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갑(甲)질’ 하지 맙시다, 을(乙)이 무슨 죕니까?

2015/08/18 by 안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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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갑(甲)질’ 하지 맙시다, 을(乙)이 무슨 죕니까?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국내 최고 전문가의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보세요. 매주 화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안중우 성신여대 청정융합과학과 교수


 

#기묘한 이야기 1_선녀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어느 날, 하늘나라에서 선녀 몇 명이 내려와 연못에서 깔깔대며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나무꾼 하나가 한 선녀의 옷을 몰래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말입니다. 시간이 흘러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챙겨 입고 하늘로 올라가려는 순간, 한 선녀가 자신의 옷이 사라졌단 사실을 알아챕니다. 아무리 찾아도 옷은 없었고 다른 선녀들은 다 떠나가버렸습니다.

요정 사진

바로 그때, 생면부지 나무꾼이 나타납니다. 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아마도 벌거벗은 채 나무꾼의 집으로 끌려갔을(?) 겁니다. 그러곤 원치 않는 동거를 하게 됐겠죠. 아이를 둘이나 낳을 때까지 친정엔 안부조차 전하지 못한 채 야속한 세월만 흘러갔습니다. 선녀의 부모는 동네방네 딸 찾는 방(榜)을 써 붙이며 하늘나라 방방곡곡을 헤맸을 테고요.

선녀 옷을 훔치던 당시만 해도 나무꾼은 ‘도끼’란 첨단 연장을 지닌 데다 주요 에너지원이었던 나무를 베고 팰 줄 아는 ‘기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촉망 받는 전문직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전혀 모르는 여성의 옷을 몰래 감추고(절도) 그 일을 빌미로 그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납치) 강제로 동거하며(감금) 아이까지 낳게 하는(성폭행) 건 엄연한 범죄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선녀는 그 범죄의 피해자고요.

잘 아시는 것처럼 이 얘긴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선녀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겁니다. 제목에 선녀가 먼저 등장하는 건 동화 속 남성우월주의를 중화시키기 위한 술책이 분명합니다. 시종일관 순전히 나무꾼의 관점에서 쓰인, 남성중심적 동화인 셈이죠.

나무꾼 여러분, 선녀 옷 감추지 맙시다. 그 선녀는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기묘한 이야기 2_쥐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금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길을 가다가, 혹은 집 마당에서 불쑥 튀어나온 쥐와 종종 마주치곤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아파트 주차장에서 승용차 밑에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를 만나는 경우와 비슷하겠죠. 쥐를 맞닥뜨린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소스라치듯 놀라며 소릴 지르는 거죠. “꺄~악!”

고양이에 놀라는 쥐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인간과 쥐의 크기를 한 번 비교해볼까요? 굳이 생물학적 크기를 들먹일 것도 없습니다. 대략 십진법을 기준으로 가늠해보겠습니다. 쥐 한 마리의 무게는 500g 언저리일 겁니다. 인간의 평균 무게를 50㎏로 가정한다면 인간이 쥐의 100배쯤 됩니다(물론 쥐도, 사람도 여기서 언급한 것보다 크거나 작을 수 있습니다).

한 번 상상해보세요. 여러분보다 100배쯤 큰 동물, 이를테면 무게가 3톤에서 8톤 사이라는 코끼리가 여러분 바로 앞에서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러대면 어떨까요? 다를 것 없습니다. 쥐보다 덩치가 100배는 더 큰 인간이 쥐 앞에서 냅다 소릴 질러대면 그 쥐는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참고로 ‘쥐 사회’에서 인간은 단연 ‘기피 대상 1호’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에게 잡혔다 살아 돌아온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나요.

인간 여러분, 쥐랑 마주쳤다고 소리 지르지 맙시다. 그 쥐는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기묘한 이야기 3_상어는 잘못한 게 없다

“식인상어가 나타났다!” 매년 심심찮게 신문 ‘해외 토픽’ 란을 장식하는 소재입니다. 올여름엔 특히 미국 모 해변에 식인상어가 나타나 인명 피해를 입힌 보도가 잇따랐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가끔 해녀 등 어업 종사자들이 부상을 당하곤 합니다.

상어 이미지

식인상어가 출현하면 수많은 이가 그 바다로 출동, 해당 상어의 ‘색출’에 나섭니다. 일부는‘사살’이란 성과를 올리기도 하죠.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상어는 잘못이 없습니다. 식인상어의 출현 장소가 광화문이나 할리우드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어는 그저 자신의 생활 터전인 바다를 여기저기 좀 쏘다닌 죄(?)밖에 없습니다. 지구온난화 현상과 해양 오염으로 자신들의 먹잇감 분포에 변동이 생겨 이전보다 더 멀리 이동하는 모험을 감행했을(risk taking) 뿐입니다.

진짜 잘못은 육지 동물인 인간이 상어가 사는 해양에 나타난 것 아닐까요? 심지어 인간은 ‘잠수복’이란 걸 입고 마치 해양동물인 양 위장술까지 쓰잖아요. 반면, 상어가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 앞에 나타난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습니다.

식인상어에 질색하는 여러분, 상어를 탓하지 맙시다. 상어가 뭘 잘못했습니까?

 

역지사지, 모르지 않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타인을 설득할 때 우린 흔히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얘기합니다. 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쉽게 ‘갑(甲)’과 ‘을(乙)’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린 늘 ‘인간’을 만사의 중심에 놓고 생각합니다. ‘강자(强者)’ 위주로 행동하고 그렇게 교육 받습니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여러분은 단 한 순간이라도 상대방(이해 관계자)을 배려하고 그들의 입장에 서본 적 있나요? 공중목욕탕 갔을 때 무심코 튼 수도꼭지에서 찬물이 쏟아져 놀란 경험,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이 다음 이용자를 위해 수도꼭지를 중간 위치로 적절히 돌려두신 적 있으신가요? 자기 머리카락이 묻어 있는 비누를 물로 헹궈놓은 적은요? 뒤따라 오는 이를 위해 문을 잡고 잠깐 서 있었던 기억이 있었는지도 한 번쯤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손잡은 사진과 고양이와 개가 쓰다듬는 사진

환경 역시 그 출발점은 ‘배려’입니다. 같은 세대 내에서의 배려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배려이기도 하죠. 자원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습니다. 설사 풍부한 자원이라 해도 오염되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자’가 많이 쓰면 ‘덜(혹은 못) 가진 자’는 쓸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세대가 많이 사용해 고갈되거나 오염되면 우리 후손에게 돌아갈 몫은 그만큼 줄거나 사라집니다.

우린 옷을 잃어버린 선녀도, 인간 앞에 불쑥 튀어나온 쥐도, 해변가에 출몰한 상어도 아닙니다. ‘무조건 강자’입니다. 현 세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갈 길이 좀 바빠도 잠시 멈춰 서서 문을 잡아줍시다. 그 문으로 걸어 들어올 미래 세대를 배려합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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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변화가 곧 기회’란 말이 뻔하다, 는 당신에게

by 안중우

성신여대 청정융합과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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