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영웅의 식탁’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2015/10/02 by 김연수
공유 레이어 열기/닫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투모로우 에세이 '영웅의 식탁'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토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연수 푸드테라피스트


 

‘역사 속 영웅’들의 성장 배경엔 복합적 요소가 여럿 작용한다. 식습관도 그중 하나다. 언뜻 소소한 일상처럼 비칠 수 있지만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엿보면 ‘영웅의 삶이 투영된 원칙’ 같은 게 보인다. 그 원칙은 자신만의 경험과 자신감으로 굳어져 더욱 빛을 발하고 평범한 한 인간을 위대한 영웅으로 이끈다.

 

이순신_만성 위장 장애로 ‘소화 잘되는’ 좁쌀죽 즐겨 먹어

시대를 막론하고 한국인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영웅 중 하나가 바로 이순신 장군(1545~1598)이다. 최악의 환경에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그의 생전 식단은 다행히 ‘난중일기’에 일부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나 신라 무열왕·김유신, 고려 시조 왕건 등 우리 고대 영웅의 식탁 관련 기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좁쌀죽 사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평소 장국밥류(類) 음식을 즐겨 먹었던 것 같다. 이처럼 ‘주식과 부식이 한데 섞인’ 식사 유형은 한평생 전쟁터를 지키며 늘 긴장 속에서 시간에 쫓겼던 그에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터. 난중일기에 따르면 이 장군은 좁쌀죽도 좋아했다. 사실 곽란(霍亂, 현재의 급성 위장병) 환자였던 그에게 좁쌀죽은 ‘애환과 고통이 깃든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위장 장애로 밤새 구토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하곤 했던 그가 속을 달래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_보리밥과 다시마 사랑했던 정치가

일본 최고경영자들이 ‘최고의 롤모델’로 꼽는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는 오다 노부나가(1534~1582),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와 함께 ‘일본 역사의 3대 영웅’ 중 한 명이다. ‘일본의 르네상스’로 평가 받는 에도 막부 시대를 개척, 250년간 ‘체제 안정’의 과업을 이뤄낸 인물이기도 하다. (에도 시대엔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큰 발전이 이뤄져 오늘날 ‘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들이 다수 마련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활동하던 당시 일본 남성의 평균 수명은 40대를 넘지 못했다. 이 점에 비춰볼 때 75세까지 살았던 이에야스는 지금으로 치면 100세 이상 장수한 셈이다. (노부나가는 49세, 히데요미는 62세로 각각 생을 마감했다.) 이에야스는 ‘내 몸은 내가 치료한다’는 생활 원칙을 고수하며 늘 제철 음식을 섭취했다고 전해진다. (‘스스로 식단을 챙기며 먹는 걸 관리하는’ 습관은 오늘날 지도자들에게서도 어렵잖게 관찰된다. 실제로 기업 최고경영자 대상 강의에서 만난 이 중 상당수가 자신의 식습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건강을 잃으면 평생 일터에 쌓아 올린 노력이 하루아침에 공염불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보리밥의 사진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식탁은 보리밥과 죽처럼 ‘소화가 잘 되면서 영양가도 높은’ 메뉴로 소박하게 구성돼 있다. 하루는 보리밥만 먹는 그를 안타깝게 여긴 한 부하가 밥공기에 쌀밥을 담은 후 그 위를 보리밥으로 살짝 덮어 냈다. 그 식탁을 받아 든 이에야스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바보 같은 녀석! 쌀을 아끼기 위해 보리밥을 먹는 게 아니다. 보리밥이야말로 건강식이기 때문이다.”

다시마의 사진입니다.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섭취한 또 하나의 건강식품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시마다. 다시마는 칼슘 함량이 높아 노년층의 뼈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갑상선 호르몬인 티록신(thyroxine) 생성에 필요한 요오드가 많이 들어 있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준다. 혈압을 낮춰주는 라미닌(laminin) 성분이 들어 있어 고혈압 합병증인 심장질환과 뇌졸중 예방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비타민과 무기질, 단백질도 풍부하다.

물에 불린 다시마는 표면이 미끈거린다. 물에 풀어진 식이섬유 때문이다. 다시마의 식이섬유인 U푸코이단(U-Fucoidan)엔 암세포의 자멸을 유도하는 ‘아폽토시스(apoptosis)’ 효능이 있다. 다시마는 흔히 ‘국물 내기’에 쓰이지만 살짝 데쳐내면 쌈 싸 먹어도 맛있다. 하루 평균 적정 섭취량은 1장(가로∙세로 3~4㎝ 기준)이다.

 

덩샤오핑_평생 소식∙균형식 실천하며 94세까지 장수

오늘날 중국 경제의 도약을 이뤄낸 인물로 중국 내에서 영웅시되는 인물은 단연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도입, 중국 경제를 반석 위에 올린 인물은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란 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 덩샤오핑은 피비린내 나는 공산당 권력 투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평생을 파란만장하고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94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했다. 그는 정치적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건강 관리’가 꼽힐 정도로 죽을 때까지 건강을 챙겼다.

덩샤오핑은 16세부터 중국 공산당 창립 주역으로 주목 받았지만 정작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른 건 77세 때였다. 150㎝ 단신으로 ‘작은 거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던 그는 나랏일로 한창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등산과 걷기를 즐겼다. “일은 효율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매사 무리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나이 든 후에도 자주 걸었는데 거동이 불편하게 됐을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시간을 활용, 집 안 정원을 18바퀴(약 2.5㎞)씩 걸었다고 전해진다.

두 가지 반찬과 간장이 있는 밥상입니다.

덩샤오핑은 매일 섭취하는 음식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가 식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40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그는 첫 부인과의 사별, 두 번째 부인과의 이혼을 각각 겪은 후 37세에 만난 14세 연하의 세 번째 부인 줘린(卓琳)과 55년간 동고동락하며 2남3녀를 낳았다. 줘린은 덩샤오핑의 식단을 직접 관리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남편의 소식(小食) 습관을 유지시키려 두꺼운 종이로 76g∙55g 두 종류의 쌀 용기를 만들어 한 끼 식사량을 관리하기도 했다.

빵, 야채와 과일, 유제품, 고기의 사진입니다.

덩샤오핑은 육류와 채소 간 균형을 철저하게 지켰다. 고기나 달걀, 만두 등 동물성 단백질은 아침에 섭취했고 점심과 저녁엔 채소와 두부, 콩 요리를 즐겼다. 저녁에 고기를 먹어야 할 땐 고향(쓰촨) 전통 요리인 훠궈(火鍋, 큰 양푼에 육수와 채소를 넣고 끓이며 육류나 버섯 따위를 데친 후 양념장에 찍어 먹는 음식)를 즐겼다.

만두 한 개를 젓가락으로 들어올린 사진입니다.

가급적 외식을 피하고 집에서 하는 식사를 고집했던 것도 그의 식습관 중 하나다. 매일 즐겼던 만두와 두부, 당근김치 등도 반드시 집에서 직접 만든 것만 먹었다. 소문난 애주가였지만 그 양은 ‘식사할 때 마오타이주 한두 잔’으로 제한했다. 흥미로운 건 덩샤오핑의 식습관을 더욱 빛나게 한 결정적 요인이 그의 ‘낙천적 자세’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 당시 자신의 건강 비결을 묻는 질문에 “모든 일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김연수

푸드테라피협회장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기획·연재 > 오피니언

기획·연재 > 오피니언 > 외부 기고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