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땅을 접고 하늘에 뜨는’ 시대_축지법과 비행술 이야기
이일훈 건축가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 중 한 장면(사진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한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명은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이다. 축지법과 비행술. 그리 낯설지 않은 조합이다. 몇 년 전 모 미술대학 전시회 제호였고 동명의 단편영화(이경섭 감독, 2012)와 책(‘축지비행술’, 손영성 글, 이화문화출판사)도 존재한다. 그뿐인가.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근처 어느 건물 벽엔 벌써 10년도 넘게 ‘축지법과 비행술’이란 간판이 붙어있다(무술학원인지 도술연구소인지 볼 때마다 궁금한데 들어가보진 않았다).
소설과 만화, 영화의 단골 소재인 조선시대 의적 홍길동∙임꺽정 얘기 속엔 어김없이 축지법이 나타난다. 중국 명대(明代)가 배경인 소설 ‘서유기’ 속 손오공은 비행술을 구사한다. 무협지 주인공들 역시 귀신 같은 칼 솜씨에 더해 축지법과 비행술을 능숙하게 부린다. SF영화 속 환상적 공간 이동 장면도 결국 축지법과 비행술의 연장이자 응용이다. 비현실적 모습이 현실에서 자주 언급되는 건 그만큼 축지법과 비행술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이 깊고 강하다는 방증이다.
평생 땅에 붙어 사는 인간의 ‘로망’
축지법과 비행술은 모두 땅(地)에서 시작된다. 축지법의 한자 표기는 ‘縮地法’다. 사전을 찾아보면 ‘도술로 지맥(地脈)을 축소해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술법 혹은 땅을 접는 기술’이라고 나와 있다. 비행술(飛行術)의 사전적 정의에도 땅이 등장한다. ‘하늘을 나는 기술’이란 기본 의미 외에 ‘땅을 떠나(떠 있)는 기술’이란 뜻이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모두 땅에 붙어있는 존재다. 지표와 지하, 동굴, 물 속 할 것 없이 모두 땅의 연장이다. 땅 위에 사는 일은 (땅을 떠날 수 없기에) 하염없고, 땅 위를 걷는 일은 (역시 땅을 떠날 수 없기에) 지루하다. 하염없이 지루한 일에서 탈출하려면 상상의 날개를 펴는 수밖에 없다(날개 없는 존재는 늘 날 수 있길 꿈꾼다).
축지법이 땅(지표)을 줄이는 일이라면 비행술(법)은 땅을 넓히는 일이다. 시점을 높여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기 때문이다. 하늘에 머물 수 없으니 높은 산에 올라서 본다. 꿩 대신 닭이다. 높이 오를수록 더 멀리, 더 넓게 지표면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이 부감도(俯瞰圖)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그림’이란 뜻이다. 비슷한 말로 조감도(鳥瞰圖)가 있다. 새처럼 날아 높은 곳에 오른 후 보거나 그린(bird's-eye view) 그림이다. 둘 다 비행(술)의 욕망이 낳은 그림이다.
요즘은 항공 촬영 영상이나 항공사진이 일상화돼 하늘에서 찍은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와유(臥遊,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이 그려진 그림을 감상함)를 즐기던 그 옛날, 부감도는 그야말로 대단한 그림이었다. 와유용 부감도의 면면이 궁금하다면 겸재 정선(1676-1759)과 유춘 이인문(1745~1821)의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을 참고하시길. 직접 편하게 누워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부감도와 조감도는 ‘높은 곳에서 넓게, 멀리 본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차이도 존재한다. 부감(도)이 회화적 인상에 치중한다면 조감(도)은 도식적 원근법의 느낌이 강하다. ‘발은 땅을 딛고 눈과 마음은 하늘에 떠 있는’ 설정은 날 수 없는 인간이 오랫동안 품어온 열망이었다. 그리고 열(熱)망은 열(熱)기구를 띄워 올리기에 이르렀다. 230여 년 전의 일이다.
동력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한 건 열기구가 등장하고도 120년이 지나서였다. 이후 항공 산업의 발전은 눈부셨다. 문제는 개인이 향유하기엔 너무 비싸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됐다. 드론(drone)의 등장 덕분이다. 당초 군사용으로 쓰였던 드론은 오늘날 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어른용 완구’ 분야로까지 진출했다. 향후 발전과 변화상은 말 그대로 ‘예측불가’다. 바야흐로 누구나 비행술을 구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대인, 스마트폰 덕에 ‘축지술사’ 되다
축지법은 비행술보다 더 일상에 밀착된 형태로 발전했다. 실제로 땅을 줄일(縮) 순 없는 노릇이니 같은 거리를 빨리 걷거나 뛰는 행위를 가리켜 ‘축지’라고 일컬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반인이 하루 종일 걸어야 할 거리를 두세 시간 만에 뛰는 건 축지에 버금가는 실력이다(홍길동이나 임꺽정은 틀림없이 마라톤 선수처럼 지구력이 좋고 발이 빨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축지법은 어쩌다 구경할 수 있을 뿐이었다. 보다 사실적인 축지법은 넓은 지역을 줄여서 작게 그리는 일, 즉 지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같은 면적의 종이에라면 땅을 줄일수록 더 넓은 지역을 그릴 수 있다. 지도에 반드시 나타내도록 돼 있는 축척(縮尺, 실물을 줄여 그릴 때 축소한 비율)은 땅(지표∙대지)을 얼마나 줄였는지 표기한 것이다. 미지의 지역을 지도로 표현하고 이해(혹은 상상)하는 일, 그렇게 경험한 지리∙지형적 정보를 기록(기억)하고 학습하는 일은 대단한 사회∙문화∙학술적 발전이었다. 지도는 축지 기술의 결과, 지도 제작자는 축지법을 구사하는 술사인 셈이다.
건축가는 직업상 축지법을 늘 활용한다. 지표면에 세워지는 건축물은 반드시 지구상에서 유일한 땅을 점유한다(‘같은 집터’란 세상에 없다). 점유의 방식이 곧 존재의 방식이 된다. 건축가는 주변 지형지물(地形地物)의 맥락을 연결하는 섬세한 생각을 작은 도면 위에 표현한다. 건축은 자연 지형에 새로운 문맥을 제안하는 일이다. 건물만 지어 올리려면 단순한 도면으로도 충분하지만 사회와 지역∙도시∙주변을 이해하고 맥락을 연결하기 위해 궁리하려면 철학적 지도가 필요하다. 지도(地圖)가 아니라 지도(知圖 혹은 智圖) 말이다.
건축물의 설계도엔 공간의 크기(넓이와 높이)가 줄여 표기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축척은 1대 50에서 1대 600 사이다. 이는 지도에 쓰이는 축척(1대 3000~1대 5만)과 비교하면 대단히 상세한 것이다. 그러니 건축도면은 지도 중에서도 아주 큰 ‘대축척지도’로 볼 수 있다.
종이 지도 위 축척은 줄인 비율을 알아야 하는 탓에 낯설고 어렵다. 그래서 해당 분야 종사자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요즘은 축척 따위 몰라도 상관없다. 전 세계 대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축척지도에서 동네 삼거리 모퉁이 빵집까지 찾을 수 있는 대축척지도까지 스마트폰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축지법을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지역과 장소, 위치를 자유자재로 줄였다 넓혔다 하니! 우린 뛰지 않고도 축지하며 날지 않고도 비행한다. ‘땅을 접고 하늘에 뜨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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