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적 지식 기반 위에 소프트웨어 성능 고민… ‘최적 조합’ 찾아내죠” 삼성전자 최고 ‘시스템 소프트웨어 전문가’ 김제익 마스터

20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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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등 TV 개발 주도 역량, 이제 AV 제품에 이식합니다” 삼성전자 최고 ‘시스템 소프트웨어 전문가’ 김제익 마스터

김제익 마스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두루 이해해야 하는 ‘시스템 아키텍트’ 분야에서 삼성전자 내 몇 안 되는 전문가다▲김제익 마스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두루 이해해야 하는 ‘시스템 아키텍트’ 분야에서 삼성전자 내 몇 안 되는 전문가다

“소프트웨어 업무를 잘하려면 하드웨어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일을 해도 재미를 느낄 수 있죠. 따지고 보면 제품 개발은 전부 ‘특정 하드웨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설계, 작동시키는 일’이니까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두루 잘 이해해야 최적화된 구조를 완성해낼 수 있어요. 그런 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바로 시스템 아키텍트(system architect)의 역할이고요.”

 

‘안전하면서도 빠른’ TV 구현 관련 특허 보유

‘삼성 디지털 TV(DTV) 개발을 선도해온 시스템 소프트웨어 전문가’ 김제익 마스터와의 인터뷰 내내 도돌이표처럼 거푸 강조되는 메시지가 있었다. ‘특정 기기(device)에 최적화된 구조를 제시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유기적으로 통합돼야 한다’는 얘기였다. TV를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요즘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는 사람들의 최대 골칫거리는 ‘불법 다운로드’입니다. 콘텐츠 제공업자들이 TV에 굉장히 높은 수준의 보안을 요구하는 건 그 때문이죠. 물론 화질 등 기본 성능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고요. 반면, 요즘 소비자들은 전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재생되는 TV를 선호합니다. 보안 기능을 제대로 갖추려면 실행은 느려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TV 구조를 설계할 때 ‘보안을 강화하면서도 성능은 느려지지 않게’ 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실제로 현재 출시 중인 삼성 TV는 필요한 보안 수준을 충족시키면서도 부팅 시간이 5초를 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이죠.”

이런 TV를 만들어내려면 제품 개발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수다. “보안 수준을 충족시키려면 TV 성능이 실행되기 전, 관련 코드의 변조 여부를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연산이 들어가죠. 그걸 전부 소프트웨어로 처리하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걸립니다. 자연히 작동이 느려질 수밖에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부 작업을 하드웨어가 분담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기기 전체 성능을 끌어올리는 거죠.”

실제로 김제익 마스터는 이 같은 기술을 개발, 특허를 받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분야의 전문 지식을 겸비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컴퓨터 언어가 기반이 되므로 둘을 통합해 작업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하진 않다”며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디어, 그리고 그걸 제대로 구현해내는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열 살 때부터 전자기기 분해∙조립했던 ‘위즈키드’

“중학생 때부터 전자회사 개발자로 일하고 싶었다”는 김 마스터는 1994년 삼성전자 입사 후 20여 년간 TV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 한 우물을 파왔다▲“중학생 때부터 전자회사 개발자로 일하고 싶었다”는 김 마스터는 1994년 삼성전자 입사 후 20여 년간 TV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 한 우물을 파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자기기 만드는 게 취미였어요. 눈에 띄는 건 모조리 뜯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원리를 이해해야 직성이 풀렸죠. 사실 그 습관은 아직도 못 고쳤는데(웃음)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에 분해 전문 웹사이트가 많아 ‘직접 뜯어보는’ 일은 줄었습니다.”

사실 ‘전자회사 입사’는 꽤 오래 전부터 김 마스터의 꿈이었다. “중 3 때, 한 잡지사에서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명목으로 진행한 면접을 봤어요. 장래 희망을 묻길래 ‘전자회사에 들어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 기업이었던) 소니나 나쇼날 같은 일본 업체를 이기는 국내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죠.” 대학 진학 후 어셈블리와 하드웨어 기술언어를 사용, ‘고속 MPEG 인코딩 병렬처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박사과정 진학을 권하는 지도교수의 제안을 고사하고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지난 1994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 입사했다.

이후 그는 맡는 일마다 승승장구했다. 특히 10년간 세계 TV 시장에서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 TV’의 역사를 주도해왔다. 1998년엔 세계 최초 DTV 개발 주역으로 관련 소프트웨어 기반을 마련했고, 2006년엔 ‘보르도 TV’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했다. 2013년 첫선을 보인 TV 업그레이드 솔루션 ‘에볼루션 키트(Evolution Kit)’의 주요 구조를 설계하기도 했다.

김 마스터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과 하드웨어 특성에 대한 이해를 겸비해야 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지만 어려운 만큼 성취감이 높다”고 말했다▲김 마스터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과 하드웨어 특성에 대한 이해를 겸비해야 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지만 어려운 만큼 성취감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위즈키드(wiz kid)’다. ‘마술사(wizard)’와 ‘어린이(kid)’를 합성해 만든 이 영어 신조어엔 ‘어렸을 때부터 특정 분야에 몰입, 성장하면서 해당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게 된 사람’이란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위즈키드가 본인의 전문 분야를 직업으로 택하는 일은 흔치 않다. ‘(몰입해 즐길 수 있는) 놀이’와 ‘(좋든 싫든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마스터는 ‘취미가 직업으로 연결된, 가장 바람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자기기 분해가 취미였던 열 살 소년이 세계 최초 디지털 TV 개발의 주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김제익 마스터는 “내게 문제 해결의 첫 번째 절차는 적절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이라며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수단이 하드웨어냐, 소프트웨어냐 하는 건 그다음에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우연찮게 그의 집무실 한쪽 벽면에 세워진 화이트보드로 눈길이 갔다. “넷플릭스 시청 시 음질이 끊기는 건 무엇 때문이지요?”란 질문 아래 복잡한 수식과 용어가 빼곡했다. “제품 테스트 과정에서 접수된 질문을 해결하느라 씨름한 흔적이에요. 좀 고전하긴 했지만 결국 답을 찾았습니다.”

 

마스터 선임과 동시에 ‘뉴 미션’… “할 일 많다”

김제익 마스터는 지난해 말 마스터로 선임되며 새로운 ‘미션’을 부여 받았다. TV 중에서도 AV(Audio/Video)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총괄하게 된 것. 본인의 특기를 내려놓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일은 분명 적잖은 부담일 터. 하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연구 영역이 달라진 건 분명하지만 기본적으론 같은 작업입니다. 이 분야에서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존재하니까요. 빠른 응답률과 편리한 사용성, 생산 단가 대비 품질 향상 등 해결해야 할 과제의 성격도 제가 이전에 하던 업무와 유사합니다.”

김 마스터는 “실제로 와서 일해보니 개선할 부분이 여럿 눈에 띄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며 “TV 쪽 업무 노하우를 바탕으로 1등 오디오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마스터는 “직장 생활 하며 ‘난 모르겠고 일단 해보라’며 뒤로 빠지는 상사가 제일 싫었다”며 “이제 마스터가 됐으니 후배 개발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김 마스터는 “직장 생활 하며 ‘난 모르겠고 일단 해보라’며 뒤로 빠지는 상사가 제일 싫었다”며 “이제 마스터가 됐으니 후배 개발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마스터는 후배들에게 늘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효율적 업무 처리’를 강조한다. 특히 기술 개발 과정에서의 의사 결정에선 ‘신속함’을 최고 덕목으로 여긴다.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많이 나오려면 불필요하게 시간 끄는 일 없이 중요한 것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개발자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입니다. 저도 이제 마스터가 됐으니 그 점을 유념하고 새로운 일을 많이 찾아 하겠습니다. 저와 함께할 수 있는 후배도 키워갈 생각이고요.”

사실 기술 개발 업무는 말 그대로 ‘무한도전’ 정신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일하며 맞닥뜨리는 도전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는 듯 보였다. 언뜻 ‘저런 상사와 함께 일하는 후배는 좀 부담스럽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개발 작업은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부담스럽지만 기본만 충실히 익히면 의외로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단,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개발을 ‘숙제’나 ‘주어진 틀에 맞춰야 하는 일’로 여기면 부담감을 이겨내기 쉽지 않을 거예요. 문제 해결 과정 자체를 즐겁게 생각하고, 거기서 오는 성취를 기뻐할 줄 알아야 이 일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김제익 마스터는 인터뷰 전 취재진에게 보내온 사전 질의 답변서에 이 문장을 썼다. “공자가 한 말인데 늘 마음에 두고 삽니다. 어떤 기술도 머리나 지식으로 알려 하지 않고 ‘놀이하듯’ 즐겁게 열중하다보면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뜻이죠.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상사가 되고 싶습니다.”

김 마스터는 “글로벌 시장 1위 제품인 삼성 TV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맡은 AV 제품군에서도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김 마스터는 “글로벌 시장 1위 제품인 삼성 TV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맡은 AV 제품군에서도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놀이하듯 일하는 즐거움, 후배들에게 전수하고파”

‘장자(莊子)’ 속 유명한 일화 중 ‘포정해우(庖丁解牛)’에 관한 게 있다. 하루는 군주 ‘문혜군(文惠君)’이 소 잡는 ‘포정’의 모습을 지켜보던 중, 마치 노래 운율처럼 소가 부드럽게 해체되는 모습을 보고 탄복했다. 포정은 문혜군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 손끝 재주가 아니라 도(道)를 통해 소를 잡습니다. 처음엔 소의 모습을 보고 칼을 대했지만 지금은 마음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진 않습니다. 그러면 소의 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에 난 틈이 느껴지죠. 그런 다음, 적절한 곳에 칼을 대면 힘들이지 않아도 그대로 해체됩니다.”

개발자는 제아무리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그 안에서 단순한 기본 원리를 직관적으로 파악, 집중해 기어이 해결해낸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음을 다해 몰두한 시간이 쌓이고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전자는 벌써 수년째 김제익 마스터 같은 개발자를 발굴, 지원해오고 있다. ‘실력 있는 개발자의 노력이 집약된 바로 그 지점에서 기업의 진짜 경쟁력이 창출된다’는 명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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