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회사 만드는 ‘한 끗 차이’, 기업 철학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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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업인은 누굴까? 그 답은 ‘성공’을 어떤 기준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의 ‘기준’ 역시 시대, 혹은 (해당 기준을 정하는 이의) 가치관에 적잖이 좌우될 것이다.

 

크로이소스왕은 어쩌다 ‘위대한 비즈니스 리더’가 됐을까?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걸 성공의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성공한 기업인은 단연 크로이소스왕(King Croesus)이다.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반도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리디아 최후 왕이었던 그는 재위 당시 소아시아 연안 도시를 잇따라 정복, 리디아를 소아시아반도 최대 규모로 확장시켰다. 실제로 유럽과 소아시아 전역에선 요즘도 ‘크로이소스만큼 부유한(rich as Croesus)’이란 표현이 통용된다. 어원적 배경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을 일상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왕관, 보석함 이미지

크로이소스왕의 부(富)는 리디아 영토를 가로질러 에게해로 흘러 들어가는 팍톨로스(Pactolus)강 모래에서 나왔다. 이 모래엔 금과 은이 절묘하게 섞인 입자가 포함돼 있어 그것들을 걸러낸 후 제련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귀금속이 탄생했다. (팍톨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다스왕이 뭐든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씻은 걸로 알려진 강이다.) 크로이소스왕은 바로 이 자원의 개발에 주력했고, 그 덕에 수천 년 후까지 이름이 전해질 정도의 부자가 됐다.

사실 크로이소스왕에 대한 평가는 꽤 오랫동안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끊임없이 과시하길 좋아했다. 반면, 백성을 잘 다스리는 일엔 별 관심이 없었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그는 이웃나라에 다녀온 사이, 적군이 리디아 도성 인근을 짓밟고 약탈하는 걸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성으로 직행해 본인 창고를 지켰다. 이런 이유로 그의 일생은, 얘깃거린 됐을지언정 성공적 모델로 치하되진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5월 한 온라인 경영 컨설팅 웹사이트에서 크로이소스왕은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비즈니스 리더’로 이름을 올렸다[1].

화폐 이미지

크로이소스왕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이렇게 달라진 비결은 뭐였을까? 그는 세계 최초로 금은화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며 화폐 유통을 선도했다. 이집트 시대 등에도 금화가 존재했지만 당시 금화는 고가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크로이소스왕은 작고 휴대가 간편한 물건에 높은 교환 가치를 담아 물류를 촉진시켰다. 창의적 혁신을 통해 세상을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바꾼 점이 후대 들어 재조명된 것이다.

 

나침반·증기기관 혁신성 부각 계기는 ‘근대 유럽 산업혁명’

혁신은 오늘날 기업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간주된다.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의 세계를 넓히고 개선해가는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도출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특히 기술 개발 측면에서의) 창의성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가치 실현 계기로서 늘 중요하게 기능해왔다. 철기(鐵器)를 예로 들어보자. 인류가 철기 문명에 진입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창의성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철광석이 많이 노출된 지역에서 산불이 나고 꺼진 자리에 형성된 무쇠 덩어리를 본 후 ‘철광석 제련법’이란 아이디어를 고안해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이를테면 수차(水車)는 물이 가득 담긴 두레박을 끌어올리느라 애 먹었던 어느 노동자가 도르래 원리에 착안, 물을 끊임없이 퍼 올리는 장치를 고안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발명품이다. 그 결과, 관개농업 생산성 수준이 확 높아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기존 질서 유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인 세상에선 기술 혁신 자체가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 받거나 보상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설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그 기술의 혜택으로 입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근대 이전 세계에서 기술 혁신에 공헌한 사람의 이름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 반면, 해당 기술이 가능케 한 경제적 풍요를 지키는 데 공헌한 이들은 ‘영웅’으로 칭송됐다.

나침반, 로봇, 증기기관차 이미지

그뿐 아니다. 특정 기술이 보유한 혁신성은 종종 “사회에 쓸데없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묵살되곤 했다. 대표적 예가 나침반이다. 나침반은 17세기 유럽 대항해시대[2]를 여는 선도 기술 중 하나로 각광 받았지만 처음 발명된 건 이보다 500년가량 전인 12세기, 중국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중국 내에서 나침반은 호사가의 취미용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로봇이나 증기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 처음 선보여 실용화되기 수백 년 전 아시아에서 이미 개발됐지만 이내 사장(死藏)됐다. 농경 위주 사회의 가치관과 산업 구조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고 개발자의 명성이 후대까지 이어진 건 근대 유럽 산업혁명 이후 일이다. 그 결과, △인쇄술을 개혁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 △전기의 일상화에 성공한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 같은 ‘혁신적 기술 발명가’의 탄생이 이어졌다. 현대 산업사회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구축될 수 있었던 것, 혁신(innovation)이 경제적 가치 창출의 핵심 덕목으로 부각된 것 역시 이 같은 변화의 산물이다.

 

반도체 후발주자’ 한국이 6개월 만에 추월한 비결

스마트 액정

‘아날로그의 반격’을 다룬 지난달 19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도 강조했듯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반드시 그 이전 기술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기술’ 자리에 ‘가치’를 넣어도 문맥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술적 혁신을 통해 인류의 삶에 풍요와 효율을 더하는 일이 주요 가치로 부상됐다 해도, 그런 가치를 앞세우는 기업이 경제 전반을 이끄는 문화적 구조가 형성됐다 해도 이전 시대의 가치 중 핵심적 부분은 여전히 잔존한다.

이전 시대 가치는 때로 기술 혁신의 강력한 동인(動因)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말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서구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일찌감치 안착할 수 있었던 동력을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에서 찾았다.

이전 시대 가치는 때로 기술 혁신의 강력한 동인(動因)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말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서구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일찌감치 안착할 수 있었던 동력을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에서 찾았다. 근대 서구사회의 정신적 기초이기도 했던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신교적 기독교 정신에서 강조된 근면∙성실’ 정도로 해석된다. 이 같은 시각은 아시아 국가에도 존재한다. 손윗사람에게 갖추는 예의나 공동체를 향한 헌신, 국가에 대한 충성 등 이 지역 사람들 특유의 정신적 자세가 20세기 말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발전을 견인했단 시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전자∙통신기술(IT) 산업 발전사는 전 세계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2015년 1월 14일자(반도체 부문, ‘메모리 산업 30년사 빛낸 삼성 반도체 신화의 순간들’)와 지난 2월 8일자(가전 부문, ‘퍼플오션의 승자 되는 법: 기존 시장서 새 기회 보는 삼성 가전 성공 전략’) 등 두 편의 스페셜 리포트를 발간, 쟁쟁한 선진국이 경합을 벌이는 기술 시장에서 탁월한 집중력과 창의력으로 입지를 넓혀온 삼성전자의 노력을 소개했다.

64K D램 개발 성공 사례가 대표적 예다. 당초 이 기술의 종주국인 미국이 64K D램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수십 년간 축적된 노하우 덕분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도 같은 수준의 기술에 도달하는 데에만 꼬박 6년이 걸렸다. 반면,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반도체통신)는 단 6개월 만에 기술력 부문에서 두 나라를 능가했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 회사라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적 열정에 “수십 년간 열세를 면치 못했던 국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애국심이 더해지며 이룬 성과였다.

1983년 12월 12일 64K D램 개발 생산 경축 행사 당시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 해 11월 64K D램 시생산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개발진이 모여 촬영한 것이다▲1983년 12월 12일 64K D램 개발 생산 경축 행사 당시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 해 11월 64K D램 시생산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개발진이 모여 촬영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온 가치를 기업 운영의 초석으로 삼아온 최고경영자(CEO)의 기업 철학이 바로 그것(물론 그에 공감하고 따르는 임직원의 존재는 필수다).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은 전자∙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각 분야에서 탁월한 철학을 견지해온 CEO, 그리고 그 철학과 뜻을 함께하는 산업 현장의 일꾼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미래 산업 호령하려면 기술 혁신과 철학, 통찰력 겸비해야

오늘날 ‘기업 철학’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경영인으로 제프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공간 아마존닷컴의 창립자 겸 CEO인 그는 오랫동안 부동의 ‘세계 부호 1위’였던 빌 게이츠를 지난해 밀어내고 세계 최대 자산가가 됐다. △블루오리진(Blue Origin) △에어비앤비(airbnb) △디웨이브시스템(D-Wave Systems)[3] △우버 등 수십 개의 잘나가는 기업 운영에 직접 관여하거나 자금을 대는 등 온라인 소매업과 IT 업계 분야에서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베조스식(式)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경영 방식은 화려한 어록과 함께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켜왔다.

베조스식(式)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경영 방식은 화려한 어록과 함께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켜왔다. 일례로 그는 임직원과 회의할 때마다 자기 옆 자리를 비워뒀다. 일명 “빈 의자(the empty chair) 정책”이다. 의자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고객. 매사 고객의 입장에서 살피고 결정 내려야 한다, 는 그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런가 하면 2015년 미국 시애틀에 들어선 아마존 신사옥의 명칭은 ‘데이원(Day 1)’이다. “늘 처음 시작하는 날인 것처럼 초심으로 일하라”는 의미다. “예전 세상에선 훌륭한 사업을 구축하는 데 당신 시간의 30%를, 그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데 70%를 각각 들였지만 새로운 세상에선 그 반대 비율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같은 어록에선 베조스 특유의 직관적 통찰이 번뜩인다.

회의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철학이 있는 기업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철학이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부정적 인상을 동시에 갖고 있다. 현실적 성공이 뒷받침됐을 때의 철학은 그 성공을 가능케 했던 사고의 깊이와 동의어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철학은 한낱 패배자(loser)의 공염불에 불과하다.

실시간 공유

값어치 있는 정보라면 그것의 발생 장소와 무관하게 ‘실시간 공유’가 가능해진 요즘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선 지금 이 시각에도 ‘나만의 철학’으로 기업 경영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용틀임에 한창이다.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서 그중 누가(어떤 기업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예측도 확신을 담보하기 어려운 세상, 분명한 건 단 하나다. 미래 산업을 호령하는 ‘스타 기업(인)’이 되려면 기술적 혁신과 그걸 이끌어내는 철학, 그 철학을 견고하게 만드는 통찰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

 


[1] http://www.business2community.com/leadership/10-greatest-business-leaders-time-01537670#jqyrq2Ch8oMmCux6.97

[2] 大航海時代. 유럽 선박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에 몰두하던 시기를 일컬으며, 대략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3] 캐나다 소재 상업용 양자컴퓨터 제작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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