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주관’과 ‘모호’를 잡는 기업이 성공한다

2015/09/22 by 송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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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주관'과 '모호'를 잡는 기업이 성공한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국내 최고 전문가의 깊이있는 통찰을 만나보세요. 매주 화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1880년 이후 가장 더운 해가 2015년이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우린 역사의 새 기록을 갈아 치우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지구온난화 현상 역시 우리(의 조상)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죠. 이래저래 ‘인류’라는 종(種)은 잠시 빌려 살고 있을 뿐인 지구에 큰 폐를 끼치고 있네요.

 

‘쾌적한 냉방기기’,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무더운 날씨는 냉방기기 판매 기업 입장에서 더없는 호재(好材)입니다. 실제로 올해 냉방기기 판매가 꽤 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냉방기기 광고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단연 ‘시원하다’, 그리고 ‘쾌적하다’인데요. 시원한 건 그렇다 치고 쾌적함의 정의는 뭘까요? 냉방이야 주변 온도를 낮춰주는 걸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쾌적함을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처럼 ‘느낌은 오지만 막상 뭐라 설명하긴 어려운’ 모호함이 실은 기업의 최대 승부처입니다. 그 모호함을 다시 정의하고 재구성할 수만 있다면 해당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그 결과를 소비자가 공감해야 한다, 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요.

데이터에 따르면 특정 공간 속 ‘편의’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인자는 분위기와 공기, 인테리어 등입니다. 그중 ‘분위기’를 조성하는 요소는 인테리어∙조명∙의자∙와이파이(Wi-Fi) 순(順)으로 구분되죠<아래 도표 참조>.

'공간서 느끼는 편의는 분위기·공간·인테리어가 좌우한다?!' 공간 편의 관련 항목 톱(top) 10 대상, 각 항목 내 연관 항목의 비중을 기준으로 화살표 굵기가 표시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화살표를 가장 많이 받은 순서대로 번호가 기재돼 있으며 설문조사 결과 공간 편의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1위 분위기 2위 공기 3위 인테리어가 꼽혔습니다. 그 외 요인으론 온도, 조명, 의자, 와이파이, 조경, 소음 등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고를 때 어떻게 하는지 한 번 떠올려보세요. 일단 인테리어가 근사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가시죠? 하지만 의자가 불편하거나 음악이 시끄러우면 돌아 나올 겁니다. 이때 인테리어는 조명과 의자, 조경 같은 하부 인자에 의해 좌우되고요.

한 여자가 카페 테이블에 앉아 태블릿 PC를 만지고 있다.

결국 쾌적함이란 온도와 습도, 향(香)과 같은 △공기의 질은 물론이고 △공간 크기 △인테리어 △정리정돈 상태, 심지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추상적 단어는 대부분 일정한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행복’도 학문적으로 정의하면 ‘주관적 웰빙(subjective well-being)’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잘 산다는 것(well-being) 자체가 이미 모호한데 거기에 다시 ‘주관적인(subjective)’이란 표현을 덧붙인 거죠. 이는 ‘어떤 절대적 기준도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긴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구글이 인수한 건 ‘온도 조절기’가 아니다

구글(Google)이 3조 원 넘게 들여 인수한 네스트랩스(Nest Labs)의 주력 상품 ‘서모스탯(Thermostat)’의 기능은 매우 단순합니다. 실내 온도 조절 다이얼 1개로 구성된 이 시스템은 집 안 거주자가 자신이 원하는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며칠 후부터 그에 맞춰 실내 온도를 최적화시켜줍니다. 그게 다입니다. 하지만 서모스탯을 사용하면 난방(혹은 냉방)비를 이전 대비 20% 이상 줄일 수 있고 거주자에게 딱 맞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자연히 사용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죠.

큰 창과 벽난로가 있는 거실 전경입니다.

서모스탯은 △개개인이 모두 달리 느끼는 최적의 환경 조성 과정을 관찰하고 △이를 학습, 모사한 후 △최대한 그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줍니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만족감의 구성 요소를 알아내기 위해 서모스탯이 인간의 ‘주관’을 변수로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각각의 노드(node)가 모두 (인간이란) 슈퍼컴퓨터(super computer)로 구성된’ 그리드(grid) 시스템이 탄생한 겁니다.

서모스탯이 놀라운 건 단순히 온도 조절 기능을 갖춰서가 아닙니다. 특정 환경에 노출되고 그에 적응하는 인간의 감정과 인지, 인식뿐 아니라 그 환경에서 인간이 취하는 행동과 그로 인한 만족감까지 측정해 감각의 ‘맥락(context)’을 읽어낼 수 있는 기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구글은 네스트랩스의 인수를 통해 더없이 훌륭한 CPU(‘인간’이란 이름의) 계산 결과가 자동으로 제공되는 플랫폼을 확보하게 된 셈이죠.

 

현대인이 ‘취향 저격’에 열광하는 이유

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명확히 떨어지는 결과’에 매료됩니다. 이학에서 이상적 실험 조건이 ‘1기압, 섭씨 15도’이듯 가장 완벽하고 다소 인공적이더라도 그 안에서 뭔가 새로운 걸 개발하고자 애씁니다.

하지만 세상 어디서도 그렇게 이상적인 환경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설사 조성된다 해도 유지하기 어렵죠. 온도∙습도∙풍향∙기압 등 자연 조건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기분과 주변 상황, 사회적 흐름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수없이 많은’ 인자들이 때론 명시적으로, 때론 묵시적으로 연관돼 영향을 끼칩니다. 어쩌면 선사 시대 때부터 꾸준히 누적돼온 자연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우리 모습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문에 우린 그토록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이해’를 원하는 건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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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은 더 이상 기계나 시스템이 아닙니다. 오늘날 ‘명백한 일’은 바꿔 말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여러분이 존재 자체로도 의미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저마다의 깜냥으로 치열하게’ 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막연하게 느끼지만 막상 설명하긴 어려워하는 개개인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할 수 있다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여느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환경 변화에 맞춰 그에 적응하며 살아온 종(種)입니다. 따라서 ‘습도 50%, 온도 26℃’처럼 절대적 조건에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당장 바깥 날씨가 습한지 건조한지, 무더운지 쌀쌀한지에 따라 쾌적함의 정도는 바뀔 테니까요. 여기에 각자의 체질과 유전 인자, 성장 환경까지 더해진다면 사람의 취향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요. ‘부부이면서도 같은 이불을 덮지 못하는 사이’가 달리 많은 게 아닙니다.

 

‘스마트’ 이면에 숨은 의미를 찾아라

서로 다른 개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반영하고 배려한다면서 자신이 바라는 걸 상대에게 무조건 요구해선 곤란합니다. 대인관계를 기계적으로, 수치에 의존해 생각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죠. ‘나’가 ‘그’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는 ‘나’에게 정중하게 부탁하는 유기적 결합이 이뤄질 때, 그리고 ‘나’가 모여 ‘우리’가 되고 그 교류의 결과가 ‘우리’의 생각으로 완성돼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비로소 모두가 가장 원하는 ‘진짜 쾌적함’이 만들어질 겁니다.

하나의 집과 수분, 방법, 햇빛, 와이파이, 전기, 온도 등이 연결 되어있는 그림입니다.

그 쾌적함이 과연 냉방기기만으로 충족될 수 있을까요? 집 안에서 요리를 하면 열기가 실내에 퍼집니다. 머리 감은 후 쓰는 헤어드라이어 역시 공간에 일정한 습기와 온도를 전파합니다. 선풍기 대류가 만들어내는 공기 흐름은 또 어떻고요. 새로 산 컴퓨터나 TV 백 패널이 방출하는 열도 빼놓을 수 없죠. 이 모든 현상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현상이 빚어낼 결과를 한발 앞서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요즘은 너도 나도 ‘스마트’를 외칩니다. 단순히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 집과 빌딩, 더 나아가 사회 자체가 전혀 새로운 기능으로 무장할 때 우린 그 사회에 ‘스마트’란 수식어를 붙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궁극적 지향점이 ‘스마트’일까요? 어쩌면 ‘스마트 라이프’에서의 ‘스마트’란 ‘쾌적한’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쾌적함의 정의엔 정답이 없습니다. 쾌적함 자체가 여러 인자들의 합(合)인 동시에 개인적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답’이 없을 뿐 ‘제안’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쯤 해서 전 묻고 싶습니다. “삼성전자가 보여주고 싶은 쾌적함은 무엇입니까?”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필자의 또 다른 칼럼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문가 칼럼] 패블릿? 그게 왜 필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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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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