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만 판다고? 서비스도 함께 팔아라!

2016/01/14 by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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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만 판다고? 서비스도 함께 팔아라!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국내 최고 전문가의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보세요. 매주 화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학용 부산대 사물인터넷산학협력단 교수


 

지난 1994년, 거금 55만 원을 주고 컬러 잉크젯 프린터를 구입한 적이 있다. 300dpi 해상도로 분당 7.5매를 인쇄할 수 있는 기기였다. 2016년 1월 현재 같은 회사에서 출시되는 컬러 프린터는 보급형인데도 훨씬 높은 해상도(1200dpi)로 분당 인쇄 가능 매수가 16매나 된다. 성능은 10배 이상 좋아졌지만 20여 년 전 판매됐던 기종의 10%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뛰어난 성능의 제품을 이전과 비슷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매년 성능이 개선된 스마트폰을 전년도와 비슷한 가격으로, 더 얇고 빨라진 노트북을 이삼 년 전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앞서 언급한 컬러 프린터의 경우, 가격이 너무 떨어져 소비자 입장에서 고맙긴 하지만 어쩐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컬러 잉크젯 프린터 가격은 20년 만에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컬러 잉크젯 프린터 가격은 20년 만에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큰 승리’ 위해 ‘작은 손해’는 감수한다?!

프린터 제조사가 사실상 손해를 보면서까지 하드웨어 원가 수준으로 프린터를 판매하는 이면엔 어떤 전략이 숨어있을까? 만약 ‘경쟁이 심해져 전략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치킨게임의 결과였다면 메모리 반도체 선례에서처럼 프린터 가격은 어느 정도 회복됐어야 옳다. 하지만 다른 경쟁자들도 앞다퉈 가격 인하 추세에 가담하는 걸 보면 적어도 ‘단순 치킨게임’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제조사들이 프린터 가격을 낮춘 1차적 이유는 ‘보급률을 높여 더 많은 고객이 더 자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프린터를 하드웨어 원가 수준으로 판매할 경우, 손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된다. 그런데도 이런 전략을 취한 덴 ‘(프린터와 함께 쓰이는) 잉크 토너를 더 많이 판매해 전체 매출을 키우고 이익률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숨어있다. 말하자면 ‘이대도강(李代桃僵, 큰 승리를 얻기 위해 작은 손해는 감수한다)’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프린터의 잉크의 모습

이런 상황은 비단 프린터 제조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마존 ‘킨들(Kindle)’ 같은 전자책 리더(e-book reader)도,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최근엔 캡슐 커피 머신이나 전자 담배 제조사들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출시 초기 비싸게 팔리던 이들 장치의 가격은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적용 분야 점차 확산 중인 ‘제품 서비스화’

프린터와 폴라로이드 카메라, 캡슐 커피머신, 전자담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드웨어만으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프린터는 잉크 토너가 있어야,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즉석 인화지가 있어야 각각 쓸 수 있다. 캡슐 커피머신엔 캡슐 커피가, 전자담배엔 담배 액상이 필요하다. 하나같이 소모품을 사용하는 장치여서 제품을 이용할 때 그 본연의 가치가 드러난다. 말 그대로 ‘소유의 시대’는 저물고 ‘소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 즉 제품을 이용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비용이 지불되는 현상을 가리켜 ‘제품의 서비스화(servitization)’라고 한다. 제품의 서비스화 현상은 렌터카처럼 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필요한 시간만큼 이용하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지급하는 전통적 제품 서비스 시스템(product service systems)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제품 구입 유무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소형 저가 제품의 경우, 이 역시 크게 중요한 요인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제품의 서비스화 영역이 (렌터카나 사무용 복합기, 고급 정수기나 냉장고처럼) ‘비싸고 부피가 큰’ 대상에서 (프린터나 캡슐 커피머신처럼) ‘저렴하고 작은’ 대상으로 확대됐다는 사실이다. 서비스화의 형태가 제품 이용 자체에서 제품 관련 소모품이나 콘텐츠 소비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트에 다양한 제품이 실려있다.

 

‘이대도강’ 전략, 사물인터넷 기기에 적용하면?

이대도강 전략을 모든 유형의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제까지의 사례에서 살펴보면 주로 소모품이 있거나 관리 서비스를 접목시킬 수 있는 제품에 한해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물인터넷 시대엔 사실상 모든 제품에 이대도강 전략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사용해야 하는 소모품이 존재하지 않고 관리 서비스를 접목시키기 어려운데도 그렇다. 사물인터넷 기기들이 서비스 데이터를 이용하거나 다른 사물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 데이터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스마트밴드(smart band)를 예로 들어보자. 스마트밴드는 손목에 차고 다니며 하루에 몇 걸음 걸었는지 확인할 때보다 착용자가 자신의 활동량을 바탕으로 살을 빼거나 건강 상태 개선에 활용할 때 그 가치가 더 커질 것이다. 즉 스마트밴드에서 체중 감량 등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이용료를 받는다면 스마트밴드 기기만 판매할 때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물 인터넷 시대를 대표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어S2의 모습.

자동차 운행∙상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OBD2(On-Board Diagnostics 2) 기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장치들이 다루는 정보는 개별 운전자가 확인할 때보다 자동차보험사나 정비소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활용할 때 쓰임새가 더 클 것이다.

바야흐로 세상은 특정 목적을 지닌 저가형 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로 접어들었다. 요즘 소비자는 비싸지 않은 제품을 단기간 사용한 후, 또 다른 저가형 제품으로 갈아타곤 한다. 일명 ‘패스트 IT(fast IT) 시대’다. 따라서 기업은 예전과 같이 비싼 고성능 제품 출시에 전력을 집중하기보다 각각의 제품을 어떻게 서비스화하고 수익은 어디서 창출할지 고민하는 편이 더 현명할 것이다.

OBD2 기기도 단순히 장치를 판매할 때보다 서비스화할 때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OBD2 기기도 단순히 장치를 판매할 때보다 서비스화할 때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김학용

부산대 사물인터넷산학협력단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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