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달리는 소설가’가 됐을까

2015/11/27 by 홍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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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달리는 소설가'가 됐을까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홍정은 맨즈헬스 코리아 에디터


“몸이 머리를 따라주지 않아.” 참 많이 내뱉고 듣는 말입니다.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으면 무척 속상합니다. 거꾸로인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도 하기 전 몸이 먼저 나갔다, 는 표현이 그럴 때 쓰이죠. 이를테면 몸싸움 같은 건데 대개 그 결과는 ‘후회’로 남습니다. 몸과 정신, 조화롭게 어울려주면 참 좋을 텐데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녀석들은 왜 이렇게 따로 노는 걸까요.

 

냉정과 열정 사이, 당신의 지표는?

인간을 분류하는 기준엔 ‘남(男)과 여(女)’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 그중에서도 ‘냉정과 열정’이란 구분을 좋아합니다.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2000) 속 남녀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인간 특성의 은유적 분류죠.

Who are you..?

이 구분 체계는 여러 문학 작품에서 흔히 사용됩니다.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을 통해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은희경은 ‘태연한 인생’(2012)에서 ‘서사와 매혹’으로 인간 군상을 각각 나눴죠.

각 범주를 대표하는 주인공 캐릭터들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냉정-무거움-서사’에 속하는 이들은 논리적 사고가 앞서는 편이었고요. 그에 반해 ‘열정-가벼움-매혹’에 해당하는 이들에겐 감각, 즉 몸의 반응이 우선이었습니다. 결국 ‘사유적 인간’ 대(對) ‘감각적 인간’의 구도인 거죠. 억지스러운 연결 아니냐고요? 실제 여러분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세요. 꽤 들어맞을 테니까요.

 

‘몸의 언어’와 ‘정신의 언어’는 다르다

매월 여자 스포츠 선수를 인터뷰한 후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텍스트(text)’를 거쳐야 하는 이 작업을 진행할 때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특성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합니다. 대개 몸으로 운동을 익힌 선수들이 ‘내 몸이 아는 것’을 말로 매끄럽게 표현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한 여성이 달리고 있습니다.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운동을 ‘잘해내게 되면’ 비로소 주목 받는 엘리트 선수들이 그걸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낼 기회를 갖긴 쉽지 않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죠. 하지만 그들이 느끼고 체득한 걸 어쩔 수 없이 글로 전달해야 하는 제 입장도 참 난감합니다. 어떨 땐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 실제로 그들과 제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 종류가 다릅니다. 하나는 몸(감각)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사고)의 언어니까요. 바꿔 말하면 그들은 감각적 인간에, 전 사유적 인간에 보다 가깝습니다. 그런 둘이서 대화에 나서니 ‘화성과 금성의 거리’가 느껴질 수밖에요.

 

“평영은 예민한 영법이라 생각이 필요해요”

흔치 않지만 이 간극을 좁힌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여자 수영 국가대표 백수연 선수를 만났을 때가 그랬습니다. 평영이 주종목인 그는 인터뷰 도중 물을 잡는 느낌이나 경기 중 몸의 움직임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감각의 언어와 사고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바이링구얼(bilingual)’이라니!

한 여성이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겐 인터뷰에 인이 박여 준비된 말을 술술 늘어놓는 여느 스포츠 선수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 조화의 실마리는 “평영이 가장 예민한 영법(泳法)”이란 그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백 선수에 따르면 평영은 다른 종목에 비해 느리지만 그만큼 몸의 움직임이나 물과의 호흡에 더 많이 신경 써야 한답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수영”을 해야 한다나요. 감각과 사유를 함께 발달시킨 그와의 인터뷰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적어도 그는 제가 알아 듣는 언어로 얘기해줬으니까요.

 

가끔은 ‘저쪽’의 언어를 익혀야 하는 이유

백수연 선수 같은 인물과 대화할 땐 배우는 게 많습니다. 그들은 한쪽 언어만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들보다 훨씬 풍부한 삶을 누립니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성공을 누릴 수 있고,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인생이란 여정을 남보다 꽉 채워갑니다.

실제로 예체능 계열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감각으로, 몸으로 느낀 걸 사유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 때 더 많은 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유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고 머리로 생각하며 이해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몸의 언어를 체험하면 사유의 폭이 그만큼 넓어집니다.

body spirit soul balance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는 ‘달리는 소설가’로 유명합니다. 시인 김경주는 ‘아웃도어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져 있죠. 그들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머릿속으론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냅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 두 부류 중 어느 한쪽에 더 가까운 특성을 띠고 있습니다. 더러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부류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쪽의 언어를 배우고 익혀 더 다채롭고 건강한 삶을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몸과 마음의 언어가 조화를 이룬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할 수 있습니다. 늘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를 굴려야 하는 우리 대부분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by 홍정은

맨즈헬스 코리아 에디터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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