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읽기 들어간 ‘모든 것의 정보(Information of Everything)’ 시대
“수험 번호 371번부터 380번까지의 응시생 여러분, 자신의 번호 끝자리에 해당되는 방으로 들어가주세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A기업 신입사원 채용시험장, 대기실 곳곳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 ‘빅데이터’ 뛰어넘다
375번 수험 번호를 단 K씨가 5번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정면 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찍고 K씨 가슴에 달린 수험표가 스캔된다. 그와 동시에 K씨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가 중앙 통제실 컴퓨터에 고스란히 입력된다. 본인 여부 확인 절차를 거쳐 △신용카드 사용 내역 △병원 이용 이력 △도서관(DVD 대여점)에서 빌린 책(DVD 타이틀) 목록 △인터넷 TV 시청 프로그램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출신 학교 전산 시스템 입력 내용 △SNS 활동 현황 등 시시콜콜한 정보가 소상히 인사팀 컴퓨터로 전송된다.
이 스캐너는 K씨가 사용해온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등 각종 모바일 기기 내 데이터들과 감응, 이들 정보를 분석한다. K씨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로 등록된 기기 일체와도 상호작용(interaction)한다. 각각의 기기(를 기반으로 데이터 클라우드)에 저장된 정보들도 수집, 읽어들일 수 있다. 일명 ‘모든 것의 정보(Information of Everything, IoE)’ 기술이다.
IoE는 빅데이터로 인해 가능해진 정보 집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단계의 기술이다. 이전까지의 정보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여러 가닥의 흐름을 통해 수집됐다. 수작업으로, 혹은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간 연결을 거쳐 분석된 정보들이었다. 여전히 대다수의 기업과 연구기관은 이런 방법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IoE는 고립되고 불완전한 정보를 연결, 이해와 접근이 쉬운 적정 데이터로 만드는 기술을 통칭한다.
게임 태도로 응시자 인성 파악하는 면접?
방대한 양의 K씨 관련 정보는 IoE 기술 덕에 순식간에 수집돼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특별히 배당된 사내 CPU 레지스터에 집적됐다. 이윽고 면접장에 들어선 K씨, 긴장을 풀고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그러자 정면의 대형 화면에서 A기업 CEO이자 ‘성공한 신세대 기업인’으로 명망을 얻고 있는 B 대표의 얼굴이 나타났다.
B 대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K씨와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모니터 한쪽엔 문항별 대답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초 단위까지 표시되고, 그 시간이 다 소진되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K씨가 각 문항에 간결하고 요령 있게 대답하려 애쓰는 동안, 정면 카메라는 그 모습과 목소리를 담아 중앙통제실 CPU에 저장한다.
화상 인터뷰가 끝나면 K씨가 앉은 책상 위 컴퓨터가 켜지면서 게임 화면이 떠오른다. ‘백화점 매장에서 많은 고객이 몰린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고득점에 성공하려면 물건을 가장 많이 살 고객을 나름대로 예측, 매출을 최대한 올리는 동시에 문제 발생 소지가 있는 사람을 파악해 원만하게 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고객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세일즈맨’으로 행동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게임이다. K씨가 게임에 몰두하는 동안 △인지 능력 △대인관계에서의 직관력 △정보 기억력 △돌발 상황에서의 대응 능력 등이 자동으로 평가돼 역시 중앙통제실로 보내진다.
이 모든 단계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그야말로 K씨에 대한 ‘모든 것의 정보’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분석하는 주체는 A기업의 면접관도, 임직원도 아니다. K씨 한 명에 관한 정보도 일일이 수작업 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 방대한데 수천, 수만 명 응시생 관련 데이터를 일일이 훑어보는 일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K씨를 둘러싼 ‘모든 것의 정보’는 A기업이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특별히 개발한 일종의 ‘딥러닝(deep learning)’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된다. 이 알고리즘은 다량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K씨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성실하게 사회생활에 임해왔는지, 어떤 직무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정리해낸다. 그의 경험과 인성(personality)이 A기업의 일원으로 근무하기에 적합한지, 채용된다면 어떤 부서에 배정되는 게 적절한지, 그 경우 기존 임직원과의 관계 형성엔 문제가 없을지 등도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특별히 설계된 채용 알고리즘을 통해 A기업은 신규 채용 예정 인원의 10배수를 추려낸다. 인사 담당자들은 선별된 10배수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 최적의 인원을 선발하게 된다.
수작업 영역 없앤 IoE, 적용 범위 ‘무한대’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까지의 내용은 가상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절차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확정된다면 대상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부는 “첨단 IT 기술 덕에 채용 절차가 한층 더 공정해졌다”며 반색할 것이다. 반면, 단지 피고용인이란 이유로 채용 단계에서 원치 않는 ‘신상 털이’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게 뭔지 모르게 께름칙한 이도 존재할 수 있다.
비록 아직은 ‘가상’이지만 이런 상황은 좋든 싫든 엄연한 ‘현재진행형’이다. 아직까진 미국 등 선진국에서,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구현되고 있지만 입사 지원자의 인성 측정용 비디오게임이나 온라인 설문조사 도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은 실제로 늘고 있다. 내킷(Knack.it Corp)과 벙글(Vungle Inc.), 이볼브(Evolv Inc.) 등이 대표적 예다.
고용 과정에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는 노력은 비단 게임이나 설문조사 형태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알고리즘 개발이 요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딥러닝, 한 걸음 더 나아가 IoE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지난 3월 23일 발행한 스페셜 리포트 ‘인공지능의 미래가 두렵다는 당신에게’에서 ‘이세돌 대(對) 알파고’ 대국이란 유명 이슈를 통해 살펴봤듯 기계학습이나 딥러닝 기술의 가능성은 빠르게, 그리고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고 있다. 일찍이 조이 이토(Joi Ito)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소장이 언급했듯 기계는 점점 더 사용자의 인간적 자질을 찾아 분석하도록 학습되고 있다.
딥러닝은 무수한 정보를 한 곳에 수집한 후 필요한 분석 방향을 설정, 그에 따라 걸러내는 알고리즘이다. 빅데이터 기술이 발달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정렬, 선별할 수 있게 되며 실현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딥러닝을 구현할 때도 어느 소스에서 어떤 데이터를 넣어야 하는지 결정하기까진 어느 정도 수작업이 필요하다. 데이터 수집과 필터링 알고리즘을 따로 개발, 적용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IoE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정보의 검색과 수집, 분석 등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IoE의 가능성과 적용 범위는 무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트너, ‘올해 10대 기술 동향’으로 꼽기도
IoE가 IT 업계와 미디어를 흔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글로벌 정보 기술 연구∙자문 기업 가트너가 ‘2016 10대 전략 기술 동향(Top 10 Strategic Technology Trends for 2016)’ 중 하나로 IoE를 꼽으면서부터다. IoE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기술 발달과 밀접하게 연동돼 있다. 올 3월 9일 스페셜 리포트에서 다뤄진 뉴스룸 픽션 ‘IoT 포에버!(부제: 서기 2100년, 김성실 삼성전자 대리의 커넥티드 라이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래 사회는 모든 구성원의 행동과 경험이 점점 더 디지털화(化)돼 서로 연결되는 IoT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런 세상에선 실로 다양한 기기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 사용자에게 제공할 것이다. 실제로 네트워킹 하드웨어∙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시스코(Cisco)의 추산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서로 연결될 기기 대수는 500억 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와 함께 각종 기기와 그것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스마트폰에서부터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기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기호(嗜好)를 알아차려 아직 행해지지 않은 행동까지 예견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의 삶 자체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과 동의어로 작용하는 셈이다.
그뿐 아니다. 하나의 기기나 채널에서 수집된 정보는 타인도 이용할 있게 된다. 타인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를테면 특정인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는 그 사람 집의 제어 체계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기상청 등 공공기관 시스템 정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명 ‘초(超)스마트홈’ 구현을 가능케 한다. 요컨대 향후 각종 기기는 ‘자율적 대행자’로서 인류의 상호작용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이처럼 개별 기기가 다른 기기와 연계되는 상황을 ‘디바이스 그물망(device mesh)’이라고 일컫는다. 각각의 기기는 이 망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엄청난 정보를 쏟아낸다. 실제로 사물인터넷과 디바이스 연결망이 창출하는 자료의 가치는 엄청나다. 시스코의 추산에 따르면 오는 2022년 기업이 활용하게 될 데이터의 가치는 14.4조 달러(약 1690억 조 원)에 이른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데이터 분야에서도 이 표현은 꼭 들어맞는다. 무의미하게 집합된 데이터는 실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대량의 데이터를 웬만한 수작업으로 묶어 의미를 찾아내기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IoE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지는 이유다.
“신상 악용 우려” vs “민주적 정보 공유”
근대 이후 인류는 줄곧 거대한 걱정거리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기계와 정보의 역할과 비중 앞에서 ‘비인간적이면서도 강력한 특정 존재가 모든 정보를 손에 넣고 인간에게 불행한 삶을 강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년’ 속 ‘빅 브라더’도, 영화 ‘매트릭스’(1999) 속 인공지능도 모두 그런 공포의 산물이다.
IoE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싹트기 시작한 오늘날, 비슷한 맥락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의 신상 정보가 악용될 수 있는 ‘사이버 보안’ 문제가 대두되는 게 대표적 예다. 하지만 정보의 가치가 높아지고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편에선 “상황 전개가 지난 세기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의 양뿐 아니라 증가 가속도 역시 엄청나 인간이든 기계든 ‘단독적 존재’가 그 모든 걸 장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혹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IoE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관련 인프라를 조성할 정책 결정자와 기술 개발자,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며 협동해야 하는 만큼 IoE 시대엔 과거 어떤 시기에서보다 정보의 민주적 공유가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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