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한 도전’
김진국 배재대 중소기업컨설팅학과 교수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은 경제적 불안에 휩싸였다. 소위 ‘오일 쇼크(oil shock)’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100% 석유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갑자기 몇 배로 뛰어오른 원유 가격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수입한 원유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 시장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비싸다는 이유로 수입 자체를 중단할 수도 없었다.
‘깡다구’ 하나로 해외 시장 누볐던 청춘들
불행 중 다행인 건 ‘오일 달러’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중동 국가의 각종 인프라(infrastructure) 발주 사업에 우리 건설 업계가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뒤이어 우리 기업들도 각종 소비재를 들고 중동시장을 부지런히 누볐고, 이 같은 활약 덕분에 험난한 오일 쇼크를 이겨낼 수 있었다.
여기엔 ‘젊음’이란 무기 하나로 물불 안 가리고 무역업에 뛰어든 청년들도 단단히 한몫했다. 우리 수출 시장의 지평이 넓어진 건 상당 부분 그 덕이었다. 해당 국가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 말하기 실력조차 변변찮은 상태에서 속칭 ‘깡다구’ 하나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 청춘들이 있었다. 최근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 속 얘기도 바로 그 시절을 다룬 것이다.
요즘도 해외로 나가는 우리 젊은이가 꽤 많다. 외국어 구사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연수를 떠나는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상당하다. 견문을 확장해 미래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 현상이다.
다만 편한 생활에 익숙해져 그런지 여행 도중 조금만 불편해도 잘 참지 못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도전하는’ 여행이기보다 ‘즐기는’ 여행이다 보니 여행지의 맛집이나 유적 등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친구는 많아도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미래를 꿈꾸는 친구는 별로 보지 못했다. 기업이 후원하는, 해외여행 등을 전제로 한 공모 행사에 도전하는 대학생이 많지만 이 역시 ‘대기업 입사용 스펙 쌓기’로 보여 뒷맛이 씁쓸하다.
사업 하기 어려운 게 정말 규제 때문일까?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내수도 내수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7% 내외에 머물면서 중국에 수많은 중간재를 수출해온 우리 경제 역시 중국 경제 못지않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위험 부담을 거뜬히 감수하는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다면 어떨까?’
여기저기서 ‘중국 시장을 내수 시장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길 듣는다. 하지만 막상 중국 시장을 내수 시장처럼 여기고 뛰어드는 젊은이는 드문 게 현실이다. 안정적 생활이 보장되는 공무원·교사 직종을 선호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입사를 고대하지만 중견·중소기업은 아무리 유망해도 입사를 꺼리는 현실은 우리나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대학 졸업생은 하나같이 “대기업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한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사업하기 너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경제 사정이 너나없이 어려우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혹자는 “각종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가 더더욱 까다롭다”고 한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이들은 “상당수의 정책 담당자가 1960년대에나 통하던 ‘개발연대’니 ‘정책’이니 하는 성역을 두고 시장을 이끌어가려 한다”고 비판한다. 시장은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을 기반으로 하는 융합 형태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다수의 정책 담당자는 아직도 기계(혹은 전기전자)공업에 바탕을 둔 이전 시대의 규제로 신규 시장의 발흥(勃興)을 막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시장’ 중국이 이웃 국가란 건 축복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과도한 규제가 정말 우리 경제를 옥죄는 최대 이유일까? 혹 위험 부담을 지고 새로운 사업 벌이길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이 문제인 건 아닐까?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스펙을 쌓지만 도전정신이 부족하다. 기업은 효율적 경영 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으로 투자자금을 유보해놓고도 신규 사업에 투자하길 주저한다. 기업도, 젊은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 갖고 있는 걸 잘 지키려는 데만 급급한 겁쟁이의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게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 정신’이 아니라 ‘있는 걸 지키려는 재력가 마음’이라면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가진 게 많지 않았을 땐 잃을 것도 별로 없어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가진 게 많아졌다고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애초 가졌던 것조차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입증되는 사실이다. 일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일찌감치 1인당 3만 달러 이상의 국민소득을 달성했지만 이후 세계 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내수 시장에 안주하며 다소 주춤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결국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모바일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에 뒤지고 말았다. 스마트폰 사업에선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겼다. (물론 최근 일본은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부품과 소재 분야 등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으며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다. 비록 중국 시장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덤벼들고 있긴 하지만 이런 때야말로 우리 시장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중국은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거대한 소비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장이 우리 바로 옆에 있다는 건 ‘기회’를 넘어 ‘축복’이다. 중국을 우리의 내수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중국의 빠른 성장을 두려워하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그 성장세에 과감히 올라타 중국인의 구미에 맞춘 상품을 만들어내는 적극적 대응이다. 무릇 성과란 도전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경쟁과 도전 즐겼던 선배 세대 기억하길
지난 50여 년간 우리가 이뤄낸 고속·압축 성장 뒤엔 ‘가진 것 하나 없어도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기업가 정신이 있었다. 대학 졸업이 코앞인 취업 준비생과 엄청난 보유금을 쌓아두고도 투자하길 꺼리는 경영인들은 ‘무모한 도전’으로 요약되는 그 정신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시작하기도 전 망설이는 젊은이들에게 늘 “임자, 해봤어?”라고 물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사내·외는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만류했던 반도체 사업에 과감히 진출했던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곰곰이 되새겨볼 때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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