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6부작 특별 기획 ‘IT로 문화 읽기’_④소비 문화, 컨슈머·프로슈머·크리슈머까지… IT가 소비 문화도 바꾼다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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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6부작 특별 기획 ‘IT로 문화 읽기’_④소비 문화, 컨슈머∙프로슈머∙크리슈머까지… IT가 소비 문화도 바꾼다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IT)의 발달은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말이다. (지난달 4일자 스페셜 리포트 ‘IT로 문화 읽기-①융합’ 편에서 간단한 사례 비교를 통해 그 변화상을 짚어볼 수 있었다.)

소비문화 영역에서도 IT로 인한 변화의 물결이 사회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원래 소비란 생산자가 만들어놓은 걸 선택,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 ‘생산’과 ‘소비’는 전혀 다른 과정이었고, 따라서 ‘생산자’와 ‘소비자’도 뚜렷이 구분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스페셜 리포트 ‘IT로 문화 읽기-③스토리텔링’ 편 마지막 부분에서 본 것처럼 IT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소통의 증대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한 단어로 요약하는 ‘프로섬션(prosumtion)’, 그렇게 하는 주체를 가리키는 ‘프로슈머(prosumer)’란 단어가 1970년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말이 그렇듯) IT 기술 발달과 맞물려 변화해가는 세상에서 이 단어도 조금씩 다른 의미와 어감으로 쓰이며 진화해가고 있다.

 

새로운 소비 계층, ‘프로슈머’의 등장

프로슈머는 ‘생산자’란 뜻의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란 뜻의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해 만든 단어다. 요즘 문화계, 특히 IT를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문화계에서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는 이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다. 그는 1980년 출간된 자신의 책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서 이 신조어를 처음 사용했다.

토플러는 이미 지난 1970년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란 저서에서 “미래엔 생산과 소비 간 경계가 허물어져 소비자가 생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난 회에서 소개한 캐나다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Marshal McLuhan) 역시 지난 1972년 ‘오늘을 받아들여라(Take Today)’란 저서를 통해 이미 “전자 기술의 발달로 인해 소비자가 생산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들 선각자의 선견지명이 있은 후 실제로 이런 현상이 널리 퍼져 어디서나 눈에 띄게 되기까진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프로듀서와 컨슈머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합쳐져 프로슈머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간 프로슈머는 매클루언이나 토플러가 말한 것과는 좀 다른 의미로 사용돼왔다. 일부 카메라 생산업체는 아마추어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소비자(consumer)’용, 전문 사진작가가 사용하는 카메라를 ‘전문가(professional)’용으로 구분, 품질과 가격에 차등을 뒀다. 그러면서 품질이나 가격대가 두 부류 사이에 속하는 제품엔 ‘프로슈머용’이란 명칭을 붙였다. 이때 프로슈머란 전문가(professional)와 일반 소비자(consumer) 사이의 범주, 프로슈머 카메라는 ‘적당한 가격대에 웬만한 사양을 겸비한 카메라’를 각각 일컫는 용어였다.

 

프로슈머와 기업, 나란히 진화하다

“클로드는 철이 들면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인생 설계는 끝났다. 이 시대가 가져다주는 모든 혜택을 눈감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신문과 각종 광고를 읽고 이 최상의 안내자들이 충고하는 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진보에 발맞춰가며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그날부터 클로드는 (중략) 광고의 위대한 목소리가 권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불행한 청년의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됐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작가 에밀 졸라(Émile Zola)의 단편소설 ‘광고의 희생자’ 중 첫 대목이다. 이후 스토리는 클로드가 광고만 믿고 무분별하게 상품을 구입하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건강마저 잃어 불쌍하게 죽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론 풍자소설인 만큼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겠지만, 다양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던 산업시대 유럽 소비자들이 생산자의 권유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림 담배, 의약품에서 노예까지, 18세기 유럽에서 시장경제가 발흥하면서 광고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담배와 의약품, 심지어 노예에 이르기까지 18세기 유럽에선 시장경제의 발흥과 동시에 각종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현대 소비자들은 최소한 클로드보다 똑똑하고 적극적이다. 여전히 광고는 해당 상품의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그리고 가장 인상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경험과 정보를 총동원, 단 한 푼이라도 효율적으로 쓰려고 한다.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의 동원은 점점 더 쉬워진다. 인터넷 기술과 모바일 기기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많은 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이렇게 앞서나가면 생산자 역시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말하자면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하는 것이다. 생산자는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이용하고 주변 많은 이들과 나누는’ 소비자의 영민함을 거꾸로 이용해 ‘윈-윈(win-win)’의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21세기 클로드’가 사는 모습은 어떨까?

요리 실력 등 남다른 재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일반인의 등장은 예전과 달라진 현대 소비자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리 실력 등 남다른 재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일반인의 등장은 예전과 달라진 현대 소비자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타공인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에 자기가 만든 음식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따뜻한 심성까지 갖춘 클로드. 시간이 날 때면 대형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요리를 해 친구들을 초대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린다. 처음엔 그저 재밌어서 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1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블로거’가 됐다.

 

어느 날,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자신의 회사 제품을 이용, 요리를 시연해주고 블로그에 평가까지 해주면 조회수에 따른 사례를 해주겠다는 것. 마트에서 특정 회사 제품을 구입, 라벨이 보이도록 조리에 이용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올라가고, 클로드 특유의 재치 있는 평가도 함께 게재된다. 마땅한 벌이가 없던 클로드에겐 반가운 고정 수입이 생기는 이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 입장에서도 영향력 있는 소비자 의견을 생산에 반영하는 한편, 블로그를 통한 광고 효과도 얻을 수 있게 됐다.

 

‘21세기 클로드’ 역시 소비자이지만 ‘18세기 클로드’와는 달리 생산 과정에 영향력을 주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이면서도 어느 정도는 생산자 역할에도 관여하는 사람이 바로 ‘토플러식(式) 프로슈머’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프로슈머는 20세기 후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충분히 발달해 사회적으로 정착되고, 특히 모바일 기기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결(connect)되면서 본격적으로 세력화되기 시작했다.

프로슈머는 소비자이면서 생산 영역에서도 활동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되는 덴 지금까지 두 가지 방식이 주로 작용해왔다. 하나는 소비자인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충분히 커져 프로슈머가 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업체에 직접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추고 생산업체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면서 프로슈머가 되는 방법이다. 

위에서 언급한 21세기 클로드의 사례는 전자에 속한다. 올 5월 13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 다룬 삼성전자 ‘케이샵 프로젝트’처럼 오픈 소스 과정에 참여하는 개발자들은 후자의 범주에 속하는 프로슈머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어떤 경우든 IT 기술의 발달로 세상의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나타난다.

 

‘21세기 프로슈머’의 또 다른 영역, 크리슈머

최근 프로슈머는 또 다른 함의(含意)를 갖기 시작했다. ‘생산 과정에 영향을 주는 소비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인 사람’이란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프로슈머는 ‘크리슈머(cresumer)’란 신조어로도 표현된다. 크리슈머란 ‘창조하다(create)’와 ‘소비자(consumer)’를 뜻하는 영단어의 합성어다. 풀어 설명하면 ‘창조하는 소비자’란 뜻이다.

크리슈머는 상품 자체를 만들거나 특정 상품에 덧붙일 만한 가치적 속성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물론 적정 이윤이 생기도록 기획하지만 ‘무한 이윤 추구’보다 ‘나와 타인의 삶에 의미 부여하기’를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기존 생산자(기업)와 그 성격이 다소 다르다. 생산규모도 수작업으로 가능한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물건을 만들어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소비자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오늘날 크리슈머들은 작은 공방 형태로 생산 작업을 수행하는, 프로슈머보다 적극적 형태의 소비자다 ▲오늘날 크리슈머들은 작은 공방 형태로 생산 작업을 수행하는, 프로슈머보다 적극적 형태의 소비자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IT 환경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런 트렌드의 형성을 돕고 있다. 미국에 베이스를 둔 ‘킥스타터(kickstarter)’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대표적 사례다. 이곳에선 ‘내 아이디어로 가치를 창출해 세상에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뜻이 있지만 자본이나 기술이 충분치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를 프로젝트화(化)해 온라인상에서 모금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런가 하면 국내 사이트 ‘메이크(maque)’는 소비자 입장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산업에 연결시켜주는 공간이다.

물론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크고 작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채널이 존재한다. 소비자는 이를 통해 아주 작은 목소리도 호소력만 충분하다면 널리, 그리고 멀리까지 전달할 수 있다. 결국 이 같은 IT 환경이 소비자의 ‘힘’을 키워주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전 시대엔 특정 세력 형성의 최대 변수가 단연 ‘물리적 거리’였다. 하지만 이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덕에 서로 뜻이나 취향만 맞는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공감대를 형성하며 온라인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됐다.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현대 소비자의 힘을 한층 키워주는 강력한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현대 소비자의 힘을 한층 키워주는 강력한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공방 거리는 크리슈머들의 ‘오프라인 구심점’

이런 취향공동체에 ‘오프라인 구심점’이 있다면 소통은 한층 활성화된다. 최근 홍익대학교 앞과 서촌, 방배동, 그리고 서울숲 인근 등 서울 시내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일명 ‘공방(workshop) 거리’는 그런 가능성을 방증한다. 공방이란 가죽공예∙베이킹∙수제가구 등 자신이 필요한 제품을 직접 만들고 관련 기술도 배우는 공간을 말한다. 비록 생산량은 적지만 인터넷을 통해 먼 곳에 있는 소비자에게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특성을 살린 이들 공방은 기술과 감각을 겸비한 소자본 창업자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졌던 조용한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부수 효과’도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김현진 제일기획 DNA센터 마케팅 플래너의 분석도 크리슈머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든다. “온라인으로 제품 도면을 공유해 3D 인쇄 등으로 실제 제품까지 생산하는 생산자가 실제로 여럿 활동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등 거의 모든 생산 공정에서 세계 각국 사람들이 보유한 정보가 고루 활용되죠. 물론 그 과정에서 인터넷 기술과 모바일 산업 발달이 톡톡히 한몫하고 있고요. 음식 레시피에서부터 셀프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생활 정보가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매개로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유, 확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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