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영화관에 간다… 좀 더 자주 가야겠다
양승철 GQ코리아 에디터
영화관은 연신 호황이다. 올 하반기에만 ‘암살’ ‘베테랑’ 등 한국 영화 두 편이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넘겼다. 우리나라 블록버스터(blockbuster, 단기간에 큰 흥행을 올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대작 영화) 역사는 지난 1999년 ‘쉬리’가 ‘전국 관객 수 600만’이란 (지금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대기록을 세우며 시작됐다. 불과 16년 전 일이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나라를 위해 싸운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암살'(출처: 쇼박스/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극장 풍경과 관련, ‘요즘은 당연시되지만 당시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혁신은 가로 자막의 적용이다. 1998년 ‘타이타닉’을 보기 위해 굳이 서울 강남 씨티극장(현재 롯데시네마 씨티)을 찾았던 것도 그곳이 ‘비디오(VCR로) 보듯’ 자막을 가로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스크린 하단에 자막을 입혀놓으면 극장 좌석 간 거리가 좁은 탓에 앞 줄 관객 머리에 가려지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당시 극장 개봉 영화 자막은 하나같이 ‘어디 앉아도 볼 수 있도록’ 스크린 오른쪽에 세로로 위치했다. (사실 이 설명을 하고 있는 지금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10대나 20대 초반 친구들이 이 풍경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근 20년이 다 돼가는 기억이 이렇게나 생생한 이유는 뭘까. 영화를 보는 일 자체가 일종의 ‘이벤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생생한 ‘세로 자막 영화’의 추억
영화 산업이 번성하며 스크린도 많아졌다. 1999년 588개였던 스크린 수는 올 들어 2393개로 약 네 배 늘었다. 재밌는 건 같은 기간 극장 수 추이다. 373개에서 404개로 30개 정도밖에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크린 수 증가세가 매년 일정한 것도 아니어서 300개 아래로 떨어진 해도 있었다. 극장 한 곳이 보유 중인 평균 스크린 수는 여섯 개. 바야흐로 ‘멀티플렉스 시대’다. 오늘날 영화관은, 관객이 언제 가든 늘 다수의 개봉작을 준비해놓고 있다.
개봉 영화 관객 수가 1000만 명이면 TV 시청률로 따졌을 때 약 20%에 해당한다. 한때 50%도 거뜬했던 TV 드라마 시청률은 요즘 한 자릿수도 감지덕지다. 20%을 넘긴 작품은 ‘대박’ 소릴 듣는다. ‘TV 콘텐츠를 TV로만 보지 않는’ 사람이 늘며 생긴 현상이다. 이들의 시선을 붙든 건 일명 ‘VOD(Video On Demand)’. 각자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뉴스를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여기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하이라이트’만 잘게 쪼갠 클립형 콘텐츠를 무료(지만 광고를 보는 조건으)로 제공한다. 영상 시청 기기는 TV에서 스마트폰으로, 태블릿으로, 모니터로 확장됐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는 그와 거의 동시에 TV에서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환경 변화는 몇 가지 새로운 현상을 불러왔다. 극장에서 관심 받지 못하던 영화가 IPTV 플랫폼에서 인기를 모으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요컨대 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실로 다양해졌다. ‘영화=극장에서 개봉한 영상물’이란 분류 기준도 낡은 게 돼버렸다.
모름지기 영화는 ‘대형 스크린’서 봐야지!
사실 좀 새삼스럽다. PC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VCR과 DVD, 블루레이를 거치며 TV 스크린으로 영화를 봐온 지 벌써 수십 년째다. 단지 ‘극장 아닌 장소’에서 영화 보는 일이 쉬워졌다는 이유로 ‘영화가 영화답지 못하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어쩐지 영화는 ‘영화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야만 할 것 같다. 무수한 미디어와 경쟁하면서도 커다란 스크린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 말이다.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는 일명 ‘슈퍼히어로’에서 그 답을 찾았다. 아이언맨부터 한 명씩 ‘출동’시켜 지구를 구하더니 어느 순간엔 그들 모두를 불러모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들어) 스크린에 빼곡히 모아놓았다. 실제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The Avengers: Age of Ultron, 2015)’(이하 ‘어벤져스2’)의 모든 장면은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제격이다. 어벤져스2가 상영되는 극장은 ‘경험’을 최우선에 두는 놀이공원과 다르지 않다.
시각적 경험을 최대치까지 일깨우려면 역시 대형 스크린만 한 게 없다. 웬만한 건물 2층 높이는 족히 되는 스크린은 오랫동안 굳건히 존재해온 플랫폼이다. 영화산업은 20세기 내내 이 플랫폼을 발전시키고 상업적으로 고도화하는 데 집중해왔다. 영화관의 최대 수입원 중 하나가 ‘팝콘’이란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 정확하지 않아 이 자리에서 밝히긴 곤란하지만 처음 팝콘 단가를 들었을 때 난 결심했다. ‘다신 먹지 않을 테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를 볼 때 팝콘과 콜라가 빠지면 영 섭섭하다. 이 자극적 습관의 조합은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하며 믿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평면 스크린을 놀이공원처럼 만들어야 하는 이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TV 있는) 집에 있던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이끈다.
‘흥행 공식’ 비트는 도전적 영화 많아지길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 영화는 ‘배우’에서 해결책을 찾은 것 같다. 드라마엔 편당 한두 명이 전부인 주연급 배우가 블록버스터급 한국 영화에선 줄줄이 등장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한 주연급 배우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주연급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만 출연하는 경향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그가 답했다. “그게 요즘 충무로의 추세죠. 특별할 것도 없어요.”
글쎄, 내겐 특별하게 느껴진다. 모든 영화가 주연급 배우로 극 전체를 채울 순 없다. 그러다 보니 극소수 작품으로의 ‘배우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 그럴수록 절대로 흥행에 실패하면 안 되니 흥행 ‘공식’을 내세운다. 말 그대로 답이 정해져 있는 공식(公式)이다. 답이 틀리는 일은 좀처럼 없다. 사정이 이러니 매해 1000만 관객 영화가 쏟아지지만 ‘우리 영화계가 다양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출처: KAFA FILIMS/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개봉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여러모로 반가운 영화였다. 총 제작비 2억 원. 수많은 스태프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독립영화다. 이 작품은 2000년대 초반 몇몇 한국영화를 연상시킨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이나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에서 접할 법한, 매캐한 이미지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잊고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을 다시 만난 느낌이 이럴까? 한국 영화에서 다신 못 볼 것 같던 ‘도전’을 오랜만에 마주하곤 안도했다. ‘여전히 많구나,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출처: KAFA FILIMS/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현실에서 주목할 만한(혹은 주목해야 할) 문제를 세련되게 비틀고, 어디서도 못 봤던 장면이 스크린에 켜켜이 쌓일 때 우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굳이 ‘미학’이니 ‘해석’이니 ‘예술’이니 하는 수식을 달지 않아도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은 그런 경험과 마주한다. 내 경우 그 첫 영화는 초등학교(당시만 해도 국민학교였다) 5학년 때 본 ‘쇼생크 탈출’(1994)이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를 관람하며 내 필모그래피는 계속 갱신돼왔다. 다만 최근 몇 년간 그 주기가 좀 뜸해진 건 사실이다. 종종 생각한다. ‘이젠 그런 발견의 즐거움을 포기할 때가 된 걸까?’ 하지만 극장가에선 여전히 (많진 않아도) ‘영화다운 영화’가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그러니 좀 더 자주 극장에 가야겠다. ‘도전적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긴 아직 이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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