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미래 먹거리, SF영화서 찾아라!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국내 극장가가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The Avengers: Age of Ultron)’ 개봉으로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스토리라인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긴 하지만 멋진 액션과 특수효과, 정교한 볼거리가 어우러지며 개봉(4월 23일) 한 달여 만에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어벤져스 시리즈엔 매력적인 캐릭터가 여럿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 극중 ‘아이언맨(Iron Man)’으로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Tony Stark)를 꼽을 수 있다. 영화 속 아이언맨이 보여주는 신기술들은 과학 발전이 이뤄내는 미래상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그 중 일부는 현실에서 구현되기도 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거미 로봇, 기억 나세요?
SF영화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나 창의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20세기 이후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거나 그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바꾸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는 11일 네 번째 시리즈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시리즈의 경우, 과학자(혹은 과학을 악용하는 기업)가 자연과 생명에 대해 무모한 조작을 감행할 경우 초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파괴성을 경고했다.
지난 2002년 개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 ‘토탈리콜(Total Recall, 1990)’로도 잘 알려진 ‘SF(Science Fiction)소설의 거장’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2054년 미국 워싱턴을 배경으로 감각적 연출과 뛰어난 영상, 정교한 설정 등을 두루 갖춰 ‘미래사회 모습을 다양하게 구현한 최고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홍채 인식으로 신원을 파악 당하지 않기 위해 안구를 이식하는 장면 △거미 형상 로봇이 수술 직후 주인공을 추적해 검사하는 장면 △멀티 터치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등으로 가득한 도시 풍경을 묘사한 장면 등은 오늘날 IT 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 사회 모습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도 주목 받았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이를 영상으로 구현한 영화는 실제로 그런 꿈을 품어온 이들에 의해 실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SF소설(혹은 영화) 속 내용이 미래에 영향을 끼치고 급기야 실제로 이뤄지는 현상을 ‘SF효과’라고 한다. SF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모토로라의 최대 베스트셀러 휴대전화 모델이었던 ‘스타택(StarTAC)’이다. 스타택은 1966년 당시 미국 인기 드라마 시리즈 ‘스타트렉(Star Trek)’에 등장했던 휴대용 무선 단말기를 30년 만에 극중 형태 그대로 형상화한 제품이다. 스타택이란 명칭 역시 시리즈 제목에서 가져왔다.
MIT선 영화 속 첨단 기술 구현하는 교과도 개설
SF영화가 IT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긴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기술이나 제품을 현실에 반영할 땐 몇 가지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SF영화 속 장면은 상당 부분 ‘연출’된 것이다. 필요할 경우 소품이나 특수효과 활용도 가능하다. 신기한 장면을 오래 구현하기 어렵다면 몇 초 정도만 보여줘도 무방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시장은 영화보다 훨씬 냉혹하다. 영화 속 기기를 그대로 구현해낸다 해서 상업적 성공이 보장되진 않는다. 또한 일단 구매해 사용하면 한 번에 몇 시간씩, 총 사용 기한으로 치면 몇 년간 두고두고 써야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 같은 실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SF영화 속 기술을 현실에 접목하려 해선 안 된다.
물론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가능성 있는 미래형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놓치고 후발주자로 뒤처지면 좀처럼 그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므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시장을 선도하려면 SF영화 속 장면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실현 가능하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품화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SF소설 중 ‘뉴로맨서(Neuromancer)’란 작품이 있다. 1984년 발표된 이 소설은 미래의 모습을 잘 그려냈을 뿐 아니라 실제 기술 개발에도 크게 기여했다. 저자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이 작품으로 ‘사이버 펑크(cyberpunk)’란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과 할리우드 영화 등 수많은 아류 제작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최근엔 SF영화나 소설을 학문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지난 2013년 ‘Science Fiction to Science Fabrication(공상과학에서 최첨단 과학 장비로)’이란 교과목(과목 코드 MAS S65)을 정식으로 개설하고 SF영화나 소설 등에 등장하는 기술과 제품을 한 학기 동안 실제로 만들어보도록 하고 있다. 이 대학이 발행하는 격월간 과학 저널 ‘MIT 테크놀로지 리뷰(MIT Technology Review)’는 2013년과 2014년 SF 작가들의 단편을 묶어 ‘Twelve Tomorrows(12개의 내일)’란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유명 SF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구현될 법한 12개 미래상을 매년 그해의 ‘특집 이슈’로 발표하는 동시에 단행본으로도 펴내는 이 프로젝트는 반응이 매우 뜨거워 이제 매년 고정 기획으로 진행되고 있을 정도다.
‘콘텐츠 강국’ 한국, 왜 유독 SF 분야선 고전할까?
SF영화와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 간 연관성 연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해온 아론 마커스(Aaron Marcus) AM+A(Aaron Marcus and Associates, Inc.) 설립자 겸 대표는 최근 미국과 유럽 외 국가에서 제작된 SF영화와 TV 드라마 시리즈 분석 작업도 진행했다. 실제로 일본과 중국, 인도에선 상당수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SF 장르로 제작되고 있어 유의미한 연구가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한류 열풍’이라 할 만큼 영화나 TV 드라마의 글로벌 경쟁력이 막강하고 그에 못지 않은 IT 기술력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IT·콘텐츠 산업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는 SF 영화나 TV 드라마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국내 최초로 개최된 ‘SF어워드’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시상 부문은 △SF영상(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SF장편소설 △SF중단편소설 △SF만화(웹툰·도서) 등 총 4개. 소설과 만화 부문에선 웹소설과 웹툰의 활성화로 비교적 우수한 경쟁작이 출품된 반면, 영상 부문은 적격 후보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주인공이 외계인”이란 이유만으로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SBS)가 우수작에 포함되는 등 빈약한 저변을 드러냈다.
SF영화나 소설은 과학기술과 문화콘텐츠 간 융합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이 부문의 불모지라 할 만큼 뒤처져 있다. 이는 “과학기술 선도 능력이 부족하다”는 국내 기업의 평판과도 맥을 같이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기술이나 상품을 가장 빠르게 구현하고, 정해진 시장에 진입해 눈 깜짝할 새 선두주자를 따라잡는다. 하지만 1등으로 치고 나가 시장을 장악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혹 그 이유를 ‘SF영화 같은 창의력·상상력의 원천을 만들어내는 문화 부재(不在)’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누구나 기술을 얘기하고, 그 기술을 활용해 감동적 스토리와 감각적 영상을 빚어내며, 그 결과물이 전 세계 인구에게 제약 없이 공급될 수 있다면 ‘시장을 여는 기술’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SF영화에 열광하는 한국인이 훨씬 더 늘어났으면…
이제 더 이상 기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봐선 안 된다. 인간과 사회가 모두 고개 끄덕이며 감동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거기에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관련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엉뚱한 상상이 최대한 장려돼야 하고, SF영화와 소설을 만들거나 소비하는 인구는 늘수록 좋다. 당연히 길이나 형식 등에 관한 장벽은 무의미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루 빨리 SF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 늘고 TV에선 수준급 SF드라마가 방영되며 SF영화 제작 편수가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SF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삼성투모로우 블로그에 싣는 내 마지막 칼럼이다. ‘SF영화를 즐겨보고 SF영화 얘길 많이 하자’는 내 주장의 이면엔 사실 이런 메시지가 숨어 있다. SF영화를 신나게 소비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미국의 혁신 기업들처럼 독창적이고 재밌는 일들에 몰입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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