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에 ‘혁신’ 더하다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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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에 ‘혁신’ 더하다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투모로우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1회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1. ‘스마일 빌리지’와 ‘키스 애플’ 탄생 이야기

지난해 12월,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은 경남 합천에서 농민 합동 김장 담그기 행사를 진행하던 중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삼성이 후원하는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 프로젝트에 농업 분야가 포함됐으면 좋겠다”며 그의 조언을 구하는 전화였다. 민 부사장은 김장 행사 도중 식사하기 위해 모여 앉은 농민들에게 물었다. “뭐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요?”

그 자리에 있던 농민 200여 명은 다양한 의견을 냈다. “대상은 농가 한 곳이 아니라 1개 마을 전체였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서울에서 가장 떨어져 있는 오지(奧地)에서 뭔가 해봐라” “특정 마을이 고유의 개성을 지닐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건 어떠냐” “단순 ‘보여주기’ 식(式) 프로젝트에 그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 돼야 한다”….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상옥 스마일 빌리지’ 사업이 첫 삽을 뜨는 순간이었다.

상옥 스마일 빌리지 프로젝트는 "웃음으로 재배한 농산물이 더 맛있다"는 '스토리텔링' 요소로 이 지역 사과 농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상옥 스마일 빌리지 프로젝트는 "웃음으로 재배한 농산물이 더 맛있다"는 '스토리텔링' 요소로 이 지역 사과 농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상옥마을은 경북 포항시 죽장면 소재 상옥리와 하옥리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고속도로 서포항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산길만 30여 분을 달려야 하는 ‘산골 중 산골’이다. 300여 가구에 500여 명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의 역사는 신라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일교차가 큰 고랭지 기후의 영향으로 이곳 농산물은 병해충이 적고 당도가 높다. 특히 사과가 유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품질 좋은 농산물도 단순 생산∙판매로 수익을 내는 덴 한계가 있다. 가구 대부분이 사과 농사에 종사하는 상옥마을 주민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있었다. 모든 게 개방되는 시대, 1차 산업인 농업이 지닌 태생적 한계였다.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민 부사장의 머릿속에 몇 년 전 귀농한 한 젊은 부부와의 인연이 떠올랐다.

하루는 농촌에 정착한 후 남편과 수박농사를 짓는다던 한 부인이 그의 연구실로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서 그는 “더운 비닐하우스 안에서 매일 남편과 다툰다”며 하소연했다. 이어 “우리 부부는 ‘수박 하우스’를 하나 정해 그곳에서만큼은 싸우지 않기로 다짐했다”며 “만일 하루도 안 싸우는 데 성공하면 그 기념으로 수박을 한 통 보내주겠다”고 썼다.

그날 이후 3년간 감감무소식이던 부부에게서 어느 날, 다시 편지가 왔다. 편지 속엔 마침내 자신들이 안 싸울 수 있게 됐다는 낭보가 담겨 있었다. 더 좋은 소식도 있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자신들이 재배한 수박 사진과 수박 농사를 둘러싼 부부의 사연이 담긴 글을 올렸더니 수박이 순식간에 ‘완판’됐다는 내용이었다. 겉보기엔 여느 수박과 다를 게 없었지만 ‘스토리’가 가미되자 판매 경쟁력이 수직 상승한 것이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은 '이야기 있는 수박 농사'로 대박을 터뜨린 젊은 부부의 사연을 떠올리며 상옥 스마일 빌리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은 '이야기 있는 수박 농사'로 대박을 터뜨린 젊은 부부의 사연을 떠올리며 상옥 스마일 빌리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기분 좋게 재배한 작물, 그리고 스토리텔링… 바로 이거다!’ 민승규 부사장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웃음으로 재배한다’는 콘셉트를 더해 스마일 빌리지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행동파’인 그는 이내 상옥마을로 내려가 현지 농민들과 지역 공무원을 대상으로 두 시간 가까이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얼마 가지 않아 벽에 부딪쳤다. 농민들의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했던 것. 대부분 “웃음으로 농사 짓는 게 뭐 대수로운 거냐”며 시큰둥해 했다. 이 사업의 성패는 전적으로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 있었고, 그러려면 그들의 이해를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강의가 끝난 후 농민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민 부사장은 밥을 차려주던 한 부인에게 “남편에게 프로포즈 받아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적 없다”는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부인의 남편에게 “이 자리에서 프로포즈 한 번 해주라”며 ‘깜짝 이벤트’를 제안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결혼한 지 30년 넘은 부부의 프로포즈가 시작됐다. 쑥스러워하며 떠듬떠듬 이어지는 남편의 사랑 고백에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박수와 웃음으로 화답했다.

“여러분, 바로 이겁니다. 이렇게 웃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제서야 마을 주민들은 깨달았다. 고된 농사일에 지쳐 얼마나 오랫동안 제대로 웃어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는지. 웃음의 효과를 실감한 농민들은 이내 스마일 빌리지 사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민승규 부사장의 머릿속에서 출발한 상옥 스마일 빌리지 사업은 구취 억제 성분이 강화된 '키스 사과' 개발로 이어지며 순항 중이다 ▲민승규 부사장의 머릿속에서 출발한 상옥 스마일 빌리지 사업은 구취 억제 성분이 강화된 '키스 사과' 개발로 이어지며 순항 중이다

적어도 과수원 안에선 항상 웃도록 노력한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며 사과를 재배한다, 그렇게 생산된 사과엔 농민들의 얘기가 담긴 ‘스마일’ 로고를 덧입혀 상품화한다, 사과에 포함된 구취 억제 성분을 강화한 새 종자 ‘키스 사과’를 개발한다, 농산물에 스토리를 덧입혀 유니크(unique)한 브랜드로 재창조한다, 나아가 마을 전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다…. 아이디어에 아이디어가 더해지며 상옥마을의 스마일 빌리지 프로젝트는 지금도 주민들의 노력과 함께 ‘현재진행형’이다.

 

#2. ‘기업-마을 파트너십’은 글로벌 트렌드!

상옥마을이 스마일 빌리지로 변모하게 된 과정은 어찌 보면 우연의 연속인 듯 여겨진다. 하지만 이처럼 기업이 특정 마을과 파트너십을 형성, 서로 ‘윈-윈(win-win)’하는 전략은 최근 눈에 띄는 글로벌 트렌드 중 하나다.

영국 북서부 머지사이드주(Merseyside州) 소재 도시 리버풀(Liverpool)은 지난 2004년 일명 ‘크로스비 비즈니스-빌리지 파트너십(Crosby Business Village Partnership)’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크로스비∙워털루 두 지역의 지방정부와 상공회의소, 주민이 함께하는 지역개발사업이었다.

주요 내용은 △품질 좋은 농산물을 개발해 ‘농부 장터’(월 1회) 등 다양한 판촉 행사를 통해 판매하는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 △지역 중소기업 공산품 활용을 촉진하는 ‘크리스마스 라이트 캠페인(Christmas Lights Campaign)’ △CCTV와 라디오 시스템을 연계해 지역 보안을 강화하는 ‘펍워치(Pubwatch)’ △지역 환경과 인프라를 개선하는 ‘머지페스트 환경 개선 프로그램(Merseyfest environment improvement program) 등. 하나같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관광 잠재력을 고양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 덕에 주민들은 살기 좋은 지역 환경과 일자리를 갖게 됐다. 지역 상인들은 매출을 높였으며 지방자치단체는 세수(稅收)를 확보했다.

호주에선 지난 2000년부터 IT기업이 일명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IT기술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기술적 능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에서 약자 위치에 있는 마을을 도우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다. 글로벌 통신사업체 시스코시스템즈(Cisco Systems)는 빈곤 지역 활성화 운동을 오랫동안 펼쳐온 시민단체 ‘스미스패밀리(Smith Family)’와 손잡고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지역 가정에 PC를 지원하고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활동을 해왔다. 지원 받은 가정엔 스미스패밀리가 실시하는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의 혜택도 주어졌다. 이 캠페인을 통해 시스코시스템즈의 브랜드 이미지는 크게 개선됐고 제품과 서비스 매출도 향상됐다. 이 기업은 현재도 지역민이나 시민단체와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상호 발전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기업과 마을 간 파트너십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비영리재단인 가정폭력예방재단(Family Violence Prevention Fund)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이 마을 분위기 쇄신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는 것. 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지역과 사업을 택해 가정 폭력 예방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현지 지역민들과의 상의 아래 결정된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주(Arizona州) 피닉스(Phoenix) 소재 신문사 ‘애리조나 리퍼블릭(Arizona Republic)’은 가정 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연구를 지원하는 한편, 신문 지면을 통해 꾸준히 관련 계몽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피닉스 인근 가정 폭력 피해자 쉼터 조성 사업에도 힘써왔다. 이 신문사의 한 간부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신문도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고 특정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한다.

과거에도 기업과 정부(혹은 민간) 사이의 파트너십은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 파트너십 형태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정부나 기업 등 지원해주는 쪽이 일방적으로 과제를 설정하고 그 수행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상호 대화를 통해 지역 문제를 확인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영국 저술가 사이먼 자덱(Simon Zadek)은 이 같은 최근 동향을 가리켜 ‘파트너십의 재발견’이라고 정의한다. 유엔환경계획(UNEP) 내 ‘지속가능재정디자인(Design of a Sustainable Financial System)’ 프로젝트 공동 사무국장이기도 한 그는 “농촌 마을은 과거에도 정부 자금이나 기업 기부금을 받아왔지만 최근 기부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등 (사회적 자본을 키우기 위한) 일종의 투자처럼 변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 ‘지역 살리고 기업도 사는’ 상생 협력 모델

기업과 지역 간 파트너십에선 2개 주체 외에 ‘제3의 주제’인 정부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지난 2013년부터 펼쳐오고 있는 ‘창조경제혁신’ 사업은 정부와 기업, 마을 공동체의 파트너십의 새로운 형태를 구현하는 큰 틀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은 이 틀에서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맡아 ‘기업-지역 파트너십’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앞장서왔다. 앞서 소개한 상옥 스마일 빌리지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도 살리고 기업도 사는’ 상생 협력 모델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 육성 프로그램이다. 스마트팩토리는 말 그대로 ‘똑똑한 공장’, 즉 모든 생산 공정이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생산 현장을 일컫는다. 사실 제조업은 제품 디자인과 솔루션 서비스 개발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의외로 ‘제품 생산의 최전선’인 공장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에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올 3월부터 △공정 시뮬레이션 △제조 자동화 △알뜰형 제조 시행 시스템 △초정밀 금형기술 등 4개 분야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개발, 지원해왔다.

지난 20일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파견된 최춘호 삼성전자 글로벌기술센터 차장이 에나인더스트리 직원과 함께 설비 내구 수명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일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파견된 최춘호 삼성전자 글로벌기술센터 차장이 에나인더스트리 직원과 함께 설비 내구 수명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제조 공정 효율성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무 소재 산업 부품을 생산하는 경북 경산 소재 기업 에나인더스트리의 경우, 고무 성형 공정을 개선해 불량률을 ‘제로(0)화’했다. 또 공정 재배치와 작업 분석을 통해 물류를 최적화함으로써 동선을 합리화하고 재고율을 낮췄으며, 경영진이 솔선수범해 혁신 활동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었다.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보다 본격적으로 현장 문제를 확인하려는 작업에서부터 출발, △품질 개선 △원가 절감 △물류방식 개선 등 생산성 향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과제에서부터 △작업장 청소 △소화기 설치 등 환경안전 과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발견, 개선해오고 있다.

경북 지역 종가음식과 고택(古宅)에서 사업화 요소를 발굴하는 것도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경북 고택 명품화 사업은 예부터 양반 집안이 대대로 모여 살아 고택이 많은 경북 지역의 특성을 살려 전통 한옥 숙박 체험 사업 모델을 구축,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고택 주인이 자신의 집을 활용해 신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경북 전통 문화유산의 가치를 계승하고 지역 경제를 살릴 수도 있어 기대를 모으는 사업이다. ‘수운잡방(需雲雜方)’ 등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음식 조리서의 지혜를 살려 전통 음식을 복원, 브랜드화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한옥 사진입니다

 

#4. 지역사회 후원, 기업에도 사업 영감 제공

모스 켄터(Moss Kenter)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오늘날 기업과 마을 간 파트너십의 특성에 대해 “기업과 지역사회가 충분한 상호 대화를 통해 상대에게 필요한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역사회는 기업 후원과 실행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은 지역사회의 혁신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사세를 크게 확장시켜온 걸로 평가 받는 밥 아이저(Bob Iger) 사장은 “한 회사의 심장과 영혼은 창의성(creativity)와 혁신(innovation)”이라고 말했다. ‘창조혁신경제’란 단어엔 ‘창조적 방법으로 혁신을 꾀해 보다 많은 경제력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모방과 근면성이 경쟁력의 전부이던 시대는 지났다.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 사례처럼 지역 현장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활발하게 후원하는 활동은 아이저 사장의 말처럼 지역사회뿐 아니라 해당 기업에도 창의성, 그리고 혁신에 대한 영감을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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