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시계 마니아, ‘스마트워치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하다

2015/10/15 by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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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시계 마니아, '스마트워치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하다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토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양승철 GQ코리아 에디터



난 매일 손목시계를 찬다. 패션에 공 들이는 타입은 아니지만 손목시계 고르는 일엔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아버지는 “시계를 찬 남자는 신뢰를 얻기 쉽다”고 말씀하셨다(더불어 “손수건을 챙기라”고 늘 말씀하셨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유전적으로 땀이 많아서, 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내가 처음 찬 시계는 ‘돌핀(Dolphin)’ 전자시계였다. 돌핀은 카시오사(Casio社) ‘지쇼크(G-Shock)’ 모델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 정확히 말하면 지쇼크 모델이 많이 비싸던 시절 큰 인기를 얻었다. 더욱이 1990년대엔 전자시계가 시계 산업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손목시계 신기원’ 연 루이 까르띠에

손목시계입니다.

전자시계가 인기를 얻기 전인 1970년대와 1980년대엔 쿼츠 시계(the Quartz Watch)가 유행했다. 우리가 흔히 ‘고가 시계’로 여기는 오토매틱(automatic) 시계는 모든 손목시계의 원형이었다. ‘꺼내서 보는’ 시계가 아니라 ‘손목 위에 올려놓는’ 시계를 처음 고안한 이는 프랑스 시계공 겸 기업가 루이 까르띠에(Louis Cartier, 1875~1942)였다. 1904년, 그가 비행사 친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에게 비행 중에도 시간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선물한 게 손목시계의 시초였다. (당시 시계 디자인은 까르띠에가 맡았지만 시계를 직접 만든 사람은 에드몬드 예거였다. 한편, ‘최초 손목시계’의 정체를 놓고 이견이 분분하지만 양산<量産>형으로 범위를 한정 짓는다면 까르띠에가 디자인한 시계가 가장 정답에 가깝다.)

이후 수많은 이들이 앞다퉈 손목시계 제작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브랜드들이 탄생했다. 시계가 손목 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시계의 심장’으로 불리는 무브먼트(movement)의 발명 때문이었다. 이전 시계들은 전부 손으로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매뉴얼(manual)’ 형태였지만 오토매틱 시계는 ‘차고 있기만 하면 손목이 자연스레 흔들리며 태엽을 감아주는’ 형태였다. 중력과 운동에너지에서 출발한 관성의 법칙을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오토매틱 시계는 1969년 일본 세이코사(Seiko社)가 전지(cell)로 작동하는 쿼츠 시계를 내놓기 전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쿼츠 시계의 등장과 함께 편의성과 정확성에서 밀리며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손목시계의 방점은 온전히 ‘손목’에 있다

손목에 찬 시계를 가르키는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말씀은 이제 틀린 얘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오토매틱 시계는, 어떻게 보면 가장 부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니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가 매일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전 세계 어디에 있어도 정확한 시간을 가장 빠르게 알려준다. 손목시계를 ‘정확한 시각을 알려주는 도구’로만 여긴다면 사실상 아주 오래 전 ‘휴대전화’란 대체재가 등장한 셈이다.

손목시계를 ‘기능’ 면으로만 생각한다면 스마트폰에 비해 시각을 ‘간편하게’ 알려주긴 한다. 스마트폰은 항상 주머니(를 지닌 가방이나 외투 따위의 물품) 속에 있다. 매번 꺼내 시각을 확인하고 다시 집어 넣는 것보다야 손목 시계를 보는 게 훨씬 더 편리하다. 손목은 노출돼 있는 경우가 잦고 팔만 들어 올리면 재빨리 시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손목시계는 여전히 ‘사소하지만 큰’ 이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점의 무게중심은 ‘시계’가 아니라 ‘손목’에 있다.

하필 이런 생각을 해본다. 손은 인간 몸에서 얼마나 유용한 도구일까? 손이 없다면 인간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 인간이 지닌 열 개의 손가락은 인류의 뛰어난 뇌를 발전시켰다. 끊임없이 만지고 느끼며 뭔가를 계속 만들어냈다. 그 덕에 지적 정보는 꾸준히 쌓일 수 있었다. ‘기록’도 손의 영역이다. 기록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도 없다. 그러니까 좀 거칠게 말하자면 손이 곧 인류다.

 

손목시계의 ‘100년 이상 장수’ 비결은?

기어 S2를 손목에 차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양한 일을 손으로 처리하며 우린 종종 손목에 시선을 고정했을 것이다. 팔찌로 가끔 ‘장식’하긴 했지만 손목은 (쉼 없이 뭔가 해야 하는) 손과 달리 오랜 기간 ‘손과 팔을 잇는’ 기능적 부위로만 존재해왔다(물론 비단 손목뿐 아니라 여러 인체 기관이 한 가지 기능만 수행한다). 하지만 손목은 손 못잖게 자주 노출되는 지점이다. 그것도 ‘내게만 은밀하게’가 아니라 ‘남에게도 공공연하게’.

손목 그 자체가 ‘모두에게 허락된 디스플레이’다. 손목시계의 장수 비결 역시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손목시계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패션’이다. 시계가 사치품 목록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손목이 ‘타인에게 쉬이 관찰되는’ 부위이기 때문 아닐까? 시계가 시각을 알려주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반지나 목걸이, 귀고리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손목시계는 한 세기를 거뜬히 넘기며 가장 보편적인 ‘(남성) 액세서리’로 자리 잡아왔다. 자신이 선택한 디자인(혹은 브랜드)를 노출하며 그에 숨겨진 취향이나 철학을 타인에게 슬쩍 내보일 수 있는 기회를, ‘시계’란 수단을 통해 얻은 것이다.

사실 요즘 시계는 가격대가 너무 높게 형성돼 위화감을 일으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고가품을 착용하지 않더라도 시계를 통해 각자 선호하는 취향을 드러낼 순 있다. 이를테면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 시계만 해도 그렇다. 둘 사이엔 ‘미묘하지만 꽤 다른’ 가치관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오토매틱 시계 마니아 중엔 무브먼트가 지닌 기계적 아름다움에 심취한 이가 많다. 애호가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브랜드인데도 단지 ‘내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계를 손에 넣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어쩌면, ‘패션’보다 훨씬 중요한 ‘스마트’

기어 S2의 사진입니다.

요즘 스마트워치가 화두다. 난 이 지점이 (시계 패러다임이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옮겨간) 20세기 초와 비슷한지 궁금하다. 당시 회중시계도 주머니 속에 있었다. 시각을 확인하려면 지금 스마트폰에서처럼 꺼내고 집어 넣길 반복해야 했다. 시계도 결국 시각 정보를 알려주는 ‘도구’라면 스마트폰 역시 시각(을 비롯해 무수한) 정보를 알려주는 ‘창’이다. 손목 위는, 비록 작지만 충분한 디스플레이가 구현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사실은 손목시계가 100년의 시간을 거치며 충분히 입증했다.

하지만 그 사이, 정보의 가치(시계로 치면 시각의 정확성)는 오토매틱과 쿼츠의 잇따른 등장으로 혁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전 기술은 ‘(기술이 빚어내는)아름다움’으로 남았다. 이를테면 쿼츠 시계의 발전은 오토매틱 시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

여러 사람이 예측한다, 오늘날 스마트워치의 발전이 1970년대에 시작된 일명 ‘쿼츠 파동’과 같은 형태로 진행될 거라고. 글쎄, 내 생각은 비슷한 듯 좀 다르다. 관건은 온전히 ‘스마트워치가 제공하는 정보의 가치’에 달려 있다. 한편에선 스마트워치가 ‘패셔너블’하냐의 여부를 놓고 시끄럽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스마트워치가 얼마나 ‘스마트’한 정보를 담아내는가, 다.

어쩌면 스마트워치 역시 성패의 무게중심은 ‘워치’가 아니라 ‘스마트’에 있는지 모른다. 물론 손목 위는 ‘누구에게나 잘 보이는’ 지점이란 점에서 여전히 상당 부분 패션의 영역이다. 하지만 스마트워치가 이미 패션 소품으로서의 가치를 견고하게 확립한 오토매틱 시계와 싸워 승리하려면 결국 ‘스마트’란 키워드를 파고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양승철

아르스프락시아 팀장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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