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꿈의 영역을 넘보다… CES 2018서 마주한 ‘IT의 최전선’
프롤로그
최대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던 ‘애덤과 소피아의 대화’
얼핏 공상과학(SF)영화 대본의 일부 같기도 한 위 대화는 사람과 로봇 사이에 있었던 실제 대화다. ‘애덤’은 디자인·테크놀로지·과학 분야 뉴스를 주로 다루는 웹미디어 ‘기즈모도’의 편집인 애덤 클라크 에스테즈(Adam Clark Estes), ‘소피아’는 미국 로봇공학자 겸 로봇 제조기업인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 박사가 올해 CES(Consumer Electronic Show)에서 선보인 로봇이다(관련 인터뷰 동영상 보러 가기).
소피아는 로봇이지만 얼굴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성이다. 두상 뒷부분이 (내부 기계 부품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재질로 돼있긴 해도 음악에 맞춰 춤출 줄 알고, 사람이 말을 걸면 음성 인식 장치와 인공지능 분석 장치를 이용해 꽤 수준 높은 대답도 한다. 물론 앞선 대화에서처럼 문답 간 시차가 존재하고 가끔 엉뚱한 말도 내뱉긴 하지만.
그간 스페셜 리포트에서도 몇 차례 소개한 것처럼[1] ‘대화 가능한 로봇’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그 꿈에 가장 근접한 기술이 실제로 구현, CES 2018에 등장하자 대중은 열광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매체가 앞다퉈 소피아와의 인터뷰를 청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1
첨단 로봇의 향연… ‘사람 닮은’ 휴머노이드 단연 인기
기술의 시발점은 ‘좀 더 편리하고 완벽한 삶을 꿈꾸는 인간’이다. 그런 꿈은 오랫동안 비현실적인 옛날얘기나 신화를 통해, 현대에 들어선 SF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돼왔다. 이후 기반 기술의 수준이 점차 진전되며 꿈의 모습은 점차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로봇이나 우주여행 등은 오랫동안 꿈속에서만 존재해오던 상상을 현실로 소환해낸 기술의 집약체다.
그렇다면 이처럼 삶과의 관련성이 밀접한 인류의 꿈은 오늘날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 그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바탕 축제 같은 공간이 지난 9일부터 나흘간(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마련됐다. ‘세계 최고 수준, 최대 규모 소비자용 전자제품 전시회’를 표방하는 CES 2018이 그것. 올해도 행사장 곳곳에선 꿈을 현실로 바꾸고자 힘써온 이들이 저마다 공들여 내놓은 성과물을 견줬다.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이디어, 그 이면만 잘 들여다봐도 올 한 해를 이끌 IT 트렌드가 읽힌다.
꿈의 주요 주제 중 하나를 ‘로봇’으로 규정하면 올해 CES는 분명 인류가 그 꿈에 한발 더 성큼 다가갔단 사실을 입증한 행사였다. 실제로 행사장 곳곳에선 수많은 로봇이 저마다 매력을 뽐내며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소피아처럼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지닌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두 손을 사용해 대걸레로 청소하고 주인의 지시에 따라 물건을 집어 가져올 줄 아는 로봇 ‘에얼러스(Aeolus)’를 탄생시킨 꿈은 역사가 오래다. 18세기 말 독일 문호 괴테가 쓴 서사시 ‘마법사의 제자’는 끝없이 넓은 마법사의 성(城) 안을 걸레질하다 지친 제자가 스승이 했던 것처럼 대걸레에 주문을 걸어 스스로 청소하게 하려다 낭패를 겪는 내용이다(에얼러스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려면 여기를 참조할 것).
‘인간의 말에 응대하고 정확한 지침까지 주는 기계인간’의 꿈은 신화(그리스·중국)에서부터 출발했다. 올해 CES에선 인공지능 기술과 각종 센서 기술의 발달로 인간 음성을 포착, 그 의미를 분석하고 맥락에 맞게 응대할 수 있는 로봇이 다수 등장했다.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고 가슴에 장착된 태블릿 모니터를 통해 시각 정보를 보여주는 로봇은 자녀 교육용으로, 또는 노인 돌봄용으로 개발돼 나왔다. 여기에 재밌는 리액션(reaction)을 포함한 일명 ‘동반자 로봇’도 이전보다 다양하게 선보였다. 1999년 출시돼 매년 새 모델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애완견 로봇 ‘아이보’도 눈길을 끌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CES 2018의 로봇들’이란 자체 영상을 제작,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했다.)
외관이 인간에게 친숙한 특정 생명체를 닮진 않았지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일을 척척 해내는 ‘도우미 로봇’도 그 종류가 한층 풍성해졌다. 삼성전자가 만든 청소용 로봇 ‘파워봇’은 물론, △탁구 상대가 돼주는 로봇 △옷을 세탁해주고 각종 관련 질문에 대답도 해주는 로봇 △세탁이 끝난 옷을 착착 개어 지정된 수납공간에 정리해주는 로봇도 등장했다.
#2
스마트홈, 동작 인식 기술… SF영화에서 튀어나오다
CES 2018에서 올 한 해 선전을 예고한 가전제품 범주 중 ‘스마트홈’을 빼놓을 수 없다. 스페셜 리포트에서도 여러 차례 다뤘던, ‘사물인터넷 구현 가정(빌딩)’에서 쓰이는 아이템들이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집이 살아있기라도 하듯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사용자가 가장 쾌적하게 느끼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활약하는 도우미인 셈이다. 이런 콘셉트 역시 신화나 구전동화, 영화 등에 단골처럼 등장하지만 소비자의 상상력을 가장 인상적으로 자극했던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1960년대 미국 ABC 방송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애니메이션 시리즈 ‘젯슨 가족(The Jetsons)’이다. (이 대목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2016년 10월 5일자 스페셜 리포트 “혼자서 이미 군중인 1인 가구 세대, 스마트홈 시장 판도 바꾸다”를 참조할 것)
젯슨 가족을 비롯, 20세기에 쏟아져 나온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치가 있다. 사람이 지나가면 저절로 여닫히는 문, 식사 장만이나 목욕 등 소소한 일상을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게 돕는 기계 등이 대표적. 흥미로운 건 올해 CES에 등장한 스마트홈 기기 중엔 그와 꽤 비슷한 아이템이 많다. 물론 차이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장 다른 건 ‘단추를 눌러 작동시키는 게 일반적이던’ 당시와 달리 대다수 기기가 음성으로 제어된단 사실이다. 음성 인식 기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식 기술은 비단 ‘음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체(동작) 인식 역시 관련 센서가 발달한 덕에 한 차원 도약한 기술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배우 톰 크루즈가 허공처럼 보이는 투명 디스플레이 위에서 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면 필요한 데이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띄워지는 광경이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 속 기술 대부분은 2018년 1월 현재 이미 출시돼 있다. 실제로 극중 사람의 눈을 집요하게 스캔, 신분을 확인하는 모기 모양 드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 홍채 인식 기기나 그 결과를 처리하는 인공지능 기술, 드론 등은 이미 흔한 현실이 됐다. 어찌 보면 CES 2018은 그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3
‘암울한 미래’ 표상이었던 신기술, 멋지게 일상 속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CES에서도 최대 장관은 TV·사이니지 등 대형 디스플레이였다. 특히 삼성전자가 선보인 ‘더 월(The Wall)’은 현지 미디어와 일반 방문객 할 것 없이 큰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기분 좋은 시각 이미지가 선명하게 펼쳐지는 환경은 사람의 일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특히 그 이미지가 생동감 넘치는 자연을 담고 있다면 보는 이에게 인상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 올해 CES에서도 대형 디스플레이 관련 부스들은 두드러진 존재감을 과시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 자유기고가 리사 이디치코의 표현처럼 행사장 곳곳에서 “미래엔 대형 화면이 주변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충만하게 전달됐다.
건물 옥상과 들판, 거리 담벼락, 쇼핑 공간…. SF영화 ‘프리잭(Freejack)’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소품은 단연 대형 스크린이다. 평소 일상적 정보나 상품 광고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던 이 스크린은 시스템 일탈자(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분)가 발생하는 순간, 일제히 해당 인물의 사진을 띄운다. 그와 동시에 극중에선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꽤나 스산했던 그 영화가 개봉한 지도 어느덧 25년여,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은 그새 ‘꿈’에서 ‘현실’로 자리를 옮겼다. 다만 그 기술을 누리는 현대인은 영화가 예견했던 것과 사뭇 다른 사회 분위기를 체험하고 있다. 전혀 스산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끽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또 다른 꿈이 작용한 결과인 걸까?’
SF영화가 꿈꾸던 기술은 실현됐지만 그 내용이 전하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까지 들어맞진 않은 예가 하나 더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이하 ‘자율주행차’)가 바로 그것. 지난해 CES에서 처음 선보였던 자율주행차는 올 들어 한층 진보한 기술로 멋진 모습을 과시했다. 운전사 없는 로봇 자동차가 등장했던 영화 중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건 ‘토탈리콜’(1990)이다. 하지만 극중 로봇 인형이 모는 택시가 주인공(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분)을 극한 감정으로 몰아넣었던 것과 달리 오늘날 자율주행차는 차 전체가 마치 움직이는 응접실처럼 편안하게 작동된다. 꿈과 현실 간의 ‘반갑기만 한’ 간극이다.
에필로그
미래 기술 혁명, 주도권은 ‘꿈꾸는 이’에게 돌아갈 것
CES는, 말하자면 ‘인류가 오랫동안 공유해오던 꿈의 구현 결과’가 한데 모이는 잔치다. 올해 행사는 이미 끝났지만 온·오프라인 미디어 공간에선 여전히 CES 2018에 관한 담론이 무성하게 쏟아지고 있다. 꿈은 단순히 실현된 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일상이, 더 나아가 미래의 기반이 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CES에서 각축을 벌인 기술과 장비 중 실제 미래 세상의 기반 기술로 정착할 건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적지 않은 기술은 언제 화제에 올랐냐는 듯 잊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꿈꾸는 행위 자체를 거부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 모든 위대한 꿈은 그 꿈을 꾸는 자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 2016년 6월 22일자 “인간과 로봇, ‘아슬아슬한’ 동거를 시작하다”, 2017년 1월 25일자 “‘두려움’에서 ‘친근함’으로… 로봇청소기, 인간의 로봇관(觀) 바꾸다” 각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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