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성취 욕구의 원천, 분노

2014/12/19 by 곽금주
공유 레이어 열기/닫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분노란 인간의 본능적 반응이자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동안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의 분노를 여러 번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할 정도로 일상적이기도 하다.

 

분노는 되도록 억제해야 한다?

분노는 가벼운 짜증이나 불만부터 극심한 격분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사람들은 흔히 ‘분노는 자칫 폭력이나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나친 분노는 신체 건강과 심리적 안녕, 대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가볍게는 두통, 불면증부터 심각하게는 우울증이나 불안, 심장질환, 심장마비, 뇌졸중까지 일으킬 수 있다. 또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면 자칫 주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 같은 분노의 신체적·심리적 악영향 때문에 적지않은 이들이 ‘분노는 되도록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노하는 남성

분노는 ‘소리 지르고 격분하게 하는’ 공격 행동을 유발하는 한편,
특정 목표를 향해 접근토록 하는 촉매 역할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노가 실제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분노는 오히려 인간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효과적 감정이다. 현재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내·외적 요구와 위협 등을 경고해주는 동시에 문제를 직시하게 해주는 감정인 셈이다. 어찌 보면 분노는 현재 직면했거나 향후 닥칠 문제의 위협을 극복하도록 돕는 일종의 ‘생존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를 느낄 때 심장 박동수와 혈압, 테스토스테론 수준은 모두 증가한다. 반면,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준은 오히려 감소한다. 이는 분노가 사람들을 마냥 흥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흥분을 가라앉히고, 문제를 회피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문제에 직면하게 한다는 걸 뜻한다. 또한 뇌 촬영을 해본 결과, 인간은 분노를 느낄 때 왼쪽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됐다. 전전두엽 피질은 이성적이고 체계적으로 목표에 접근하는 행동을 담당한다. 요컨대 분노는 ‘소리 지르고 격분하게 하는’ 공격 행동을 유발하는 한편, 특정 목표를 향해 접근토록 하는 촉매 역할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분노와 동기 부여 간 상관관계

지난 2010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Utrecht University) 심리학과 연구팀은 ‘분노’와 ‘목표에 대한 접근 동기’ 간 관계를 연구했다. 연구진은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참가자에게 펜·접시 같은 사물 사진을 보여줬다. 단, 각각의 사진이 제시될 때 참가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특정 감정(화남·두려움)을 나타내는 표정이 사진에 함께 나타나도록 했다. 다시 말해 각 물체가 특정 감정과 무의식적으로 연관되도록 한 것이다. 그런 다음, 연구진은 참가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방금 사진으로 접한 물건을 얼마나 갖고 싶으십니까?”

한 남성이 모니터에 뜬 제품을 보고 각기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분노는 목표물에 접근하고자 하는 동기를 강화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참가자들은 중립적이거나 두려워하는 표정과 연계된 물건보다 화난 표정과 함께 보여진 물건을 훨씬 더 갖고 싶어했다. 이어진 실험에서 연구진은 참가자에게 스크린 속 사물을 보며 악력 측정 기계를 쥐도록 했다. 그러면서 “기계를 세게 쥘수록 지금 보고 있는 물건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에도 각 사진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 관련 물건이 제시됐다. 결과는 앞선 실험과 동일했다. 참가자는 분노 관련 표정과 연관된 물건을 보며 악력 측정 기계를 더욱 세게 쥐었다. 이 두 실험에서 알 수 있듯 분노는 목표물에 접근하고자 하는 동기를 강화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람보르기니가 분노의 산물?

분노가 동기 부여를 제공,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가 세계적 고급 자동차 람보르기니(Lamborghini)의 탄생이다. 람보르기니 설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원래 트렉터 사업가였다. 1950년대 후반 트렉터 사업으로 큰 돈을 모은 람보르기니는 알파 로메오, 재규어, 마세라티, 페라리 등 당대 최고 자동차들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는 종종 페라리에 올라 도로를 질주했지만 몇 가지 불만이 있었다. 편안하지 않은 승차감과 세련되지 못한 인테리어는 둘째치고 무엇보다 클러치 품질이 낮았다.

트렉터 제조 노하우가 있었던 람보르기니는 클러치에 대한 지식도 해박한 편이었다. 그는 페라리 설립자인 엔초 페라리(Encho Ferrari)에게도 페라리 클러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페라리는 람보르기니의 제안을 묵살했다. 페라리에게 고객은 필요악 같은 존재였다. 차를 팔기 위해선 고객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에게 고객은 차를 ‘성능’이 아니라 ‘위신’과 ‘명예’ 때문에 구입하는 속물일 뿐이었다.

정비공 이미지

페라리를 향한 람보르기니의 분노가 세계 최고 자동차 브랜드를 탄생시킨 셈이다.

 

이미 트렉터로 성공한 사업가였던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의 무례한 태도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페라리 차량(1958 페라리 250GT)을 마음대로 개조해버렸다. 썩 훌륭하게 고쳐진 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람보르기니는 “고성능 그랜드 투어링 카를 만들어 페라리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페라리를 향한 람보르기니의 분노(혹은 복수심)는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람보르기니 사업이 시작된 이탈리아 산타가타 볼로냐는 사실상 ‘페라리의 뒷마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페라리의 활동 무대였다. 람보르기니는 전직 페라리 디자이너들을 대거 자사 디자이너로 고용하는가 하면, 자사 로고를 (스페인의 대표적 투기 종목 투우로 유명한) 소로 정했다. 페라리 로고(말)를 다분히 의식한 결정이었다. 그뿐 아니다. 4개월 만에 완성된 람보르기니의 첫 차(모델명 ‘350GT’)는 13개 모두 페라리 매출을 뺏어오기 위해 의도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며 팔았다. 이 같은 공격적 경영으로 람보르기니는 세계적 자동차 제조사로 우뚝 섰다. 페라리를 향한 람보르기니의 분노가 세계 최고 자동차 브랜드를 탄생시킨 셈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차량▲페라리 250GT(왼쪽)와 람보르기니 350GT

분노는 인간의 성취 욕구를 자극,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을 분노하게 한다면 스트레스 받는 대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란 메시지구나’라고 생각하자. 가장 바보 같은 처신은 분노 그 자체에 매몰되는 것이다. 더 많은, 더 큰 성취를 위해 지금이라도 분노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필자의 또 다른 칼럼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문가 칼럼] 호기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전문가 칼럼] 모방과 창의는 ‘뫼비우스의 띠’

by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1기)

기획·연재 > 오피니언

기획·연재 > 오피니언 > 외부 기고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