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2015/12/03 by 곽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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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곽정은 칼럼니스트


 

책을 읽는 일은 내가 인생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때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책을 많이 사고, 책 읽는 시간은 어떻게든 확보하려 애를 쓰곤 한다. 그리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어도 그저 책 한 권 제대로 손에 들고 읽은 날이면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너절한’ 책 읽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책은 오랫동안 내 좋은 친구였고, 성찰의 거울이었으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질 때 더없는 나침반이 돼줬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독서가 값진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명제 자체에 이의를 달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 정치가 겸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대단히 짧다. 조용한 시간은 더 짧다. 그러니 우린 한 시간이라도 너절한 책을 읽어 인생을 낭비해선 안 된다.” 그의 말마따나 책은 수없이 많지만 바로 그 때문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더더욱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너절한’ 책을 읽다 가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고 소중하니까.

도서관에서 책을 골라 꺼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읽을 책’ 고르는 일은 내게도 큰 고민거리였다. 수많은 책이 꽂혀있는 대형 도서관에 난생처음 들어섰던 대학 신입생 시절, ‘세상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구나!’ 새삼 체감했다. 한편으론 기가 죽었다. 어차피 제대로 다 읽지도 못할 거라면 아예 안 읽느니만 못한 것 같아 독서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맘까지 들었달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당시 읽었던 몇 권의 책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보면 그때 내가 독서를 포기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독서를 해오며 나름대로 ‘절대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의 요건을 몇 가지 갖게 됐다.

 

#1.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인가

가장 중요한 요건은 ‘날 돌아볼 수 있는 책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간 자신이 했던 생각이나 행동엔 어떤 요소가 담겨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책은 자신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 감정을 분석한 심리학 책에서부터 역사∙인문학∙철학 서적에 이르기까지 ‘날 돌아보게 만들 기회를 주는 책’은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여성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입니다.

역사를 다룬 책은 단지 역사 공부를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독자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로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사실을 깨닫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변화의 계기는 ‘적극적 독서’에 있었다. 책의 흐름을 수동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텍스트에 개입한다’는 생각으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이 방식으로 대하면 한없이 너절한 책에서도 성찰의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독자가 책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똑같은 텍스트도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얘기다.

 

#2. ‘지금, 여기’를 조명하는 책인가

내가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 책의 요건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조명할 수 있는 책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조명(照明)’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다룬 책부터 세계 시장의 흐름을 내다본 책까지 ‘대놓고 시대 조명을 앞세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더 넓히면 보다 다양한 층위가 보인다. 꼭 정색하는 사회학 서적이 아니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조망한 책은 꽤 많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역사서나 매체비평서는 물론이고 시와 에세이, 심지어 카툰(cartoon)도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열중해서 읽고 있는 모습입니다.

내 경우, 한국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다룬 책을 즐겨 읽는다. 간혹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한층 다양한 메시지를 접할 수 있어 그 점에 매료되곤 한다. 내가 지금 발 붙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알게 되면 자연히 내가 뭘 해야 좋을지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다만 너무 노골적으로 미래 전망이니, 트렌드 예측이니 하는 단어를 늘어놓는 책은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는다. 소위 ‘자기계발서’를 표방한 책은 설사 ‘정답’으로 보이는 얘길 들려줄진 몰라도 전체적인 시각을 키워주는 측면에선 그리 좋지 않은 책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그런 책들을 통해 해당 주제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내가 꿈꾸는 세상’이 담겼는가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양서(良書)의 요건은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과 관련 있는 (주제를 다룬) 책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파악한 사람에겐 만들고 싶은 세상, 기여하고 싶은 부분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 경우 해당 부문을 성찰하는 데 힘을 보태줄 책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해진다.

목도리, 책, 그리고 따뜻한 차 한잔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꿈꾸는 삶의 목표는 ‘행복하게 살기’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완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삶을 마치는 게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내 소명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과 관련된 책을 읽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게 대단한 지식을 쌓아주진 않더라도 책을 읽으며 꿈을 꾸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채무 의식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 하나 먹고살기에도 바쁜’ 세상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살아가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자기 몫의 기여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지는 건 분명 좋은 일 아닐까?

 

너절해도 좋으니 일단 뭐든 읽자!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 는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다면 ‘현재의 나’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책은 우리의 사고를 한 단계 끌어올려주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사고(思考)의 영역으로 우릴 데려가주기 때문이다. 멍하니 스마트폰에 업데이트되는 정보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기엔 읽어야 할, 전해야 할 얘기가 너무나 많다. 너절해도 좋다. 어떤 책이든 일단 손에 쥐고 읽은 후 ‘나만의 필독 도서’ 목록을 정리해나가는 일이야말로 참 귀하게 느껴진다, 요즘의 우리에겐 더더욱.

이쯤 해서 당신에게 묻고 싶다. “요즘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곽정은

㈜왓츠넥스트 대표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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