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기로에 선 올림픽과 월드컵, 돌파구는?
강준호 서울대 스포츠경영학 교수
올림픽과 월드컵은 전 세계가 열광하는 스포츠 이벤트의 꽃이자 지구촌 최고의 축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동시에 한곳으로 이목을 집중하는 일? 올림픽 개막식과 월드컵 결승전 말곤 사실상 없다. 올림픽과 월드컵의 인기 덕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이하 ‘IOC’)와 국제축구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이하 ‘FIFA’)은 지난 30여 년간 천문학적 수입을 올리며 전 세계 스포츠 분야에서 ‘절대 권력’을 누려왔다. 그런 IOC와 FIFA가 최근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IOC에선 올림픽 유치를 원하는 도시가 줄어 비상이 걸렸고, FIFA 집행부는 ‘비리 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부정부패 혐의로 미국과 스위스 사법당국에 기소를 당했다.
IOC와 FIFA에 떨어진 ‘발등의 불’
세계 각국의 올림픽 유치 경쟁은 1984년 LA올림픽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점차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급증하자 개최 후 떠안게 되는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휘청거리는 도시가 늘었다. 자연히 올림픽 유치 신청 도시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단적인 예로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신청한 도시는 알마티(카자흐스탄)와 베이징(중국) 단 두 곳뿐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IOC는 지난해 12월 일명 ‘올림픽 어젠다 2020(Olympic Agenda 2020)’을 발표했다. 올림픽 개최 비용의 획기적 감소를 골자로 한 이 개혁안에서 IOC는 ‘올림픽은 한 도시에서만 개최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여러 도시에서 분산 개최할 수 있게 하는 등 올림픽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한편, 지난 5월 27일(현지 시각) 미국과 스위스 연방검찰은 전∙현직 FIFA 집행부 7명을 긴급 체포했다. 또한 이들을 포함해 총 14명을 뇌물수수와 탈세, 돈세탁, 불법 금융거래 등 47개 혐의로 기소하며 ‘FIFA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수사 결과, 기소된 이들은 △월드컵 마케팅 대행권과 중계권 리베이트 등으로 1억5000만 달러 이상을 착복하고 △남아공월드컵(2010) 개최로 1000만 달러의 뒷돈을 챙겼으며 △후원사 회장의 서명을 위조해 후원 계약서를 조작하는 등 충격적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상황에서 5선(選) 연임에 성공한 제프 블래터(Sepp Blatter)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미국 사법당국의 수사를 피해갈 순 없게 됐다.
올림픽 어젠다 2020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른 자발적이고 자연스런 조정 과정이라면 FIFA의 ‘비리 스캔들’은 도를 넘은 집행부의 비리와 부패로 사법당국의 철퇴를 맞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얼핏 전혀 다른 현상인 것 같은 이 두 사건의 이면엔 ‘돈’이란 문제가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포츠 산업화’의 빛과 그림자
스포츠가 돈에 눈뜨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이후부터다. 그 즈음부터 △냉전 체제 해체 △세계화 △미디어 기술 발달 △정보화 등의 물결을 타고 스포츠는 빠른 속도로 산업화됐다. 이 기간 중 IOC와 FIFA를 이끈 인물이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 1920~2010) 전(前) IOC 위원장, 그리고 주앙 아벨란제(Joao Havelange)와 블래터 전 FIFA 회장이었다. 이들은 올림픽과 월드컵의 상품 가치를 높여 수익을 극대화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인구는 한층 높은 수준의 스포츠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수많은 스포츠 영웅이 탄생했으며 스포츠 발전을 위한 재정도 확충됐다. 하지만 그만큼 그림자도 길었다.
사실 올림픽은 모스크바 대회(1980)까지만 해도 유치 신청 도시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 사마란치 위원장 취임 이후 ‘전 세계 도시들이 앞다퉈 유치하는’ 글로벌 이벤트로 탈바꿈했다. IOC는 올림픽의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대회를 재정비, 콘텐츠 가치를 높임으로써 TV 중계료를 획기적으로 올렸다. 또한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 막대한 후원금을 챙겼다. 이렇게 늘린 수입은 다시 세계 각국 올림픽위원회(National Olympic Committee)를 통해 해당 국가의 스포츠 발전과 올림픽 운동에 쓰였다. 말하자면 선순환 구조였다.
문제는 개최 도시에서 나타났다. 후보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대회 유치에 성공한 도시가 과도한 재정 부담을 떠안는 일명 ‘승자의 저주’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개최 도시 간 과열 경쟁의 결과,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솔트레이크시티(미국)에선 IOC 위원들의 뇌물 수뢰 혐의가 폭로되며 거물급 위원들이 사퇴하기도 했다. IOC는 당장의 수입을 제공하는 파트너, 즉 미디어와 후원 기업의 이해관계를 개최 도시보다 우선시했다. 개최 도시엔 각국 정부의 재정 보증을 요구해 리스크를 떠넘겼다.
그래도 IOC는 ‘올림픽 정신(Olympism)’을 지향하기 때문에 지나친 상업주의는 내부적 경계 대상이 된다. 또한 올림픽 종목별 세계 연맹들의 협조가 필요하므로 독점적 권한 행사 역시 자제하는 편이다. 반면, FIFA는 축구의 절대적 인기를 등에 업고 상업주의를 극대화해왔다. 또한 단일 종목인 만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왔다. 실제로 FIFA는 IOC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유일 세계 연맹’이다. FIFA가 아벨란제 전임 회장 시절부터 오랫동안 불거져온 뇌물 수수와 뒷거래 등 각종 부정부패 의혹에도 끄떡없이 건재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돈은 ‘수단’일 뿐… 스포츠에서도!
오늘날 FIFA와 IOC가 직면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두 조직 모두 '규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란 데 있다. IOC와 FIFA의 권력 역시 (올림픽과 월드컵이란) 최고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독점력에서 나온다. 더욱이 이들은 그 어디에서도 규제 받지 않는다. 독점은 도덕적 해이를, 더 나아가 부패를 낳는다. IOC는 개최 도시와 국가를 적극적으로 배려하지 않으며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FIFA는 아예 돈의 노예가 됐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던가? FIFA가 지구촌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의 ‘교황청’이라면 FIFA 회장은 축구 ‘교황’에 해당한다. 비리 스캔들로 얼룩진 오늘날 FIFA의 모습은 중세 시대 부패했던 교황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교황청은 절대 권력이 자신들에게 집중되자 ‘인간 구원’이란 종교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부패해 급기야 면죄부 판매에 나섰다. 이는 결국 ‘마틴 루터발(發) 종교 개혁’의 계기가 됐다.
스포츠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온전한 발전을 통해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지금은 바로 그 존재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스포츠계 마틴 루터 운동’이 일어나야 할 시점이다. 물론 그 이전에 IOC와 FIFA가 가치 중심 경영 철학과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 존경 받는 국제 스포츠조직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국제스포츠를 이끄는 조직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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