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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알고 보면 족보 있는 말, “고기나 구워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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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알고 보면 족보 있는 말,

박찬일 셰프


 

구글에서 ‘야연(野宴)’을 검색하면 재밌는 우리 옛 그림이 두 장 나온다. 글자 그대로 ‘야외 연회’지만 등장인물은 각기 다르다. 왼쪽 그림에선 기생이 함께 앉아 있고 오른쪽 그림엔 남자만 다섯 등장한다.

 '야연(野宴)'이라는 제목의 우리 옛 그림 두 장입니다.
▲‘야연(野宴)’, 작자미상, 19세기(추정)<사진 왼쪽> ‘야연(野宴)’, 성협풍속화첩(成夾風俗畵帖)] 수록 제작연도 미상(그림 출처: 국립중앙박물관/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옛 그림에서 엿보이는 양반들의 ‘난로회’ 문화

옷차림만 보면 양반이 분명한데 고기 굽는 짐을 직접 지고 산에 왔을 리 없다. 그림 너머 어디선가 (짐을 지고 왔을) 노비가 이 광경을 보며 침 흘리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문사(文士) 수주(樹州) 변영로(1898~1961)의 개인적 음주 기록인 ‘명정 40년(酩酊四十年)’엔 쇠고기와 술을 지게에 싣고 하인에게 지워 산에 올라 한 잔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시 위 오른쪽 그림 이야기. 요즘은 볕 좋은 봄가을이나 여름 휴가철에 고기를 굽는 데 반해 그림 속 날씨는 (등장인물의 차림새로 볼 때) 꽤 쌀쌀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연회의 명칭은 일명 ‘난로회’였다.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 불도 쬐고 고기도 구워 먹던 관습인 셈이다. 맨 오른쪽 남자는 연소자(年少者)다. 고개를 돌린 채 잔을 꺾고 있다. 바위를 등지고 앉아 고기를 굽는 이가 이 연회의 호스트(host)인 듯하다. 하인이나 기생이 따로 있으면 모를까, 남자들끼리 구울 땐 잔치를 연 사람이 고기 굽는 권한을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양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황제나 왕은 자신의 세(勢)를 과시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때 칼로 직접 고기를 잘라 참석자에게 나눠주곤 했다. 칼에서 나오는 권력이 꼭 ‘피(血)를 보는’ 형태였던 건 아니다. 고기를 나눠주는 행위는 생명에 대한 담보, 복종과 보호를 의미했다.

앞쪽엔 음식 담는 주발과 대접이 보인다. 오른쪽에 있는 건 아마도 숯일 것이다. 숯으로 고기를 굽던 문화가 얼마나 오래된 건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기 굽는 이와 그 옆 사람이 들고 있는 젓가락은 언뜻 봐도 반듯하지 않다. 젓가락을 미처 챙겨오지 않은 걸까, 우리가 산에서 종종 그러는 것처럼 아무 나뭇가지나 뚝 꺾어 젓가락 대용으로 쓰는 듯하다.

 

가운데가 푹 패인 벙거짓골에 쇠고기를 굽다

이번엔 사실상 그림의 주인공인 화로를 보자. 옛날엔 고기 굽고 지지는 데 사용된 전골냄비를 가리켜 ‘벙거짓골’이라고 불렀다. 남한에선 오래전 사어(死語)가 됐지만 북한에선 아직도 쓰고 있다. 생김새는 문자 그대로 벙거지를 엎어놓은 형국이다. 사실 이 냄비는 상당한 논란을 담고 있다. 그 종류도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여부에 관한 것에서부터 ‘일본 스키야키(전골 요리)의 원형이다’란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쨌든 이 불판은 아주 특이하다. 아래쪽에 숯을 놓고 가열하는 방식인데 가운데 깊은 부분이 있다. 짐작하건대 고기 국물이 떨어지는 공간일 것이다. 혹자는 이곳에 아예 육수를 담가둔 채 고기를 구웠을 것, 이라고도 말한다. 과연 고기 국물이 떨어진, 우묵하게 생긴 홈에 주발 속 밥을 넣고 비벼(혹은 말아) 먹었을까? 그림만 봐선 여전히 완벽한 답을 알기 어렵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런 형태의 불판이 한국에 들어온 건 18세기 중반이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또 다른 문사 신광하(1729~1796)의 시 ‘벙거지골에 쇠고기를 굽다’ 속 한 구절(“온 나라에 유행하는 이 요리법은 근자<近者>에 여진에서 들어온 풍속”)이 그 근거다.

바베큐화로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전형적 불고기판은 전후(戰後)에 생겨난 것이다. 미식가로 잘 알려진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 선생은 자신의 수필에서 이 불판이 미군부대 물자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드럼통을 잘라 구멍을 낸 후 이를 고기 굽는 판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숭숭 뚫린 구멍으로 숯불의 기운이 들어와 고기가 복사열을 받도록 하되, 전체적으론 넓은 불판을 통해 (고기가 직접 익을 수 있도록) 전도열을 얻고자 했다는 것이다. 국물이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를 잘 익히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서울식 불고기는 국물이 많아 불이 직접 닿는 석쇠에 구울 수 없다. 국물이 떨어지면서 불이 꺼질 뿐 아니라 굽는 과정에서 그을음이 너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지금의 불고기판은 그런 한계를 적절히 극복하며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일종의 ‘절충점’이었다. 반면, 언양(울산)∙광양(전남) 등 남쪽 지방에서 유명한 불고기는 국물이 없는 형태여서 석쇠에 구워도 문제가 없다. 같은 이유로 밥을 말아 먹기도 어렵다. 서울 역전회관(마포구 염리동 소재)의 대표 메뉴 ‘바싹불고기’가 이런 형태다.

불고기가 하얀 접시 위에 담겨있습니다.

 

‘역축’과 ‘먹거리’ 사이 기로에 놓인 조선 소

조선은 농업국가였다. 트랙터도, 경운기도 없던 시절이라 당시 밭 가는 일은 온전히 소(牛)의 몫이었다. 힘이 좋은 소는 풍성한 수확을 보장했다. ‘고기는 암소’라지만 역축(役畜)으로 따지면 황소만 한 게 없었다. 일단 수컷인 만큼 힘이 암소보다 두 배는 뛰어났다. 새끼 배고 건사하느라 바쁜 암소를 농사일에 쓰기가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조선왕조는 소 잡는 일을 멀리했다. 왕이 직접 쇠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온 나라에 영(令)을 내리는가 하면, 이를 어긴 이는 엄중한 처벌로 다스렸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조선인은 쇠고기라면 사족을 못 썼다. 임금의 명령을 어겨가면서까지 몰래 소를 잡아 먹었다. (가장 좋은 음식만 골라 올리는 걸로 알려진) 제사상에도 쇠고기 산적이 빠지지 않았다. 산적용 고기론 대개 허리 쪽 살이나 설도 등이 쓰였다. 하나같이 가장 맛있고 부드러운 부위였다. 우리 민족이 늘 외쳤던 ‘이밥(흰 쌀밥)에 고깃국’ 속 고기도 쇠고기를 뜻한다. (‘이밥에 고깃국’은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연두교시 때마다 언급한 구절로 유명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비슷한 발언을 남긴 걸로 알려져 있다.)

하얀 그릇에 담긴 고깃국의 사진입니다.

얼마 전 부산의 화교사(華僑史)에 관한 책을 읽으며 재밌는 장면을 발견했다. 임오군란(1882) 이후 중국은 조선과 무역협정을 맺었다. 당시 중국 측 교역품은 비단, 우리 측 교역품은 소가죽이었다. 소를 얼마나 많이 잡아 먹었으면 대(對)중국 최고 수출 품목으로 소가죽이 올라왔겠는가!

조선 역사를 살펴보면 성균관과 쇠고기에 관한 기록도 등장한다. 지금의 성균관대학교 일대를 당시 ‘반촌’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에 ‘소 잡는 권리’를 지닌 반인(泮人)이 터를 짓고 살았다. 성균관 유생은 쇠고기 먹을 특권이 있었고 (당연히 왕명과 국법에 따라) 이들에게 쇠고기를 공급하는 자들이 마을을 이루며 생활했던 것이다. 유교 국가인 조선과 대표 유학자 격인 왕이 성균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축도 모자라는 판에 학생에게 쇠고기를 먹이고, 그걸 잡아주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마을이 있었으니 말이다.

 

쇠고기 등급제 논란의 해법, 열쇠는 역사에?

부위 별 소고기와 야채가 접시에 담겨 있습니다.

쇠고기 등급제가 조만간 달라질 모양이다. ‘지방 함유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 등급 분류에 대한 문제 지적이 이어진 데 따른 결과다. 그 이면엔 고농도 곡물로 소를 비육(肥育,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운동을 제한하거나 질 좋은 사료를 먹여 가축을 살찌게 기르는 일)하고, 소의 운동을 제한해 일명 ‘마블링(marbling, 근육 내 지방이 대리석 무늬처럼 박혀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데 대한 반감이 숨어 있다. 등급제 체계를 바꾼다면 최선의 대안은 뭘까? 한때 자타공인 ‘쇠고기 왕국’이었던 조선에서 좋은 소를 어떻게 구별했는지 참고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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