것들</strong></span></span>
</p>
<p>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2.jpg"><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에세이오케스트라2"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8892"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A4%EC%BC%80%EC%8A%A4%ED%8A%B8%EB%9D%BC2.jpg" width="849" /></a>
</p>
<p>
	비록 역사는 짧지만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경제성장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한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 그 뒤엔 오케스트라 자체의 노력 못지않게 열정적인 국내 청중의 성원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의 경쟁력과 상업적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건강한 오케스트라 생태계 조성’이라 하겠다.
</p>
<p>
	<span style="font-size:12px">※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span></p>
]]></content:encode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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