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잡는 돌격대’부터 ‘유전자도둑 체포술’까지…‘삼미술’에 모인 미래기술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연구, 마음껏 해보라’ 판을 깔아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암세포로 다른 암세포를 잡는 ‘돌격대’ 연구 △고혈압 같은 질환과 소금의 상관관계 등 우리 몸에 밀접한 연구부터 △‘유전자 도둑’ 잡기 프로젝트 △말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센서까지 명칭만 봐도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과제들이 쏟아졌다. 올해 상반기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삼미술)이 선정한 44개 연구과제 얘기다. 5~10년 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과제들은 어떤 게 있을까. ‘뉴스룸 타임머신’을 타고, 상상만으로 흥미진진한 미래기술의 ‘보물창고’ 속으로 뛰어들어보자.
‘암은 손상된 DNA로부터 발생한다’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암’. 암은 DNA의 손상에서부터 출발한다. <크로마틴 구조에서 DNA 손상 복구 메커니즘(연구책임자 이자일 UNIST 교수)> 과제는 방사선, 바이러스 등 다양한 외부 영향에 의해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과정을 연구한다.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해 암 예방에 활용한다면, 인류의 난제로 여겨지는 암 치료와 예방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뇌가 냄새를 맡는다고?
후각이 코가 아닌 뇌에도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어봤는가. 심지어 냄새를 느끼게 하는 후각수용체 중 상당 부분은 심장, 근육, 피부 등 몸 속의 여러 조직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런 후각수용체들은 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뇌에서 후각수용체의 작용기전 연구(서울대 최희정 교수)> 과제는 뇌에서 발견된 후각수용체의 역할과 기능을 파헤쳐, 질병과 관계 등을 규명할 예정이다.
왜 ‘짠맛’에 이리도 끌리나
과도한 나트륨 섭취 때문에 발생하는 성인병은 현대인의 골칫덩어리 중 하나. <소금 식욕의 새로운 기전연구(손종우 KAIST 교수)>는 나트륨 섭취를 조절할 수 있는 신비로운 메커니즘을 밝힌다. 이로써 고혈압 등 질환의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한다.
꽃이 피고 지는 시간, ‘꽃시계’ 연구
지금부터 250여 년 전, 스웨덴 생물학자인 칼 본 린네(Carl von Linne) 박사는 여러 꽃이 봉우리를 열고 닫는 시간을 세밀히 들여다봤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품종에 따른 꽃의 개화 시간을 정리한 게 바로 ‘꽃 시계’. <린네 꽃 시계의 유전적 작동원리 규명(KAIST 김상규 교수)> 과제는 꽃이 피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분자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다. 새벽에 폈다가 오후 시간이면 지는 나팔꽃을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번거로운 휴대형 충전기, 사라질까
현대인의 일상에서 스마트폰 배터리 방전만큼 불편한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원자수준 입계 편석 조절과 고주파수 초저손실 다결정 유전소재(정성윤 KAIST 교수)> 과제는 이런 불편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주파수 의존성이 거의 없고, 1% 이하의 유전손실을 갖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다양한 공간에서 주변 사물을 활용해 간편히 충전할 수 있는 차세대 무선충전기와 전력전송용 적층세라믹콘덴서 소재의 탄생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백만스물둘”, 오래가는 리튬황전지
리튬황전지는 현재 많이 쓰는 리튬이온전지보다 3~5배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가진다. 생산비용 역시 높지 않아 모바일기기, 자동차 등 다양한 배터리에 활용할 수 있다. <고성능 리튬-황 전지 개발(선양국 한양대 교수)>은 황화리튬-그래핀 복합체의 구조 변형을 바탕으로 황화리튬의 함량을 극대화하는 과제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산업에서 무궁무진한 활용이 기대되는 고용량 리튬황전지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중금속도 걸러주는 수질정화 필터
대기오염, 가뭄, 수질 악화···. 우리가 먹고 사용할 물의 양과 질이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한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멀티오염물 고속제거용 멀티스케일 올인원 멤브레인(정현석 성균관대 교수)> 과제는 중금속, 독성유기물 등 다양한 수질 오염원을 한 번에 정화할 수 있는 ‘신개념 필터’(멤브레인, 일종의 차단 막)에 대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보석 ‘오팔’의 규칙적 구조와 정반대 특징을 보여, 일명 ‘역오팔’로 불리는 구조체를 연구한다. 이를 바탕으로 오염물질 처리 효율이 높고, 소형화도 할 수 있는, 멤브레인과 수질처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바다에서 캐는 금’
<농축수가 생성되지 않는 전기화학반응기반 담수화 장치(곽노균 한양대 교수)>는 세계의 이슈인 물 부족 현상에 단비가 될 수 있다. 바닷물을 정화해 깨끗한 물로 바꾸는 보통의 해수담수화 과정에선 염분 포함 농축수를 소금으로 재결정화하는데, 이 과정은 에너지 소비량이 높다. 곽 교수는 바닷물의 염분 이온들을 이용해 고부가가치 무기 합금을 만드는 새로운 개념의 해수담수화 장치를 연구한다. 고가의 합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도 줄이고 깨끗한 물도 얻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이제이’, 암세포는 암세포로 잡는다
암세포 중 일부를 오히려 다른 암세포를 잡는 돌격대로 탈바꿈시킨다? 이 흥미진진한 연구는 바로 <엑소좀 기반 세포교차분화 기술을 활용한 항암면역치료 기법 개발(김선화 KIST 박사)> 프로젝트. 암세포 주변에서 암을 키우고 전이시키는 세포를, 오히려 암을 공격하는 세포로 변형시켜 암을 치료하려는 과제다. ‘세포 아바타’로 알려진 엑소좀을 이용해 기존 30% 이하의 낮은 변형 효율을 100% 가까이 끌어올려, 항암면역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핵심 포인트다.
유전자 도둑, 꼼짝마!
유전자, 단백질, 세포 등 생물자원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누군가 내 유전자를 훔쳐 나도 모르게 복제한다면? <생물자원의 도난과 오용방지를 위한 차세대 유전적 생물봉쇄 시스템(이정욱 포스텍 교수)> 과제가 이를 막아줄 수 있다. 생물 자원이 도난당하면 세포 스스로 사멸하게 만들거나 유전자 정보를 암호화해 정보가 유출되는 걸 방지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소리 없는 대화’
‘말소리 없는 대화’를 구현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침묵형 의사소통을 위한 고성능 피부 부착형 스트레인 게이지 센서 개발과 딥러닝 기반의 스트레인-단어 변환 알고리즘 개발(유기준 연세대 교수)>은 입 주변과 성대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와, 딥러닝 기반의 단어 변환 알고리즘에 대한 것. 청각·언어 장애인의 의사소통은 물론 군·경용 무선장비 등 발성이 제한된 다양한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 이제는 ‘양보다 질’
데이터의 양은 무조건 많은 게 좋을까? <초대용량 데이터 분석을 위한 새로운 비점근적 확률 밀도 기반 최근접 이웃 예측 알고리즘의 개발(노영균 한양대 교수)> 과제는 이에 반기를 든다. 데이터가 많지 않아도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수학 알고리즘을 밝히는 프로젝트다. 기계학습(머신러닝) 분야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딥러닝을 대체할 방법론을 도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초소형 LED가 사람 뇌를 들여다본다’
뇌에 아주 작은 발광다이오드(LED)를 투입시킨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게 가능해질까? <최소 침습 LED 유도 피드백 맞춤 뇌종양 치료 기술개발(김광명 KIST 박사)> 과제는 외과 수술, 방사선 수술, 약물 치료 등이 어려운 뇌종양 치료에 초소형 LED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항암제와 약물방출 조절장치, 센서가 결합된 LED 유도 치료시스템으로 뇌종양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정밀하게 치료를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삼성전자는 2013년 8월부터 지금까지 삼미술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517개에 이르는 과제에 6,667억원을 지원했다. 삼미술에는 그야말로 미래기술 보물창고라 할만큼 흥미롭고, 잠재력도 어마어마한 기술들이 포함돼 있다. 회사는 2023년까지 추가 과제를 선정하며, 총 1조5,000억원을 이러한 ‘보물’들을 발굴하는데 투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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