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낯선 시간과 공간, 사람이 주는 힘

2015/01/27 by 여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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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격언이 있다. 나무만 보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놓치는 게 많은 반면, 숲을 보면 시야가 넓어지면서 그 동안 못 봤던 게 눈에 들어온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좀 더 상위의, 큰 개념이 떠오른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있는 나무만 보려 한다. 가까이 존재하는 건 익숙하고 또 편해 당장 시선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눈앞의 것에 계속 집착하다보면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를 볼 기회가 자연스레 줄어든다. 문제는 이 같은 ‘무의식적 근시안(unconscious myopia)’이 많은 병폐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작게는 개인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고, 크게는 기업이나 국가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일부러 숲을 보려 하는 ‘의식적 원시안(conscious hyperopia)’가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나무가 울창한 숲 사진입니다.

 

‘나무’를 볼 것인가, ‘숲’을 볼 것인가

최근 사회심리학에서 특히 많은 주목을 받는 이론이 하나 있다. 야코브 트롭(Yaccov Trope) 미국 뉴욕대 교수와 니라 리버만(Nira Liberman)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가 제기한 일명 ‘해석수준이론(construal level theory)가 그것. 이 이론은 ‘나무-숲’ 비유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석수준이론에 따르면 특정 대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 방식은 크게 ‘저차원해석(low level construal)’과 ‘고차원해석(high level construal)’으로 나뉜다. 저차원해석은 실현 가능성(feasibility)이나 (돈·시간·노력 따위의) 비용적 요소에 초점이 맞춰진다. 뭐든 세세하게 따지며 보기 때문에 구체적 사고(concrete thinking)의 경향을 띤다. 쉽게 말해 ‘좁은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고차원해석은 바람직함(desirability)과 이상적 혜택을 중시한다. 부분보다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려 하므로 추상적 사고(abstract thinking)에 가까우며 상대적으로 ‘넓은 사고’에 해당한다. 두 개념을 광학기기에 비유하면 저차원해석은 현미경에, 고차원해석은 망원경에 보다 가깝다.

망원경으로 멀리 보는 사람의 이미지입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사물을 저차원해석 방식으로 대한다. 당장 눈앞의 손익이 아른거리다보니 투입 시간과 노력, 돈 등을 따지며 ‘이걸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늘 재기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창의성이 나오기란 힘들다. 당장의 현실에만 눈을 돌려 모든 걸 좁혀 보기 때문에 모든 게 기존 것의 답습에 그친다. 늘 해 오던, 편안하고 익숙한 것만 계속 찾게 된다. 당연히 제품이나 디자인, 기술에 대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긴 힘들다. 설사 변화가 일어났다 해도 기존 것에 대한 단순 가감(加減)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때론 낯섦과 불편이 창조를 만든다?

왜 그럴까?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 ‘심리적거리이론(psychological distance theory)’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시간이나 장소, 사람 등 특정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인식한다. 일반적으로 그 대상이 현재의 나와 가까울수록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지고, 멀수록 심리적 거리도 멀어진다.

이 같은 시간적·공간적·사회적 거리는 해석 수준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가까울수록 저차원해석이, 멀수록 고차원해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장 어제나 내일 상황을 떠올리면 세세한 일들에 후회나 걱정이 앞선다. 늘 가던 장소에선 늘 하던 일만 떠올리게 되고, (사회적으로 가까운) 가족과 함께 있을 땐 눈앞의 것을 따지기 십상이다. 반면 1년 전이나 후로 시간을 돌리거나 평소 가보지 못한 장소를 찾았을 때, 혹은 평소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땐 일종의 ‘환기’ 작용이 발생해 이전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큰 그림(숲)을 볼 수 있다.

별다른 자극이 주어지지 않을 때 인간은 늘 가까운 시간을 떠올리고 가까운 장소에만 가며 가까운 사람과만 만나려 한다. 이 같은 무의식적 근거리 지향은 저차원해석을 불러일으킨다. 당장은 익숙하고 편할지 몰라도 세상을 좁게 볼 수밖에 없다. 늘 자신에게 익숙한 대상의 언저리에만 머무르다 보니 발전도, 혁신도, 창의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누구든 주기적으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혹시 난 모든 일을 끙끙대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진 않을까?’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다. ‘혹시 난 쳇바퀴 돌 듯, 익숙한 항구에 닻 내리듯 사물을 해석하고 있진 않을까?’

insight, 남자가 insight라는 문구에 손가락을 대는 사진입니다.

다소 불편하고 어색하더라도 때때로 자신을 낯선 시간과 장소, 사람에 노출시켜 고차원해석으로 가도록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늘 편안한 마음으로 가까운 시간이나 장소에, 친한 사람에게 안주하면 결코 혁신이나 창의는 일어날 수 없다. 거리가 멀어서, 낯설어서 갖게 되는 불편이 때론 새로운 걸 보게 해준다. 그렇게 전에 없던 걸 찾고 전체를 보는 과정에서 기저를 관통하는 원칙에 눈 뜰 수 있다. 이게 바로 꿰뚫어보는 힘, 다시 말해 통찰(insight)이다. 창의력(creativity)도 여기서 생겨난다.

 

마음의 렌즈, ‘현미경’에서 ‘망원경’으로

고차원해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늘 낯선 것에 익숙해지려는 원시안적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비로소 갖출 수 있다. 주변 환경을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으로 낯설게 바꿔놓는 것도 방법이다. 과거나 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최대한 현재를 기준으로 보다 멀리 떠나는 게 좋다. 가족과 여행을 갈 때도 가능한 멀리, 낯선 곳을 택하는 걸 권한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을 일부러 찾아 나서자.

심리적 거리 이론과 해석수준 이론은 개인의 행복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늘 가까이 있는 ‘일상’이란 우물에서 벗어나 가급적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림을 볼 때 삶의 긍정적 측면이 보인다. 심적 여유가 생기면서 사회적 관계도 좋아지게 된다. 마음의 렌즈를 ‘현미경’이 아니라 ‘망원경’으로 바꾸는 순간, 매사 옥신각신 따지는 전쟁터 같은 일상이 먼 자연을 수놓은 풍경화처럼 멋있게 보일 것이다.

두 이론이 기업 경영에 던지는 시사점 역시 가볍지 않다. 일단 기업 내부에선 구성원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업무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편견이나 선입견, 고정관념에 묶이게 하는 무의식적 근시안에서 벗어나 먼 시간과 장소, 사람에의 노출을 통해 의식적 원시안이 생겨나도록 업무 체계나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한정된 장소에서 고객과의 감정 커뮤니케이션을 소화하느라 지친 종업원에겐 원거리 심리를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다. 업무 환경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시간·장소·사람을 낯설게 하면 쳇바퀴에서 벗어나 좀 더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 그리고 고객 만족 상승이란 성과로 이어진다.

소비자를 설득할 때도 기업 광고나 캠페인에 심리적 원거리를 탑재해 자사 제품이나 브랜드가 좀 더 큰 존재로 느껴지고 긍정적으로 보이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해외 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한 실험에 따르면 소비자는 광고를 접할 때도 늘 익숙한 인물과 장소가 등장할 때보다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인물과 장소가 등장할 때 해당 제품에 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최근 적지않은 광고가 외국인 모델을 섭외하고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는 건 그 때문이다.

갤럭시의 새로운, 그리고 꽤 멋진 시작. 8월 15일 런던의 브릭레인 처음 만난 camille에게 알파의 모델을 제안하다.  LTE보다 3배 빠른 광대역 LTE-A폰 국내 최소 두께 6.7mm 슬림&메탈 디자인 스마트폰, 삼성전자. 갤럭시 알파 광고 사진입니다.

 

‘고해석수준 사회’로 가기 위한 요건

심리적 거리 이론과 해석수준 이론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시사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제한된 국토 면적에 인구가 밀집돼 있으며 단일 민족 성격이 강하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 발달로 물리적·사회적 거리가 상당히 좁은 ‘심리적 초근거리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좁고 세밀하게 사고하는 저차원해석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비용에 민감하고 매사 크고 작은 눈치를 보며 당장의 실현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이런 환경에서 창의성과 창조경제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저차원해석이 만연해 있는 국가적 체질을 개선하려면 교육 시스템과 사회 환경을 개선, ‘심리적 원거리 국가’로 탈바꿈해야 한다. 비록 좁은 고밀도 국가이지만 국민들 마음에서만큼은 넓게, 멀리 내다보는 고차원해석이 일어나도록 시·공간적 환경은 물론이고, 사회적 환경도 ‘원거리’로 만들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낯선 경험을 많이 하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져야 창의성이 생겨나고 국가적 생산성도 높아진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불안해 하며 자라는 대신 먼 과거(혹은 먼 미래)를 맘껏 상상하며 자라도록 교육 제도도 바꿀 필요가 있다. 사회 환경 역시 전 국민이 다양한 장소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계층이나 민족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를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고해석수준 사회(high-level construal society)로 만들어야 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여준상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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