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규제에도 ‘네거티브시스템’이 필요해

2015/03/31 by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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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국 배재대 중소기업컨설팅학과 교수


 

새로 강의를 시작할 때 나는 수강생들에게 딱 두 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공지한다. 하나는 ‘휴대전화(특히 스마트폰!) 사용하지 않기’다. 가정에서, 심지어 식사 자리까지 침투해 가족 간 대화를 방해하는 스마트폰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사회적 흉물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내 강의 시간엔 ‘스마트폰 절대 사용 금지’다. 만약 규정을 어기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그 학생은 해당 시간 이후 예정된 중간고사(혹은 기말고사)를 치를 수 없다. 다소 심한 벌칙이지만 효과는 매우 높다. 무엇보다 교수와 학생 모두 수업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모자 쓰고 수업 듣지 않기’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수업에 들어온 학생과는 눈을 보며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자를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이를테면 ‘머리를 안 감고 와 냄새가 난다’는 둥)이 있다면 챙이 뒤통수 쪽으로 오도록 돌려 쓰게 한다. 교육은 뭐니 뭐니 해도 ‘눈과 눈의 마주침’이니까.

다행히 지금까진 학생들이 내 취지를 이해하고 잘 따르는 편이다. 대신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일은 되도록 허용하려 노력한다. 일례로 냄새만 심하지 않다면 학생들이 음식물을 먹으며 수업을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특히 오전 강의에선 아침을 거른 채 수업을 듣는 학생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편하게 먹을거리를 갖고 오게 한다. 단, 수업을 방해할 수 있는 ‘쩝쩝’ 소리는 금지다.

 

구더기 무서워도 장은 담가야

내 강의는 ‘수업에 지장 주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에 관한 한 수강생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방식이다. 확실하게 지켜야 할 사항 외엔 모두 풀어주는, 말하자면 ‘네거티브시스템(negative system, 수입 금지·제한 품목 목록을 미리 명시해두고 그 밖의 품목은 모두 수출입을 개방하는 무역 제도)’인 셈이다.

문을 활짝 여는 사진입니다

정부가 새만금 지역과 인천 송도·청라지구에 일명 ‘규제 프리(free) 지역’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간 규제 개혁을 주창해온 학자들의 의견을 수용, 지역 규제에도 네거티브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언뜻 ‘공무원이 이 같은 조치에 쉽게 호응할 수 있을까?’ 싶다. 아마도 상당수는 “우리 법 체계가 네거티브시스템엔 맞지 않는다”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고사(枯死) 직전 상황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금지(banned)라는 글자가 쓰여진 금지 표시 입니다

금융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국내 금융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한때 세계 최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나라에 한참 뒤처져 있다. 과도한 규제가 문제였다. 금융파생상품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 행정부는 그 싹을 아예 잘라버리려 했다. 그렇게 해야 담당자가 문책 받을 일도, 책임질 일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장을 담글 때 식품 위생을 고려해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두는 건 당연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장치가 과하면 기껏 담가놓고도 장이라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식품’이 돼버리고 말 것이다.

 

규제 철폐, ‘나부터’ 시작하자

전문가칼럼네거티브시스템3

조그만 문제라도 하나 생기려 하면 최고조의 규제를 몇 겹씩 만든 후 ‘이젠 괜찮을 것’이라 치부하는 행정부, 시행하려는 규제의 과잉 여부를 살피기도 전에 오직 선거에서 이길 생각만 하고 국가 미래는 나 몰라라 하는 국회….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데 없는 국민들의 마음은 누가 붙잡아줄 수 있을지 한숨만 나온다.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국가 장래를 생각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당장의 어려움은 감내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지금은 사회지도층 중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행동은커녕 발언조차 하지 않는다.

비단 새만금 지역이나 송도·청라지구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창의적이고 유의미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갖가지 법과 조례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손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국민들의 자세 변화도 시급하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부에만 요구할 게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가정과 직장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혹 당신은 직장에선 부하 직원을 옥죄는 각종 규제의 장벽을 만들어 놓고 정부를 향해 규제 철폐를 부르짖지 않았는가. ‘내 자식이니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규제 장치를 만들어 놓고 그 아이가 경쟁력 있는 젊은이로 성장하길 바라오진 않았는가.

규제 개혁은 정부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게 아니다. 나와 내 가정, 내 직장에서 실현 가능한 것부터 실천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진정 창조적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필자의 또 다른 칼럼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문가 칼럼] ‘지역경제’ 살리기냐, ‘중소기업’ 살리기냐 

[전문가 칼럼] 경쟁 없인 경쟁력도 없다 

by 김진국

배재대학교 중소기업컨설팅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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