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옷∙밥∙집에 ‘유행’이 필요할까?
이일훈 건축가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MBC)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명의 패널이 등장해 웃고 떠드는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겐 전혀 다른 ‘세 바퀴’가 떠오른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의식주(衣食住)다. 초등학교 때 배우긴 했는데 그 의미를 종종 잊는다. 한자어로 쓰면 왠지 거리감이 있는데 ‘옷∙밥∙집’이라 하면 몸과 맘에 찰싹 붙는 느낌이다.
세상이든 개인이든 삶을 받쳐주는 바퀴가 튼튼해야 잘 굴러간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은 너나 없이 소위 ‘웰빙(well-being)’에 쏠려 있다. 문제는 이 관심이 온통 ‘먹는 것’에만 집중된다는 데 있다.
진정 ‘잘(well) 존재(being)’하려면 먹는 음식뿐 아니라 입는 옷과 사는(머무는) 집이 다 웰빙이어야 한다. 옷은 좋은 걸 사 입으면서 밥은 대충 때우고, 밥은 제대로 챙겨 먹으면서 집 꼴은 함부로 해놓고 다니며,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의상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옷∙밥∙집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그러면서 닮아가는 톱니바퀴다. 하나가 망가지면 전체가 멈추는 수레와 같다. 이들 세 요소의 균형이야말로 웰빙의 기본 전제다.
세상을 굴리는 ‘세바퀴’, 옷∙밥∙집
옷∙밥∙집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짓다’란 움직씨(동사)를 같이 쓴다. 옷도, 밥도, 그리고 집도 다 ‘짓는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중요한 건 다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노래∙약∙이름∙글∙농사… 그중 가장 귀하고 중하고 또 흔한 게 옷과 밥, 그리고 집이다. 한마디로 일상과 붙어 있다(떨어지면 큰일 난다).
속담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도 옷∙밥∙집을 아우르는 특성 중 하나다. 얼핏 떠오르는 속담만 해도 가짓수가 꽤 된다<아래 박스 참조>. 세 단어를 포함한 속담이 많다는 건 곧 옷과 밥, 집이 단순히 ‘입고 먹고 자는’ 대상을 넘어 세상과 개인 간 관계나 이해, 관심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옷∙밥∙집이 등장하는 속담, 어떤 게 있나
①옷
-옷은 나이로 입는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
-옷이 날개다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거지도 입어야 빌어먹는다
-마음씨가 고우면 옷 앞섶이 아문다
②밥
-첫술에 배부르랴
-밥 먹듯 하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때린다
-밥은 굶어도 속이 편해야 산다
-밥이 약보다 낫다
-밥 팔아 죽 사 먹는다
-더운 밥 먹고 식은 소리 한다
-그 나물에 그 밥
-죽 쑤어 개 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도 밥도 안 되다
-찬 밥 더운 밥 가리다
③집
-집도 절도 없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
-집을 사면 이웃을 본다
-길가에 집 짓기
-웃는 집에 복이 있다
-불 난 집에 부채질한다
-가난한 집에 자식이 많다
-집 좁은 건 살아도 마음 좁은 건 못 산다
-집에선 아이들 때문에 웃는다
옷∙밥∙집, 알고 보면 은근히 ‘닮은꼴’
옷∙밥∙집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재료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점이다. 옷은 옷감, 밥은 식재료, 집은 건축자재가 그 바탕이 된다. 재료가 동원되는 가공은 전부 솜씨(기술)가 필요한데 이때 솜씨(기술)는 재료에 대한 이해에서 온다.
옷감과 식재료, 건축자재의 특성을 이해하는 게 바느질과 조리, 건축의 시작과 끝이다. 재료가 궁하면 절약하는 요령이 생기고 재료가 넘치면 낭비가 는다. 적당한 재료에 고만고만한 기술이 더해지면 평범한(‘열악한’은 결코 아니다) 옷∙밥∙집이 되고 최선을 다하면 명품(명작)이 된다. 물론 재료의 본성을 무시해 실패하는 경우도, 잇속을 챙기는 수단으로 재료의 성질을 왜곡해 불량품을 양산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네 삶의 속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 역시 옷∙밥∙집의 공통점이다. 단적인 예가 패스트푸드(fast food)다. 패스트푸드는 언뜻 ‘바쁜 소비자를 위해 미리 만들어둔 음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많이, 더 빨리 팔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미리 만들어놓고 팔아야 생산자나 공급자, 판매자 모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패스트푸드는 몸에 나쁘다”며 ‘슬로푸드(slow food)’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다. ‘빨리, 쉽게 먹는 것보다 좀 까다롭더라도 천천히 조리해 먹는 게 좋다’는 이해일 것이다. 이때 ‘패스트냐, 슬로냐’의 선택은 곧 각자가 택한 삶의 속도다. 옷도 기성복이면 ‘패스트웨어(드레스)’이고 집 역시 미리 지어놓고 파는 상품(아파트나 빌라, 오피스텔)이면 ‘패스트하우징(셸터)’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옷∙밥∙집 모두 선택의 여지 측면에서 살피면 ‘패스트’는 좁고 ‘슬로’는 넓다. 전자는 저급이다. 편리하지만 건강에 안 좋다. 후자는 고급이다. 다소 불편하긴 해도 건강에 좋다. 그런데 왜 다들 패스트에 열광하는 걸까.)
‘쿡방 열풍’의 뒷맛이 씁쓸한 이유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 역시 옷∙밥∙집의 공통점이다. 변하지 않는 게 전통이라지만 전통 역시(좀 느리긴 해도) 변한다. 옷∙밥∙집의 옛 형태를 한복과 한식, 한옥이라 했을 때 셋 모두 요즘 지어지는 것들은 ‘박물관 속 옛 것’과 사뭇 다르다.
흔히 건축(집)을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의상(옷)이나 음식(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유행이 존재한다. 이때 유행은 ‘(시대란) 거울에 비친 허상’이다. 옷과 밥, 집에도 유행이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있다. 런웨이를 벗어나면 누구도 못 입을 의상이 ‘패션쇼’란 이름으로 요란하게 중계되고, 살림의 일상성이 소거된 ‘무대장치 같은’ 건축이 각광 받으며, 누구나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요리’란 이름을 붙여 수선 떠는 게 유행의 실상이다.
유행은 늘 그렇듯 일시적이다. 빨리 퍼질수록 슬며시 사라지고 널리 퍼질수록 재미가 없다. 그런데도 옷과 밥, 집을 소재로 한 각종 방송은 끝도 없이 유행하고 확산된다. 이는 거꾸로 옷∙밥∙집에서 사람이, 생활이 소외됐다는 방증 아닐까. 당장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소비(선택)하는 옷∙밥∙집에서 얼마나 주인답게 굴고 있는지.
옷과 밥, 집의 ‘주체’답게 내면을 윤택하게 가꾸려면 이 한마디를 잊지 말자. 불치불검(不侈不儉). 사치하지 않되 검소하지도 않게, 수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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