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낳은 소비자 참여 현상, 거꾸로 “좋았던 옛날” 소환하다
이상은 시기별 쇼핑 행동 유형을 가상으로 묘사한 것이다. 길지 않은 사례지만 꽤 여러 가지 함의를 찾아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참여(engagement)’란 키워드다.
첫 번째 사례 속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물품을 주문하고 가격도 흥정할 수 있다. 고객 참여가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옵션(option)’은 그리 많지 않았다. 두 번째 사례에서 고객은 앞선 사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선택권을 갖지만 최종 결정을 내릴 땐 TV에서 일방적으로 전달 받은 광고 메시지에 따라 움직인다. 의사 표현 방법은 그 상품을 사느냐 마느냐 하는 정도겠지만 그 결정 역시 광고에 크게 좌우되므로 개인차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사례에서 고객은 온라인 정보를 동원, 자신이 원하는 제품군 범위를 좁혀간다. 그런 다음, 그중 현실적으로 최선인 선택에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최종 구매에 영향을 끼치는 정보의 영향력은 상품 공급자가 제공하는 것보다 (같은 처지인) 소비자가 경험한 것 쪽이 훨씬 크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품을 구입한 고객은 추후 자신의 경험담 역시 온라인 공간에 올려 정보를 보탠다. 그럼으로써 자신 역시 미래의 고객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참여’란 관점에서 조망해보면 1960년대 소비자는 경제 행동 과정에 제한적으로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소비자의 참여도는 ‘제로(0)’에 가깝다. 반면, 2010년대 소비자의 참여도는 훨씬 더 폭넓고 본격적이며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변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매자, 쇼핑 전 과정서 ‘주인공’으로 비상
국제연합(UN) 산하 정보통신 전담 기구 국제텔레커뮤니케이션연맹(ITU)에 따르면 2017년 중반 현재 인터넷 사용 인구는 36억 명을 넘어서며 세계 인구의 절반에 육박했다. 뿐만 아니라 연간 15%가량의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기록 중이다. 지난해 미국 온라인 마케팅 컨설팅 기업 이마케터(eMarketer)는 “미국 성인은 인터넷을 쓰며 하루 평균 5.9시간을 보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중 3.3시간은 모바일 기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활동이며 이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아래 그래픽 참조>.
이처럼 인터넷 이용 비중이 커지고 ‘주로 쓰는’ 기기 종류가 바뀌며 인터넷 이용 문화에선 새로운 흐름이 형성된다. 늘어나는 사용자 참여율도 그중 하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4시간 365일 당신과 함께하는 스마트폰을 떠올려보라. 짬짬이 들여다볼 때마다 ‘세상에 참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다. 그리고 당신이 접속하는, 거의 모든 웹사이트와 미디어 페이지엔 그런 일들에 참여할 수 있는 창구가 예외 없이 마련돼있다.
이런 여건에서 메시지는 수시로 분산된다. 정보 역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형태를 띤다. 그뿐 아니다. 사용자는 언제든 기탄 없이, 그리고 큰 어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쇼핑의 전 과정을 통틀어 소비자, 즉 물건 사는 사람의 참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TV만 틀면 나오는 광고에 세뇌되던 시절과는 180도 달라진 양상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단지 제품을 사고 파는 과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용자 참여(user engagement)는 쉽게 말해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상품‧서비스‧웹사이트 등에 대한 사용자 반응’[1] 이라고 할 수 있다. 헤더 오브라이언(Heather L. O’Brien)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밴쿠버캠퍼스 교수의 정의는 이보다 좀 더 종합적이다. “사용자 참여란 누군가를 도발해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를 어느 정도 깔고, 상당 기간 지속적으로 조성되는 인터넷 사용자 경험을 일컫는다. 그러려면 △아름다운 디자인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 사용자의 감각에 호소하며 주목을 끌어야 하고 △콘텐츠 내용이 풍부하거나 참신해야 하며 △콘텐츠 제공자와 사용자 간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형태여야 할 뿐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은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혁신 운전대’ 고객에게 맡기는 요즘 기업
미국 미주리주(州) 센트루이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 웅거보이크(Ungerboeck)는 지난 5월 말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행사·전시·회의 서비스를 위한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 기업답게 회의 기획 방식이 독특했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그간의 자사 고객과 관련 인사를 온라인으로 초청, “우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컨퍼런스를 개최한다면 어떤 내용을 알고 싶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좋을까요?”라고 조언을 구한 것이다.
“이번 행사의 목표는 우리 회사의 최종 소비자인 고객에게 혁신(innovation)의 운전대를 맡기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객의 적극적 참여와 피드백은 그 자체로 행사의 성공을 예고하는 지표나 다름없었죠.” 프레드 라제리니(Fred Lazzerini) 웅거보이크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 이사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최근 웅거보이크처럼 자사의 주요 행사나 캠페인 기획 단계에서부터 다수 소비자 의견을 취합하려는 기업 수는 점차 늘고 있다. 기업들이 온라인 환경 구축과 최적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토론 창구를 활발히 운영할 수 있게 되며 가능해진 현상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마케팅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이터러블(Iterable)은 지난해 ‘사용자 참여 100대 기업 보고서(User Engagement Top 100 Report)’를 발간했다. 마케팅 전략의 관점에서 사용자 참여 요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기업을 소개한 문서다. 물론 같은 사용자 참여라 해도 (앞서 오브라이언 교수가 내린 정의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개념 범위의 폭이 꽤 넓기 때문에 실제 적용 상황에서 무수히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보고서가 “사용자 참여 촉진 방법의 좋은 예”로 꼽은 여성 패션 브랜드 토리 버치(Tory Burch)의 전략을 예로 들어보자.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면 토리 버치 홈페이지는 언제나 “시각적으로 확실한 임팩트(impact)를 주는 환영 인사”로 고객을 맞는다. 처음 클릭한 접속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이미지는 온몸을 토리 버치 아이템으로 꾸민 미녀 모델의 사진. 최초 구매 제품엔 그게 뭐든 1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초기화면은 시각적으로 대단히 화려할 뿐 아니라 더없이 세련돼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사진들로 구성되며 그 바로 아래쪽엔 ‘짧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 공간에선 ‘사용자 참여 증대 노하우’에 관한 담론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대부분 “첫 손님을 잘 붙들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리 버치 웹사이트는 여러모로 전략적이다.
소비 시장은 나선형 궤도 그리며 진화 중!
사용자 참여는 창작 기법 면에서도 기존 경계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최근 웹툰이나 스토리 비디오 중에선 사용자와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시물이 꽤 많다. 지난해 네이버 웹툰 중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마주쳤다’(하일권)의 경우, 사용자(독자)는 자기 이름과 모습 그대로 웹툰 속 주인공이 됐다. 스마트폰 안면 인식 기능을 활용, 사용자와 닮은 캐릭터 구현이 가능해지며 탄생한 설정이다. 그뿐 아니다. 스토리 비디오 시장에선 ‘매 고비마다 사용자에게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택하게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스토리 전개를 달라지게 하는’ 방법이 종종 시험된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마이리틀텔레비전’(MBC)를 필두로 공영방송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도 시청자를 참여시키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음악 프로그램 프로듀서가 방송 도중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신청곡과 사연을 들려주는 등의 형태는 케이블 채널을 중심으로 이미 상당히 정착됐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향후 디지털 공간의 발전이 콘텐츠 제작자와 사용자를 또 어떻게 연결 지을지, 그 결과 어떤 문화가 새롭게 탄생할지 아무도 쉬이 예측할 수 없다.
‘상향성 3D 나선형 구조(Upward 3 Dimensional Spiral)’란 생물학 용어가 있다.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 생명체의 전반적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점점 커지며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입체적 나선형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게 요지다. 이에 따르면 처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몇 개 없었다. 하지만 기후 변화를 비롯, 주기적(이고 나선형 궤도를 그리는 듯한) 환경 변화를 거치며 점차 다양하고 복잡하며 정교하게 발달한 생명체가 출현하게 됐다.
글 첫머리에서 살펴본 시대별 쇼핑 풍경 역시 나선형 궤도를 그리며 진화한 건 아닐까? △처음엔 단순하나마 소비자 참여 비중이 꽤 높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 수준이 오히려 위축됐고 △소비자 참여가 본격화된 21세기 들어 비로소 유례 없이 다양한 설정 속에서 효율적 구매 행동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디지털이 다시 연, 소박했던 시절의 효용들
인터넷의 등장으로 디지털 사회가 열리며 여기저기서 예기치 않았던 방향으로 이른바 “좋았던 옛날(Good Old Days)”의 면모가 되살아나고 있다. 스페셜 리포트가 2016년 연말 기획으로 연재했던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시리즈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현대 대중 사회로 접어들며 직접민주주의나 참여경제, 맞춤형 교육처럼 ‘소박한 시절엔 효율적이었지만 점차 퇴색돼가던’ 관행이 ‘온라인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금 무수한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용자 참여 증대, 란 현상 역시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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