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뉴스 창궐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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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레스(Veles). 발칸반도 동북쪽 공화국 마케도니아에 위치한 인구 5만5000명의 소도시다. 자그마한 강줄기를 앞으로 두고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동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허름한 거리와 엇비슷한 주택이 늘어서 있고 낡은 카페도 간간이 눈에 띈다. 하지만 카페 안 풍경은 그야말로 ‘반전’이다.

 

마케도니아 소도시 벨레스서 터진 ‘디지털 금광맥’

대개 이런 카페에선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웬만큼 있는 노년층 몇몇이 커피나 맥주를 홀짝이며 시간을 때우게 마련이다. 하지만 벨레스의 카페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아니, ‘젊다’기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기껏해야 10대 후반, 아무리 봐도 20대 초반에 불과한 청(소)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들이 하나같이 명품 브랜드 옷과 시계를 걸친 채 고가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단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뿐 아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관찰한다면 이들이 ‘명칭은 그럴듯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표를 매단’ 칵테일을 끊임없이 주문해 마시고 있단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디지털 골드 러시 인 벨레스(Digital Gold Rush in Veles)!’ 이들이 바로 지난해 12월 중순, 전 세계 유수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가짜(fake) 뉴스’ 사건의 주인공이다.

한 카페에서 여러명이 삼성전자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인 지난해 여름 이후, 온라인 뉴스 공간에선 뚜렷한 흐름 하나가 감지됐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에 대해 호의적인, 반면 (트럼프의 경쟁자인)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에 대해선 악의적인 뉴스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같이 황당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히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유니버스폴리틱스’란 이름의 매체는 “프란체스코 교황, 가톨릭 교도를 향해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선언하다”란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다. 또 다른 매체 ‘프레시뉴스’는 “(클린턴 지지자로 알려진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트럼프 지지로 선회, 할리우드가 충격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뭔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이들 뉴스를 ‘뒷조사’하기 시작한 건 세계적 온라인 뉴스 미디어 ‘버즈피드(BuzzFeed)’, 그리고 영국 대표 언론사 ‘가디언(Guardian)’이었다. 이들이 각기 따로 파고든 조사의 결론은 동일했다. 친(親)트럼프 성향 뉴스의 진원지가 벨레스(의 동네 카페들)였단 사실이다. 실제로 벨레스에선 100개 이상의 웹사이트가 개설, 운영되고 있었다. 운영진은 대부분 이 마을에 거주하는 10대 후반 청소년이었다. 이들은 미국 극우파 보수 성향의 엉터리 뉴스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뒤지며 입맛에 맞는 글을 긁어다 적절히 짜깁기하고 윤색해 가짜 뉴스를 만들어냈다.

 

3억 美 민심, 이웃 나라 10대 장난에 농락 당하다

달러 돈 4개의 손이 태블릿을 가리키고 있는 만화 이미지

가짜 뉴스 생산을 통해 이들이 노린 건 돈, 즉 광고 수익이었다. 온라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높은 조회수는 고가의 광고 수익으로 직결된다. ‘벨레스 가짜 뉴스 제조 군단’의 표적은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길 바라지만 트럼프 개인의 자질은 반신반의하던” 미국 보수층이었다. 실제로 벨레스 청소년들이 창작해낸 ‘트럼프에게 유리한 뉴스’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지 1주일도 안 돼 수십 만 개의 ‘좋아요’를 획득했다.

구글의 광고 연결 엔진 ‘구글 애드센스(Google AdSense)’는 특정 웹페이지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면 자동으로 해당 페이지에 가장 비싼 광고를 배정한다. 결국 (트럼프에게 투표하고 싶은 자신의 결정이 그릇되지 않길 바라는) 미국인이 가짜 뉴스를 클릭할 때마다 (미국 동부에서 1만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벨레스 청소년들의 통장 잔고는 차곡차곡 채워졌다.

모든 전모가 밝혀진 후 서구 언론사들은 이 청소년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벨레스로 취재진을 급파했다. 익명을 전제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청소년들은 당당했다. “우린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어요. 지금껏 변변한 일자리 하나 없어 굶고 살았는데 (가짜 뉴스를 만들어 배포하는 일은) 잘하면 하루에도 수백 만 원씩 벌 수 있잖아요. 이 좋은 걸 누가 안 하겠어요?”

인터뷰에선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처음 만든 뉴스는 (힐러리의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즈의 좌파 성향에 관한 거였어요. 하지만 이내 알게 됐죠. 사람들이 더 많이 보는 건 트럼프 관련 뉴스란 사실을요.” 슬라브코 카디에브(Slavco Cadiev) 벨레스 시장은 한술 더 떴다. “우리 젊은이들이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뉴스’ 세상 그림자… 영어권서 특히 취약

페이크 뉴스란 말 그대로 사실이 아니라 거짓으로 날조된 내용으로 구성된 뉴스를 뜻한다. ‘(올바른) 정보’가 아니라 ‘거짓(혹은 역∙逆) 정보’를 전파하는 뉴스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페이크 뉴스는 풍자 뉴스나 모큐멘터리(mockumentary)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풍자 뉴스는 뉴스를 비틀어 보는 이를 웃게 함으로써 세태를 비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모큐멘터리는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다큐멘터리의 특징인 사실주의 기법을 극영화에 채택한 형태를 일컫는다. 이에 반해 페이크 뉴스는 진지하게, 그리고 다분히 고의적으로 읽는 이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믿게 해 잘못된 방향으로 판단을 유도한다. 이 과정을 통해 만든 이가 애초 의도한 특정 효과를 노린다. 이때 효과는 벨레스 사례에서처럼 돈(광고 수익)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종종 정치적 영향력이나 영업력 확대 등 다른 목적을 띠기도 한다.

태블릿,스마트폰에 뉴스라고 적혀있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선장 만화 그림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브라질 대통령의 재선(2014)과 탄핵(2016) 과정엔 페이크 뉴스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지난해 4월 영국 공영 방송 BBC 브라질지국의 보도에 따르면 호세프 탄핵 과정과 관련,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뉴스 가운데 60%는 가짜였다.

지난 2015년 서방 언론의 공분을 샀던 일명 ‘트롤팜(Troll Farm)’ 사건도 페이크 뉴스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의 측근 중 한 명이 별도 팀을 꾸려 페이크 뉴스를 양산해냈단 게 사건의 요지다. (트롤은 서양 민담에 등장하는 못된 괴물의 이름이다.) 트롤팜의 결성 목적은 미국 등 서구 주요 국가와 관련,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국제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데 있었다.

2015년 12월 대만 영자 매체 ‘차이나포스트(The China Post)’는 당시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만 유명 관광지 시먼수력발전소(石門水庫, Shihmen Reservoir)의 조명 축제 비디오 영상을 가리켜 “날조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역 상인들이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영상을 조작, 유포했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좌파 정당 ‘오성당(Five Star Movement)’은 러시아 지원을 받아 페이크 뉴스 유포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의료 상담 웹사이트 ‘라 푸치나(La Fucina)’는 음모론에 가까운 예방주사 반대론을 펴는 동시에 민간 의료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2017년 2월 현재 페이크 뉴스 주요 생산국으로 손꼽히는 나라엔 마케도니아와 러시아 외에 루마니아가 있다. 이들 국가에서 생성된 페이크 뉴스는 인터넷 망을 타고 독일∙인도네시아∙필리핀∙스웨덴∙미얀마∙미국 등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쉬워진 뉴스 유포가 발단… 정부∙기업 ‘전쟁’ 선포

사실 페이크 뉴스가 범람하게 된 데엔 쉬워진 뉴스 소비가 단단히 한몫했다. 물론 오늘날의 그것과 개념이 좀 다르긴 하지만 과거에도 페이크 뉴스는 존재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기다(死諸葛走生仲達)’[1]로 요약되는 중국 고전 ‘삼국지’ 속 일화는 요즘도 페이크 뉴스의 영향력을 암시하는 맥락에 종종 쓰인다. 그뿐 아니다. 미국 자본주의가 발전을 거듭했던 19세기 후반 ‘도금시대(Gilded Age)’에도 돈벌이만 되면 악의적 중상과 날조를 서슴지 않는 일명 ‘옐로페이퍼(yellow paper)’가 판을 쳤다. 이후에도 소소한 비양심적 언론을 중심으로 사실(fact)과 허위(fake)가 마구 뒤섞인 뉴스는 끝도 없이 쏟아졌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페이크 뉴스가 문제로 떠오르는 건 그 영향력의 규모와 차원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불특정 다수에게 뉴스를 전파하려면 신문사∙인쇄소∙배급소∙서점∙라디오∙방송국 등 일정 규모 이상의 유통 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자연히 ‘뉴스의 생산과 보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따라 모든 언론은 자신이 하는 말에 엄중한 책임을 졌다(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FAKE NEWS Search

하지만 오늘날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벨레즈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검색 엔진을 이용할 줄만 알면 누구나 그럴듯한 영어 표제를 동원, 세계인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킬 수 있다. 이 경우, 뉴스 생산자를 찾아내기 어려울뿐더러 설사 찾았다 해도 해당 국가에 관련 처벌 규정이 없으면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순식간에 불어난 페이크 뉴스의 부작용 앞에 속수무책이던 전 세계 정부와 기업이 정신을 차린 건 불과 두어 개월 전이다. 지난해 11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선 11개 선진국 고위 관료들이 모인 가운데 ‘디스인포메이션 사이버 전쟁 퇴치’를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주요 안건(agenda)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페이크 뉴스에 대응하기’였다. 이 자리에서 미국∙독일∙스웨덴∙핀란드 등 10개국은 가짜 언론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센터 설립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별도로 유럽연합(EU)이나 구글∙페이스북 등의 글로벌 기업도 자체적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팩트체크(Factcheck)’ 폴리티팩트(Politifact) ‘스노프스닷컴(Snopes.com)’ 등 특정 콘텐츠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웹사이트도 앞다퉈 개설, 운영되고 있다.

 

난립하는 온라인 정보… ‘옥석’ 판별 능력 배양해야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옛말이 있다. 인터넷 세상, 특히 모바일 기기로 소비되는 온라인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현대 사회에서 페이크 뉴스 문제는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작용하는 인간 심리는 아주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후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모습만 바뀌어가며 같은 원리로 반복 재생된다. 그렇다면 페이크 뉴스 뒤엔 어떤 인간 심리가 숨어있을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일명 ‘감탄고토(甘呑苦吐)’ 심리다. 흔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해석되는 이 단어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입맛에 맞는 견해를 인정하고 싶어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최소 수십 만의 보수적 미국인이 바로 그 심리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새 벨레스 청소년 몇몇이 엮어 만든 가짜 뉴스의 후원자가 됐다.

또 하나, 권위 있는 사람의 의견을 따르려는 심리 역시 페이크 뉴스가 창궐하는 데 기여했다. 진화생물학계에 따르면 이 같은 심리는 인간을 비롯, 모든 고등동물에 공히 적용되는 특성이다. 특정 결정을 내릴 때 모든 정보를 전부 고려해 판단하려면 두뇌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 때문에 대개의 고등동물은 ‘가장 성공적인 개체의 선택’을 그대로 따라 하며 과도한 에너지 소모를 피한다. 예를 들어 붉은가슴울새 암컷은 봄에 짝짓기 할 때 ‘무리에서 가장 새끼를 많이 낳은 암컷이 선택한 수컷’과 교미하려 앞다퉈 경쟁한다.

삼성전자 노트북과 커피잔

인터넷이 일상화됐다곤 하지만 아직 이 문화에 익숙지 않은 기성세대 중 일부는 그럴듯해 보이는 웹사이트에서 나온 말이면 덮어놓고 신뢰한다. 사실관계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권위 있어 보이는’ 매체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페이크 뉴스는 바로 이런 온라인 정보 취약 계층의 허점을 노린다. 이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날조해 제공하면 곧바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비양심적 사이버 범죄 집단의 은행 계좌 잔고는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할 게 분명하다.

개중 다행스러운 건 어린 세대일수록 온라인 정보에 ‘덜’ 취약하단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14일 삼성전자 뉴스룸은 스페셜 리포트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_교육 편’을 통해 디지털 시대가 바꾸는 교육을 집중 조명했었다. 이 글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인터넷 세상이 이미 익숙한 어린이와 청소년일수록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온라인 정보의 옥석을 구분할 줄 안다. 그리고 그 능력은 피교육자 연령이 어릴수록 점점 더 완성돼간다. 가짜 뉴스란 ‘그림자’를 내리누를 ‘빛’을 좀 더 갖게 된달까? 세상 모든 일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지만 빛이 강해지면 그에 비례해 그림자는 옅어지고 종국엔 사라질 테니 말이다.


[1] 제갈량이 지혜로운 계략을 발휘해 자신의 사후에도 적장 사마중달을 물리친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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