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노트 5와 함께 떠난 캠퍼스 문학 기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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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과 영화관, 놀이공원을 쳇바퀴 돌듯 오가며 무료함을 느꼈다면? 가벼운 주머니로도 얼마든지 마음의 양식을 채울 수 있는 문학 기행에 나서보자. 목적지는 서울 소재 주요 대학 교정. 한국을 대표하는 세 시인의 얼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캠퍼스의 모습을 갤럭시 노트 5에 담았다.

 

#1. 조지훈x고려대_민족 문학 꿈꿨던 '순수 서정시인'

갤럭시 노트 5로 촬영한 고려대 정문 사진에 조지훈 시 '승무'의 한 구절을 S펜으로 직접 썼다.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갤럭시 노트 5로 촬영한 고려대 정문 사진에 조지훈 시 '승무'의 한 구절을 S펜으로 직접 썼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려대학교(성북구 안암로)다.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만나볼 작가는 조지훈(1920~1968). 그는 우리 전통시(詩)의 고유한 서정성을 현대시(詩)로 계승, 발전시킨 시인이다. 열아홉 젊은 나이에 등단, 세상을 놀라게 한 그는 한국 근대문학사를 통틀어 '전통적 감수성을 가장 잘 살린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조지훈의 대표작 '승무'가 새겨진 시비▲조지훈의 대표작 '승무'가 새겨진 시비

고려대 문과대학 뒤뜰엔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 조지훈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승무'는 시와 그리 친하지 않은 이에게도 제법 친숙한 작품이다. 승무는 불교적 색채를 띤 민속무용을 일컫는 용어. 이 시를 창작하기 위해 조지훈은 승무가 펼쳐지는 장소를 여러 차례 찾아다녔다고 한다. 시비에 새겨진 작품을 천천히 읽어보니 예스러운 시어를 위한 시인의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실제로 조지훈은 훗날 그의 저서에서 이 시에 대해 "구상한 지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만에 겨우 이뤄진 작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지훈 시인이 교수로 재직했던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전경▲조지훈 시인이 교수로 재직했던 문과대학 전경

이쯤 되면 조지훈 시비가 왜 고려대에 있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조지훈은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졸업생으로 고려대 학생은 아니었다. 고려대와의 인연은 그가 1948년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그는 작고할 때까지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교가 작사를 담당하는 등 학교 발전에 공헌했다. 이에 학교 측은 그의 타계 38주년을 맞아 시비를 세우고 공적을 기렸다.

 

#2. 한용운x동국대_승려이자 시인, 그리고 위대한 독립운동가

갤럭시 노트 5로 담은 동국대학교 혜화문에 S펜으로 쓴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한 구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것이 아닙니다.▲갤럭시 노트 5로 담은 동국대학교 혜화문에 S펜으로 쓴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한 구절

다음으로 찾은 곳은 동국대학교(중구 필동로)다. '서울의 심장' 남산 한 기슭을 차지하는 이곳에선 한용운(1879~1944) 시인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명진학교(현 동국대학교) 1회 졸업생이었다. 그는 요즘으로 치면 한마디로 '멀티플레이어'였다. 때론 '불교 개혁의 선구자'로, 때론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로 나라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한용운의 대표작 '님의 침묵'이 새겨진 시비▲한용운의 대표작 '님의 침묵'이 새겨진 시비

한용운의 다재다능한 면모는 그의 시 세계에서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동국대 교정에 세워진 시비엔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이 새겨져 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구절에 담긴 아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벤치에 앉아 한동안 시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님'이란 한 글자에 담긴 시인의 통찰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시어의 의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3. 윤동주x연세대_하늘과 바람과 별 노래했던 '영원한 청년'

연세대 언더우드관 앞 풍경을 배경으로 윤동주 시 '자화상'의 한 구절을 S펜으로 직접 썼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연세대 언더우드관 앞 풍경을 배경으로 윤동주 시 '자화상'의 한 구절을 S펜으로 직접 썼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연세대학교(서대문구 연세로)다. '젊음의 거리' 신촌과 가까운 이곳에서 만나볼 문인은 시인 윤동주(1917~1945).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진행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설문 결과, 당당히 1위를 차지했을 만큼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까지 진한 감동을 전한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가 새겨진 시비. 뒤쪽 건물은 윤동주기념실이 위치한 핀슨관이다▲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가 새겨진 시비. 뒤쪽 건물은 윤동주기념실이 위치한 핀슨관이다

윤동주 시비는 캠퍼스 중앙 백양로(路) 끝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동문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시비엔 그의 대표작 '서시'가 새겨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한국인의 기억 속 익숙한 구절로 시작하는 이 시는 일제 강점기란 암담한 현실에서도 순수한 삶을 소망하던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윤동주는 거침없이 행동하는 외향적 인간이 아니라 자아를 조용히 성찰하는 내면적 인간에 가까웠다. 강탈 당한 조국 땅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자세로 살고자 했던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시의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시를, 그리고 조국을 사랑했던 '청년 윤동주'의 흔적이 오롯이 담긴 윤동주기념실 내부▲시를, 그리고 조국을 사랑했던 '청년 윤동주'의 흔적이 오롯이 담긴 윤동주기념실 내부

연세대는 '윤동주기념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당시 실제 사용했던 기숙사를 개조해 만든 공간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내부엔 그가 직접 사용했던 원고 사본과 관련 기념품 등이 전시돼 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연희전문학교 재학 당시 윤동주가 실제로 머물렀던 기숙사 모습을 재현해놓은 공간▲연희전문학교 재학 당시 윤동주가 실제로 머물렀던 기숙사 모습을 재현해놓은 공간

한국문학사엔 오늘 소개한 세 명 외에도 훌륭한 문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꼭 캠퍼스가 아니더라도 전국 곳곳엔 이들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다. "배우러 간다"는 마음이 아니라 "즐기러 간다"는 생각으로 떠나는 문학 기행은 잊지 못할, 그리고 뜻밖의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지 않을까? '문학'을 주제로 사랑하는 이와의 겨울 나들이를 계획해보는 것도 좋겠다.

윤동주기념실 관람 안내

위치: 연세대학교 핀슨관 2층 1실

운영 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단, 11시 30분~13시 30분 점심 시간)


※이 기사에 삽입된 캘리그래피 작품은 작가 '비차'가 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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