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직업 선택의 갈림길에 선 청춘들에게

2015/10/08 by 곽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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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직업 선택의 갈림길에 선 청춘들에게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토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곽정은 칼럼니스트


 

몇 주 전 인간관계와 소통, 연애에 대한 강연을 하러 갔다가 한 학생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으레 ‘사랑’에 대한 질문이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다소 심각해 보이는 그 학생이 내게 건넨 질문의 주제는 ‘직업’이었다.

 

‘돈 잘 버는 일’과 ‘재밌고 즐거운 일’ 사이에서

칠판에 DREAM JOB에 관련된 CAREER, ASPIRATIONS, WORK, HOPE, SALARY, position, interview, POTENTIAL, education 등등 다양한 글씨가 적혀있습니다.

“돈은 좀 벌 수 있지만 재미가 없는 직업과 돈은 별로 못 벌어도 제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직업 중 어떤 걸 택해야 행복할까요?” 그맘때 할 수 있는 치열한 인생 고민 중 하나란 생각에 열심히 내 의견을 얘기해주고 돌아섰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학생의 질문은 당초 전제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 세상엔 ‘자아실현에 도움 되면서도 적당한 부를 안겨주는’ 일과 ‘돈이 안 되면서 맘에도 안 드는’ 일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돈’과 ‘자아실현’, 두 기준에 따라 직업을 구분할 경우 존재 가능한 옵션은 ‘둘’이 아니라 ‘넷’이 된다. 생각보다 복잡한 답안지다.

직업 고르는 일이 점점 더 어렵고 고통스러워지는 이유는 사실 우리 사회 자체에 있다. 언뜻 네 가지 옵션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직장 초년생에게 ‘돈도 많이 벌고 자아실현도 확실히 보장하는’ 직업이란 (쉬이 손이 닿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것일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고달픈 비정규직과 허울만 좋은 인턴십 사이에서 ‘돈도 안 되고 자아실현도 하기 어려운’ 일자리가 그나마 당장 구할 수 있는 직업의 대부분일 때, 낙담하지 않기란 좀처럼 어렵다. ‘돈’과 ‘재미’를 두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한 학생의 질문이 다소 순진하게 느껴질 만큼 세상을 호락호락하지 않은 쪽으로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을 멈출 순 없다. 아니, 상황이 치열할수록 고민은 그 깊이를 더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덜 후회하는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슨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인생을 살든 그게 온전히 ‘내 선택’이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고민이 수반됐다면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자존감에 상처 받을 일도 없이 잘 살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첫 번째 원칙, ‘일터’ 말고 ‘일 자체’에 집중하기

직업 선택 시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어떤 직장도 날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고용해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난 지금도 꽤 유명한 모 중견기업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정규직 공채’로 입사했다는 기쁨에 겨워 ‘이 고마운 회사가 날 내쫓지 않는 한 절대 나가지 않겠다’라며 철모르는 다짐까지 했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남짓 지난 시점, 회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내가 속해있던 잡지본부 인력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대부분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 한마디로 보기 좋게 잘린 것이다.

첫 직장이 예고 없이 단칼에 ‘공중분해’ 되고 매일 함께 밥 먹던 선배들과의 소식이 영영 끊어지는 걸 보며 생각했다. ‘평생 직장 같은 건 세상에 절대 없구나,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일과 재주, 인맥, 경험만이 날 증명할 수 있겠구나!’ 직장의 이름보다 중요한 건 그 직장을 나왔을 때 내가 지닌 경험의 폭과 질이란 사실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 셈이다.

한 여성이 그림으로 된 계단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때 이후 난 어떤 회사에 다니든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임무를 담당하느냐’의 문제라 생각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기회로 만들어주는 일터’인지에 집중했다. 그래서 내게 많은 칼럼을 쓰게 해준 ‘싱글즈’나 ‘코스모폴리탄’ 같은 매체로의 이직을 결정할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후로도 어려운 일이 주어졌을 때 피하지 않았고 새 업무를 맡으라고 할 때 귀찮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회사’란 대규모 조직의 톱니바퀴로 기능하지만 다른 곳에 가서도 충분히 잘 기능하는, 매력적 톱니바퀴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당장 다닐 회사 이름보다 자신이 그곳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될지, 그로 인해 어떤 기회와 성취를 거둘 수 있을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아무리 번듯한 회사라 해도 ‘나’에게 제대로 된 기회와 성장할 수 있는 일거리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그건 허울에 불과할 테니까.

 

두 번째 원칙, ‘난 어떤 성향의 사람?’ 파악하기

직업을 고를 때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건 ‘타고난 내 성향’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활발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편인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편인지 신중히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난 ‘혼자서 쉬며 창의적인 걸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내향적(內向的) 인간이었다. 잡지 에디터로 생활하며 포토그래퍼나 스타일리스트, 연예인, 기타 취재원을 자주 만났지만 마감 기간 중엔 늘 혼자서 각종 자료나 원고와 씨름하며 ‘나만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그 덕에 남들은 굉장히 괴로워하는 마감 업무도 그럭저럭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사람들과 시끄럽게 어울리는 걸 유독 힘들어해 가끔 있는 회식 자리는 어떻게든 도망치려 애썼지만 적어도 내 내향성이 도전 받았던 경험은 많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일터여서 그랬을까, 근무하는 내내 내 존재가 그 자체로 존중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명이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직업을 단지 남들이 호평한다고 해서, 혹은 ‘대우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택한다면 일하는 내내 자신의 내면에 불어오는 불편한 일렁임과 싸워야 할 것이다. 자신의 본래 성향과 다른 업무에 도전하는 정도라면 자기계발 차원에서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성향을 아예 고쳐야만 잘 적응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 애초에 그 길로 들어서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실제로 학교 동기 중엔 그저 초봉이 높다는 이유로 은행에 취업하고 영업직을 택한 이들이 있다. 난 지금도 그 길로 가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택한 일이 창의성 발현 기회가 적었다면, 낯선 이에게 ‘영업 마인드’로 접근해야 하는 부류였다면 내 자아는 그 속에서 얼마나 큰 혼란을 겪었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처음엔 돈이 좀 안 되더라도, 자신의 성향을 존중 받을 수 있고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다보면 분명 직업적 성취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이후엔 ‘그저 돈만 보고 직업을 택한’ 이들보단 어떤 식으로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돈도 얼마 안 주고 그렇게 야근까지 시키는 회사 당장 그만두라”며 채근하시던 부모님이 지금은 “그때 네가 기자 하길 참 잘했다”고 말씀하신다는 얘기도 덧붙여야겠다.)

 

‘서류전형 60회 낙방’ 견딜 수 있게 해준 믿음

직장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가시밭길도, 밥값 하기 위해 뛰어들어야 하는 전쟁터도 아니다. 인생만 해도 어떤 이에겐 죽지 못해 이어가는 하루하루의 연속이겠지만 다른 이에겐 1분 1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시간 아닌가. 직업이나 일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그게 자신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여러 명이 JOB SEARCH 알고리즘이 그려진 그림 앞에 서 있습니다.

내게 일(터)은 삶을 유지하게 하는 수입원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다. 나 자신을 시험해볼 수 있는 무수한 기회인 동시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딱 한 가지 잣대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2001년 이맘때 서류전형에서만 60회 낙방하고서 ‘딱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낙심하면서도 한편으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저 좋은 글 쓰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무조건 열심히’가 아니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세운 후 최선을 다하는 것,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기억을 끝끝내 놓지 않는 것. 직업을 구할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 두 가지다. 어쩌면 둘은 비단 직업뿐 아니라 평생 기억해야 할 인생의 원칙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곽정은

㈜왓츠넥스트 대표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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