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나의 짬뽕 순례기

2015/12/10 by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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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나의 짬뽕 순례기

박찬일 셰프


 

짬뽕은 어렸을 때 가장 궁금해하던 음식 중 하나였다. 당시 (아마도) 밥하기 싫었던 어머니의 주도로 종종 중국집에 배달을 시켜 먹곤 했다. 우리 집엔 전화가 없었는데 어떻게 주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직접 가서 주문했을 수도 있다. 그 화상(華商) 중국집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으니까.

어쨌든 초조한(?) 시간을 기다리면 멀리서 까만색 자전거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대번에 중국집 배달 자전거인 줄 알았던 건 ‘핸들’에 주렁주렁 걸린 노란색 양은 주전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짜장면, 아버지는 짬뽕. ‘비닐 랩’이 없던 시절이라 국물은 주전자에 따로 담겨 배달됐다. 배달부는 면 위에 고명이 이미 올려진 그릇을 척척 꺼내선 익숙한 솜씨로 주전자에 담긴 빨간 국물을 부어냈다.

 

한국 짬뽕은 언제부터 빨개졌을까?

더 큰 후의 기억일 텐데 짬뽕을 주문할 때면 “국물 많이!”가 기본이었다. 세상에서 국물 요리를 가장 좋아하는, 지극히 한국인다운 주문법이었다. 그때도 짬뽕은 빨갰다. 1970년, 아니면 1971년 무렵일 것이다. 한국 짬뽕이 언제부터 빨개졌는지 궁금해 오래 취재를 했는데 연세 지긋한 주사(廚師, ‘요리사’란 뜻의 중국어)들의 기억이 조금씩 달랐다. 최근엔 여든 넘은 주사에게서 “1960년대 초까진 하얀색 짬뽕이 많았고, 그때 이미 마른 고추를 가위로 잘라 같이 볶았다”는 기억을 들었다. 고추기름을 써서 국물 전체가 빨개진 건 그 다음이란 얘기다.

미로쿠야 공식 광고 책자의 짬뽕
(출처: 미로쿠야 공식 광고 책자/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별것 아닌 듯한’ 고증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옛 중국요리사들이 거의 사망하고, 관련 민속사(게다가 ‘중국음식은 우리 게 아니다’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는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한 까닭이다. 하여튼 짬뽕은 ‘미스터리 푸드’가 됐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 팔았는지 잘 아는 이가 없다. 난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짬뽕이란 말이 처음 나왔다는 일본 나가사키(長崎)에만 다섯 번 다녀왔다.

요즘 한국에서도 ‘하얀 짬뽕’이나 ‘나가사키 짬뽕’이 유행이다. 한 라면 회사는 하얀 국물 라면에 ‘나가사키’란 이름을 붙여 판 적도 있다. 이 제품은 원조 나가사키 짬뽕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다르다. 일단 나가사키 짬뽕은 전혀 맵지 않다.

 

‘짬뽕의 고향’ 나가사키에 가다

나가사키에 도착해 택시를 탔다. “시카이로로 갑시다!” 기사는 행선지가 익숙한 듯 거침없이 차를 몰았다. 시카이로(四海樓)는 명실공히 한국인의 ‘짬뽕 성지 방문 루트’다. 인터넷에서 해당 키워드를 검색하면 많은 사진이 나오는데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영어로 ‘CHINESE RESTAURANT HOTEL SHIKAIRO’란 간판이 크게 붙어 있는 2층 목조건물이다. 이게 원래 시카이로 건물이었다. 그러니까 그땐 숙박업과 음식 판매업을 함께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택시는 나가사키 항구 쪽으로 핸들을 튼다. 멀리 커다란 배들이 보인다. 빨갛고 흰 색의 커다란 건물 앞에 택시가 선다. “다 왔습니다, 손님.”

시카이로 박물관의 나가사키 모습 (출처: 시카이로 박물관/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2층에 일명 ‘짬뽕박물관’이 있다. 시카이로가 짬뽕으로 유명해진 사연, 창업자 초상, 각종 옛 물건들(이를테면 주판 같은)이 진열돼 있다. 박물관이라기엔 다소 작지만 그럭저럭 충분한 구경거리가 된다. 그런 다음, 식당행(行). 종업원은 “기왕이면 바다를 보라”는 의미로 창가 자리를 권한다. 거기 앉아 나가사키항(港)을 바라본다. 그건 역사를 거슬러가는 길이다.

나가사키의 전경

1859년 개항한 나가사키는 원래 외국과의 거래가 활발한 지역이었다. 인공 섬 ‘데지마(出島)’를 만든 후 그곳에 네덜란드인들을 묵게 하며 무역을 장려했다. ‘쇄국(鎖國)’이 기본 방침이었던 에도시대(1600년대)에 이미 개항했을 정도로 국제도시이기도 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기억한다면 나가사키란 도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인촌(唐人村, 중국인 거주지)이나 서양인이 세운 성당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여느 일본 도시와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요코하마와 함께 유명한 차이나타운도 건재하다.

두꺼운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온 짬뽕의 모습

이윽고 짬뽕이 나온다. 두꺼운 도자기 그릇에 담겨 있다. 중국 그릇이나 한국 그릇에 새겨진, 기쁠 ‘희(喜)’ 두 개(‘쌍희’라고 한다)와 기하학적 무늬(‘거미줄’을 상징하며 다산<多産>과 부<富>를 의미한다)가 새겨진 그릇이다. 나가사키 짬뽕의 주요 특징인 어묵이 고명으로 얹혀 있다. 어묵은 일본의 고유 음식이다. 과거 우리 조선통신사가 대접 받은 음식 목록을 보면 어묵을 뜻하는 일본어 ‘가마보코(かまぼこ·蒲鉾)’가 보일 정도다. 옛 일본 그림을 보면 쇼닌(匠人)이 목봉(木棒)으로 생선살을 짓이기는 장면이 있다. 일본인은 그렇게 만든 어묵을 찌거나 구워 먹는다. 가마보코 밑엔 두툼한 면이 가득하다. 한 그릇 가격은 1000엔 가깝다. 꽤 비싸다. ‘원조’의 프리미엄이다.

 

나가사키 짬뽕 기원은 中 푸젠성

이 집에서 탄생한 짬뽕의 유래를 이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가사키 짬뽕은1899년 중국에서 나가사키로 이주한 푸젠성(福建省, 중국 남부 소재) 사람 천핑순(陳平順)이 처음 만들어 팔았다. 시카이로를 운영하던 그는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과 노동자를 위해 값싼 음식을 개발하려 마음 먹고 돼지뼈와 해산물, 채소를 이용해 국수를 말아냈다. 이게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천핑순은 시카이로 점주로 나가사키에 국물이 하얀 국수를 처음으로 들여왔 ▲천핑순은 시카이로 점주로 나가사키에 국물이 하얀 국수를 처음으로 들여왔다(출처: 시카이로 박물관/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1880년 기록에 따르면 나가사키엔 이미 594명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개 중국 남부 출신이다. 훗날 인천이 개항되면서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과 출신지가 다르다. 인천도 개항 초기 들어온 무역상 중에선 남부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노동자 중심의 대량 이민으로 산둥성(山東省) 출신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반면, 나가사키는 푸젠성∙광둥성(廣東省)∙저장성(浙江省) 쪽 남부 중국인이 더 많았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한국 짬뽕과 일본 짬뽕의 뿌리가 서로 다른 근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나가사키 짬뽕은 ‘탕러우쓰미엔(湯肉絲麺)’이란 푸젠성 국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나가사키 짬뽕은 ‘탕러우쓰미엔(湯肉絲麺)’이란 푸젠성 국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일본은 막 고기를 먹기 시작했지만 뼈나 내장은 여전히 먹지 않았다. 아마 천핑순은 뼈를 싸게 들여오거나 거저 얻다시피 했을 것이다. 국물이 아주 진하고 하얀 게 이를 증명한다(설렁탕의 유래와 국물 특성도 그와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조선)은 원래 고기를 먹는 민족이었다. 당연히 ‘뼈를 고아낸 국물’은 고급 음식에 속했다.

한국 짬뽕은 나가사키 짬뽕의 수입 형태가 아니라 우리 화교의 고유한 음식이었다는 얘기다.

또한 한국에선 푸젠성 출신이 아니라 산둥성 출신이 중국집을 열었다. 당연히 이들은 고향 산둥성의 음식 ‘차오마미엔(炒馬麵)’을 팔았다. 아마 탕러우쓰미엔과 비슷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일본과 동일한 문화적 영향권 아래 놓이자,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탄생한 차오마미엔도 짬뽕이라고 불리게 됐을 것이다. 유래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매운 걸 찾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춰 조리 과정에서 고춧가루가 쓰이며 한국 짬뽕과 일본 짬뽕은 전혀 다른 음식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한국 짬뽕은 나가사키 짬뽕의 수입 형태가 아니라 우리 화교의 고유한 음식이었다는 얘기다.

 

짬뽕은 ‘극동아시아 음식사 집약체’

내 나가사키 방문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어렴풋한 기억에) 네 번째 방문했을 땐 아주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나가사키 관광 당국에서 나눠준 짬뽕 안내 책자였는데 그 안에 ‘빨간 짬뽕’이 있었다! ‘짬뽕 미로쿠야의 빨간 짬뽕’. 언뜻 봐도 한국 짬뽕과 너무 비슷했다. 심지어 안내문엔 ‘한국의 매운 고춧가루를 직수입해 맛을 낸다’고 씌어 있었다. 놀라웠다. 가서 맛을 봤다. 뭔가, 나가사키 짬뽕과 한국 짬뽕을 섞은 듯 묘한 ‘퓨전(fusion)’의 맛이었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에서 매운 짬뽕을 맛본 일본인이 늘었고, 이런 교류의 결과로 짬뽕의 본고장에 한국식 짬뽕이 생겨난 것이다. 원래 중국인이 만들고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짬뽕의 ‘묘한 3개국 순환사’가 완성된 셈일까.

배가 고프다. 짬뽕을 시킨다. 굵은 면과 빨간 국물, 그리고 해물 고명. 극동아시아의 100년 음식사(史)가 이 한 그릇에 들어 있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박찬일

셰프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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