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부산은 어떻게 ‘쿨 시티’로 변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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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현장 발매로 겨우 구한 좌석은 영화관 맨 앞이라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엔 애로가 많았지만 맨 앞에 앉은 덕(?)에 소피 마르소의 무대 인사를 눈앞에서 보는 행운을 거머쥐었습니다. 한때 사진으로만 접했던 스타의 실물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역시 인생은 뜻밖의 기쁨(serendipity)으로 가득 찬 상자 같습니다.
알고 보면 세상사는 ‘꽤 복잡한 입력 값의 합’
여러분, 최근 부산에 가보신 적 있나요?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무대인 영화의전당과 그 주변의 센텀시티, 해운대에서 달맞이 고개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곳곳은 영화제를 찾는 세계적 배우들과 충분히 어울릴 만큼 멋진 명소가 됐습니다.
한때 주차장이었다는 ‘더베이(The Bay) 101’ 건물 바로 앞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천루가 즐비합니다. 워터프론트 위 카페에서 영국풍(風) 피시앤드칩스를 사기 위해 30미터 이상 줄을 선 부산 시민들의 모습은 이국적인 그곳 풍경과 전혀 이질적이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문득 ‘부산이 언제부터 이렇게 쿨(cool)한 도시가 됐지?’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그 시작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영화에 열정을 품었던 이들이 겁 없이 (무려 국제!) 영화제를 기획, 부산에서 첫발을 디뎠던 20년 전일 겁니다. 하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1년에 단 며칠 머무른다는 이유로 오래된 도시가 이렇게나 많이 변화했다고 설명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부산이 오늘날처럼 ‘예뻐진’ 건 부산국제영화제와 연관된 몇몇 장소로 인파가 몰리고, 그 결과 자연스레 상권(商圈)이 형성됐으며, 그 여파가 다시 재능 있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불러 모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한 달간 떠 있었던 ‘러버덕(Rubber Duck)’ 기억하세요? 네덜란드 설치 미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의 작품으로도 잘 알려진 이 대형 고무 오리는 당시 뜻밖에도 무수한 셀피(selfie)에서 그 존재감을 입증했습니다. 사람들은 러버덕의 실물을 눈으로 보기보다 러버덕을 배경 삼아 한 사진을 찍기 위해 석촌호수를 찾았습니다. 아니, 사실 좀 헷갈립니다. 남긴 사진을 나중에 보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이 모든 것(all of the above)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의 변화나 러버덕의 유행에서 볼 수 있듯 건축과 인테리어, 조명과 디스플레이 디자인의 발전은 고해상도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그리고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플랫폼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합니다. 말하자면 부산의 발전을 위해 부산을 찾는 이에게 ‘물리적으로’ 부산에 가야 할 이유(“근사한 곳이 많다더라”)가 생기는 겁니다. 이처럼 언뜻 단순해 보이는 세상만사는 사실 꽤 복잡한 입력 값의 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고요.
PC는 종이를, 스마트폰은 여행을 대체할 수 없다
오래전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이제 곧 종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초래한 정보화 시대는 오히려 더 많은 종이 출력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섣불리 꺼내놓는 상상처럼 세상 일은 그리 단선적이지 않은 거죠.
휴대전화의 탄생 즈음, 사람들이 꺼내놓은 걱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온통 휴대전화에 매달려 방 안에만 웅크리고 있을 것”이란 탄식이 쏟아졌지만 요즘 돌아보면 어떤가요. 그 목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젊은이가 밖으로 나와 세계가 좁다 하고 곳곳을 누빕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다양한 사진으로 ‘인증’하고 있죠.
주요 도시를 빛내고 있는 미국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LOVE’ 조각상과 러버덕, 기하학적 형상을 뽐내는 대형 건축물과 어마어마한 높이의 강철 탑, 태곳적부터 그곳에 존재해온 계곡과 정글…. 사람들은 이 모든 곳을 기꺼이 찾아갑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활용, 그곳에 갔던 자신의 흔적을 담아옵니다.
지난 수 년간의 데이터를 봐도 ‘(사진) 찍기 좋은 장소’, 다시 말해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장소들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연출하거나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남길 수 있는 ‘아늑한 곳’을 향상 수요가 늘고 있는 거죠. 이 같은 사실은 앞으로 어떤 공간이 사람들에게 사랑 받게 될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줍니다.
세상이란 도미노의 향방 정하는 건 ‘지금, 우리’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는’ 세상, 그리고 ‘남겨지고 재생산되며 공유되는’ 세상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전혀 다르다고도 말할 수 없죠. 다만 각종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하는 다양한 동기가 속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세상 속 다양한 변화와 인자들이 모여 ‘상상 이상의 것’들이 만들어지는 기적은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삶 곳곳에서 벌어지며 ‘세렌디피티’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 하나 나올 때마다 ‘저 기술 때문에 지금껏 누려온 일상의 소중함이 사라지면 어쩌지?’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시대별로 그 형태를 달리해 발현되는 것일 뿐, 그 기저엔 수십만 년에 걸쳐 변함없이 이어져온 ‘공통분모’가 또렷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합니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분노하죠. 자주 웃고 종종 웁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위에 놓인 환경과 기술, 지식이 매번 그 모습을 바꿔 우리의 욕망을 표현하고 또 채워주죠. 일종의 ‘도구’로서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느낌과 삶의 변화가 다시 그 도구들의 쓰임새를 바꾸는 입력 값으로 작용합니다. 일종의 공진화(co-evolution) 과정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는 마치 앞선 블록이 다음 블록을 움직이게 하는 도미노 같기도 합니다. 도미노의 다음 향방이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바로 지금, 여러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깊이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불고 있는 여러 갈래의 바람 중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고르는 그 바람이 도미노의 다음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섣불리 상상하지 마십시오. 대신 사람들을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세요, 미래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거란 사실을.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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