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얼음(ice)뿐이던 땅(land)… ‘한계’를 ‘매력’으로 바꾸다
요즘 유럽에서 가장 논쟁적인 이슈 중 하나가 아이슬란드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는 문제다. 빅데이터·인공지능·사물인터넷·블록체인….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의 약진은 필연적으로 데이터 양의 기하급수적 증폭을 동반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데이터 처리 장치는 커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熱)의 양도 많아진다. 이에 따라 날로 규모가 커지는 데이터 센터를 어디에 설치할지, 거기서 발생하는 열은 어떤 방법으로 냉각시킬지, 데이터 센터 운영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관리할지 등등의 과제가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주체는 ‘모든 게 디지털화(化)돼가는’ IT 선진국들이다.
유럽의 경우, 후보로 검토돼온 해법 중 하나가 아이슬란드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2007년 다국적 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즈(PwC)가 펴낸 보고서 ‘데이터 센터 활동지로서 아이슬란드에 대한 벤치마킹 연구’를 필두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온 국가가 나서서 “우리 나라에 투자해라” 홍보
아이슬란드 기업 유치 홍보 웹사이트 ‘인베스트인아이슬란드(Invest in Iceland)’는 해외 기업이 아이슬란드에서 활동하면 좋은 점을 열 가지 항목으로 정리, 공개하고 있다<아래 참조>.
[1]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국제경영개발원(International Management Development). 세계경제포럼(WEF)이 운영하는 특수경영대학원이다
데이터 센터 설치에 유리한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세울 때 발생하는 최대 문제 중 하나는 데이터 처리 장치에서 발생하는 열을 냉각시키는 일이다. 주요 냉각 수단은 물과 공기. 아이슬란드는 두 방법 모두 효율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일단 기온이 낮은 고위도에 자리 잡고 있어 기본적으로 냉각에 유리하다. 공기냉각법을 쓰기에 좋은 건 물론, 냉수냉각법 적용 과정에서 다량의 수증기가 발생한다 해도 저위도 인구 밀집 지역에 비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냉수냉각법을 이용하기에 좋은 조건은 또 있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북극권의 냉기 고립 구조가 깨지면서 찬 공기는 자꾸 남쪽으로 내려오는 반면, 북극권과 인근 지역의 온도는 계속 올라간다. 그 결과, 이 땅에 ‘얼음의 땅(lceland)’이란 명칭을 선물했던 빙원들이 녹으면서 수온이 낮고 유량은 풍부한 하천이 생겨났다. 이런 자연 환경을 활용, 아이슬란드는 수력 발전으로 손쉽게 전기를 얻는 동시에 천연 냉각수도 원하는 만큼 확보하고 있다.
IT 수요 증가로 대규모 데이터 센터가 들어설 곳을 찾는 일이 중요해지면서, 최근 아이슬란드 정부는 유럽 국가들의 IT 센터를 유치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2018년 7월 현재 아이슬란드엔 영국 소재 데이터 센터 캠퍼스 건설 기업 번글로벌(Verne Global)이 설치한 케플라비크[2] 데이터 센터를 비롯, 모두 여섯 개의 대규모 데이터 센터가 들어서 있다. 협의가 진행되고 있거나 건설 중인 센터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한편에선 아이슬란드에 속속 들어서는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걱정스러운 시각으로 지켜본다. 센터 관리 주체와의 거리가 너무 먼데다 인구 밀도가 낮아 관리가 쉽지 않은 점, (수준이 높다곤 하지만) 인구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 데서 오는 한계가 뚜렷하단 점이 대표적 우려다. 지각 활동이 활발한 아이슬란드의 지질학적 특성 역시 도마에 종종 오른다.
9세기 이후에야 사람 살기 시작한 ‘동토의 나라’
북극권을 겨우 벗어난 고위도 국가 아이슬란드. 유럽인이 이곳에 건너와 살기 시작한 건 9세기 무렵의 일이다. 배를 타고 처음 뭍에 도착한 그들은 해안가에 빽빽하게 조성된 숲을 보고 한 번, 숲 꼭대기 뒤쪽으로 펼쳐진 빙원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고 전해진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곳을 처음 찾은 노르웨이 바이킹 흐라프나 플로키 빌게르다르손[3] <이하 ‘플로키’>이 섬을 둘러본 후 “얼음뿐이다!”라고 탄식한 데서 아이슬란드란 이름이 붙여졌다.)
아이슬란드는 북위 65도 전후에 위치해 북극권을 겨우 벗어나있다. 미국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알래스카주(州) 앵커리지보다 더 북쪽이다. 이 정도면 거의 사시사철 얼어붙어있을 법한데, 남서쪽 해안을 중심으로 조성된 주요 거주 지역의 기후는 의외로 온난한 편이다. 따뜻한 멕시코 만류가 미국 동쪽 해안을 따라 유럽 북쪽으로 넘어가면서 지류인 대서양 연안류로 변해 냉기를 완화시키는 덕분이다. 하지만 그런 지역은 일부에 불과하다. 국토 전반이 동토(凍土)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전형적 고위도 국가다.
기온만 낮은 게 아니다. 산지 지형과 수온 차 심한 해류 등 자연 조건이 맞물리며 날씨 변화도 심한 편이다. 지진과 화산 분화도 잦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과 유라시아 지판(地板)이 만나는 경계선에 위치해있어 지구상에서도 지질학적 구조가 대단히 불안정한 축에 든다(실제로 2010년 발생했던 에이야프야틀라이외쿠틀[4]화산 폭발은 그야말로 모든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처럼 아이슬란드는 대략적 자연 환경만 훑어봐도 사람이 살기에 그리 편한 땅은 아니다. 먹고 사는 방법이 농사뿐이었을 전통 사회에선 더더욱 그랬을 테고 전반적 기후가 한랭해지는 시기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유독 낮은 기온으로 고생했던 플로키의 탄식도 그런 의미에서 이해가 간다. 실제로 그런 전후 사정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 아이슬란드의 구비 전승 문학들은 그 땅에서의 처절한 투쟁사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사가(Saga)’로 통칭되는 이 장르는 대체로 유럽인이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9세기부터 16세기 전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대표적 가문이 서로 도발하고 그에 분개해 수십 년 이상 복수의 유혈극을 이어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비단 아이슬란드뿐 아니라 대부분의 북쪽 지방 구비 전승 문학이 전쟁 영웅들의 활약상을 소재로 삼지만 아이슬란드의 경우 치열하고 사실적인 세부 묘사로 특히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오늘날 아이슬란드를 그 옛날과 동일하게 취급하면 오산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살기 편하며 안전한 나라 중 한 곳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아이슬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7만 달러를 넘겨 세계 5위에 올랐고(국제통화기금 ‘월드이코노미아웃룩’), 정보화 사회 수준에서도 세계 1위를 기록했다(국제연합 산하 인터내셔널텔레커뮤니케이션유니온 ‘정보사회측정보고서’).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 받는 조사·연구 기관들이 줄줄이 아이슬란드를 주요 부문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IT 분야 약진, 비결은 ‘아이슬란드식 도전과 응전’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5] 의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6]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틀로 종종 인용된다. 아이슬란드 사례 역시 이 개념을 렌즈 삼아 투영해볼 수 있다.
기후가 한랭했던 시기, 먹을 게 부족해져 유럽 본토를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 헤매다가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나마 온난하고 농사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얼마 안 되는 그곳에서 이내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이들은 추운 기후와 불안정한 지질학적 구조를 극복한 생존 요령을 익혔을 테고 엄격한 인구 조절도 그중 하나였다. 그 결과, 아이슬란드는 세계 어느 지역 부럽잖은 사회 통합력을 갖추게 됐다.
20세기 들어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북극해의 한류와 대서양 연안의 난류가 교차하자, 아이슬란드 남서 해역을 중심으로 수산자원이 풍부한 어장이 형성됐다. 물류 기술 발달과 지리적 이점 덕분에 이곳의 수산자원은 유럽과 북미 시장으로 팔려나가며 아이슬란드의 경제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 과학기술을 익혀 고국을 좀 더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 아이슬란드인에게 20세기 후반부터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IT 산업이 예사롭게 보였을 리 없다. 수산물 무역으로 축적된 글로벌 마케팅 노하우도 IT 시장에 뛰어드는 데 단단히 한몫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를 홍보하는 또 다른 웹사이트 ‘프로모트아이슬란드(Promote Iceland)’에 띄워진 문장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좁은 국토의 한계 때문에 태생부터 글로벌하다.”
이런 특성은 아이슬란드가 세계 각국의 IT 관련 투자를 유치하는 데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프로모트아이슬란드나 인베스트인아이슬란드 등 범국가적으로 운영되는 웹사이트야말로 아이슬란드식(式) 글로벌 마케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토인비가 아직 살아있어서 아이슬란드의 이런 변신에 대한 견해를 요청 받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아이슬란드는 한랭한 기후와 살 만한 땅의 부족이라는, 이전 시대엔 거의 극복 불가능했던 도전에 대해 ‘IT 시대를 잘 읽어낸 통합적 전략’으로 응전했습니다. 보다시피 그 결과는 멋진 성공이고요.”
[2]Keflavik. 아이슬란드 남서부 도시. 인근에 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다
[3]Hrafna-Flóki Vilgerðarson
[4]Eyjafjallajokull. 아이슬란드 남부에 있는, 아이슬란드에서 여섯 번째로 큰 빙하다
[5]Arnold J. Toynbee(1889~1975). 런던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대표작으로 ‘역사의 연구’가 있다
[6]아놀드 토인비가 주창한 문명순환론의 핵심 개념. “문명은 도전에 대한 성공적 응전을 거치며 탄생∙성장∙붕괴∙해체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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