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미래 혁신,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 연구’에 답이 있다

2015/12/29 by 문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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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미래 혁신,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 연구’에 답이 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국내 최고 전문가의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보세요. 매주 화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판사


 

인간 세상에 ‘(유일무이한) 정답’ 같은 건 없다. 해법은 언제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마련이며 감시나 처벌, 분노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역부족이다. 관건은 인간 심리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다. ‘실증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래 신문 기사가 좋은 예다.

“안녕하세요? 장그래씨. 맛있는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서울 광화문 사거리 한 카페. 한 고객이 종업원 가슴에 달린 명찰을 보고 이렇게 주문한 뒤 손을 뻗어 종업원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날 이 카페에선 주문할 때 무뚝뚝하게 “아메리카노”라고 말하면 원래 가격보다 50% 추가된 금액을 받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라고 말하면 제값을,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라고 하면 커피 값을 20% 깎아줬다. 종업원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하고 주문한 뒤 하이파이브까지 하면 50% 할인해줬다. 늘 그런 건 아니다. 커피 전문점 엔제리너스가 매월 첫째 수요일에 여는 ‘따뜻한 말 한마디’ 이벤트 때 이렇게 한다. 말 한마디만 잘하면, 39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1950원에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서울 이태원에 있는 수제 맥주 전문점 크래프트한스는 “손님은 왕이 아니라 친구다”라고 적힌 칠판을 걸어놓았다. 이 식당에 들어서자 직원이 “안녕하세요, 대니얼이에요! 파이팅!”이라고 인사했다. 이곳엔 수시로 종업원을 부를 수 있는 벨도 없다. 손님이 오면 직원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인사한다. 미국에 가면 식당에서 테이블 담당 종업원이 자기 이름을 말하며 인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선 주문할 때 종업원 이름을 불러야 한다. 이 회사 노동진 팀장은 “직원이 즐거워야 손님에게 서비스도 잘할 수 있다. 그래서 손님을 친구처럼 대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두 사람의 상하 관계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며 “처음엔 할인을 받기 위해 친절한 말을 했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이 내뱉은 말과 상반된 행동을 하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행동도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5년 1월 10일자 기사 중)

 

‘놀라울 정도로 집단의존적인’ 인간 심리

위 기사 속 사례는 직접적으로 규제하거나 계몽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보다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넛지(nudge)’ 전략에 가깝다. 종업원을 자신과 대등한 관계로 보고 친절하게 대하는 매너가 ‘손님은 왕’ 따위의 구태의연한 구호보다 세련되고 쿨하다, 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사회 내 매력 경쟁을 촉진시키는 건 도덕적 훈계보다 훨씬 강력한 전략이기도 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판에 예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쓰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고,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근본적으론 그게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갑(甲)질은 나쁜 것’이라며 무조건적 제재를 도입하기보다 ‘갑질은 촌스러운 짓이며 세련된 매너를 갖추는 게 훨씬 매력적’이란 트렌드를 유행시키는 게 실제론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입니다.

‘선진국이 어떻고 글로벌 스탠더드가 어떻고’ 하는 캠페인은 식자(識者)층에겐 유치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대중에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개그맨 이경규가 일명 ‘양심 냉장고’를 내걸고 정지선 지키기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변화가 생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볼 때 유흥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며칠간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방치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 한 모 지방자치단체의 조치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클 수 있다. 그 광경을 접한 이에게 ‘어차피 남들도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줄 테니 말이다. 인간 심리란 놀라울 만큼 집단의존적이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에 숨겨진 진짜 의미

종업원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전략이 효과적인 이유는 또 있다. 실증적 도덕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 감정은 배타적이어서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좀처럼 넘어서기 어렵다. 집에선 더없이 좋은 가장이 아무 갈등 없이 타인을 고문하는 소위 ‘도덕적 구획화’ 현상이 바로 그런 예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요. 한 여성이 이름이 적힌 노트를 보고 있습니다.

자동판매기 바라보듯 대하던 종업원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행위는 인간 두뇌에 ‘잠시나마 대인관계를 개인화하는’ 자극을 제공, 이후 행동 방식을 바꿀 수 있다. 그건 친근감이나 공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매우 속이기 쉽고 직관적으로 작용하는 인간의 심리(혹은 뇌)를 이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초기에 인위적으로 ‘평판을 의식해야 하는 지인 집단 일원’을 대할 때와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이후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러 심리학 실험 결과를 보면 인간은 아주 작은 초기 자극에도 이후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실험실에서 대기하던 피실험자에게 돈과 관련된 사진을 무심코 보게 한 후 가치관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물질주의적 답변을 내놓을 확률이 보다 높아진다. 이 밖에도 인간 심리가 얼마나 암시에 잘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실험 결과는 많다. 그 이유 역시 진화론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제 포식자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원시 수렵 생활에선 장구한 추론보다 다소 오류가 있더라도 자극에 조건반사적으로 판단하는 게 생존에 훨씬 유리했을 테니까.

 

‘소소한 유행 읽기’가 의외로 중요한 이유

여하튼 하고 싶은 얘긴 이거다. 우주 탐사를 하고 싶으면 최첨단 현대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하는 게 당연하듯, 인간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으면 먼저 인간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과 뇌과학, 행동경제학은 최근 한 세대 사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지구 최강 학자들이 대중적 저작까지 여럿 남기고 있지 않은가! 지난 세기의 마르크스나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겸 철학자)는 이제 그만 붙잡고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자세로 공부할 일이다.

한 남성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입니다.

인간 마음에 대한 탐구 결과를 토대로 사회를 보다 바람직하게 바꿀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매력 경쟁을 벌여야 한다. 책 읽는 게 섹시하고 핫(hot)한 요즘 트렌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 진짜 멋쟁이다, 회식을 강요하는 상사는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다, 모피를 입는 건 시대착오적 속물 취향이다…. 이처럼 소소하고 다양한 유행의 배후엔 의외로 거대한 사회의 변화가 도사리고 있다.

집단에서 배척 당하기 싫고 사랑 받고 싶어 타인을 따라 하는, 원시인 시대에서부터 줄곧 우리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본능을 적절히 이용하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인간은 ‘옳은’ 게 아니라 ‘매력적인’ 것, 더 정확히 말하면 ‘남들이 다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것에 끌리도록 ‘세팅(setting)’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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