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이 선사하는 ‘듣지 않을 자유’, 노이즈 캔슬링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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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미국 정부는 어느 음향 업체에 기술 개발을 의뢰했다. 기술의 목표는 비행기 조종사와 나사(NASA)의 우주인들이 제트 엔진과 로켓 엔진 소음에도 원활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 공적 용도로 개발된 이 기술은 1986년 군용 헤드셋에 처음 적용된 것을 시작으로 점차 그 사용 범위를 넓혀갔다. 이 기술이 바로 사람들이 일상 속 소음을 벗어나 미디어 사운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이다.

 

소리 파동의 특성을 활용한 기술, ‘노이즈 캔슬링’

버스에서 음악 듣는 영성, 우상단에 노이즈 캔슬링 이미지 추가

이어폰을 착용하면 귀의 바깥 통로가 어느 정도 차단된다. 때문에 착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외부 소음에 대한 노출이 줄어든다. 그러나 귀 내부를 완벽히 봉쇄하지 않는 이상 약간의 소음은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새어 들어오는 소음을 붙잡아 거르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소리의 파동, 즉 음파가 귀 내부까지 전달되는 과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물질의 떨림에서 발생한 음파는 매개체를 통해 퍼져 나간다. 음파가 먼 거리를 지나 사람의 귀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매개체 덕분. ‘매질’이라고도 불리는 이 매개체의 대표적인 예시는 사람의 주변에 늘 존재하는 공기다. 일상에서 문제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우주에서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것도 공기의 유무 차이 때문이다.

노이즈 캔슬링은 이런 음파와 매질의 특성을 활용했다. 소음을 여과하는 방법에 따라 노이즈 캔슬링의 종류도 나뉜다. 소음과 비슷한 파동을 일으켜 상쇄 효과를 발생시키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ctive Noise Canceling, ANC)과 매질을 활용해 소음의 유입을 막는 패시브 노이즈 캔슬링(Passive Noise Canceling, PNC)이 대표적인 노이즈 캔슬링의 두 가지 방식이다.

 

파동과 파동이 만나 발생하는 ‘상쇄’,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ctive Noise Canceling)

음악 듣는 남성의 모습,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NC) 주변 소음과 상쇄 파동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처럼, 파동은 다른 파동으로 상쇄할 수 있다. 음파는 위아래로 요동치며 옆으로 흐르는 모양새를 가졌는데, 위로 가장 높이 솟았을 때를 ‘마루’, 가장 낮을 때를 ‘골’이라고 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폭이 같은 두 파동이 만나면 서로의 마루와 골이 부딪히게 되고, 상쇄 원리에 의해 파동은 0에 가까워진다.

ANC는 이런 ‘상쇄 간섭’의 원리를 사용한다. 이어폰 내부에 탑재된 외부 마이크를 통해 소음을 수집하고, 수집된 소리는 내부 회로로 전달된다. 내부 회로에서는 수집된 소음을 분석해서 비슷하지만 방향은 반대로 흐르는 파동을 만들어 내보낸다. 다시 말해 외부 소음의 파동과 방향만 반대인 파동이 만나 서로를 상쇄 시켜 소음이 사라지게 되는 것.

소리를 수집하고 분석해 대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ANC는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소음 처리가 강점이다. 이미 한번 분석한 소음과 비슷한 소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 적절한 타이밍에 역 파장을 내보낼 수 있기 때문. 따라서 비행기나 지하철처럼 비슷한 소음이 지속되는 장소에서 효과적인 상쇄가 가능하다. 반면 사람 말소리와 같이 예측이 어렵고 불규칙한 소음은 미리 대비하기 어려워 효율이 저하되기도 한다.

또한 고음보다는 저음 상쇄에 강점을 보인다. 내부 회로가 소음을 분석해 과정에는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시간이 길어져 외부 소리의 유입과 대응 과정 사이의 시차가 발생하면 상쇄 효과에도 영향을 끼친다. 대림대학교 음향공학과 김도헌 교수는 “상대적으로 파장이 긴 저음의 경우 마루와 골의 간격이 멀어 약간의 시차가 있어도 상쇄가 된다. 반면, 파장이 짧은 고음은 마루와 골의 간격이 짧아 약간의 시차에도 상쇄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거나 오히려 더 증폭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소음 원천 차단, 패시브 노이즈 캔슬링(Passive Noise Canceling)

헤드폰으로 음악 듣는 여성의 모습, 패시브 노이즈 캔슬링(PNC) 주변소음 차단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릴 때, 사람들은 귀를 막는 제스처를 취한다. 소리를 차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공기를 통해 귀까지 음파가 옮겨지는데, 그 사이에 장애물이 있다면 소리는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 물속에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도 공기와 귀 사이 공간을 물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PNC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귀 주변을 둘러싸는 형태로 제작하거나,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스펀지를 장착하는 방식이다. 귀 전반을 덮는 오버이어 구조의 헤드셋이나 귀 입구를 완전히 막는 인이어가 PNC 방식의 대표적인 예시로 꼽힌다.

소음 상쇄를 위한 마이크나 분석 회로가 필요한 ANC와 달리, 원리가 간단한 PNC는 제작도 훨씬 용이하다. 따라서 가격 측면에서 ANC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귀 형태에 잘 맞게 만들었다면 외부 소리를 아예 차단할 수 있어 오히려 ANC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기도 한다. 다만 실질적으로 귀를 막는 형태인 탓에 착용 시 불편함을 느끼는 사용자도 있다.

 

‘안전이 우선’ 올바른 노이즈 캔슬링 활용법

적용된 노이즈 캔슬링 기술뿐만 아니라 이어폰의 형태도 소음 차단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귀 내부까지 막는 커널형은 소음 차단 효율이 오픈형에 비해 높아, 그동안 대부분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커널형으로 출시됐다. 귀에 걸치는 오픈형은 귀 입구를 완전히 막지 않아 외부 소리도 어느 정도 유입되기 때문. 지금까지는 오픈형 이어폰에는 노이즈 캔슬링이 탑재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삼성전자가 8월 5일 공개한 갤럭시 버즈 라이브는 오픈형 무선 이어폰이면서 ANC 방식을 채택해 사용자들의 선택지를 넓혔다.

갤럭시 버즈 라이브 삼색 흰색 브론즈 블랙

그러나 사운드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돕는 ‘노이즈 캔슬링’의 강점이 때로는 주변의 위험 신호를 놓치게 만드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대림대학교 음향공학과 김도헌 교수는 “노이즈 캔슬링 기법이 적용된 이어폰을 착용하면 주변 소음을 모두 차단하기 때문에 위험 상황을 인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폰 속 음량은 차량 경적음과 같은 70~80dBspl[1] 수준이지만,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는 귀와 훨씬 가깝고 실제로 몰입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 소리에 둔감해지기 쉽다. 여기에 ANC 기능을 활성화하면, 외부 소음은 30dB 정도 줄어들고 내부의 음악 소리는 70~80dBspl을 유지하게 되면서 외부 위험을 감지하기는 훨씬 더 어려워진다.

노이즈 캔슬링의 이런 양면성 때문에,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더욱 안전하고 스마트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어폰을 실내에서 주로 사용한다면, 사운드 감상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완벽한 소음 차단 효과를 갖춘 이어폰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노래를 들으면서 조깅을 하는 등 야외 활동 중 사용할 경우가 많다면 바깥의 위험 신호들을 놓치지 않도록 노이즈 캔슬링 사용을 자제하거나, 바깥소리가 조금 들리더라도 적정한 수준의 노이즈 캔슬링이 적용된 이어폰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1]원래 dB(데시벨)은 기준이 되는 수치와 크기 차이를 보여주는 상대값이지만, 소리의 단위로 사용할 때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를 0dB로 설정해 절대값(dBspl, dB+sound pressure level)으로 사용한다. 즉, 사람의 일반적인 대화 소리와 차량 경적 소리의 크기 차이를 표현할 때와 차량 경적 소리의 절대적인 크기를 보여줄 때 모두 dB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후자의 경우 spl 표기가 생략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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