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드론∙인공지능… ‘21세기 IT 걸작’을 만든 사람들
IT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10년 전, 2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술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인류의 삶을 전면적으로 바꿔놓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어느 날 갑자기’는 사실과 다르다. 모든 혁신적 기술은 과거 어느 순간, 누군가가 품었던 꿈에서 비롯된 것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드론, 그리고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2016년 3월 현재 전 세계 IT 지도를 대표하는 첨단 기술들이다. 맨 처음 이 기술을 꿈꿨던 이는 누굴까? 단순한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그들의 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실현됐고, 또 세상을 바꾸기에 이르렀을까?
재런 래니어 X VR_현실과 가상 오가는 ‘천재형 보헤미안’
재런 래니어(Jaron Lanier, 57)는 VR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저술가∙미술가∙작곡가 등 여러 직업을 종횡무진하며 활약 중인 그는 VR의 대중화에 힘써온 인물이기도 하다. VR은 자칫 ‘실제가 아닌 현실’로 해석될 수 있지만 원래 의미는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가까우며 거의 현실 같은 효과를 지니는 현실’이다. 어원이 주는 인상 때문에 ‘현실보다 더 (이상에 가깝게) 아름다운 현실’이란 의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VR엔 “외롭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버티게 해준 상상의 힘이 보다 많은 이에게 전파되길 바랐던” 재런의 속마음이 반영돼 있다.
▲가상현실 기반 웨어러블 기기 '삼성 기어 VR'이 두려움 극복 수단으로 활용됐던 '비피어리스(#BeFearless)' 캠페인의 한 장면
1972년의 어느 날, 미국 남부 뉴멕시코주(州) 소재 작은 마을 메실라(Messila). 황량한 변두리 공터 한쪽, 낡고 초라한 텐트 앞에서 작은 체구의 소년 하나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소년은 추웠고 배가 고팠다. 무엇보다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원래부터 몽상가였던 아버지의 기행은 점점 더 심해졌다. 집세를 내지 못해 텐트를 치고 사는 형편이면서도 돈이 모일 때마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돔(dome)형 주택을 조금씩 완성해갔다.
열세 살 소년 재런은 이 모든 현실이 싫었다. 더울 땐 땀이 절로 흐르고 추울 땐 뼛속까지 얼어붙는 반(半)사막지대 외곽 텐트에 사는 처지도, 학교에 가기는커녕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일조차 호사스럽게 느껴지는 가난도, 함께 놀 친구 하나 변변히 사귀지 못한 채 외롭게 보내야 하는 시간도 지긋지긋했다. 가장 끔찍했던 건 “그저 남들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들을 향해 “너무 상식적이어서 뛰어난 데라곤 없다”는 구박을 일삼던 괴짜 아버지와 지내는 일이었다.
그 시절, 재런의 유일한 낙은 집 근처 나무 밑동에 기대 앉아 공상에 빠지는 거였다. 상상 속에서 그를 둘러싼 환경은 완벽했다. 푸른 숲을 병풍처럼 두른 도시, 네 벽이 반듯하게 설계된 집, 푸른 잔디 위에서 친구들과 맘껏 공을 차는 자신,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놓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들을 부르는 어머니….
재런은 중∙고교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10세 때까지 문화∙교양 수준이 높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그런지 또래보다 훨씬 조숙하고 영특했다. 그 시절, 재런을 만난 지식인은 하나같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재런은 14세 되던 해 뉴멕시코대 총장을 만나 “내가 이 학교에 장학금 받으며 입학해야 하는 이유”를 주장했고, 학교 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미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디지털 그래픽 학습법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접한 ‘컴퓨터 비주얼’ 세계는 그에게 어린 시절 나무 밑동에서의 공상을 떠올리게 했다.
▲세계 최초로 가상현실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 재런 래니어(사진 출처: 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20대 초반,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재런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가상현실 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마침내 VPL(Visual Programming Language)이란 회사를 차려 세계 최초로 가상현실 기술과 부대 장비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그는 다양한 경력을 거치며 VR 기술 개발∙홍보의 선구자로, 더 나아가 컴퓨터 예술가 겸 철학자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재런은 지난 2002년 제작된 톰 크루즈 주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의 시나리오 작성과 기계 소품 제작 작업에 참여했고, 200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을 작곡했다. 2013년 뉴욕타임스는 ‘올해 최고의 책’으로 재런의 저서 ‘누가 미래를 소유하는가(Who Owns the Future)?’를 선정했다. ‘타임’ 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그를 꼽았다.
“외롭다는 건 뭘 의미할까요?” 재런은 말한다. “전 오랜 시간에 걸쳐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왔습니다. 음악과 기술, 글쓰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말이죠. VR은 그 모든 걸 총체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현실의 확장이자 누구든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죠. 세상 모든 사람들과 보다 폭넓게 소통하기 위한 창구이기도 하고요.”
에이브러햄 카렘 X 드론_‘무인 전투용 비행기’ 향한 갈망
‘무인(無人) 비행체’를 의미하는 드론(drone)은 요즘에야 일반인에게도 꽤 친숙하지만 최초 발상에서부터 우여곡절을 유난히 많이 겪은 기술이다. 그리고 드론의 실용화에 공헌한 이를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누구나 이스라엘 출신 미국 항공기술자 에이브러햄 카렘(Abraham Karem, 80)을 떠올릴 것이다.
“온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는데 어느 순간, 저 아래 땅에서 희미한 불빛 덩어리가 시야에 들어오는 거야. 우린 무전을 주고받으며 목표물을 향해 접근해갔지….” 1951년 이스라엘 키부츠 공동체 내 작은 교실. 젊은 교사가 10여 명의 아이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유럽 연합군이 보유한 최고 사양의 공격용 폭격기 ‘랭커스터(Lancaster Bomber)’를 몰고 독일군과 싸운 무용담이었다. 아이들 중엔 작은 체구와 주근깨투성이 얼굴, 빛나는 눈을 지닌 한 소년이 끼어 있었다. 소년은 유난히 손에 땀을 쥐며 교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였다.
▲오늘날 급격히 대중화되며 적용 분야가 확장되고 있는 드론은 '전투용 항공기 대체물'로 처음 고안됐다
유태인이면서 성공한 바그다드 상인이었던 에이브러햄의 부모는 1951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어릴 때부터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던 에이브러햄은 공군 조종사 출신 교사의 영향으로 비행기에 매혹됐다.
19세 때 명문 이스라엘 테크니온공과대학교(Technion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 항공과에 입학한 그의 관심 분야 역시 전투용 항공기였다. 하지만 불가피한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공중전(空中戰)의 현실 앞에서 에이브러햄은 늘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실제로 공중전에선 고도로 훈련된 엘리트 조종사가 한 순간의 실수나 패배로 처참하게 죽게 마련이다. 키부츠에서 뜻 맞는 친구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자란 그에게 그건 용납하기 어려운 손실이었다.
자연히 그는 항공기 개발에 대한 꿈을 키우는 한편, ‘전투용 비행기는 무인비행체(UAV, Unmanned Aerial Vehicle)여야 한다’는 지론을 갖게 됐다. 당시엔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 망상처럼 보였지만 그는 자신이 이끄는 팀과 함께 UAV 개발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벌어진 욤 키푸르(Yom Kippur) 전쟁에 최초의 UAV를 투입하는 데 성공했다.
▲IT 기술자가 아니면서도 평생 드론 개발에 매진해온 에이브러햄 카렘은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977년 미국으로 이주한 에이브러햄은 무인항공기 제작 회사 설립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겼다. “난 차고(車庫) 딸린 집을 보고 싶은데 당신은 집 딸린 차고를 찾고 있군요.” 그는 아내의 핀잔을 무릅쓰고 2층 규모의 대형 창고가 있는 집을 구입했다. 그곳에서 모형 드론 제조용 재료를 구입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한편, 자신과 뜻을 함께할 협력자 물색에 골몰했다.
컴퓨터공학자 프랭크 페이스(Frank Pace, 67)는 에이브러햄이 세운 리딩 시스템즈(Leading Systems)에 입사한 일곱 번째 직원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종합 제조업체 브런스윅(Brunswick)의 국방용품 부서에서 일하던 그의 합류로 리딩 시스템즈의 컴퓨터 기반 드론 조종술 수준은 급격히 향상됐다. 이후 프랭크는 줄곧 에이브러햄 곁에서 드론 개발 계획을 함께해오고 있다.
1∙2호 드론인 ‘앨버트로스(Albatross)’와 ‘앰버(Amber)’에 이어 비행 시간이 현저하게 길어지고 운행도 정확해진 3호 드론이 완성될 무렵, 리딩 시스템즈는 파산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새로 개발된 드론의 탁월한 성능을 눈 여겨본 미국 국방 산업체 제너럴 아토믹스(General Atomics)가 에이브러햄과 그의 팀을 인수했다. 이 일로 위기를 넘긴 에이브러햄은 최초의 미 군용 UAV ‘프레데터(Predator)’ 개발에 성공했다.
“전 장난감 놀이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 제가 세상에 도움 될 새로운 일을 해낼 수 있었다면 그건 전부 ‘끊임없이 꿈을 꾸며 뭔가 뚝딱거려 만들어내는’ 제 곁의 개발자들 덕분입니다.” 정작 자신은 IT 기술자가 아니면서도 IT 산업이 빚은 걸작 중 하나인 드론 개발을 선도해온 에이브러햄의 성공 비결은 평생 소중히 여겨온 자신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데 있었다.
데미스 하사비스 X AI_계임계의 ‘자타공인 차일드 프로디지’
영단어 ‘차일드 프로디지(child prodig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신동(神童)’이 된다. 음악계로 치면 모차르트 정도 돼야 붙일 수 있는 영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알파고(AlphaGo)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41)는 어릴 적 ‘게임계의 차일드 프로디지’로 꽤나 명성을 날렸다.
▲데미스 하사비스(왼쪽 사진)와 영국 런던 소재 딥마인드 테크놀로지 본사 건물. 바로 이곳에서 '인공지능 바둑 로봇' 알파고가 탄생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데미스는 네 살 때 시작한 체스로 청소년 체스 부문 세계 2위에 올랐고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도 종류를 막론하고 세계 정상급 실력을 뽐냈다. 그랬던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인공지능의 수준을 확 바꾼 컴퓨터공학자 겸 뇌신경과학자가 됐을까?
영국 런던 북부 출신인 그는 그리스 키프로스섬 출신 아버지와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머리 쓰는’ 분야에서 발군의 천재성을 보인 그는 어떤 게임을 접하든 금세 익혀 최고 단계에 이르렀다. 학교 성적도 뛰어나 중∙고교 과정을 또래보다 2년 앞당겨 16세 때 졸업했고, 이듬해엔 영국 게임 개발사 불프로그(Bullfrog) 프로덕션에 입사해 전설적 게임 디자이너 피터 몰리노(Peter Molyneux)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 ‘테마파크(Theme Park)’를 개발했다. 23세 되던 해엔 대학(케임브리지대 컴퓨터공학 전공)을 수석 졸업한 후 세계적 두뇌 게임 경연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Mind Sports Olympiad)’에 처음으로 참가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남들은 평생 가도 한 번 이룰까 말까 한 성취를 줄줄이 달성한 그가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경험’으로 꼽는 건 컴퓨터와의 첫 만남이다. “일곱 살 때였나, 한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스펙트럼 ZX(1982년 영국 기업 싱클레어 리서치가 출시한 8비트 가정용 PC)를 샀어요. 마치 마법상자를 얻은 것 같았죠. 어린 맘에도 ‘자동차가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확장시키는 기계라면 컴퓨터는 인간의 지성을 확장시켜주는 기계’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간의 지성으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공지능이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사진 출처: 연합뉴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줄곧 ‘스펙트럼 ZX가 안겨준 깨달음’을 실천해가는 과정이었다. 게임 디자이너 겸 개발자로, 컴퓨터공학자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그는 2009년 런던대학에서 뇌신경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 스타트업인 딥마인드 테크놀로지(DeepMind Technologies, 이하 ‘딥마인드’)를 창업한 건 그 이듬해였다.
2014년, 구글이 딥마인드를 4억 파운드(약 6600억 원)에 인수하며 데미스 하사비스는 일약 전 세계 IT 업계와 경제학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올해 자신이 만든 알파고를 이세돌과 대국시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구글에 인수될 당시 75명이었던 딥마인드 인력은 몇 년 새 120명을 넘어섰다. 출신 국가도, 전공도 다르지만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드림팀’이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가 자신의 팀과 함께 진행하려는 ‘차기 프로젝트’는 뭘까? “현대 사회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과제 해결에 도전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린 지금껏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진보를 이뤄왔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많으니까요. 기후 변화와 거대 경제 침몰, 암∙알츠하이머 등의 난치병 치료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죠.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인간의 지성만으로 풀기엔 역부족인 이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데 인공지능이 반드시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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