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어느덧 ‘3.0’… 삼성전자 디자인 경영 전략은 계속 진화 중!

201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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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어느덧 ‘3.0’… 삼성전자 디자인 경영 전략은 계속 진화 중!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투모로우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토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2015 디자인삼성 아이디어 페스티벌’ 수상작이 전시되고 있는 서울 삼청동 하티스트 하우스(Heartist House). 입구에 들어서자 ‘모두를 위해 디자인됐다(Designed for All)’는 표제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담하고 품위 있는 공간은 수상작 8점의 실물, 그리고 개발 의도와 배경 등 뒷얘기로 꽉 채워져 있었다.

 

‘외형’보다 ‘발상’이 아름다운 디자인

“표준 빨래를 차가운 물로 세탁하고 2회 헹구고 강한 탈수해서 완전 건조합니다.” 기존 세탁기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조각조각 나뉘어 있던 정보가 매끈하고 친절한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돼 전면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떠오른다? 언뜻 간단한 발상인 것 같지만 세탁 시 각 단계별로 뭔가를 ‘선택’해야 했던 사용자의 번거로움을 없애고 모든 과정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혁신적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금상 수상작 ‘클린라인원(Clean-Line One)’은 바로 이 사실에 착안, 고안된 아이디어다.

이동 중 이어폰으로 음악을 즐겨 듣는 이라면 누구나 한두 차례 경험했을 법한 상황 한 가지. 이어폰은 카페나 식당, 도서관 휴게실 등 시끄러운 장소의 소음을 차단해 어디서든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거리에선 소음 차단 기능이 자칫 위험 요인으로 바뀔 수 있다. 자동차 경적 등 꼭 들어야 하는 경고음까지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상 수상작 ‘포커스(Focus)’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간단한 조작으로 외부 소리를 선택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캡을 부착한 것이다.

'클린라인원' 세탁기의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된 디지털 디스플레이화면과 '포커스' 이어폰의 사진입니다.

또 다른 수상작 ‘유니버설 핸드 드라이어(Universal hand dryer)’는 온라인 투표 당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아이디어다. ‘공중화장실 핸드 드라이어가 어린이나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손을 말리기엔 너무 높은 위치에 있어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보완한 이 작품의 발상은 사실 간단하다. 송풍구를 위아래로 달아 손 대는 곳에서 바람이 나오게 한다는 것. 하지만 약자(弱者)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탄생하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유니버설 핸드 드라이어, 바스켓 워셔, 드래그 워터, 포스트 필, 세이프 랜턴, 유니버설 버스 벨의 제품사진입니다.

나머지 수상작을 관통하는 정신도 엇비슷하다. △공동 세탁장에 질서와 편의를 더하는 ‘바스켓 워셔(Basket washer)’ △시각적 약자나 어린이도 실수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정수기 ‘드래그 워터(Drag water)’ △편리하고 정확한 약 복용을 돕는 ‘포스트 필(Post pill)’ △야외 활동의 안전성을 확보해주는 ‘세이프 랜턴(Safe lantern)’ △노약자∙장애인∙임산부 등의 승∙하차 안전을 돕는 ‘유니버설 버스 벨(Universal bus bell)’…. 하나같이 심미적 요소를 갖췄지만 탄생 배경을 알고 나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외형’보다 ‘발상’이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나 할까?

 

‘조형 요소 강조’에서 ‘가치 창조’로


“삼성 디자인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왔습니다. 제품 외관의 설계와 차별화에서 점차 전략과 기획의 출발이자 경영의 핵심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이제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감성의 영역을 넘어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와 사회, 환경에까지 의미 있는 변화와 가치를 만드는 가치 창조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삼성 공식 웹사이트 내
삼성 디자인 이야기(The Story of Samsung Design)’ 도입부 발췌

 

삼성전자가 제품 디자이너를 처음으로 채용한 건 지난 1971년이었다. 당시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디자이너(1인)은 영업부 판촉과로 배치돼 일반 사무실 한쪽에 책상을 놓고 업무를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디자인이 ‘상품 차별화 도구’로 활용되며 적용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디자이너의 일이란 어디까지나 ‘제품 설계가 끝난 후 외관을 장식하는’ 정도였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일명 ‘아날로그 디자이닝(Analogue Designing)’ 시대였다. 이 시기 디자이너들은 △콘셉트 맵핑(concept mapping) △2D 드로잉 △목업(mock up) 제작의 순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콘셉트 맵핑은 다양한 자료를 수집한 후 오려 붙여가며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2D 드로잉은 선택된 디자인을 손으로 꼼꼼히 스케치하는 과정을, 목업 제작은 스케치 결과물을 본떠 실제 모형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각각 일컫는다. 이 작업들 역시 ‘설계 다음 단계에서 세련된 외관을 완성하는 기술’ 정도로 간주됐다.

디자인을 대하는 삼성전자의 시각은 1993년 일명 ‘신(新)경영 선언’이 선포되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게 된다. 당시 삼성전자의 디자인 고문이었던 후쿠다 타미오가 작성한 보고서를 계기로 디자인은 삼성전자의 기업 경영과 문화 혁신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1996년 ‘디자인 혁명의 해’가 선포된 것 역시 그 연장선상이었다.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 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 짓는 시대입니다. 기업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시대를 지나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1996년 삼성전자 신년사 중)

 

디자인삼성 공식 웹사이트 내
삼성 디자인 이야기(The Story of Samsung Design)’ 발췌

 

“의미 있는(meaningful) 디자인을 만들어라”

삼성전자의 기업 철학은 같은 해 발표된 디자인 철학(‘사용자에서 출발해 내일을 담아내는 디자인’)을 통해서도 일부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 같은 이념을 바탕으로 시대 변화에 맞춰 자사의 디자인 전략을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2001년엔 CEO 직속으로 디자인경영센터를 독립 운영하며 ‘디자인 경영’이란 개념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후반엔 시장(과 트렌드)에 대한 조사∙분석 업무가 상품 기획 업무에 통합되며 일명 ‘선행기획’ 개념이 도입됐다. 선행기획 디자인이란 단순히 생산자의 주관적 기준에 따른 심미적 요소의 적용에서 디자인을 시작하지 않고 소비자와 시장에 관한 연구∙분석을 충실하게 진행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의 콘셉트를 잡아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2005년, 삼성전자의 디자인은 ‘밀라노 디자인 선언’을 통해 또 한 차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제품 외관과 조형성, 감성을 넘어 새로운 변화와 가치를 만드는 ‘가치 창조자(Value Creator)’의 위상으로까지 올라서게 된 것. 이로써 삼성전자에서 디자인은 제품 외관이나 생산 과정 차원에서의 관련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업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종의 구심점으로서 기능하게 됐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2011년부턴 ‘삼성 디자인 전략 3.0’이 본격적 닻을 올렸다. 삼성 디자인 전략 3.0의 핵심은 ‘의미 있는 것 만들기(Make it meaningful)’로 집약된다. △단순히 보기 좋은 외관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별 본질에 맞게 소비자 경험 가치를 극대화해 △종국엔 소비자의 삶에서 유의미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을 지향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난 40여 년간 삼성전자 디자인은 ‘솜씨 좋은 기술자의 작업’에서 ‘기업 전체의 방향까지 이끌 수 있는 가치 창조 활동’으로 격상됐다. 이 같은 변화는 과거 수백만 년에 걸쳐 이어져왔을 ‘아름다움(美)의 진화 과정’의 축약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화학적으로도 최고 디자인의 덕목은 ‘의미’

인간은 어떤 걸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지식인이 애써왔다. 물론 대부분은 관념적 설명에 그쳤지만 일부는 이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세기 후반부터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진화심리학 분야 학자들이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기 시작한 대상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삶에 도움이 됐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풍경을 예로 들어보자. 진화론적 미학자이며 웹 저널리스트로도 활동 중인 데니스 더튼(Denis Dutton)에 따르면 거주지가 열대 지방이든 북극이든 사람들이 아름답게 느끼는 풍경은 아래 두 그림 중 단연 오른쪽 그림이다.

풀과 나무가 있는 곳에 좁게 길이 나있는 그림과 넒은 강이 흐르고 새들이 날아가며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액자 속 그림과 달력 사진, 우편엽서 도안에 이르기까지 흔히 이용되는 이런 풍경엔 몇 가지 공통적 특성이 있다. △짧은 잔디가 깔린 탁 트인 공간 △무수한 수목과 물 △동물이나 새, 그리고 (한 명은 아니지만 많지 않은 수의) 사람 △멀리 이어지는 길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유(類)의 풍경을 접한 이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왜일까?

진화심리학을 기초로 한 미학에선 이를 두고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되기 시작한 신생대 사바나(초원지대) 풍경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인구 과잉과 기후 악화 등으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질 때마다 인류는 위 오른쪽 그림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풍경을 찾아 나섰다.

경쟁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떠나온 고향을 그리던 이들은 이후 그와 비슷한 풍경을 지닌 곳을 찾을 때마다 거기서 정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장소는 거의 틀림없이 (그런 환경에 최적화된) 인간의 DNA를 발휘하며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돼줬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설명을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디자인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심미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삶에 도움 되는 모습을 접했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형성해온 것이다. 2015년, 삼성전자가 ‘(사용자 삶에서) 의미 있는 디자인’을 최고 가치로 추구하게 된 건 디자인, 혹은 아름다움의 근원으로 회귀해가는 과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타당한 변화인지도 모른다.

 

‘소외되는 이’가 없어 더 특별한 아름다움

‘의미 있는 것 만들기’, 곧 ‘메이크 잇 미닝풀’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디자인에 의미를 담는다’는 뜻이 하나,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사용자의 삶에 의미 있게 스며들어 삶 자체를 의미 있게 만든다’는 뜻이 다른 하나다. 그렇게 본다면 올해 치러진 디자인삼성 아이디어 페스티벌의 주제(‘Designed for All’)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메이크 잇 미닝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올해 페스티벌의 수상작 8점은 언뜻 놓치기 쉬운 부분에 주목, 누구나 쉽고 편리하며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 는 ‘배려’의 메시지가 담겨 그 뜻을 알고 보면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외관의 심미성에 만족하지 않고 그 안에서 가치를 창조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가치가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결과물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삼성 디자인 경영’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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