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자동차의 현주소
자율주행차의 역사는 생각보다 꽤 오래됐다. 처음 자율주행차가 나온 건 1980년대였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자율주행 연구팀 내브랩(NavLab)이 1986년 쉐보레 밴을 개조한 자율주행차 ‘내브랩 1’을 선보인 게 시작이었다. 이후 메르세데스 벤츠가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관련된 ‘유레카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등 많은 자동차 회사와 연구기관이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 손을 뻗었다. 최근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자동차 업계는 물론, IT 업계까지 자율주행차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2012년 구글이 프리우스를 개조한 자율주행차 주행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순간, 막연히 미래 자동차라 생각되던 자율주행차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지금 자율주행 자동차의 기술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자율주행 기술’,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
파리를 여행할 때, 지하철 1호선의 맨 앞 칸에 타면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운전실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탑승자를 위한 좌석과 바깥을 볼 수 있는 널찍한 유리창이 있다. 이 좌석에 앉으면 창밖으로 시원하게 뻗은 철로 위 풍경을 보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파리 지하철 1호선이 운전실을 승객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건 이 열차가 운전자 없이 전 자동으로 운행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17년 12월 현재 △신분당선 △의정부 경전철 △부산 도시철도 4호선 △대구 3호선 △인천 3호선이 무인으로 운행되고 있다.
기차를 무인으로 운행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배차 간격을 90초로 유지할 수 있어 승객 수송량이 50%가량 늘어난다. 가속이나 감속이 컴퓨터에 의해 최적화되기 때문에 약 30%의 에너지 절감 효과도 있다. 또한 기차 간 운행 간격, 속도 등이 자동으로 제어돼 보다 정확한 시각에 역까지 도착할 수 있다.
열차뿐 아니라 오늘날 운행되는 대부분의 여객기 역시 자동 항법 시스템으로 운항되고 있다. 이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비행에서 조종사는 자동 조종 기능의 도움을 받는다. 조종사는 문제가 발생할 때만 이를 관측하고 바로잡는 업무를 수행한다. 장시간 비행기를 조종하는 상황에서 인간 조종사의 집중력과 반응 시간엔 한계가 있으므로 자동 조종 시스템은 승객의 안전한 운항을 위한 필수 기능인 셈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 실현 가능한 미래일까?
무인 자율주행 열차나 항공기 자동 조종 시스템처럼 자율주행 수송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깊숙이 일상에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컴퓨터나 기계가 수송 시스템의 제어권을 가져가는 걸 암묵적으로 수락했을까? 이 수락이 자신의 안전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될 자율주행 자동차에도 적용될까?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그렇다’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항공기 자동 조종 시스템이나 자율주행 열차와 비교하면 아직 많은 부분에서 발전해야 하지만 결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기술은 아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철도나 항공기에만 탑재되던 자율주행 시스템이 모든 자동차에 적용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주행 환경 인식 센서와 고성능 컴퓨팅 칩의 가격이 낮아지고 인공지능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한 덕분이다. 이미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 NHTSA)에서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공식 자동차 운전자로 인정했다. 물론 ‘완전한 자율주행 자동차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느냐’엔 관점에 따라 크고 작은 의견 차이가 있겠지만 철도와 항공에서처럼 자동차에서도 자율주행은 거부할 수 없는 미래다.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안전’을 넘어 ‘문화’로
교통사고의 원인 중 가장 위험한 건 뭘까? 바로 ‘운전자의 안전불감증’이나 ‘부주의한 운전 습관’이다. 운전은 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매일 습관처럼 운전하는 많은 사람에게 사고의 위험은 눈앞에 닥치기 전까진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운전자의 작은 방심은 교통 법규 위반이나 안전띠 미착용, 졸음 운전 등을 부르고 자칫 음주 운전이나 과속 운전 혹은 보복 운전처럼 ‘위험한 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고,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으며, 아무런 감정적 동요 없이 이상적으로 운전에만 집중하는 인공지능이 인간 운전자를 대신한다면? 차는 탑승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탑승자가 다른 일에 신경을 빼앗겼거나, 매우 화가 났거나, 조급한 상태이거나, 술에 만취했거나, 매우 졸린 상태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운전자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 자율주행 시스템이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주행 상황을 판단해 자동차를 제어해 목적지까지 알아서 운전하는 자동차를 완전한 ‘자율주행 자동차’라 할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운전자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운전하는 시간을 여가 활동이나 다른 생산적인 일에 활용할 수 있고 장애인이나 고령의 노인들도 큰 어려움 없이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정밀지도와 주변 환경 인식 센서,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자율주행 자동차들과 교통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므로 연료 소비나 목적지까지의 이동 시간을 최적화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안정성이 검증되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중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차를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될 것이다. 자동차 공유 문화가 자리 잡으면 주차장의 필요성이 줄어 사람들은 이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미국자동차기술학회가 정한 자율주행 기술 6단계
자율주행 자동차를 다루는 기사들을 읽어보면 기술 개발의 성숙도에 따라 자율주행 단계가 나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선 그중 미국자동차기술학회(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 SAE) 기준에 따라 자율주행 자동차를 여섯 단계로 분류하는 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 단계를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액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발’ △운전대를 조작하는 ‘손’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눈’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의식’ △‘운전자’ 그 자체가 필요하다. 각 단계마다 점진적으로 이 요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정도가 달라진다. 1단계에선 발이 자유로워지고 2단계는 손까지 자유롭게 해준다. 3단계는 눈, 4단계는 의식을 자유롭게 해주며 마지막 5단계가 되면 운전자 자체가 필요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 자동차가 된다.
점진 VS 급진, 자율주행 기술을 대하는 두 가지 접근법
오늘날 자율주행 자동차를 연구 중인 업체들의 기술 개발 전략은 점진적 접근과 급진적 접근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점진적 접근법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업체인 다임러·BMW·폭스바겐·도요타·닛산·현대·GM 등이 주로 사용한다. 자율주행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점진적 기술 개발을 통해 기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율주행 시대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급진적 접근 방식을 추구하는 기업은 구글·애플·아마존·우버 등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핵심 기술인 소프트웨어 기업들이다. 전통적 자동차 제조 기술은 없지만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초기(1~3) 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완전 자율주행(4~5) 단계를 구현함으로써 자율주행 자동차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 플랫폼 분야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는 게 목표다.
두 전략 간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느 전략이 최후의 승자가 될진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마도 이 게임의 승자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기술적 완성도와 사용자의 수용 정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만약 모든 운전 환경을 99% 이상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혁신적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이 개발되거나, 특수 자율 주행 인프라를 모든 도로에 구축하는 교통 정책이 수립된다면 안정적으로 4·5단계 자율주행 자동차의 운행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기술을 토대로 사용자들이 거부감 없이 모든 구간의 운전을 기계에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차량에서 운전대를 없앤 구글 자동차처럼 급진적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전략이 승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나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단계별 자율주행 기술을 점진적으로 구현, 검증하는 방법의 신뢰도가 더 높아질 테고 사용자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 서서히 자율주행 자동차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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