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스위트홈’ 고민하면 ‘스마트홈’ 따라온다
김학용 부산대 사물인터넷산학협력단 교수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늘 그렇듯 스마트폰으로 SNS 서비스에 접속해 ‘새 글’들을 확인한 후 잠을 청했다. 막상 자려니 침실 형광등을 끄러 가는 게 여간 귀찮지 않다. 여기서 뜬금없는 질문 하나, 형광등 끄는 방법은 몇 가지나 될까?
정확한 가짓수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귀찮지만 본인이 직접 가서 형광등 스위치를 끄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끄는 것이다. (우리 딸이 자주 쓰는 방법인데, 형광등을 쓰는 ‘가장 사랑스러운’ 방법인 것 같다.)
세 번째 방법은 스마트폰으로 스마트 램프나 스마트 스위치에 접속, 전원을 끄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불을 끄는 것도 신기한데 형광등 끄는 방법이 (두 가지나!)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네 번째 방법은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애플의 ‘시리(Siri)’처럼 음성 명령을 인식할 수 있는 홈게이트웨이(Home Gateway) 장치가 사용자 말을 알아듣고 형광등 전원을 차단하는 원리다. 스마트폰 음성 인식 기능을 써본 사람에게도 음성 명령으로 형광등을 끄거나 주변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광경은 여전히 신기하다.
마지막 방법은 놀랍게도 그냥 잠드는 것이다. 침대에 설치된 수면 측정 센서나 손목에 착용한 스마트밴드(혹은 스마트워치)의 활동 측정 센서가 사용자의 수면 여부를 확인한 후 알아서 불을 꺼준다.
사물인터넷, 그 시작은 스마트홈
‘형광등 끄는 다섯 가지 방법’ 가운데 뒤의 세 가지는 요즘 흔히 얘기되는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시나리오다. 사물인터넷 원리에 따르면 형광등이나 스마트폰, 스마트밴드, 침대 등 여러 사물이 연결돼 개별로 존재할 땐 제공하지 못했던 가치를 창출해낸다.
사물인터넷과 관련, 사업화가 진행 중인 영역은 가정∙자동차∙빌딩∙도시∙헬스케어∙공장 등 다양하다. 가정, 즉 스마트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당장 80%를 넘어선 일반 가정의 와이파이 보급률은 다양한 스마트 기기 간 연결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중저가 스마트 기기 역시 속속 출시되는 추세다.
실제로 시장조사 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지난해 480억 달러였던 글로벌 스마트홈 시장 규모가 오는 2019년 1115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연평균 19.8%의 성장세다. 국내 스마트홈 시장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지난 2013년 6조8908억 원이었지만 오는 2017년 예상치는 18조2583억 원이다. 연평균 성장률로 환산하면 27%에 해당한다.
글로벌 IT기업은 ‘스마트홈 대전’ 중
이 같은 추세에 발 맞춰 삼성전자를 비롯한 가전 제조사와 통신사업자, 건설사 등은 스마트홈 구축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선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구글)나 전자상거래 업체(아마존)까지 스마트홈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스마트홈에서 우위를 차지한 후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물인터넷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하려는 복안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올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기조연설에서 "인간 중심 기술 철학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해나가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애플의 경우, 지난해 자사 주최 개발자회의(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WWDC)에서 발표한 스마트홈 플랫폼 ‘홈키트(HomeKit)’를 바탕으로 전등과 온도 조절기, 디지털 도어록 등 다양한 스마트 제품을 연결한 스마트홈 서비스 제공을 준비하고 있다. 홈키트는 애플 자체 운영 체제(iOS)가 탑재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제어장치를 두고 음성 인식 서비스인 시리를 이용해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전략이다.
아마존은 자사의 음성 기반 개인 비서 서비스 ‘알렉사(Alexa)’를 중심으로 스마트홈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마존 측은 ‘알렉사 스킬 키트(Alexa Skills Kit, ASK)’란 이름의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공개, 외부 개발자들이 자신의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 음성 인식∙명령 기능을 결합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초 네스트랩스(Nest Labs)와 드롭캡(Dropcam)을 잇따라 인수하며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특히 가정용 감시 카메라 제조 스타트업 드롭캠이 보유한 이미지 분석 기술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서비스하는’ 환경 구축을 앞당기고 있다. 이를테면 주방 이미지를 분석해 외출 시 가스불이 켜져 있는 환경에서 저절로 가스를 잠가주는 식이다.
구글은 얼마 전 ‘브릴로(Brillo)’와 ‘위브(Weave)’를 중심으로 하는 신규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발표하기도 했다. 브릴로는 사물인터넷 기기용으로 개발된 ‘경량화 저전력 운영체제(OS)’를, 위브는 기기(혹은 실제 사물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될 클라우드) 간 연결성을 제공하기 위한 통신 프로토콜을 각각 일컫는다. ‘스마트홈에서의 주도권을 다른 산업 영역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구글의 전략이 읽히는 대목이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서비스 로봇 ‘페퍼(Pepper)’를 바탕으로 스마트홈 생태계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자동화하기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부분을 서비스 로봇이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페퍼는 ‘콘텐츠 기반 홈엔터테인먼트’ 수단으로도 활용될 계획이다.)
▲삼성 스마트홈 오픈 플랫폼 중 하나인 스마트싱스의 센서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수한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기반으로 오픈 플랫폼을 확대해나가며 스마트홈 생태계 강화에 나섰다. 표준을 기반으로 다양한 가전제품과 연동하기 위해 인텔∙브로드컴∙델 등과 함께 ‘오픈 인터커넥트 컨소시엄(OIC)’을 설립했고, 구글을 중심으로 하는 사물인터넷 표준 연합체 ‘스레드(Thread)’에도 참여했다. 최근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제공하는 사물인터넷 플랫폼 ‘아틱(Artik)’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틱은 스마트싱스의 오픈 클라우드와 연결돼 스마트홈과 사물인터넷 생태계 강화에 기여할 전망이다.
스마트홈, ‘홈오토메이션’과 차별화되려면
이렇듯 유수의 글로벌 기업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스마트홈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들이 만들고자 하는 스마트홈이 수 년 전 유망 산업으로 떠올랐던 홈네트워크(혹은 홈오토메이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스마트홈에 들어가는) 제품군이 다양해졌고 스마트폰을 활용, 제어가 편리해진 점을 제외하면 단순히 여러 장치가 서로 연결돼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 자체는 기존 스마트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홈네트워크나 홈오토메이션의 패인은 ‘별도 수익 모델 부재(不在)’에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새로운 스마트홈도 단순히 ‘편리한 기능 제공’에 그친다면 과거의 전철을 답습할 공산이 크다. 일부에선 이 같은 문제의 해법으로 △스마트홈 플랫폼 기반의 매시업(Mashup, 서로 다른 웹사이트 콘텐츠를 조합해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 서비스 △출동 보안이나 헬스케어센터 연계 등 오프라인 서비스와의 융합 등을 제시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Online-to-Offline, O2O)하려는 이 같은 시도는 스마트홈용 기기나 솔루션의 단순 판매보다 진일보한 전략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층 고차원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기능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 가족 구성원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는 ‘스위트홈(Sweet Home)’ 서비스에 눈길을 돌려보면 어떨까?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아버지가 ‘스마트 미러(smart mirror)’를 이용, 유치원 가는 딸에게 영상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매일 어머니가 챙겨주는 도시락이 고마운 자녀가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을 빈 도시락 가방에 담아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겠다. ‘똑똑한 기능’ 덕에 가족 구성원이 서로 더 많이 대화하고 애정을 더 많이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스마트홈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모습일 테니 말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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