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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일훈 &#8211; Samsung Newsroom Kore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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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투모로우 에세이] “언젠가 내 집을 갖고 싶다”는 당신에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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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7 Dec 2015 11:50:35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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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jinsoo2.park]]></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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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외부 기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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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이일훈]]></category>
		<category><![CDATA[투모로우 에세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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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일훈 건축가   어떤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초면일 때 대부분 내 직업을 묻는다. 건축가라 말하면 “건축은 예술이지요” “요즘 건설(부동산) 경기가 어떤가요” “집 지으려면 평(坪)당 얼마나 듭니까” 등 별의별 말을 다 듣게 된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어떤 이는 “몇 년 전 집을 지었는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말을 안 듣고 중간에 도망가는 바람에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
	<img alt="투모로우 에세이. 언젠가 내 집을 갖고 싶다는 당신에게.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 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8944" height="3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B%82%B4%EC%A7%91_%EB%8F%84%EB%B9%84%EB%9D%BC.jpg" title="" width="849" />
</p>
<p style="text-align: right">
	<strong>이일훈 건축가</strong>
</p>
<hr />
<p>
	 
</p>
<p>
	어떤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초면일 때 대부분 내 직업을 묻는다. 건축가라 말하면 “건축은 예술이지요” “요즘 건설(부동산) 경기가 어떤가요” “집 지으려면 평(坪)당 얼마나 듭니까” 등 별의별 말을 다 듣게 된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p>
<p>
	어떤 이는 “몇 년 전 집을 지었는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말을 안 듣고 중간에 도망가는 바람에 엄청 고생했다”며 (무용담에 가까운)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가만히 들어보면 디자인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건축 전반에 대한 오해와 억지가 많아 ‘나라도 도망갔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며 쓴웃음이 나곤 한다. 드물지만 건축가와 시공자를 ‘잘’ 만나 집을 ‘잘’ 짓고 ‘잘’ 산다는 이를 만나 함박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필시 그는 인격도 ‘잘’ 닦인 사람일 것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alt="정원이 딸린 집이 보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007"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B%82%B4%EC%A7%9151.jpg" title="" width="849" />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집 따위 필요 없다”는 사람들과의 만남</strong></span></span>
</p>
<p>
	재밌는 경우도 있다. “집 지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한 번은 “집도 절도 필요 없다”는 스님을 만났다. “절이건 교회건 큰 집(건축)은 죄다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팔려 있으며, 법당(종교 건축)은 작을수록 좋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알고 보니 움막에서 수행한다는 선승(禪僧)이었는데, 그 움막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움막도 분명 건축이니까(어디 움막뿐인가. 요람이 있는 곳도 무덤도 다 건축이니 삶이란 건축과의 관계를 피할 수 없는 시간이다).
</p>
<p>
	“1년 내내 호텔에서 생활한다”는 중년의 교수를 만난 적도 있다. 그의 ‘호텔 생활 예찬론’은 끝이 없었다. 집 짓고 살면 세금·청소·유지보수 등이 힘들다, 호텔에 있으면 매일 방 청소해주고 침대 시트도 갈아준다, 집에선 음식 해먹고 나면 설거지해야 하는데 호텔에선 레스토랑에 가면 된다, 한식·중식·양식·일식 골라 먹을 수 있다, 손님이 오면 커피숍에서 만나면 된다, 집이 아무리 커도 사우나·수영장·피트니스센터를 어떻게 다 갖추겠나(호텔엔 다 있다), 땅값과 집 값을 호텔 숙박비로 나누면 평생 있어도 호텔이 더 싸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alt="침실의 모습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004"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B%82%B4%EC%A7%9121.jpg" title="" width="849" />
</p>
<p>
	한참 그의 얘길 듣던 난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호텔에서 서재를 갖추긴 어렵지 않나요?” “책은 대학 연구실에서 보면 돼요.” “가족도 호텔에서 함께 생활하나요?” “아, 식구들은 모두 미국에 있어요.” “교수 월급이 아무리 많아도 숙박비가 만만치 않겠습니다.” “호텔 주인이 친구라 아주 싸게 해준답니다.” “……”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사고팔며 빌려주는 집은 ‘패스트푸드’</strong></span></span>
</p>
<p>
	사람들은 단칸방(원룸)이라도 자신만의 공간(세계)에서 ‘노동부터 휴식까지’ 모든 생활을 누리고 싶어한다. 타인의 눈치 볼 필요 없는 공간(집 또는 방)은 ‘나만의 왕국’이다. 그곳에선 누가 뭐래도 자신이 곧 임금이다, 비록 신하가 없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p>
<p>
	파는(賣) 집, 사는(買) 집, 빌려주는 집엔 사는(生) 이의 희망사항이 반영돼 있지 않다. 아무나 살 수 있도록 미리 지어놓은 집이니 기성복 아니면 패스트푸드 같은 것이다. 반대로 맞춤복이나 슬로푸드 같은 집을 짓고자 열망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집일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도, “장미꽃 넝쿨 우거진 집”도 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날 기다리는” 아파트도 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초원위에 맑은 하늘, 구름과 함께 집이 한채 있습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005"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B%82%B4%EC%A7%9131.jpg" title="" width="849" />
</p>
<p>
	테라스하우스, 컨테이너하우스, 목조주택 등 하고많은 집 중 최고의 집은 비싼 집도, 대궐 같은 집도 아니다. ‘홈 스위트 홈’, 곧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하지만 행복이 가득한 집을 완성하는 건 건축가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건축가는 웃음과 행복(혹은 울음과 슬픔)을 담는 ‘하우스(집)’를 지을 순 있지만 ‘홈(가정)’에 개입할 순 없다. 가정은 온전히 식구들의 몫이다. 하지만 집을 지을(고칠) 땐 상황이 좀 다르다. 그 집에 살(生) 사람(의 생각)을 알아야 그에 걸맞은 공간을 갖추고 만들 수 있다. 행복을 가득 채우기 전 건축주와 건축가 간 의사소통이 먼저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아주 특별했던’ 건축주에 얽힌 추억</strong></span></span>
</p>
<p>
	몇 년 전, 한 젊은 건축주가 찾아왔다. “집 짓는 기간에 여유가 있다”는 말에 “집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공간에 대한 소망이나 기대, 추억 등에 더해 상상하고 있는 이미지나 꿈, 의미까지. 이내 그는 주옥 같은 생각을 보내왔다.
</p>
<div class="txc-textbox" style="padding: 10px">
<h2>
		[집의 쓰임새]<br />
		“이제껏 살아오면서 신세 진 사람이 많습니다. 저보다 바람 더 맞고 지낸 그 벗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주제를 놓고 함께 논의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br />
	</h2>
<h2>
		 <br />
	</h2>
<h2>
		[집 모양]<br />
		“이웃에 위세 부리지 않고 주변을 비웃지 않는 형태라면 좋겠습니다”<br />
	</h2>
<h2>
		 <br />
	</h2>
<h2>
		[마당]<br />
		“무덤처럼 떼(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를 입혀 장식으로 쓰고 싶진 않습니다”<br />
	</h2>
<h2>
		 <br />
	</h2>
<h2>
		[침실]<br />
		“공기가 잘 통하는 하늘로 사람을 두둥실 띄워가는 듯 편안한 곳이길 꿈꿉니다”<br />
	</h2>
<h2>
		 <br />
	</h2>
<h2>
		[서재]<br />
		“자연광에 기대어 책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br />
	</h2>
</div>
<p>
	 
</p>
<p>
	그가 보낸 메일(제목은 ‘구름배 같은 집이고 싶습니다’였다)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속편이 기대된다”고 답장을 보냈더니 다시 메일이 왔다.
</p>
<p>
	“거실은 집안의 공적(公的) 자리/ 욕실은 현대의 시냇가/ 부엌은 사람을 살리는 자리/ 서재는 야트막한 언덕의 나무 그늘 아래/ 긴 처마, 처마 밑 안과 밖의 중간 자리/ 낮은 담장/ 번듯하지 않은 책장”에 대한 해석과 소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번 메일의 제목은 “땅의 바람길을 아는 집이면 좋겠습니다”였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어떤 집을 짓고 싶으세요?"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016" height="606"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x9788974835316.jpg" title="" width="458" /><br />
	<span style="font-size:12px">(사진 출처: 서해문집/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
</p>
<p>
	2년 여 메일을 주고받으며 그 건축주와 난 참 많은 생각을 나눴다.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 친환경 건축의 자세, 건축 재료의 장단점, 이웃과의 관계, 공사 예산, 각자의 인생 경험까지. 마침내 건축주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든 집이 완성됐다. 지금도 그는 그곳에서 잘 살고 있다. 그 사이, 그와 난 제법 친해졌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은 과정은 지난 2012년 한 권의 책(‘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일훈∙송승훈 공저, 서해문집>)으로 묶여 나왔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006"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2/%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B%82%B4%EC%A7%9141.jpg" title="" width="849" />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건축엔 건축주의 ‘삶의 방식’ 투영돼야</strong></span></span>
</p>
<p>
	‘잔서완석루’라고 이름 붙여진 그 집 주인 송승훈씨에게 내가 처음 물어본 말은 예산도, 평수도 아니었다. “어떻게 살길 원하느냐”였다. 집은, 건축은 삶의 방식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결과물이다. 그러니 집 짓기를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과 태도부터 정할 일이다. 일상에서 구현하고픈 철학과 대화를 나누시라. 당신은 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가? 건축은, 기술이든 방법이든 그 다음이다.
</p>
<p>
	<span style="font-size:12px">※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span>
</p>
<div class="txc-textbox" style="padding: 10px;border: 1px solid #cccccc;background-color: #eeeeee">
<p>
		필자의 또 다른 에세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FpJsn"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당신의 집에 ‘이름’을 붙여주세요</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i332B"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요즘 건축 사진’ 유감(有感)</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tV09G"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옷∙밥∙집에 ‘유행’이 필요할까?</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o6LSt"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땅을 접고 하늘에 뜨는’ 시대_축지법과 비행술 이야기</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zKl5e"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a><br />
	</h2>
</div>
<p>
	 
</p>
<p>
	[관련 태그]<br />
	# 건축주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잔서완석루</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투모로우 에세이]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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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0 Nov 2015 11:45:0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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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오피니언]]></category>
		<category><![CDATA[외부 기고]]></category>
		<category><![CDATA[건축]]></category>
		<category><![CDATA[건축가]]></category>
		<category><![CDATA[삼성전자]]></category>
		<category><![CDATA[이일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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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일훈 건축가   이런저런 자리에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 “이제까지의 작품 중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드세요?” 이런 얘길 들을 때면 참 난감해진다. 우선 ‘작품’이란 말이 품고 있는 의미가 꽤나 다중적이다. 작품은 단순히 ‘만든(作) 물건(品)’을 뜻하기도 하고 ‘잘 꾸며진 일이나 훌륭하게 만들어졌다고 여겨지는 물건 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널리 통용되는 의미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right">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_%EB%8F%84%EB%B9%84%EB%9D%BC.jpg" rel="" target="" title=""><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 에세이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5811" height="3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_%EB%8F%84%EB%B9%84%EB%9D%BC.jpg" title="" width="849" /></a>
</p>
<p style="text-align: right">
	<strong>이일훈 건축가</strong>
</p>
<hr />
<p>
	 
</p>
<p>
	이런저런 자리에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 “이제까지의 작품 중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드세요?” 이런 얘길 들을 때면 참 난감해진다.
</p>
<p>
	우선 ‘작품’이란 말이 품고 있는 의미가 꽤나 다중적이다. 작품은 단순히 ‘만든(作) 물건(品)’을 뜻하기도 하고 ‘잘 꾸며진 일이나 훌륭하게 만들어졌다고 여겨지는 물건 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널리 통용되는 의미는 ‘예술 창작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건축물을 가리켜 ‘작품’이라고 하면 ‘예술로서의 건축’이 되기도, ‘물건으로서의 건물’이 되기도 한다. 예술과 물건, 둘의 간극은 메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묻는 이가 건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당연히 대답도 쉬이 나오지 않는다.
</p>
<p>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3.jpg" rel="" target="" title=""><img loading="lazy" alt="사람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건축설계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5813"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3.jpg" title="" width="849" /></a>
</p>
<p>
	혹자는 건축 ‘작품’을 학술‧기술‧예술의 총화로 받아들인다. 혹자는 ‘(건축주의 요구나 삶의 방식, 경제성 등은 무시한 채) 건축가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치중해 완성한 결과물’로 건축을 짐작하기도 한다. 건축을 환경의 일부로 여겨 사용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사람은 건축의 심리적‧사회적‧미적 가치에 주목한다. 반면, “건물은 그저 재화(부동산)일 뿐”이라 여기는 사람은 건축을 오로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려 한다.
</p>
<p>
	이해의 방향과 폭이 전혀 다르니 같은 건축물을 놓고도 ‘예술’과 ‘상품’으로 시선이 갈린다. 그러니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괜스레 뒤숭숭해진다. 내가 건축에 ‘작품’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으려 조심하는 건 그 때문이다. 내게 건축은 그저 ‘작업’일 뿐이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좋은 건축을 완성하는 건 건축주의 ‘마음’</strong></span></span>
</p>
<p>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꼽는 기준이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중시하는 ‘작업’의 기준은 사람, 곧 건축주(의뢰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건축주의 마음(의식)이다. 이때 마음이란 대략 이런 것이다. △건축(공간)이 일상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마음 △건축(혹은 공간∙장소)은 주변(이웃)과 어울려야 한다고 믿는 마음 △건축 과정에서 의문이 생기고 불확실한 건 질문하고 대화하되, 결론은 전적으로 건축가에게 맡기는 마음 △“건축은 물질로 구축되지만 실은 정신의 구현”이란 마음….
</p>
<p>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4.jpg" rel="" target="" title=""><img loading="lazy" alt="안전모를 쓴 건축가가 설계도를 보고 설명하는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5814"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4.jpg" title="" width="849" /></a>
</p>
<p>
	그런 마음을 지닌 건축주는 주택‧별장‧사옥‧상업시설 등 어떤 걸 지어도 주변에 위세 부리지 않는 ‘건강한 건축(혹은 공간‧장소)을 경영한다. 반면, 겉으론 건축가를 존중하는 척하면서 의사 번복이 잦고 매사 의심하는 건축주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문화‧복지시설을 만들어도 불량한 건축(시설)을 경영한다.
</p>
<p>
	결국 좋은 건축(물)의 시작과 운용은 건축주의 마음에서 기인한다. 건축주든 건축가든 과시욕이 앞서 불순한 마음을 먹고 완성한 건축물은 제아무리 ‘작품’으로 불려도 신통찮은 물건에 불과하다. 같은 논리로 ‘건축을 통해 대지(장소)에 축복을 내리려는’ 자세로 임한다면 시시해 보이는 작업도 근사한 건축으로 완성될 수 있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작은 큰집’, 그리고 ‘우리안의 미래’ 연수원</strong></span></span>
</p>
<p>
	언젠가 한 건축주가 “시골에 집터를 구했으니 와보라”기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엔 오래전 누군가 경사지를 두부 자르듯 심하게 파내고 지은, 낡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이 상태로 고치든 헐고 새로 짓든 마음대로 하라”는 말에 한참을 살펴보니 집 짓느라 잘려 나간 땅이 아파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지형(땅)을 회복시켜주고, 치유해주고 싶었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1.jpg" rel="" target="" title=""><img loading="lazy" alt="잔디가 깔린 곳에 작은 집이 있고 주변 경사진 지형은 파인 사진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5816" height="32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1.jpg" title="" width="849" /></a><br />
	<span style="font-size:12px">▲'작은 큰집' 풍경 (사진 출처: 이일훈/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span>
</p>
<p>
	“새로 집을 지으며 오래전 훼손된 지형까지 되살리면 좋겠다”고 했더니 건축주는 “돈이 더 들더라도 산자락의 흐름(지형)을 되살릴 수 있다면 산에 덜 미안할 것 같다”며 오히려 기꺼워했다. ‘아, 난 겨우 집 들어갈 자리(부분)만 보는데 이 분은 산(전체)을 보는구나!’ “살림은 형편대로 갖추되, 집과 연결된 주변 지형과 환경을 더 보살피고 아껴야 한다”는 의젓하고 큰 생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번잡스러워질까 봐 당시엔 세상에 알리지 않았던 작업(절토한 부분을 이용, 집을 앉히고 복토하느라 자연스레 집이 땅 속에 묻혔다)이지만 내 마음속엔 언제나 깊게 자리하고 있다. 집터를 보며 건축주와 대화를 나누며 집 이름(‘작은 큰집’)도 일찌감치 지었다.
</p>
<p>
	‘친환경 건축’이나 ‘생태 건축’엔 많은 돈이 든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친환경적∙생태적 건축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친환경과 생태의 개념은 말할 수 있지만 이를 실천하려면 ‘불편하게 살기’란 철학에 근본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일례로 에어컨과 보일러는 현대인의 대표적 냉∙난방 용품이다. 하지만 석유 에너지가 고갈되면 이 ‘문명의 이기(利器)’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a href="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2.jpg" rel="" target="" title=""><img loading="lazy" alt="'우리안의 미래' 살림채 전경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5815" height="255"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11/%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A%B1%B4%EC%B6%95%EC%9E%91%EC%97%852.jpg" title="" width="849" /></a><br />
	<span style="font-size:12px">▲'우리안의 미래' 연수원 전경 (사진 출처: 서삼종/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
</p>
<p>
	한 번은 이 같은 전 지구적 우려를 개인의 문제로 인식, ‘분자로’란 이름의 독특한 소각 장치를 연구 중인 건축주를 만났다. 분자로에선 버려지는 생활 쓰레기와 못 쓰게 된 목재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다. 아직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발명이다. 경기 가평군 소재 ‘우리안의 미래’ 연수원이 바로 그곳이다.
</p>
<p>
	이 연수원엔 난방 방식 외에도 여러 가지 눈에 띄는 시도가 숨어 있다. △‘세계 최초 온실이 조선시대에 있었다’는 옛 문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온실 바닥에 난방 기능을 갖춘 것 △편평한 목조 지붕에 흙을 얹어 잔디를 심은 것 △황토와 옻 등 전통 재료를 곳곳에 사용한 것 △못 쓰는 콘크리트를 활용해 인근 도로를 포장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다소 불편하지만 남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철학을 건축에 녹여내는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더없는 선생이다. “자발적 불편이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것”이란 그의 철학은 지금도 내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힘을 준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인간이 만든 건축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strong></span></span>
</p>
<p>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전 영국 총리는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다. 처칠에 따르면 잘못된 건축은 사회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그럼 어떤 건축물을 만들어야 할까? 최소한 ‘작품을 위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권유할 만해야 하고, 무엇보다 건강한 의식을 기반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건축이라면 결과가 ‘예술품’이든 ‘물건’이든 무슨 대수랴. ‘작품’으로 불리지 않아도 진정한 작품일 것이다. 사람을 위한, 아니 삶을 위하는 건축의 이름으로!
</p>
<p>
	<span style="font-size:12px">※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span>
</p>
<div class="txc-textbox" style="padding: 10px;border: 1px solid #cccccc;background-color: #eeeeee">
<p>
		필자의 또 다른 에세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FpJsn"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당신의 집에 ‘이름’을 붙여주세요</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i332B"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요즘 건축 사진’ 유감(有感)</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tV09G"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옷∙밥∙집에 ‘유행’이 필요할까?</a><br />
	</h2>
<h2>
		☞ <a href="https://news.samsung.com/kr/o6LSt"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땅을 접고 하늘에 뜨는’ 시대_축지법과 비행술 이야기</a><br />
	</h2>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투모로우 에세이] 옷∙밥∙집에 ‘유행’이 필요할까?</title>
				<link>https://news.samsung.com/kr/%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8%b7%e2%88%99%eb%b0%a5%e2%88%99%ec%a7%91%ec%97%90-%ec%9c%a0%ed%96%89%ec%9d%b4-%ed%95%84%ec%9a%94%ed%95%a0</link>
				<pubDate>Fri, 25 Sep 2015 11:00:27 +0000</pubDate>
								<media:content url="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9/%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C%A0%ED%96%89_%EC%8D%B8%EB%84%A4%EC%9D%BC-680x383.jpg" medium="image" />
				<dc:creator><![CDATA[jinsoo2.park]]></dc:creator>
						<category><![CDATA[오피니언]]></category>
		<category><![CDATA[외부 기고]]></category>
		<category><![CDATA[건축가]]></category>
		<category><![CDATA[삼성전자]]></category>
		<category><![CDATA[삼성투모로우]]></category>
		<category><![CDATA[에세이]]></category>
		<category><![CDATA[이일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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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일훈 건축가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MBC)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명의 패널이 등장해 웃고 떠드는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겐 전혀 다른 ‘세 바퀴’가 떠오른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의식주(衣食住)다. 초등학교 때 배우긴 했는데 그 의미를 종종 잊는다. 한자어로 쓰면 왠지 거리감이 있는데 ‘옷∙밥∙집’이라 하면 몸과 맘에 찰싹 붙는 느낌이다. 세상이든 개인이든 삶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 에세이. 옷,밥,집에 유행이 필요할까?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48846" height="3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9/%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C%A0%ED%96%89_%EB%8F%84%EB%B9%84%EB%9D%BC.jpg" title="" width="849" />
</p>
<p style="text-align: right">
	<strong>이일훈 건축가</strong>
</p>
<hr />
<p>
	 
</p>
<p>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MBC)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명의 패널이 등장해 웃고 떠드는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겐 전혀 다른 ‘세 바퀴’가 떠오른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의식주(衣食住)다. 초등학교 때 배우긴 했는데 그 의미를 종종 잊는다. 한자어로 쓰면 왠지 거리감이 있는데 ‘옷∙밥∙집’이라 하면 몸과 맘에 찰싹 붙는 느낌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밥, 집, 옷"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48857"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9/%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C%A0%ED%96%891.jpg" title="" width="849" />
</p>
<p>
	세상이든 개인이든 삶을 받쳐주는 바퀴가 튼튼해야 잘 굴러간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은 너나 없이 소위 ‘웰빙(well-being)’에 쏠려 있다. 문제는 이 관심이 온통 ‘먹는 것’에만 집중된다는 데 있다.
</p>
<p>
	진정 ‘잘(well) 존재(being)’하려면 먹는 음식뿐 아니라 입는 옷과 사는(머무는) 집이 다 웰빙이어야 한다. 옷은 좋은 걸 사 입으면서 밥은 대충 때우고, 밥은 제대로 챙겨 먹으면서 집 꼴은 함부로 해놓고 다니며,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의상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옷∙밥∙집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그러면서 닮아가는 톱니바퀴다. 하나가 망가지면 전체가 멈추는 수레와 같다. 이들 세 요소의 균형이야말로 웰빙의 기본 전제다.
</p>
<p>
	 
</p>
<p>
	<span><span style="font-size: 18px"><strong>세상을 굴리는 ‘세바퀴’, 옷∙밥∙집</strong></span></span>
</p>
<p>
	옷∙밥∙집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짓다’란 움직씨(동사)를 같이 쓴다. 옷도, 밥도, 그리고 집도 다 ‘짓는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중요한 건 다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노래∙약∙이름∙글∙농사… 그중 가장 귀하고 중하고 또 흔한 게 옷과 밥, 그리고 집이다. 한마디로 일상과 붙어 있다(떨어지면 큰일 난다).
</p>
<p>
	속담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도 옷∙밥∙집을 아우르는 특성 중 하나다. 얼핏 떠오르는 속담만 해도 가짓수가 꽤 된다<strong><아래 박스 참조></strong>. 세 단어를 포함한 속담이 많다는 건 곧 옷과 밥, 집이 단순히 ‘입고 먹고 자는’ 대상을 넘어 세상과 개인 간 관계나 이해, 관심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p>
<div class="txc-textbox" style="padding: 10px">
<p>
		<strong>옷∙밥∙집이 등장하는 속담, 어떤 게 있나</strong>
	</p>
<p>
		①옷<br />
		-옷은 나이로 입는다<br />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br />
		-옷이 날개다<br />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다<br />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br />
		-거지도 입어야 빌어먹는다<br />
		-마음씨가 고우면 옷 앞섶이 아문다
	</p>
<p>
		②밥<br />
		-첫술에 배부르랴<br />
		-밥 먹듯 하다<br />
		-밥 먹을 땐 개도 안 때린다<br />
		-밥은 굶어도 속이 편해야 산다<br />
		-밥이 약보다 낫다<br />
		-밥 팔아 죽 사 먹는다<br />
		-더운 밥 먹고 식은 소리 한다<br />
		-그 나물에 그 밥<br />
		-죽 쑤어 개 준다<br />
		-죽이 되든 밥이 되든<br />
		-죽도 밥도 안 되다<br />
		-찬 밥 더운 밥 가리다
	</p>
<p>
		③집<br />
		-집도 절도 없다<br />
		-집 떠나면 고생이다<br />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br />
		-집을 사면 이웃을 본다<br />
		-길가에 집 짓기<br />
		-웃는 집에 복이 있다<br />
		-불 난 집에 부채질한다<br />
		-가난한 집에 자식이 많다<br />
		-집 좁은 건 살아도 마음 좁은 건 못 산다<br />
		-집에선 아이들 때문에 웃는다
	</p>
</div>
<p>
	 
</p>
<p>
	<span><span style="font-size: 18px"><strong>옷∙밥∙집, 알고 보면 은근히 ‘닮은꼴’</strong></span></span>
</p>
<p>
	옷∙밥∙집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재료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점이다. 옷은 옷감, 밥은 식재료, 집은 건축자재가 그 바탕이 된다. 재료가 동원되는 가공은 전부 솜씨(기술)가 필요한데 이때 솜씨(기술)는 재료에 대한 이해에서 온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옷감과 식재료, 건축자재 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48849" height="186"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9/%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C%A0%ED%96%892.jpg" title="" width="849" />
</p>
<p>
	옷감과 식재료, 건축자재의 특성을 이해하는 게 바느질과 조리, 건축의 시작과 끝이다. 재료가 궁하면 절약하는 요령이 생기고 재료가 넘치면 낭비가 는다. 적당한 재료에 고만고만한 기술이 더해지면 평범한(‘열악한’은 결코 아니다) 옷∙밥∙집이 되고 최선을 다하면 명품(명작)이 된다. 물론 재료의 본성을 무시해 실패하는 경우도, 잇속을 챙기는 수단으로 재료의 성질을 왜곡해 불량품을 양산하는 경우도 흔하다.
</p>
<p>
	우리네 삶의 속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 역시 옷∙밥∙집의 공통점이다. 단적인 예가 패스트푸드(fast food)다. 패스트푸드는 언뜻 ‘바쁜 소비자를 위해 미리 만들어둔 음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많이, 더 빨리 팔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미리 만들어놓고 팔아야 생산자나 공급자, 판매자 모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햄버거와 아파트입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48850" height="255"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9/%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C%A0%ED%96%893.jpg" title="" width="849" />
</p>
<p>
	최근 “패스트푸드는 몸에 나쁘다”며 ‘슬로푸드(slow food)’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다. ‘빨리, 쉽게 먹는 것보다 좀 까다롭더라도 천천히 조리해 먹는 게 좋다’는 이해일 것이다. 이때 ‘패스트냐, 슬로냐’의 선택은 곧 각자가 택한 삶의 속도다. 옷도 기성복이면 ‘패스트웨어(드레스)’이고 집 역시 미리 지어놓고 파는 상품(아파트나 빌라, 오피스텔)이면 ‘패스트하우징(셸터)’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옷∙밥∙집 모두 선택의 여지 측면에서 살피면 ‘패스트’는 좁고 ‘슬로’는 넓다. 전자는 저급이다. 편리하지만 건강에 안 좋다. 후자는 고급이다. 다소 불편하긴 해도 건강에 좋다. 그런데 왜 다들 패스트에 열광하는 걸까.)
</p>
<p>
	 
</p>
<p>
	<span><span style="font-size: 18px"><strong>‘쿡방 열풍’의 뒷맛이 씁쓸한 이유</strong></span></span>
</p>
<p>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 역시 옷∙밥∙집의 공통점이다. 변하지 않는 게 전통이라지만 전통 역시(좀 느리긴 해도) 변한다. 옷∙밥∙집의 옛 형태를 한복과 한식, 한옥이라 했을 때 셋 모두 요즘 지어지는 것들은 ‘박물관 속 옛 것’과 사뭇 다르다.
</p>
<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서울 도심에 한옥 너머로 커다란 빌딩들이 늘어져 있다."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48851"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9/%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9C%A0%ED%96%894.jpg" title="" width="849" />
</p>
<p>
	흔히 건축(집)을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의상(옷)이나 음식(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유행이 존재한다. 이때 유행은 ‘(시대란) 거울에 비친 허상’이다. 옷과 밥, 집에도 유행이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있다. 런웨이를 벗어나면 누구도 못 입을 의상이 ‘패션쇼’란 이름으로 요란하게 중계되고, 살림의 일상성이 소거된 ‘무대장치 같은’ 건축이 각광 받으며, 누구나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요리’란 이름을 붙여 수선 떠는 게 유행의 실상이다.
</p>
<p>
	유행은 늘 그렇듯 일시적이다. 빨리 퍼질수록 슬며시 사라지고 널리 퍼질수록 재미가 없다. 그런데도 옷과 밥, 집을 소재로 한 각종 방송은 끝도 없이 유행하고 확산된다. 이는 거꾸로 옷∙밥∙집에서 사람이, 생활이 소외됐다는 방증 아닐까. 당장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소비(선택)하는 옷∙밥∙집에서 얼마나 주인답게 굴고 있는지.
</p>
<p>
	옷과 밥, 집의 ‘주체’답게 내면을 윤택하게 가꾸려면 이 한마디를 잊지 말자. 불치불검(不侈不儉). 사치하지 않되 검소하지도 않게, 수수하게!
</p>
<p>
	<span style="font-size: 12px">※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span>
</p>
<div class="txc-textbox" style="padding: 10px">
<p>
		필자의 또 다른 에세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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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href="https://news.samsung.com/kr/FpJsn"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당신의 집에 ‘이름’을 붙여주세요</a><br />
	</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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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href="https://news.samsung.com/kr/i332B" target="_blank" title="클릭시 새창으로 열립니다.">[투모로우 에세이] ‘요즘 건축 사진’ 유감(有感)</a><br />
	</h2>
</div>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투모로우 에세이] 당신의 집에 ‘이름’을 붙여주세요</title>
				<link>https://news.samsung.com/kr/%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b%8b%b9%ec%8b%a0%ec%9d%98-%ec%a7%91%ec%97%90-%ec%9d%b4%eb%a6%84%ec%9d%84-%eb%b6%99%ec%97%ac%ec%a3%bc%ec%84%b8</link>
				<pubDate>Thu, 16 Jul 2015 13:04:47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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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jinsoo2.park]]></dc:creator>
						<category><![CDATA[오피니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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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일훈 건축가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다. 누가 날 이를 때 내 이름이 불리고, 내가 누군가 찾을 때도 그이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 없음’은 흐릿하고 밋밋함을, ‘이름 있음’은 확실한 존재감을 각각 뜻한다. 오죽하면 유∙무명을 가르는 관용구가 ‘이름 있다(없다)’일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의미 그 자체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도 꽃보다 이름이 먼저 나온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투모로우 에세이 당신의 집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7991" height="38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A7%91%EC%9D%B4%EB%A6%84_%EB%8F%84%EB%B9%84%EB%9D%BC.jpg" title="" width="849" />
</p>
<p style="text-align: right">
	<strong>이일훈 건축가</strong>
</p>
<hr />
<p>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다. 누가 날 이를 때 내 이름이 불리고, 내가 누군가 찾을 때도 그이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 없음’은 흐릿하고 밋밋함을, ‘이름 있음’은 확실한 존재감을 각각 뜻한다. 오죽하면 유∙무명을 가르는 관용구가 ‘이름 있다(없다)’일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의미 그 자체다.
</p>
<p>
	김춘수의 시 ‘꽃’에서도 꽃보다 이름이 먼저 나온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꽃이 된다. 이때 꽃이란 ‘의식의 깨어남’이고 ‘존재의 자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누구나 “누군가의 꽃”이 되고 싶어한다. “잊혀지지(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길 꿈꾼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매월당∙사임당… 집 이름이 곧 아호였던 선인들</strong></span></span>
</p>
<p>
	어디 사람만이랴. 사물도 이름을 지닌다. 당연히 집에도, 건축과 공간에도 이름이 필요하다. 주소를 무심히 ‘123번지 4호’ ‘1105호’로 적고 부르면 단순 기호나 분류 번호에 불과하지만 ‘아무개의 집’이라 칭하면 고유명사가 된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여러 의미, 이를테면 이루고 싶은 뜻이나 만들고 싶은 공간 등을 더해 집 이름을 지으면 그건 의지의 표현이자 상징이 된다. 그게 바로 당호(堂號) 또는 옥호(屋號)다.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다산초당 "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7994"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A7%91%EC%9D%B4%EB%A6%842.jpg" title="" width="849" /><span style="font-size:12px">▲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다산초당(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
</p>
<p>
	옛사람 중엔 자신의 의식구조가 담긴 당호를 아호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여유당, 매월당, 완당, 사임당, 만취당은 각각 정약용, 김시습, 김정희, 신씨, 권율 장군의 당호이자 아호다. 집(공간)을 인격화하고 거처에 철학을 담아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였던 셈이다.
</p>
<p>
	당호엔 이런 한자들이 주로 쓰인다. ‘집 당(堂)’ ‘집 헌(軒)’ ‘집 재(齋)’ ‘다락 루(樓)’ ‘움집 와(窩)’ ‘방 방(房)’ ‘정자 정(亭)’ ‘집 실(室)’ ‘집 각(閣)’ ‘농막집 려(廬)’ ‘암자 암(庵)’…. 그 중 몇몇 사례는 꽤 흥미롭다.
</p>
<p>
	함허루(涵虛樓)는 경북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대청마루에 걸린 편액에 쓰여 있던 누각 이름이다. ‘함허’는 ‘허공에 흠뻑 잠기다’ 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기다’란 뜻이다. 인위적 공간에서나마 무위자연을 즐기려는 꿈을 담은, 참으로 시적인 표현이다.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이언적의 사랑채 독락당"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7993"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A7%91%EC%9D%B4%EB%A6%841.jpg" title="" width="849" /><span style="font-size:12px"><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center">▲</span>이언적의 사랑채 '독락당'엔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승화하려는 주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center">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span>
</p>
<p>
	독락당(獨樂堂)은 조선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이 파직된 후 낙향해 지은 집의 사랑채 명칭이다. ‘홀로 즐긴다’는 뜻이 맘에 들어서였을까, 옛 집 이름 중엔 유독 ‘독락’이란 표현이 들어간 게 많았다. 독락정, 독락재, 독락와, 독락암…. 사실 혼자 있는 건 즐거운 일이라기보다 외로운 일이다. 그렇게 볼 때 ‘독락’은 혼자서 즐거움을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을 여럿이 나눠 더 여유롭게 하려는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경주(안강읍 옥산리)에 있다.
</p>
<p>
	희우정(喜雨亭)의 ‘희우’는 가뭄 끝에 오는 비를 이른다. 숙종 16년(1690), 가뭄이 들자 왕이 기우제를 지냈고 다행히 희우를 맞았다. ‘덕 없는 임금’이란 비난을 피하게 됐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단비를 맞는 반가움이 고스란히 전각 이름에 녹아들었다. 창덕궁 후원에 있다.
</p>
<p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center">
	<img loading="lazy" alt="윤선도 고택 녹우당"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7995" height="510" src="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5/07/%ED%88%AC%EB%AA%A8%EB%A1%9C%EC%9A%B0%EC%97%90%EC%84%B8%EC%9D%B4%EC%A7%91%EC%9D%B4%EB%A6%843.jpg" title="" width="849" /><span style="font-size:12px"><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center">▲</span>윤선도 고택 '녹우당'엔 '때 맞춰 단비가 내려주길 기원하는' 농부의 바람이 녹아있다(<span style="line-height: 20.7999992370605px;text-align: center">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span></span>
</p>
<p>
	녹우당(綠雨堂)은 전남 해남에 위치한 조선 중기 문신 고산 윤선도(1587~1671)의 고택이다. 선인들은 같은 비라도 내리는 때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렀다. 매실이 익을 무렵 내리는 비엔 ‘매우(梅雨)’, 보리가 익을 즈음 내리는 비엔 ‘맥우(麥雨)’, 무더운 여름날 내리는 비엔 ‘서우(暑雨)’란 이름이 각각 붙여졌다. ‘녹우’는 늦봄에서 여름 사이, 초목이 한창 푸를 때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대지에 뿌리 내린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물’쯤 되겠다. 녹우당엔 비가 때 맞춰 내려주길 기원하는 농부 주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p>
<p>
	충남 논산 개태사에서 만난 우주당(宇宙堂)의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의 그 우주다. ‘우(宇)’는 광활한 공간을, ‘주(宙)’는 무한한 시간을 각각 이른다. 집의 의미를 이처럼 넓고 깊게 해석한 공간이 또 있을까. 이 집의 주인은 집(건축)을 ‘공간과 시간의 총화’로 보고 있다. 여기에 ‘당(堂)’은 땅을 이르기도 하니 건축의 본질적 구성 인자(공간‧시간‧장소)를 다 갖춘 집이라고 하겠다. 훈(뜻)으로만 읽으면 ‘집집집’이다. 
</p>
<p>
	 
</p>
<p>
	<span style="color:#5d0c7b"><span style="font-size:18px"><strong>건물 감상도, ‘내 집’에 이름 짓기도 다 건축이다</strong></span></span>
</p>
<p>
	<br />
	가끔 대중 강연을 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 있다.
</p>
<p>
	“돈 들여 직접 집을 짓거나 고치는 것만이 건축은 아닙니다. 문화재부터 현대 건물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탐방하고 공공 건축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건축입니다. 건축물 감상은 차비 정도만 들이면 얼마든지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도 따릅니다. 그런데 차비조차 들일 필요 없이 즐길 수 있는 건축 행위도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집이나 방에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일입니다.”
</p>
<p>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전세든 월세든 상관없다. 공간의 주체는 ‘사용하는 사람’이니까. 당신이 쓰는 공간에 당신이 살고 싶은 방식을 생각해 이름을 붙여보시라. 꼭 한자일 필요는 없다. 한글이든 영어든 본인의 생각만 투영하면 된다. 그렇게 정한 이름을 휴대전화 레터링에도, 발신자 알림 표시에도, 이메일 아이디로도 사용해보자. 정성 들여 쓴 집 이름을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쓰는 것도 좋겠다. 그 역시 건축을 손쉽고 근사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p>
<p>
	당신이 머무는 장소가 단지 ‘콘크리트 상자’가 아니라 ‘내게 특별한 의미로 축성된 공간’이라면 그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집에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하다니 건축, 참 쉽고 가깝다.
</p>
<p>
	<span style="font-size:12px">※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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