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줄 알았던) 기술도 다시 보자!… ‘1994년생 QR코드’ 이야기
용이한 데이터 저장, 빠른 연결 속도가 강점
이상은 QR코드 활용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하 ‘QR코드 결제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 정착된 이후 상황을 상상, 구성한 것이다. QR코드 결제 시스템은 몇몇 나라에선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상태. 모바일 페이 선진국인 덴마크와 스웨덴, 그리고 신용카드 체계가 정착될 수 있는 인프라 확보가 어려워 역설적으로 모바일 페이 확산이 빨랐던 중국이 대표적 선두주자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은 “내년 중 은행 계좌 기반 스마트폰 직불 서비스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QR코드 결제 시스템 실현을 목전에 두게 됐다.
위 사례에서 QR코드는 K를 “어떤 상황에서도 업무 태세를 갖추는” 유능한 직장인으로 만들어준 1등 공신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사실 이건 QR코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보장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데이터 저장∙접근 능력이다. QR코드는 설계하기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으며, 그 데이터를 통해 다른 온라인 소스로 연결돼 무한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도 해준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저장, 접근된 데이터를 순식간에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연결 속도다. QR코드를 스캔하는 순간, 마치 마법의 성문을 여는 요술 열쇠처럼 거기에 저장된 정보 세계와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열린다.
이처럼 빠른 처리 속도는 QR코드의 명칭에도 숨어있다. QR은 잘 알려진 것처럼 ‘빠른 반응(Quick Response)’의 약자다. 원래 공장이나 상점에서 상품을 분류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했지만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활용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동향을 보고 있으면 QR코드만 한 온라인 마케팅 첨병도 없다고 생각될 정도다. 여기서 질문 하나. QR코드는 무슨 수로 현대인의 일상 여기저기를 이렇게 채우게 됐을까?
전신은 1948년 美 대학이 만든 ‘1D 바코드’
QR코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코드(bar code)<위 사진 맨 왼쪽> 얘기부터 꺼내야 한다. 희고 검은, 그리고 각기 다른 두께를 지닌 띠가 세로로 나란히 세워진 바코드는 1948년 미국의 한 식료품업자가 판매용 물품에 분류 번호와 특성이 기입된 표지를 일일이 붙이다 폭주하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당시 식료품업자의 의뢰를 받은 건 미국 드렉셀대학교 공과대학. 때마침 그 학교에 다니던 노먼 우들랜드(Norman Joseph Woodland, 1921~2012)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고 흰색은 빛을 반사하니 그 간격을 활용, 아라비아 숫자나 알파벳을 표기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그것. 코드 생성엔 자외선 감응 잉크와 스캐너가 동원됐다. 우들랜드는 학교까지 그만두고 바코드(전용 스캐너) 개발에 착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1D 바코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1D 바코드가 처음부터 각광 받았던 건 아니다. 처음 상용화된 건 1967년. 이후 미국이 뉴딜 정책 시행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이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日 자동차 부품 분류 표기법 개선 도중 탄생
2D 바코드는 호황가도를 달리던 세계 경제가 주춤거리기 시작하며 등장했다. 1D 바코드와 달리 정사각형 평면을 활용하는 2D 바코드가 등장한 건 1994년, 일본 산업기기 제조 기업 덴소 웨이브에서였다.
산업용 기기는 그 성격상 일상 용품에 비해 훨씬 적은 수량으로 제조된다. 변종도 많은 편이다. 당시 상품 분류 표시에 쓰이던 방법은 토요타자동차에서 개발된 ‘칸반(Kanban)시스템’. 1D 바코드 외에도 열네 가지나 되는 특성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기입해야 할 뿐 아니라 스캐너나 육안으로 읽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여러모로 불편했다. 1980년대 ‘거품(bubble)경제’ 시기가 지나가고 생산 유형이 ‘다품종 소량 생산주의’로 바뀌면서 칸반시스템의 불편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토요타자동차는 덴소 웨이브에 새로운 상품 분류 표시법 개발을 주문했고, 그 결과 하라 마사히로(原昌広)가 이끄는 팀에 의해 2D 바코드가 탄생했다.
2D 바코드는 1D 바코드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정도로 혁신적인 기술이다. 우선 12개 전후의 글자나 숫자를 담는 게 고작이었던 1D 바코드와 달리 2D 바코드엔 2000개가량의 글자가 담긴다. 수록 정보량이 많은 덕에 오류 점검 시스템을 내장할 수 있어 바코드가 손상되면 금세 알아챌 수 있을 뿐 아니라 웬만큼 훼손된 상태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읽을 수 있다. 내장형 스캐너나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등을 활용하면 PC나 스마트폰에서의 정보 열람이 가능하며, 문자 메시지(SMS)로 바코드를 보낼 수도 있다. 내장 정보를 암호화할 수 있단 점에서 안전성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최근엔 입체적 돋을새김으로 제작되는 3D 바코드도 등장했다. 3D 바코드는 우주선 부품 등 어떤 환경에서도 손상되지 않아야 하는 물품 정보 저장, 분류에 주로 쓰인다.)
‘폭발적 시장 점유’ 비결은 모바일 기기 보급
날로 다양해지는 산업 제품 분류 방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발명된 만큼 초창기 2D 바코드는 대부분 산업 현장에서 쓰였다. 이 판도를 바꾼 건 흥미롭게도 모바일 기기 보급이었다. 2D 바코드를 스캔, 그 속에 담긴 정보를 인식할 수 있는 장치가 스마트폰 앱 형태로 개발되면서 사용자가 급증한 것. 최근엔 아예 2D 코드 스캐너가 빌트인(built-in) 형태로 탑재된 기기도 늘고 있다. 서두에 살펴본 사례에서 K가 이동할 때마다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스마트폰을 활용한 QR코드 인식 덕분이었다. 2D 바코드가 빠른 속도로 보급될 수 있었던 비결은 또 있다. 2D 바코드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개발된 QR코드가 누구나 무상으로 쓸 수 있도록 공개된 사실이 그것. 이런 호재까지 가세하면서 시장에서의 QR코드 보급은 날개를 달았다.
디지털 솔루션 개발 전문 다국적 기업 모빌리오(Mobilio)는 QR코드 활용의 좋은 예로 ‘삼성 냉장고 문제 해결 지침서’를 꼽는다. 상황별 문제 해결 행동을 흑백 삽화로 그린 후 설명 글을 달았던 기존 지침서와 달리 삼성전자는 지침서 제작에 QR코드를 활용했다. 냉장고를 쓰며 흔히 마주하는 문제 상황을 제목과 간단한 설명으로 분류한 후 그 옆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해당 문제 해결 방법을 다룬 영상이 바로 재생되는 방식이다.
K 사례에도 등장했듯 공공 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 스마트폰과 QR코드의 만남은 더없이 강력하다. 열차와 지하철은 물론이고 자전거∙버스∙택시, 심지어 비행기를 탈 때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도 QR코드 활용은 점차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요즘은 클래식 음악 소개 책자에도 QR코드가 쓰인다. 특정 음악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 옆에 QR코드를 인쇄하면 해당 음악 연주 영상 감상이 가능한 유튜브 화면으로 연계해주는 것. 책이나 신문, 잡지 같은 오프라인 미디어에서도 QR코드를 활용하면 온∙오프라인 소통을 도모할 수 있다. 정적(靜的) 미디어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로의 변신, 기타 실험적 시도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QR코드를 ‘소비’하는 데서 진일보, QR코드를 직접 ‘생산’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QR코드 제작법을 활용하면 이전까진 상상할 수 없던 시장이 열린다. 자신의 채널을 홍보하고 싶은 블로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 블로거가 자기 블로그 URL 정보를 QR코드에 담은 후 그걸 T셔츠에 인쇄해 입고 다닌다면? 그가 거리를 오가며 스치는 사람 중 셔츠 주인의 정체가 궁금한 이는 누구나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꼭 신상 정보일 필요도 없다. 음악이나 영화, 사진 등 자신이 알리고 싶은 정보는 종류와 형태를 불문하고 손쉽게 알릴 수 있다. 모두가 ‘걸어 다니는 사이니지(signage)’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잠재력 여전히 무한… 성장세 더 가팔라질 것
QR코드의 활용 분야는 이 밖에도 다양하다. 레스토랑 테이블마다 부착된 QR코드는 스마트폰 메뉴판으로, 택시 좌석 옆에 붙어있는 QR코드는 운전자 정보 카드로 순식간에 변신할 수 있다. QR코드의 미래가 고무적인 건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이 여전히 무궁무진하다는 데 있다. 그 함수를 완성하는 게 개개인의 머릿속에 담긴 창의적 아이디어란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류 유통 규모를 감당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등장한 1D 바코드,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의 변화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발명된 2D 바코드…. 바코드의 변천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격언이 절로 떠오른다. 여기에 최근 떠오르는 공유 정신, 그리고 모바일 기기 보급 확산 흐름까지 더해지며 2D 바코드는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찬란한 성장과 확산을 예고하고 있다. 스물 다섯 QR코드가 ‘꺼진 줄 알았던, 하지만 다시 봐야 할 기술’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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