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人터뷰] 연기하는 개발자? 서희암 선임을 만나다
회사에서 자율 출근제를 실시한 이후론 정시에 출근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7시 첫차를 타고 일찌감치 회사에 도착했다. 컴퓨터를 켜고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자리에 앉아서 막 업무를 시작하려는 순간, 복도에 설치된 TV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라? 희암 선배잖아!” 항상 미소를 띄고 시원시원하게 인사를 건네던 선배는 사내 방송국 SBC 시트콤에 출연해 당당히 오디션을 통과하고 사무실이 사라졌다 편에서 서 차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회사 블로거로 활동한 지 어언 2년째,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느꼈던 것은 이렇게 다양하고 끼 많은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열정의 끝은 언제나 일에 대한 열정과 맞물려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새삼스럽지만 문득, 그가 궁금해졌다. 조심스레 건넨 인터뷰 요청에 그는 흔쾌히 웃으며 화답했고, 평소 단골이라는 동탄의 한 커피숍으로 나를 이끌었다.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저희에겐 큰 힘이 된답니다~ ^^
Q. 삼성투모로우 식구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 소개해 주세요.
서희암 선임안녕하세요. 저는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 CAE팀, ICAD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하는 일은 웹을 이용해서 반도체 설계 인프라를 자동화하는 일인데요, 한마디로 웹 개발업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최근에 SBC에서 하는 ‘시트콤 제작단’에 배우로 참여를 하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셨어요?
서희암 선임 마이싱글 배너를 보고 시트콤 관련 내용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이건 꼭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흔히 말하는 운명적 만남 이런 건가요? ‘아, 이건 내 꺼구나’ 뭐 이런 느낌이요.
서희암 선임 (웃음) 그렇다기보다는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트콤을 촬영하는 과정도 꼭 보고 싶었고, 연기 잘하는 다른 분들을 만나게 되면 자극도 받을 것 같아서요. 무엇보다 제가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Q. 연기에 원래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서희암 선임 제가 신입사원 때 하계 수련 대회 공연에서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었어요. 연기 지도를 받는데 눈물 연기를 시키시더라고요. 그 때 당시에 여자친구를 공연 연습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해서 애절한 마음이 컸죠. 여자친구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나가는 상황을 연기했는데 정말 2초만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연출가가 그 외에 몇 개 더 연기를 시켜 보더니 조용히 저를 발코니로 불렀어요.
“희암 씨, 저랑 같이 대학로에서 연기 해 볼 생각 없어요? 제가 보기에 자질이 있어 보이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정말 단순히 기뻤죠. 그런데 두 번, 세 번 권하시니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전 일단 삼성에 갖고 있던 포부가 더 컸어요.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연기를 하면 확실히 100% 매진할 수가 없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생업을 걸고 공연하는 다른 연기자 분들, 연기에 100%를 쏟은 그 분들께 폐가 될 것 같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리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거절을 했어요. 하지만 그 때 연기를 하며 느꼈던 그 느낌, 에너지를 잊지 못해서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꼭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돈 벌기가 쉽지 않잖아요? (웃음)
Q. 방송을 보니까, 시트콤 오디션 당시 감독님께서 배우 류승룡과 비교하며 “원석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그러고 보니 좀 닮으셨어요.
서희암 선임 류승룡 씨와 비교되는 것은 정말 영광이죠! 물론 연기가 아니라 외모라도요. (웃음) 그 분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을 때가 있어요. 연기력을 비교하시는 것은 정말 기쁘고 감사한데, 외모를 비교하신다면… 전 아직 젊습니다! (농담입니다 농담)
Q. 방송에 나오고 주변 분들의 반응이 뜨거웠을 것 같은데요. 알아보는 분들이 많나요?
서희암 선임 이전에 함께 일했던 팀장님께서 시트콤을 보시곤 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주셨어요. 방송 잘 봤다고 중년의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 내용이었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그 외에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대학 후배나 회사 동기들한테서도 연락이 많이 와서 참 기분 좋았어요. 알아보시는 분들도 꽤 많았고요. 그런데 의외로 팀 내에서는 봤는지 모를 만큼 반응이 조용했어요. 조용히 다가와서 “방송 잘 봤어요” 이렇게 속삭이시는 분들은 종종 있었는데, 좀 조심스러워 하시더라고요.
나 역시 블로거로 활동하며 동료들의 그런 시선을 많이 받았던 터라, 선배의 마지막 말이 척이나 공감이 갔다. 내가 사내 블로그에 쓴 글이 채택되어 가끔 싱글 메인 화면에 소개될 때면 주위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곤 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회사에서 주는 것도 없는데, 뭐가 좋다고 저런 곳에 글을 올리지?”
“회사는 회사일 뿐인데 자신을 너무 드러내는 것 아냐?”
“분명 일 안하고 블로그질(?)만 할거야”
한껏 고조된 분위기로 다음엔 선배가 열심히 활동중인 TEDxSamsung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미국의 비영리 재단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기술, 오락, 디자인에 관련된 강연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에서도 개최하고 있으며 TEDx란 형식으로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강연회를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TEDxSamsung은 자발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삼성인들이 모여서 초빙 강연 기획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연기 외에도 최근 TEDxSamsung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시잖아요. 삼성이라는 조직 안에서 TED 같은 열린 문화가 생겨나고, 많은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희암 선임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TEDxSamsung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삼성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이라는 조직의 특성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이에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죠.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약간 경직되어 있어요. 회사 안에서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약간 경직되게 말을 하잖아요?
하지만 사람 본연의 모습은 그렇지 않잖아요. 다시 말하면, 회사에서는 사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과 잠재능력 같은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TEDxSamsung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생된 조직이라는 점이에요. 그런 점에서 임직원들의 다양한 개성과 잠재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 되어 회사에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겁니다. 교육이나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요. 제 개인적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Q. TEDxSamsung 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서희암 선임 제 생각에 TEDxSamsung 활동은 회사 내 개인의 다양성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다양성이란 별 모양을 가지 쳐서 경직된 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지를 더 뻗어 연결된 그 자리에 비움의 공간이 생기고 삼성인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와 노는 울타리,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놀이가 되는 창의적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그의 달변에 빠져 즐겁게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어느새 인터뷰도 막바지에 접어들어 같은 개발자로서, 그리고 회사 선배로서 그에게 궁금했던 점들을 털어 놓았다.
Q. 지금 6년차 엔지니어로서 고충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서희암 선임 개발에는 단계가 있죠. 처음 개발을 할 때는 금방 금방 일이 진척되고 성과도 눈에 잘 보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어느 정도를 지나 유지/보수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게 어려워져요. 하는 일은 더 많아졌는데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죠. 다시 말하면 0%에서 60%를 달성하는 것 보다 60%에서 80%로, 그리고 80%에서 90%로 갈수록 일은 더 어려워지는데, 성과로 따지면 60%에서 20%로, 10%로 점점 성과가 줄어드는 것이죠. 컵을 채우라는 목표를 받고 컵에 처음 자갈을 넣는 일은 주목을 받지만, 모래를 넣고 물을 부어 다져 단단하게 하는 일은 아무리 양이 많아도 그 과정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참 힘든 것 같아요.
Q.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이 있잖아요, 선배의 경우는 어떠세요? 본인만의 커리어 로드맵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서희암 선임 여러 은사님들 조언을 듣고 기술의 발전에 대해 제 나름대로 공식 같은 것을 정립했습니다. 가령 전쟁을 한다고 할 때, 돌팔매질에는 개개인마다 능력차가 존재하게 되고 타고난 재능 같은 게 돋보여요. 여기서 한 단계 발전을 해서 대포가 등장하면 경험에 의해 작성된 풍향과 풍속에 따른 각도 매뉴얼, 표를 가지고 누구나 손쉽게 타깃을 맞출 수 있고, 개개인에 대한 편차가 줄어들게 되죠. 그 다음 단계에서는 한 명의 천재가 나타나야 합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죠. 모든 사건이 수식으로 정리됨으로써 모든 의문점이 풀리게 돼요.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제가 몸 담고 있는 IT 분야는 아직 돌팔매질에서 대포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제일 잘하는 전문 영역을 구축해서 밥 벌어 먹고, 우리 시대에서 신기술이라 불리는 것을 공부해 미래에 대비해 보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답니다.
Q. 업무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전 블로그 포스팅 하나도, 짬짬이 쓰다보니까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이거든요. 혹시 선배만의 시간 관리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서희암 선임 시간 관리 노하우는 적자(writing it) 생존입니다. 모든 일정과 아이디어를 다이어리에 적는 것이죠. 대학교 때 전공이 경영학이었는데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IBM에 IMC(Interactive Marketing Communication)라는 부서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되었죠. 웹마스터로 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DB도 만지고 웹도 만지고 하다보니 자연스레 IT 쪽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졸업까지 남은 시간이 1년 반 밖에 없었어요. 결국 이틀에 세 시간 정도 자면서 이를 악 물고 공부를 했어요. 너무 졸려서 하루 종일 허벅지를 찔러 가며 공부한 적도 있었어요. 기숙사 친구에게 깨워 달라 해놓곤 침대 옆 방바닥에서 그 친구가 깰 때 저를 밟도록 칼잠을 잔 적도 있어요. 그런데 걱정과 달리 학점도 초과 이수하고 결국 4년 안에 해냈죠.
Q.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오히려 시간 관리가 쉬우시겠어요.
서희암 선임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 때는 목표가 하나였으니까 오히려 쉬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해야 할 프로젝트도 여러 개고, 자잘한 잡무도 해야 하고요. 선배로서의 역할, 후배로서의 역할도 해야 하죠. 전 멀티태스킹은 잘 안 되더라고요.
한술 더 떠서 최근에 반도체 사업장 보안이 강화되면서 다이어리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잖아요. 저는 대학교 때부터 일정관리를 해서 좋은 다이어리를 고르는 저만의 노하우도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생각하는 좋은 다이어리는 주(week) 단위인데 1년이면 52주, 즉 52장이니까 찾아 보기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던지, 미리 시각이 적혀 있으면 새로운 일정이 있을 때 찾아보기가 편리하다던지 하는 거요.
Q. 마지막으로 선배의 그 에너지, 열정의 비결을 좀 알려주세요.
서희암 선임 TED 동영상 중에 30일만 집중해서 하면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강연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제가 재테크를 위해 공부한 적이 있었어요. 매일 회사 업무를 마치고 집에 가서 2~3시간씩 공부를 했죠. 그리고 그걸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네이버/구글에서 그 포스팅이 거의 1년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었어요. 분야별 재테크 성과도 1개월 내지 길어야 6개월 내에 있었고요. 그 때 생각했죠. 나같은 사람이 할 정도면 누구나 무엇을 하든지 한 달 정도만 집중해서 하면 되겠구나! 연기도, 업무도, 그것에 집중한다면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가 촉촉히 내리던 어느 수요일 저녁 잔잔한 음악이 흐르던 커피숍에서 진행된 나의 첫 인터뷰,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달리 여유로운 표정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선배의 유창한 언변에 놀랐고, 그 언변 속에 묻어 나오는 열정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바는, 여러 활동에 열정을 나누어 쏟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활동에 집중해서 열정을 쏟아붓는 것, 그리고 그 열정은 시너지 효과로 처음의 배 이상이 되어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것. 다시 한번, 인터뷰에 응해 준 서희암 선임께 감사를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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