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팔지 못하는 비극’, 국내 스포츠산업계에 고함
최준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마누라·자식 빼고 다 팔아라”
1993년 어느 여름날. 삼성 임직원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란 이건희 삼성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접하게 된다.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난 오늘, 삼성은 초일류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고 국가 경제에 대한 삼성의 기여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나면 우리 스포츠산업이 마찬가지 상상 초월의 도약을 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2002년 월드컵’을 잘 치르고 나면 대한민국이 아시아 스포츠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필두로 향후 삼사 년간 한국에서 메가 스포츠 이벤트가 줄지어 열릴 예정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향후 5년 동안 스포츠산업을 두 배 가까이 키우겠다는 스포츠산업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상품·서비스 판매 꽉 막힌 국내 스포츠계
어느덧 서른 살이 넘은 국내 양대 프로스포츠리그,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와 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K리그)는 지난 세월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본질적인 수익구조 측면에선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지난 30여 년간 국내 스포츠산업은 ‘최장수 블루오션 산업’으로 각광 받아 왔지만, 아직까지 그 ‘한 방’이 터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스포츠산업 안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산업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거래의 핵심은 상품, 서비스, 또는 권리 정도다. 나아가 가치, 그리고 경험까지 확대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거래 품목은 세 가지가 핵심이다. 스포츠산업에서도 ‘영업인력’들이 최전방에서 뛰면서 크고 작은 거래들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30여 년간 그런 ‘스포츠 분야 영업맨 육성’에 너무 소홀했다. 아니, ‘스포츠산업=영업’의 등식은 지극히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신성한 스포츠판에서 돈벌이를?’이란 관념과 함께 ‘불결한 개념’이란 인식이 존재하기도 했다.
구단주(모기업)의 홍보 도구로 전락한 프로스포츠는 이기는 게 ‘전부’였고, 튼튼한 재무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허튼짓’이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치한 각종 메가 스포츠이벤트는 국민들의 ‘혈세’를 담보로 하면서, 아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하면서 단체장들의 ‘빚잔치’가 돼버렸지만 개선과 희망의 빛은 미약하기만 하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산업은 ‘반창고 산업’에 불과하다. 크고 작은 상처를 반창고로 대충 덮어버리며 마치 건강한 신체인 것처럼 포장해버리는 그런 산업 말이다.
영업맨, 미 스포츠산업 부흥의 견인차
‘스포츠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을 보자. 프로구단의 취업문은 우리나라 이상으로 좁다. 그러나 지속되는 주말 근무와 박봉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를 열정으로 삼고 살아가는 직원들의 이직률은 예상과 달리 아주 낮다.
‘철옹성’과 같은 미국 스포츠구단 안에서 유일하게 ‘문호개방정책’을 펼치는 곳은 바로 영업부서다. 단일 경기 입장권, 단체 입장권, 시즌권, 스카이박스 입장권, 기업 대상 입장권 등 경기마다 팔 수 있는 상품이 각양각색이다. 담당 직원도 수십 명에 이른다. 이외에도 식음료 사업권, 장내 광고권, 중계권, 주차장 수입권, 그리고 크고 작은 스폰서십까지….
한 구단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잘 파는 영업맨의 수요’는 그야말로 넘쳐난다. 이런 이유로 대다수 신입사원은 영업부서에서 스포츠구단 일을 시작한다. 매년 시즌 개막 전에 10여 명의 영업사원들을 인턴으로 채용하고, 그 중 한두 명이 시즌 끝까지 살아남는다. 출근 첫날부터 빈 책상에 전화기와 잠재 고객의 명부만 던져주며 “이제부터 저 전화기를 돌려라!”란 간단한 주문 외 어떤 트레이닝도 없다. 필자는 하루에 200여 통의 ‘콜드 콜(cold call, 미지의 가망고객에게 투자[상품 구입]를 권유하기 위한 전화접촉 또는 방문)’을 해봤다는 인턴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영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육체나 정신적으로 어렵고 고된 전문기술이다. 한 시즌을 이겨 낸(?) 인턴들은 다음 시즌엔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그 중에 일부 ‘타고난 세일즈맨’들은 몇 년 안에 고급 양복과 명품 차를 뽑고 부촌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미국 스포츠산업에서 철저한 동기부여와 인센티브에 의한 포상 제도 덕분에 가장 짧은 기간, 가장 큰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분야도 바로 영업이다. 그리고 미국 스포츠산업을 키우고 움직이는 ‘개미군단’도 바로 이 거대한 영업인력, ‘마무리 투수(closer)’들이다.
“스포츠 빅이벤트, 공무원들도 영업 해야”
얼마 전 필자는 관악산 근처에 있는 서울 모 국립대학의 행정대학원에 강의를 가서 공기업 임직원들을 상대로 “공무원들도 이제 영업 전선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는 도발적 발언을 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난 인천시는 하루에 11억 원씩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아시안게임의 운영 책임자들인 조직위원회의 과장, 팀장, 국장급들은 대부분이 파견 공무원들이었다. 적자를 막기 위해 이미 대회 개막 오래전부터 ‘팔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조직위원회의 핵심 인력은 영업·판매 능력과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던 공무원들이었다.
‘2018 평창조직위’도 예외가 아니다. 과연 조직위에 파견된 공무원들 중에 누가 영업전선에 뛰어들려고 할까? 하루아침에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영업의 기본은 고객을 향한 서비스 정신에서 비롯되지만 일부 공무원들의 정신은 아직까지 ‘갑의 세상’에 머물러 있다. 이런 지경이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 후, 이 나라에 닥칠 ‘재정적인 후폭풍’은 급기야 우리 아이들이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뭐든 팔 수 있는’ 영업인력 육성 절실
몇 달치 직원들 월급을 못 주고 있는 시·도민 프로축구단, 감독까지 후원자 영업에 동참해야 하는 일부 프로농구단, ‘재정자립도 0%’란 비극 때문에 유능한 행정가가 아닌 ‘돈줄 회장’ 찾기에 급급해야만 하는 대한체육회 산하 일부 경기단체들….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권리를 팔 능력이 없어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스포츠 행정의 악순환. 모두가 거래를 상실한 스포츠산업의 병폐라 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필자는 강의실과 외부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포츠산업 내 세일즈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외치고 다녔다. 때마침 일부 프로축구단에서 마케팅·세일즈 인력 채용공고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련 정부 부처에서는 특성화 대학사업의 일환으로 스포츠산업 세일즈 인력에 대한 교육사업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팔지 못하는 비극’이야말로 국내 스포츠산업 성장과 발전의 발목을 잡는 주범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팔아라’. 향후 20년 동안 국내 스포츠산업의 지형을 변화시킬 선언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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